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루안, 이건 네가 수작을 부린 거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진루안을 바라보는 조기의 눈에는 싸늘함과 분노가 가득했다.조기는 필연적으로 진루안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성용이 포기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포기할 리가 없어.’‘내가 고성용과 7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무슨 말이든 다 하는 좋은 형제와 같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포기할 수 있어?’ 조기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필연적으로 진루안의 짓이야!’‘틀림없이 진루안이 꾸민 짓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진루안에 대한 조기의 증오는 더욱 짙어져서 이미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진루안은 냉담한 눈빛으로 조기를 힐끗 봤을 뿐, 이 태자의 지능에 대해서 더 이상 논평하지 않았다.“진루안, 죽여버리겠어!”조기는 갑자기 미친 듯이 진루안을 향해 돌진했다. 손에는 어느새 검고 반질반질한 권총을 들고 있었다.이를 본 진루안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태자다워. 마음대로 권총을 구할 수 있어.’‘이 물건은 나도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결국 용국의 총기 규제는 아주 엄격해.’‘물론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권총을 구할 수는 있지만, 쉽게 사용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탄알마다 모두 고유번호가 있기 때문이지.’“권총 한 자루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평온한 표정으로 조기를 바라보던 진루안이 냉담하게 웃으며 물었다.조기는 권총을 꽉 쥔 손을 떨면서 온몸을 떨었다. 기어코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일단 이 총소리가 울리면 완전히 퇴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진루안이 어떤 신분인지는 태자인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왜요? 주저하면서 감히 손을 쓰지 못하겠어요?” 조기가 온몸을 떨면서 안색도 창백해졌지만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걸 본 진루안은, 경멸의 비웃음을 지으면서 천천히 조기를 향해 걸어갔다.조기의 얼굴에는 복잡한 기색이 드러났다. 진루안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자 끊임없이 후퇴할 수밖
“겁쟁이는 총을 들 자격도 없어!”진루안은 높은 곳에서 태자 조기를 바라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권총을 바닥에서 주워 고철덩어리로 만든 뒤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앞으로 다른 사람의 생사를 위협하지 마. 만약 당신이 지금 태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어!”“당신은 지금 태자라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 살려주겠어!”“결국 임금을 시해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아서야”진루안의 말은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조기의 마음을 깊이 두드렸다. 이 순간 조기의 마음은 무너져 붕괴되면서 크게 울부짖었다.조기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태자의 후광을 가지고서도 그럴듯한 일을 할 수 없었고, 각 방면에서 고성용에 의지한 채 도움을 받아야 했다.‘만약 고성용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었을 거야.’‘내 형제들도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라서, 늘 나를 폐하고 태자가 되고 싶어했지.’‘이제 형제들은 소원을 이룰 수 있겠지?’낙담한 조기는 공허하게 웃었고, 더 이상 진루안을 상대하지 않았다.진루안도 조기를 상대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서 다시 정사당 회의실로 돌아갔다.지금 회의실에는 고성용 혼자 말하고 있었고, 다른 대신들은 모두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고성용은 용국 정사당의 요구에 따라서 하나씩 문서를 전달했다.지금의 고성용은 아주 진지하고 엄숙하게 행동해서, 겨우 20대의 재상이라는 것을 조금도 알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간사하고 교활한 4, 50대의 늙은 여우 같았다.회의실에 들어간 진루안은 회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방청했다.개인 간에 어떤 원한과 갈등이 있든지 간에, 지역의 발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작은 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쳐서 구설수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시간이 천천히 흘러 어느덧 전체 회의는 족히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고성용은 경제를 발전시킨 경험과 어떻게 대중을 단결시키고 사회의 모순을 제거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성용은 심경도가 모두 고의로 자신의 체면을 깎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건성 정사당의 이렇게 많은 대신들의 단결과 조화된 모습을 보고 고성용은 다소 실망했다. 이간질을 통해서 건성에서의 진루안의 역량을 분열시키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고 재상, 벌써 오후인데 나가서 밥 먹지?” 활짝 웃고 있는 고성용을 바라보는 심경도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누구도 고성용의 결점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경도 심씨 가문과 경도 고씨 가문 출신인 두 사람은 모두 명문 대가의 자제다. 조부들은 모두 용국의 걸출한 인재이자 개국공신이었다.다만 최근에 고씨 가문은 약간 잠잠했지만, 심씨 가문은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심경도가 건성의 정사당 선임대신이 된 것 이외에도, 심씨 가문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재직하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2급 장군이다.심 씨 가문은 다른 가문과 달리 명문 장수 가문이기 때문이다.“밥은 먹지 않겠어. 내가 건성에서 직책을 이용해서 향응을 요구했다고, 누군가가 고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고성용은 고개를 저으면서 농담하는 투로 말했지만, 눈빛은 구석에 있는 진루안을 향했다.고성용이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두들 알게 되었다.진루안은 일어나서 미소를 지으면서 고성용 쪽으로 갔다.“여동생, 이 오빠가 밥을 살게. 이건 네가 향응을 받는 게 아니야!”고성용은 울분에 찬 표정으로 진루안을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건성에 올 때 너한테 모욕을 당할 줄 알았어!”“됐어, 밥은 안 먹을래, 너한테 할 말이 있어!”“진 선생, 고 재상, 두 사람 얘기 나눠. 나는 먼저 나갈게.” 두 사람이 분명히 할 말이 있는 것을 본 심경도는, 눈치 빠르게 웃으면서 회의실에서 나갔다.결국 회의실 안에는 진루안과 고성용 두 사람만 남았다.심경도가 떠나면서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잠시 두 사람 다 입을 열지 않았다.한참 뒤 고성용이 먼저 이 적막을 깨뜨렸다.“진루안, 이번 일은
‘고성용의 관념과 식견으로는 차은서와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은데.’‘차씨 가문은 이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이미 시간문제일 텐데 말이야.’‘이런 상황에서 차은서와 결혼을 선택하다니? 고성용이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으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야.’‘정교한 이기주의자인 고성용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절대 하지 않아.’“구체적인 이유는 알 필요 없어.”“기억해, 다음 달 3일이야!”고성용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은서는 지난날 진루안을 좋아했던 일은 당연히 똑똑히 알고 있었다.다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오히려 고성용 자신이 차은서와 결혼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뼛속까지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고성용은 결코 차은서에게 얽매이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국 지금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그날의 황당한 행동은 차치하고라도, 차은서는 그 뒤에 고씨 가문으로 달려가서 고성용의 아버지 앞에서 울며불며 하소연했고, 바로 목적을 달성했다.고성용은 아버지의 눈에 여자를 농락하고 버린 인간이 되어, 하룻밤 동안 무릎을 꿇는 벌을 받았다.이튿날 고씨 가문에서는 고성용에게 차은서를 아내로 맞이하고 거절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고성용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차은서라는 이 몸을 팔아 목적을 달성하는 여자의 속성은 점점 더 커졌고, 이 모든 것은 차은서가 꾸민 짓이다. 함정이 하나씩 겹쳐지면서, 조금의 힘도 쓰지 못한 채 이미 덫에 걸려 사람을 잡을 지경까지 되었다.고성용은 차은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마음속에서는 몹시 미워해서, 기회가 있으면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차은서는 일단 고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고 미래에는 가문의 안주인이 될 것이다.이 계략은 정말 무서웠다.고성용뿐만 아니라 고씨 가문까지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차은서가 이런 여자인 줄 알았더라면, 고성용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차은서의 가장 큰 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어.’‘차은서는 나와 결혼한 후, 어쨌
진루안은 눈빛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고성용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표정에는 뭔가 깨달은 기색이 드러났다.“너도 참가해?”진루안이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이것이다. 만약 고성용이 참가하지 않는다면 세계전신대회는 고성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전신대회에 참가해야만 고성용과 관계가 있다.미소를 드러내면서 고성용은 진루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맞아, 나도 참가 신청을 했어.”“진루안, 나는 너를 겨냥한 게 아니야. 너와 전신 타이틀을 놓고 쟁탈하려는 것도 아니야. 내가 외국에 있어서 정보는 더 빨라. 이번에 서방 각국은 너를 포위하고 사냥할 거야!”“세계전신대회가 올해는 사상 유례없는 한 해가 될 거야. 또한 가장 무서운 한 해가 될 거야. 이번 대회는 전 세계 최고의 병왕들이 모였기 때문이지!”“M국의 라이트, 차미, 그리고 스톨스, 이 세 사람은 모두 M국 FUI의 최고 요원 출신이야. 심지어 모두 올드 마이어스의 직계 제자로, 현재 군에서 육군 특수대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어.”“그리고 리테온도 있어. 이 M국의 예전 전신은 이번에 모든 에너지를 분출해서 반드시 챔피언의 자리를 노릴 거야.”“그리고 F국의 스캇과 브레드, 역시 F국의 가장 우수한 병왕으로 F국 특수대대의 부대장 직책을 맡고 있어.”“그리고 동방의 R국의 야마모토 노리, 하타다 에이는 모두 최고의 브레인으로 R국의 안전방위 업무를 맡고 있지.”“다른 서방 국가와 중앙아시아의 병왕들까지 합치면, 이번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걸출한 인물들이야.”“지난 대회의 병왕은 그래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지금 이번 대회의 병왕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야.”이렇게 말한 고성용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 회의실 주변을 힐끗 본 뒤 계속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적수라는 건 거짓이 아니야. 그러나 용국의 영욕 문제에 있어서는 나 고성용은 진루안 너에 조금도 뒤지지 않아.”“이번에 내가 참가 신청을 한 것은 용국의 영예를 위해서지만, 네 어깨의 짐을
그러나 진루안은 용국에서 이 세 사람에 비견될 네 번째 사람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도헌? 말도 안 돼, 그 녀석은 고무자가 아니어서 선발될 수가 없어.’‘전신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모두 고대무술 수련자로 실력도 아주 높아.’“말을 빙빙 돌리지 마. 내가 말을 돌리는 걸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진루안은 눈살을 찌푸린 채 불쾌한 표정으로 고성용을 노려보며 말했다.고성용은 입을 쩝쩝 다시면서 말했다.“재미없네, 여전히 이렇게 재미없어!”“여자야!” 고성용은 진루안을 바라보며 조롱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하면서, 진루안이 이 사람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진루안의 표정이 자기도 모르게 굳어졌다, ‘여자가? 세계 전신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진루안의 기억 속에서 용국에 이런 실력의 여자는 있지만, 모두 이런 능력은 없는 듯했다.‘군부의 그 여자 장군들도 모두 순수한 병왕은 아니야. 게다가 나이도 많은 편이야. 심지어 몇 명은 40대로 전신 대회의 나이 제한에 걸렸어.’‘세계전신대회는 18세 이상 35세 이하의 성인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어.’‘그래서 그 여자 장군들은 더욱 불가능해.’ 진루안은 침울한 기색을 띠고 고성용을 노려보았다.고성용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삐죽거리며 씩 웃고서 두 손을 펴보였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말해줄게. 막내 사매 연수아야!”고성용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막내 사매가 왜 진루안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이 고집불통은 이렇게 힌트를 줘도 막내 사매를 떠올리지 못했어.’ 고성용은 막내 사매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예전에 함께 방촌산에서 기예를 배웠을 때, 모두가 백무소의 예비 제자였기 때문에 고성용도 연수아를 막내 사매라고 불렀다.“연수아? 그럴 리가?”진루안의 표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온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성용을 응시하는 눈빛도 계속 복잡해졌다.문득 연수아가 이미 오랫동안 자신
“막내 사매의 현재 상황을 모르는 모양이네.” 고성용은 진루안이 이렇게 묻는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진루안이 연수아의 최근 정황을 알지 못했고 표정도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자신도 연수아가 변경의 97여단에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진루안은 뜻밖에도 알지 못했다. 임페리얼의 궐주로 그렇게 좋은 정보 자원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 일을 몰랐던 것이다.‘이게 뭘 말하는 것이겠어? 진루안은 확실히 연수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거야.’‘만약 정말 연수아에게 신경을 썼다면, 어떻게 이런 걸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어?’“연수아는 97여단에 갔고 지금은 97여단의 부여단장이야!”고성용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일을 진루안에게 알렸다.진루안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지만, 자신이 며칠전에 이 일을 알았을 때는 가장 빨리 연수아를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본 다음에 출발하지 않았다.‘나는 연수아와 친척도 친구도 아니고 단지 선후배의 명분만 있기 때문이야. 연수아를 데려올 자격도 없고, 더욱이 연수아가 가는 길을 방해할 수도 없어.’‘친오빠인 연정조차도 연수아를 말릴 수 없는데, 외부인인 나는 더더욱 불가능해.’‘연수아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바로 눈앞의 이 진루안이야. 그런데 하필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진루안의 표정은 아주 무거웠다. 자신은 정말 연수아가 97여단에 간 일을 몰랐고, 아무도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임페리얼 조직의 정보 시스템을 통해서는 더더욱 연수아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그러나 연수아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관심은 결국 남녀 간의 애정과는 다른 것이다.“97여단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가장 어지럽고 복잡한 곳이야. 이따금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의 미사일이 용국의 서북 국경에 떨어지기도 해. 연수아는 이런 곳에 간 거야...”고성용은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하다가 진루안의 반응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이 말은 일부러 한 말로, 바로 진루안에게 9
만약 사적인 일이라면 고성용은 진루안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진루안을 돕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이런 마음과 태도는 북정왕 이광정과 똑같았다.이광정은 진루안과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사이지만, 국가의 대의와 관련될 때는 모두 공동으로 손을 잡고 협력해서 외국에 대처한다.이는 바로 용국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만약 이런 구도와 마지노선이 없다면, 올바르지 못한 용국의 국민일 것이다.“잠깐만!”이미 회의실 입구를 나온 고성용을 보면서 진루안이 큰 소리로 외쳤다.발걸음을 내디디던 고성용은 회의실 입구에 선 채, 진루안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또 일이 있어?”“고마워!” 깊이 숨을 내쉰 진루안은 고성용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말을 했다.그 말을 들은 고성용의 표정이 갑자기 많이 복잡해졌다. 진루안을 깊이 바라보면서 얼굴에 진실한 미소를 드러냈다.“내게 감사할 필요 없어. 나는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내가 말한 건 그 쪽지야!”진루안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어떤 쪽지야? 기억이 안 나!” 고성용은 의아한 듯이 진루안을 보며 반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나는 갈게!”진루안은 회의실에서 나온 고성용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지극히 복잡한 눈빛으로 줄곧 지켜보았다.눈길을 거둔 진루안은 고성용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재상이 되었으니 크게 비난할 것도 없어.’‘비록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했지만, 그 노련하고 신중한 늙은이들보다 100배 이상 나아. 용국의 정사당에 생기발랄한 젊은 사람들이 나타나야 이 용국에 희망이 있을 거야.’‘모두 다 케케묵은 늙은이들이라면, 이 용국은 신선감은 전혀 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어.’“사부님?”조경의 모습이 회의실 입구에 보였고, 복잡한 눈빛으로 진루안을 바라보면서 소리를 질렀다.눈빛을 거둔 진루안은 심경도의 비서가 조경을 데리고 온 것을 보자,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