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루안은 용국에서 이 세 사람에 비견될 네 번째 사람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도헌? 말도 안 돼, 그 녀석은 고무자가 아니어서 선발될 수가 없어.’‘전신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모두 고대무술 수련자로 실력도 아주 높아.’“말을 빙빙 돌리지 마. 내가 말을 돌리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진루안은 눈살을 찌푸린 채 불쾌한 표정으로 고성용을 노려보며 말했다.고성용은 입을 쩝쩝 다시면서 말했다.“재미없네, 여전히 이렇게 재미없어!”“여자야!” 고성용은 진루안을 바라보며 조롱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하면서, 진루안이 이 사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진루안의 표정이 자기도 모르게 굳어졌다, ‘여자가? 세계 전신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진루안의 기억 속에서 용국에 이런 실력의 여자는 있지만, 모두 이런 능력은 없는 듯했다.‘군부의 그 여자 장군들도 모두 순수한 병왕은 아니야. 게다가 나이도 많은 편이야. 심지어 몇 명은 40대로 전신 대회의 나이 제한에 걸렸어.’‘세계전신대회는 18세 이상 35세 이하의 성인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어.’‘그래서 그 여자 장군들은 더욱 불가능해.’ 진루안은 침울한 기색을 띠고 고성용을 노려보았다.고성용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삐죽거리며 씩 웃고서 두 손을 펴보였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말해줄게. 막내 사매 연수아야!”고성용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막내 사매가 왜 진루안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이 고집불통은 이렇게 힌트를 줘도 막내 사매를 떠올리지 못했어.’ 고성용은 막내 사매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예전에 함께 방촌산에서 기예를 배웠을 때, 모두가 백무소의 예비 제자였기 때문에 고성용도 연수아를 막내 사매라고 불렀다.“연수아? 그럴 리가?”진루안의 표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온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성용을 응시하는 눈빛도 계속 복잡해졌다.문득 연수아가 이미 오랫동안 자신
“막내 사매의 현재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네.” 고성용은 진루안이 이렇게 묻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진루안이 연수아의 최근 정황을 알지 못했고 표정도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자신도 연수아가 변경의 97여단에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진루안은 뜻밖에도 알지 못했다. 임페리얼의 궐주로 그렇게 좋은 정보 자원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 일을 몰랐던 것이다.‘이게 뭘 말하는 것이겠어? 진루안은 확실히 연수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거야.’‘만약 정말 연수아에게 신경을 썼다면, 어떻게 이런 걸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어?’“연수아는 97여단에 갔고 지금은 97여단의 부여단장이야!”고성용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일을 진루안에게 알렸다.진루안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지만, 자신이 며칠전에 이 일을 알았을 때는 가장 빨리 연수아를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본 다음에 출발하지 않았다.‘나는 연수아와 친척도 친구도 아니고 단지 선후배의 명분만 있기 때문이야. 연수아를 데려올 자격도 없고, 더욱이 연수아가 가는 길을 방해할 수도 없어.’‘친오빠인 연정조차도 연수아를 말릴 수 없는데, 외부인인 나는 더더욱 불가능해.’‘연수아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바로 눈앞의 이 진루안이야. 그런데 하필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진루안의 표정은 아주 무거웠다. 자신은 정말 연수아가 97여단에 간 일을 몰랐고, 아무도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임페리얼 조직의 정보 시스템을 통해서는 더더욱 연수아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연수아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관심은 결국 남녀 간의 애정과는 다른 것이다.“97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가장 어지럽고 복잡한 곳이야. 이따금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의 미사일이 용국의 서북 국경에 떨어지기도 해. 연수아는 이런 곳에 간 거야...”고성용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하다가 진루안의 반응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이 말은 일부러 한 말로, 바로 진루안에게 9
만약 사적인 일이라면 고성용은 진루안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진루안을 돕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이런 마음과 태도는 북정왕 이광정과 똑같았다.이광정은 진루안과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사이지만, 국가의 대의와 관련될 때는 모두 공동으로 손을 잡고 협력해서 외국에 대처한다.이는 바로 용국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만약 이런 구도와 마지노선이 없다면, 올바르지 못한 용국의 국민일 것이다.“잠깐만!”이미 회의실 입구를 나온 고성용을 보면서 진루안이 큰 소리로 외쳤다.발걸음을 내디디던 고성용은 회의실 입구에 선 채, 진루안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또 일이 있어?”“고마워!” 깊이 숨을 내쉰 진루안은 고성용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말을 했다.그 말을 들은 고성용의 표정이 갑자기 많이 복잡해졌다. 진루안을 깊이 바라보면서 얼굴에 진실한 미소를 드러냈다.“내게 감사할 필요 없어. 나는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내가 말한 건 그 쪽지야!”진루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어떤 쪽지야? 기억이 안 나!” 고성용은 의아한 듯이 진루안을 보며 반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나는 갈게!”진루안은 회의실에서 나온 고성용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지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줄곧 지켜보았다.눈길을 거둔 진루안은 고성용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재상이 되었으니 크게 비난할 것도 없어.’‘비록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지만, 그 노련하고 신중한 늙은이들보다 100배 이상 나아. 용국의 정사당에 생기발랄한 젊은 사람들이 나타나야 이 용국에 희망이 있을 거야.’‘모두 다 케케묵은 늙은이들이라면, 이 용국은 신선감은 전혀 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어.’“사부님?”조경의 모습이 회의실 입구에 보였고, 복잡한 눈빛으로 진루안을 바라보면서 소리를 질렀다.눈빛을 거둔 진루안은 심경도의 비서가 조경을 데리고 온 것을 보자,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사부님, 왜 때려요?” 조경은 진루안을 원망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의 큰 제자가 이러는 것을 본 진루안은, 참지 못하고 씩 웃으며 손바닥으로 조경의 머리를 때렸다.“너 이 자식, 제자가 스승에게 맞은 건 당연한 일 아니야? 너는 아직도 불복하는 거야?”“그, 그런데...”조경은 또 뭔가 반박하려고 했지만, 흉악하게 위협하는 진루안의 눈빛을 보자 바로 꼬리를 내렸다.“어, 맞는 말씀입니다.” 조경은 지극히 억울한 듯이 코를 훌쩍이며 진루안의 곁을 따라갔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진루안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기색이 드러났다. ‘네 놈이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때리면 맞아야지?’‘국왕의 아들이면 또 어때? 이 몸이 불편해서 한 대 때린다 해도, 국왕도 나를 어쩔 수 없어, 왜냐하면 나는 이 녀석의 스승이기 때문이지.’진루안은 앞서 마음이 좀 꿀굴했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진루안은 조경을 데리고 회의실을 나섰다. 복도 안쪽에서 심경도가 고성용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진루안은 지나가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나갔다.“진루안, 잠깐만!”진루안이 몸을 돌려 가는 것을 본 심경도가 바로 소리를 질렀다.막 발걸음을 내디디던 진루안은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심경도를 바라보았다. 심경도는 지금 대단히 격동된 표정으로 진루안의 팔을 잡고 흥분해서 말했다.“너 알고 있어? 곧 큰 프로젝트가 건성에 떨어질 거야, 하하.”“10조, 10조 원의 큰 프로젝트야. 국가의 프로젝트지!”심경도가 지금 마치 어린아이처럼 흥분했기에, 진루안은 고성용을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꾸민 일이지? 네가 인심을 사는 수단은 정말 고명하네.”두 사람 앞으로 다가간 고성용은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음미하는 기색을 드러내면서 웃었다.“진루안 네가 고향을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내가 재상의 권리를 발휘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거야?”“너는 지금 권리를 남용하는 거야?” 진루안은
진루안은 차를 몰고 경주의 전씨 가문, 곧 전광림의 집으로 갔다.이 익숙한 저택에 온 진루안은 조경을 차에 남겨두고 혼자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저택의 대문은 열려 있고 정원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청소하는 사람조차 없어서 곧장 안쪽의 홀까지 바로들어갔다.홀에 들어선 진루안은 그렇게 큰 방에 전광림 혼자밖에 없고, 집사 전희재조차도 없다는 걸 발견했다.전광림은 혼자 묵묵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금의 전광림은 이미 10살은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얼굴은 초췌해졌고 양쪽 귀밑머리까지 백발이 되었다. 비록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되는 과장된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차이도 크지 않았다.60여 세의 전광림이 지금은 마치 7, 80세의 노인과 같은 모습이었다.“희재 아저씨는요? 왜 없어요?”진루안이 먼저 입을 열고 물었다. 얼굴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고, 전해강의 죽음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전광림에 대해서는 다소 죄책감을 느꼈다.‘전해강이 범한 죄가 사실이라면, 그는 죽어도 다 속죄할 수가 없어. 감히 국가의 에너지원을 밀매하고, 결국 외국과 결탁했으니 이는 이미 반역의 큰 죄야.’전광림의 공헌으로 덮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루안 자신도 전해강을 놓아줄 수가 없었다.다만 고성용의 수단은 더욱 예리하고 과감했다. 결국 아무런 감정상의 속박도 없기에, 고성용은 아주 결연하게 해치운 것이다.진루안은 모든 사람에게 결연히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이런 악랄한 수단을 펼칠 수 있지만, 유독 전광림을 대할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우려했다.고성용은 차마 철저하게 근절하지 못한 걸 결심할 수 있게 도왔을 뿐이다.이 점에서는, 진루안은 고성용에게 감사해야 한다.“궐주께서 오셨군요. 앉으세요.” 무기력한 얼굴로 고개를 든 전광림은, 진루안을 보고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소파를 가리켰다.소파 옆으로 걸어간 진루안은 천천히 앉아서 전광림을 마주했다.분위기는 다소 부자연스럽고 침울했다. 전광림은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마
“그렇습니다. 반역죄입니다!” 진루안은 굳은 표정으로 전광림을 쳐다보았다. 전광림은 자신의 늙은 얼굴을 한 번 후려치고서 온몸을 떨었다. 의기소침해서 소파에 앉은 채 눈물이 앞을 가렸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정말 대단하군요, 반역이라니요.”“저는 평생 체면을 차리면서 용국에 충성하고 임페리얼에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해강이에 의해서 이름을 더럽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 큰아들이 결국 그런 사람이었다니!”전광림의 늙은 얼굴은 화가 나서 온통 무쇠처럼 검푸르게 변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결국 자신의 아들이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그의 늙은 얼굴은 체면을 차릴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임페리얼과 백 군신의 신임을 저버렸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진루안을 대할 수도 없었다.앞서 전광림은 확실히 진루안에 대해서 너무 무자비했다는 생각도 있었다. 전해강의 일에 직면해서 관대하게 용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임페리얼에서 한 공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지금 반역죄 얘기를 듣자, 전광림은 자신의 아들이 확실히 죽어도 죄를 다 갚을 수 없을 정도였고, 전혀 동정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전광림은 더욱 가슴이 아팠고 자책감을 느꼈다. 전해강은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일을 저질렀다. 바로 경주에서 건성의 서열 2위의 대신으로 있으면서 결국 나라를 배반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인 자신은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아버지로서뿐만 아니라 임페리얼의 4대 호법의 수장이 자기 아들의 반역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이는 자신의 체면을 없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이 다 헛수고였고, 심지어 자신이 공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죄도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궐주님, 저의 이 늙은 얼굴은 체면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저 스스로 임페리얼의 형당에 죄를 다스려 달라고 청하겠습니다!”전광림은 극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진루안의 앞에 섰다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였다
펑!예리한 눈빛을 번뜩인 진루안은 몸을 번쩍이며 전희재를 발로 차서 날려보냈다. 물통의 물은 온 바닥에 쏟아졌고, 대걸레는 바로 반으로 부러졌다. 그리고 전희재는 바로 정원까지 날아가서 문 밖의 석조상에 겹겹이 부딪쳤다.“푸!” 전희재는 피를 한 모금 쏟았고 전반적인 기운도 많이 약해졌다. 비록 고무자일 뿐만 아니라 연골1중의 경지였지만, 진루안을 상대로는 그래도 좀 부족했다.진루안은 곧 연골 3중을 돌파할 것인데, 전희재가 어떻게 진루안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부하를 잘 단속하세요!”진루안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광림을 노려보며 조용히 외쳤다.진루안의 무서움이 다시 한번 실증되자, 전광림은 가슴이 떨렸다.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사죄했다.“궐주께서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희재도 주인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에 불과합니다.”“나리...” 전희재가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가슴을 가린 채 입가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다만 표정에는 온통 배려하는 기색이 가득했다.아마도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이 부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가주인 전광림만 지킬 뿐이다. 진루안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았고,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전희재의 눈에 유일한 주인은 바로 전광림이다. 설사 전광림이 진루안의 부하라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정말 사직하고 싶으신 겁니까?” 진루안은 눈살을 찌푸린 채 큰 소리로 전광림에게 물었다.전광림은 확고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만약 사직하지 않는다면, 임페리얼의 정보 시스템은 아마 미쳐버리겠지요?”“제 아들이 반역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고도의 의심을 받게 되는데, 4대 호법의 수장 자리에 계속 앉아 있다는 건 이미 적합하지 않습니다!”전광림의 생각은 아주 간단했다. 이유는 더욱 솔직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었다.‘반역자의 아버지, 심지어 그 가문을 믿으려는 사람은 없을 거야.’‘이제 전씨 가문은 반드시 쇠퇴할 운명이지만, 그것은 전혀 고려할 필
다만 진루안에게 자신을 연루시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전광림 자신이 정말 피곤해서 쉬고 싶었다. 마음 속의 울분도 이미 떨쳐냈기에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다.“궐주님, 궐주님의 말씀은 저를 감동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저는 반드시 임페리얼을 떠나야 합니다!”“보고서는 제가 이미 국왕에게 보냈으니, 아마도 회답이 곧 내려올 것입니다.”“저는 궐주께서 하루빨리 새로운 호법의 수장을 찾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임페리얼도 갈수록 좋아지기를 기원합니다.”“제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어둡지 않기를 바랍니다.”전광림은 복잡한 눈빛으로 깊이 허리를 굽혀 절을 했고, 오래도록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진루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탄식할 뿐이다.전희재도 막지 않았지만 가슴이 아픈 눈빛이었다.전광림은 반평생 동안 임페리얼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조금도 태만하지 않았다.이제 임페리얼을 떠나는 것은 집을 떠나는 것과 같다.마음속의 심정이 어떤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궐주님, 돌아가세요!”개운한 기색으로 일어난 전광림은 온몸에서 윗사람의 기운을 내려놓았다. 자신은 더 이상 임페리얼 호법의 수장이 아니며, 더 이상 건성에서 가장 큰 지하세계의 보스도 아니다.전광림은 지금 70세의 노인, 아들이 죽은 노인일 뿐이다.진루안은 눈빛이 유난히 복잡했고 더욱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자신이 막 동강시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만났던 사람이 바로 전해강이었음을 기억했다.그때 전해강은 각종 고급차를 가지고 정거장에 와서 자신을 마중했다. 그때의 전광림은 기세가 드높았다. 연미복 스타일의 양복은 마치 젊은이처럼 더욱 활력이 넘치게 만들었다. 그랬던 모습이 불과 반 년 만에 모든 것이 변했고 낯설어졌다.이런 느낌은 진루안을 약간 황홀하게 했지만, 이것이 바로 생활이고 인생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게 해 주었다.“그래요, 잘 지내세요!”진루안은 전혀 자식 같은 태도도 없이 전광림의 어깨를 두드렸다. 비쩍 마른 어깨는 더 이상 예전의 듬직한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