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에 흐르는 뜨거운 땀을 훔치며 조명희가 계단을 내려왔다. 방금 그녀는 위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나는 싸움 소리를 듣고, 자신이 동혁에게 잘 보일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조명희는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천씨 가문이 뭐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봤자 여기 이 선생님과 비교할 자격도 없어!” 조명희는 조씨 가문의 딸의 면모를 보였는데, 가느다란 눈썹이 곤두서고 차갑게 얼굴의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조명희도 나홍연과 같은 흉포한 여자를 꿈적도 하게 할 수 없었다. 나홍연은 조명희가 앞치마를 두르고, 대걸레를 든 보모 차림인 것을 보고 갑자기 무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어린 보모가 세상 물정 모르고 감히 천씨 가문을 무시하다니! 내가 천씨 가문에게 말하면 너 같은 건 감히 여기 못살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나 짓게 될 거야!” 3대 가문은 H시의 지배 세력이다. 어린 보모 하나 어찌하는 건, 개미 한 마리를 잡아 죽이는 것만큼 쉬웠다. “조, 조명희 아가씨!” 이때 옆에 서 있던 천진이 너무 놀라 몸이 굳었다. “아가씨? 확실히 아가씨 같긴 하네.” 나홍연은 콧방귀를 뀌고서, 신랄하게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여우처럼 생겨서, 보모로 일하는 건, 틀림없이 주인집 돈을 탐내서겠지! 어쩌냐 애석하게도 이 집의 남자 주인은 이미 죽은 귀신이 됐는데!” 그녀가 또다시 무식하게 항남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동혁은 화를 냈다. “조명희, 뺨을 때려서 저 입 좀 닥치게 해!” “예, 이 선생님!” 조명희는 두말없이 대걸레를 놓고 걸어갔다. “조그만 여우 같은 년이 어딜 감히! 내가 혼내주랴?” 나홍연은 조명희를 매섭게 노려보며, 오히려 한 대 때릴 기세였다. “엄마, 그만해요. 3대 가문 중 하나인 조씨 가문의 조명희 사장님이란 망이에요!” 천진은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뭐라고?” 나홍연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하니 조명희를 쳐다보다가, 겁에 질려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을 것 같아? 네가 방금 3대 가문에게 소식을 전하려 했다는 거 말이야? 너만 똑똑한 줄 아나 보지?” 동혁은 엎드려 있는 조명희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천진 모자 앞에서 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깍듯이 동혁을 “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마치 동혁에게 엄청 깍듯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사실 조명희는 천진 모자가 돌아가서 보고 들은 것을 3대 가문에게 알리기를 원했다. 그녀가 동혁 때문에 여기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3대 가문에게 알렸으면 했다. 3대 가문이 충분히 똑똑하다면 동혁의 신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조명희의 이런 얕은 꾀는 국외 전장에서 수없이 서로 속이고 속이는 싸움을 하던 동혁을 속일 수 없었다. “이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단지 가문에 알려, 다시는 이 선생님과 맞서지 않도록 주의시켜, 가문이 패가망신하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가문을 통해 복수하려는 뜻은 절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전신이고, 말씀 한마디에 저희 생사가 달려있고, 말씀이 곧 법인데. 말 한마디로 저희 조씨 가문을 멸할 수 있는 분에게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어요?” 동혁이 자신의 꾀를 간파하자, 조명희는 더욱 놀라 머리를 숙이고 해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 이번 한 번은 용서해 주지.” 동혁은 조명희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고, 그녀를 일어나게 했다. 그는 조명희가 감히 자신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조명희가 벌벌 떨며 일어섰다.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전 일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어. 하지만 난 오히려 그 사람들이 네 뜻을 읽을 수 있었는지 보고 싶네! 3대 가문의 생사가 천진 모자의 눈치에 달려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조명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조마조마하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3대 가문은 과연 금곡 별장 C동을 감시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천진 모자는 금
“그래, 사실 나는 오히려 이 단독주택을 천진에게 빼앗겨도 상관없어. 그렇게 하면 소야의 생활이 좀 나아질 거 아니야?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상관없어.” 육수아도 눈물을 훔쳤다. 나홍연은 제멋대로 굴며 백문수 등 사람들 앞에서 수소야의 뺨을 때렸다. 천진은 마마보이로 수소야를 전혀 보호하려 하지 않았다. 육수아는 천진의 집으로 돌아가면 나홍연이 수소야를 더욱 심하게 대할까 봐 걱정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람마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잖아요. 소야 씨는 이미 재혼했으니 걱정해도 이제 소용없어요.” 동혁은 백문수 노부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수소야가 재혼하지 않았다면, 동혁은 누군가가 이렇게 자기 형제인 항남의 아내를 괴롭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항남의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수소야는 천진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 지금 동혁이 가지고 있는 수소야에 대한 느낌은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지만, 동혁은 그저 다른 사람의 집안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어? 우리 마음속에 소야는 친딸이나 다를 바 없어.” 육수아는 그래도 계속 걱정하며 말했다. 백문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항남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 집은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거기다 마리가 또 큰 병에 걸려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진단을 받았어.” “소야는 원래 항난그룹의 부사장이었지만, 항남에게 변고가 생긴 후, 나가서 새로운 직장을 구해 돈을 마련하려고 했어. 하지만 아무도 소야를 원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그때 소야를 쫓아다니던 천진과 결혼해서, 그 집에서 돈을 내 마리를 치료한 거야.” “모두 우리 가족 때문에 소야 혼자 힘든 책임을 지게 됐어! 그렇지 않았다면 소야는 천진에게 시집갈 필요도 없고, 억울함을 당하지 않아도 됐을 거야.” 동혁은 아연실색했다. 그는 수소야가 재혼한 이면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마리는 확실히 큰 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동혁이 처음 마리를 보았을 때, 마리는 체질이 좋지 않고
나홍연은 손으로 찻잔을 치켜들어, 뜨거운 차를 수소야의 부드러운 손목에 뿌렸다. “아!” 수소야는 비명을 지르며 붉게 부어오른 손목을 감싸 쥐었는데,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수소야, 이 배은망덕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우리 집에 시집온 지 2년, 기생충처럼 우리 집에 빌붙어 살았는데, 아직도 네 이미 죽은 전남편 집만 생각하다니!” “우리가 돈을 내지 않았더라면, 그 집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이미 죽었을 가야!” 나홍연은 이를 갈며 한바탕 욕을 하더니, 결국 일어서서 수소야를 밀며 매섭게 소리쳤다. “저리 꺼져! 그냥 천진과 이혼해! 내가 보기에 넌 우리 가족도 아니고, 너를 원하는 회사도 없어! 가서 굶어 죽어 버려!” 수소야는 나홍연에게 떠밀려 땅에 쓰러졌다. 그녀는 천진을 바라보았지만, 천진은 헤드폰을 끼고 억지로 못 본 척했다. 사실 천진도 지금 속으로는 불만이었다. 수소야는 절망적이고 무기력해져, 마음속에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 찼다. 바로 그때 그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조심히 휴대폰을 귓가에 받쳐 들고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의심하는 표정이더니 곧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전화한 거야? 왜 널 찾는 건데?” 나홍연이 무뚝뚝하게 묻자, 천진도 보고는 수소야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광도그룹 회장 비서가 제게 전화를 걸었는데, 저보고 사장이 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광도그룹은 공식적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이라, 아직 대외적으로는 이전 이름을 사용했다. 천진 모자는 광도그룹 사장이 3대 가문의 사람인 모태국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주인이 바뀌었지만, 천진 모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수소야가 사장으로 제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놀라고 기뻐했다. “뭘 멍하니 있어? 빨리 내 며느리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나홍연은 천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천진은 얼른 와서 수소야를 일으켜 세웠다. “소야야, 방금 이 엄마가 홧김에 널 밀어서,
“죄송합니다.” 동혁은 수소야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고, 선우설리가 놀란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소야에 대해, 동혁도 선우설리와 마찬가지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존경심이 있었다. 그 순간, 수소야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니, 아니에요.”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감정이 벅차올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선우설리는 묵묵히 휴지를 내밀었다. 수소야가 진정되자 동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3대 가문이 항난그룹을 나눠 가졌고, 그중 일부가 이곳 광도그룹에 합병됐어요. 그래서 제가 이곳을 되찾아 다시 항난그룹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소야 씨, 제가 왜 그랬는지 아시겠어요?” “항남 씨의 복수를 하려고요?” 수소야가 흥분하여 물었다. 그녀는 똑똑한 여자다. 동혁이 백항서를 가명으로 쓰는 것을 알고, 그녀는 그 목적을 이미 짐작했다. “사실 저는 동혁 씨가 항남 씨를 위해 이미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동혁 씨에게 너무 감사해요.” 수소야는 조언했다. “동혁 씨가 항남 씨를 위해 복수를 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3대 가문은 너무 강해요. 애초에 3대 가문이 항난그룹을 무너뜨릴 때도, 저희가 미처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그 속도가 아주 빨랐어요. 동혁 씨는 항남 씨가 생전에 항상 잊지 않았던 형제예요. 항남 씨는 동혁 씨가 자신을 위해 이런 위험한 일을 감수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예요.” 동혁이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은 수소야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3대 가문이 수소야에게 가져다준 공포의 그림자는 한시도 수소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동혁 씨가 내 충고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동혁은 수소야의 충고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항남 가족의 불행이 모두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했다.3대 가문이 항난그룹을 나누어 가진 것은, 틀림없이 탐욕에서 비롯된 약탈이 분명했다. 하지만 항남이 기어코 동혁을 정신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 사
“이동혁, 너 입사 지원했다고, 여기서 밥 먹는 거야? 직원도 되기 전에 여기 와서 밥 먹고 이러면 안 돼!” 천미는 동혁을 보면 화가 났다. ‘이런 바보 같은 놈이 그날 병원에서 감히 나를 위협했다니!’ 천미는 동혁이 정말로 노광훈 등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혁은 최원우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천미는 동혁을 이전보다 더욱 무시하게 됐다. “천미 씨, 그런 걱정은 마세요. 설마 내가 이 회사 사람도 아니면서 이렇게 식당에 들어와 밥을 먹 수 있겠어요?” 동혁은 천미의 두 눈을 빤히 마주 보며 말했다. “참, 근데 여긴 무슨 일이죠?” “정말 너 여기서 일자리를 구한 거야? 나야 네 회사 백항서 회장을 만나러 왔지!” 천미가 도도하게 말했다. 그녀는 강오그룹을 대표해서 화환을 가져온 김에 그 백항서를 직접 만나서 새롭게 등장한 그 회장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했다. 사실 그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 그럼 못 만났겠는데요?” 동혁은 웃으며 말했다. 전에 회장실에 있을 때, 선우설리에게 화환을 배달하러 온 각 그룹 대표들이 동혁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동혁은 찾아온 사람들의 이름도 묻지 않고 예외 없이 모두 거절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중에 한 명이 천미였다. 감히 자신을 비웃는 동혁을 보고, 천미는 기분 나쁘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내가 백항서 회장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네 회사의 고위층 임원은 만났지. 여기 이분은 항난그룹의 하강원 부장님이셔. 어쩌면 네가 여기 부장님의 소속이 될지도 모르겠네!” 천미 옆에 서있던, 정장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은 남자가 즉시 웃었다. “심 사장님 안심하세요. 이 분이 사장님의 친구인가 본데, 앞으로 제가 잘 살피겠습니다!” 천미가 동혁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잘 살피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강원은 특히 심하게 강조했다.하강원은 일찍이 항난그룹의 임원이었다. 항난그룹이 3대 가문에 의해 분할된 후, 하강원은 비
“하 부장님, 여긴 신경 쓰지 말고, 저흰 그냥 식사나 하면서, 회장님에 대해서나 이야기하자고요.” 천미는 동혁이 언짢아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그녀는 단지 동혁을 보고 몇 마디 욕을 하고 싶을 뿐, 정말 동혁의 해고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강원을 말리고, 천미는 고개를 돌려 식사를 하러 갔다. “이동혁이라고 했지? 내가 널 잘 기억해 두지! 나중에 한번 보자고!” 하강원은 동혁을 가리키며 경고했고, 바로 천미를 후다닥 뒤쫓았다. 동혁은 계속 태연하게 밥을 먹었고, 하강원이라는 하찮은 사람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밥을 먹고, 동혁은 회사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 동혁은 길가에서 택시를 한 대 불렀다. 그때 사무용 정장을 입고, 한 손엔 휴대폰을 든 여자가 그룹 건물에서 황급히 뛰쳐나와, 초조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가오는 택시를 보고 송소빈의 눈이 번쩍였다. 그러나 택시가 동혁 앞에 멈추자, 송소빈은 실망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급한 일이 있나 봐요. 그럼 먼저 이 차에 타세요!” 바로 그때,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소빈은 고개를 들어 방금 말한 사람이 동혁인 것을 보았다. 그녀는 서둘러 다가왔다. “정말 죄송해요. 엄마가 편찮으셔서 급히 집에 가서 병원에 모셔다 드려야 하거든요. 혹시 저희 항난그룹의 직원 되시나요? 정말 감사해요. 제 이름은 송소빈이에요.” “예, 알겠으니 어서 차에 타세요.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면서요.” 동혁은 웃으며 송소빈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송소빈은 동혁에게 연거푸 감사인사를 하고서 차에 탔다.택시가 출발하고 나서 곧 송소빈은 자신이 상대방의 이름을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매너 좋은 동혁에게 호감을 느꼈다. 동혁은 또 다른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천미는 하강원의 입에서 회장에 관한 어떤 유용한 정보도 찾지 못했다. 하강원 자신도 백항서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 당연히 천미에게 그에 관해 아무
“네 말은, 저 이동혁이 백 회장님이 찾던 그 바보란 말이야?” 하강원은 깜짝 놀랐다. “H시 정신병원에서 나왔는지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죠!” 범연희가 차갑게 말했다. 그녀는 이전에 항남의 비서였다. 항남은 그녀에게 동혁의 행방을 조사하게 한 적이 있다. 동혁이 H시 정신병원에 있는 것을 찾은 후, 항남은 범연희에게 정신병원 직원에게 동혁을 데리고 나올 수 있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그래서 범연희는 동혁의 이름을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누군가가 백 회장님을 찾아와 이동혁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며 위협했었지.’ ‘하지만 회장님은 말을 듣지 않고, 상대를 쫓아냈어.’ ‘그 후 회장님은 이동혁을 데리고 나올 방법을 찾으러 정신병원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그때부터 우리 항난그룹의 재앙이 시작된 거야!’ 2년 동안 범연희는 항남과 동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동혁이 아니었다면.’ ‘백 회장님이 고집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우리 항난그룹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분해돼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을 거야.’ 원래대로라면 범연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항난그룹 회장의 비서로서 승진도 빨리해 진작에 임원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범연희는 야망이 많은 여자다. 항난그룹이 회복되자마자 그녀는 이곳으로 다시 일하러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항남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범연희는 충성스러운 선임직원라는 신분으로, 항난그룹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싶을 뿐이다. 동혁의 자료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H시 정신병원에 몇 년 동안 갇혀 있다가 나온 후, 줄곧 아내의 집에서 지내며 죽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무직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진씨 가문의 그 소문난 바보 사위가 바로 이동혁이었군요. 아마 이동혁은 분명 회장님의 형제라는 신분을 믿고 항난그룹에 지분 반을 찾으려고 했을 거예요.” “어쩐지 이 쓸모없는 놈이 아까 전에 나보고 자신에게 신경 쓸 자격이 없다고 하더라니, 알고 보니 이런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