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문책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고, 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고, 이 일이 진루안에게 파급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결국 고성용이든 태자 조기든 진루안에게 있어서 모두 적수다.‘바람이 플잎에 스쳐 흔들거리기만 해도 태자 조기는 진루안을 복수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어떤 사태라도 대처할 방법이 있어, 무슨 크게 놀랄 일이 있어?”“그리고 나는 태자를 상대할 방법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국 되려 스스로 찾아왔어!”진루안의 눈에는 냉소가 배어 있었다. ‘태자 조기는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어. 뜻밖에도 지금 건성에 올 생각을 했어.’‘물론 사사로이 놀러왔다면 아무런 꺼림칙한 일도 생기지 않을 거야.’‘그런데 태자가 고성용을 따라 정식으로 시찰하러 왔다면 그 안에는 말이 많게 돼.’‘국왕 조의에게 있어서, 조기의 이번 조치는 정말 죽음을 자초한 거야.’‘국왕은 한창 나이에 대권을 쥐고 있는데, 태자가 이때 건성 정사당을 시찰하러 온 것은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거야? 아니면 국왕이 퇴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거야?’‘무엇을 위해서든 제왕이 꺼리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진루안의 말이 나오자 심경도와 손복기 모두 벼슬길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장소임을 잘 알고 있기에 즉시 진루안의 이 말의 뜻을 알게 되았다.정도헌은 약간 느린 반응을 보였고, 음미하면서 냉소를 금치 못했다.“정말 도끼로 자신의 발을 찧은 거야. 이 태자나리는 정말 죽음을 자초했어!”심경도는 정도헌이 뜻밖에도 감히 대중 앞에서 태자 조기를 나무라는 것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정도헌의 표정이 평범하고 또 평범하게 진루안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바로 알게 되었다.‘원래 진루안이 조경을 위해 길을 닦으려고 하면서, 나와 손복기 두 사람만이 아니라 이 건성의 선전대신 정도헌도 일찌감치 진구안의 사람이 되었을 거야.’‘그러나 이것도 아주 정상적이여. 진루안 자체가 건성의 사람이여. 지역에 따라 구분하든 영향력에 따라
[너인 거 알아, 무슨 일이야?] 서류를 처리하던 국왕 조의는 휴대전화를 잡고 조용히 질문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진루안에게 매번 걸려오는 전화는 보통 일이 아니야.’‘진루안은 만약 일이 없다면 여태까지 전화를 걸어 쓸데없는 말을 잔소리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걸면 일이 일어났음을 의미했어.’그래서 조의는 머리가 아팠다. 왜냐하면 진루안이 말한 일은 처리하기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모두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다.“고성용이 건성 정사당을 시찰하러 왔는데 무엇때문에 태자도 같이 왔습니까?”진루안은 태자가 이렇게 한 나쁜 점을 직접 묻지 않고 국왕에게 이 정보를 폭로했다.국왕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국왕 자신의 일이며, 진루안은 여기서 이간질하지 않을 것이다.국왕 조의는 진루안의 이 말을 들은 후,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펜을 한바탕 휘둘렀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표정이 어두워졌다.[뭐라고? 태자가 건성 정사당을 시찰하러 갔어?]“모르십니까? 국왕 전하의 생각이 아닙니까?” 진루안은 의아하다는 듯이 놀라움을 내비치는 말투로 국왕에게 반문했다. 물론 당연히 진루안이 가장한 것이다.‘국왕은 무릇 약간의 모략이 있으면, 태자 조기가 건성 정사당을 시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이것은 틀림없이 태자 자신의 생각이야. 심지어 고성용 자신도 모를 수도 있어.’‘고성용도 바보가 아니야. 이 폐단이 얼마나 큰지 모를 수가 없어.’국왕 조의의 마음속에 분노가 순식간에 치밀어 올랐다. ‘내가 가까스로 너의 지난 일을 가라앉혔는데, 결국 너는 즉시 내 얼굴을 때리는구나. 태자 네가 지방을 시찰하러 갔다니, 이건 무슨 뜻이야? 내 권리를 뺏으려는 거야? 아니면 존재감을 선서하는 거야?’조의는 말끝마다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곧 이성을 회복하고 담담하게 웃음을 지으며 진루안을 향해 말했다.[당연히 내가 조치한 거야. 그렇지 않으면 태자가 어떻게 감히 갈 수 있겠어?][그것도 그렇고, 국왕이 운명이 없다면 태자가 이렇게 하
“만약 정말 그날이 온다면, 나는 조기를 죽일 것입니다!”진루안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조의의 질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만약 정말 그날 태자 조기가 국왕이 된다면, 진루안은 목숨을 걸고 조기가 국왕이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결정적인 때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살기가 발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아무튼 태자 조기는 절대 국왕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진루안의 마지노선이다.국왕 조의는 지금 깊은 살의를 느꼈다. 이런 살의는 그의 온몸을 좀 괴롭히고 등골이 저리게 했다.진루안은 여태껏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즉 자신이 만약 진정으로 조기를 국왕으로 삼는다면, 진루안은 감히 손을 써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알았어!] 조의는 오랫동안 침묵한 후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진루안의 전화를 끊고 묵묵히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몰랐다. 진루안은 죽을지언정 태자가 무대에 오르는 것을 막으려 했다.‘설마 태자는 정말 바꿀 수 없을까? 정말 개과천선할 수 없을까?’‘만약 안 된다면 태자를 바꿀 수밖에 없어.’‘그러나 지금 조정은 마치 뒤죽박죽인 실타래와 같아. 일단 태자의 위치를 건드리면 선단 안에서 실 하나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지. 이 선, 나아가 더 많은 실이 끊어질 가능성이 높아.’소위 사소한 일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태자 조기, 고성용!”“조경, 진루안!”국왕 조의는 입에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면서 눈빛에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진루안은 여기에 있지 않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깜짝 놀랄 것이다.국왕이 지금 입에서 중얼거리는 것은 조경의 이름이고, 게다가 조경과 진루안을 함께 놓았다.이것은 국왕 조의가 진루안의 행동에 대해 거의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러나 지금의 진루안은 알 수 없었다. 전화를 끊긴 진루안도 화를 내지 않았다.국왕은 누구의 전화를 끊든 극히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서 진루안은 이에 대해 개의치
“뭐? 여동생?” 진루안이 고성용을 부르는 호칭은 갑자기 태자 조기의 흥미를 끌었다. 태자는 온통 궁금한 표정으로 고성용을 쳐다보았다.고성용은 안색이 가라앉았다. 진루안이 정말 아픈 약점을 건드린 것이다. 몇 년 전의 별명을 지금 진루안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성용의 마음을 몹시 화가 나게 만들었다.“나를 존중해 줘. 나는 지금 정사당의 재상을 대표하고 있어!”고성용은 예리하게 진루안을 질책했다. 그러나 진루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 있었다.“네가 재상인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나는 정사당의 대신도 아니고 네 부하도 아니야.”“그럼 여기에 왜 앉아 있는 거야? 여긴 건성 정사당의 회의실이야!” 고성용은 진루안을 쳐다보며 빈정거리듯이 반문했다.진루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설마 대신이 아니면 정사당에 올 수 없단 말이야?”“내가 임페리얼의 궐주 신분으로 건성 정사당을 방문하면 안 되는 거야?” 진루안은 조롱하듯이 웃으면서 고성용을 바라보았다.이 말을 듣고 멍해진 고성용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궐주?”시선은 점점 복잡해졌다.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바로 이 일이다. 이전에 진루안과 백무소의 제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는데, 일단 제자가 되는 것에 성공하면 미래의 궐주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했다.다만 결국 자신은 실패해서 백무소의 제자가 될 자격을 잃었다. 도리어 진루안이 제자 자리를 얻었고 과연 궐주가 된 것이다.그러나 이 일은 고성용의 마음속에 새겨진 석연치 않은 일로 심지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응어리라고 할 수 있다.오늘까지도 돌이켜보면 여전히 그 불만과 억울함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다만 지금의 고성용의 심사가 갈수록 깊어져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다.“진 궐주가 아무 일도 없다면, 우리 대신 간의 회의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게 어때?” 차갑게 웃은 고성용은 진루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고대무술의 경지를 논한다면, 진루안보다 못하지 않아
고성용은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미 태자 조기를 포기하고 다른 황자를 골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사실 태자 조기는 고성용 자신이 귀국하는 발판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국왕 조의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일 뿐이다. 지금 자신은 용국으로 돌아왔고 재상이 되는 데 성공했다.‘그렇다면 태자 조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또 조기는 확실히 능력이 부족해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야. 조기를 국왕으로 만들면 용국이 위험해.’고성용도 마찬가지로 용국에 대해 충성스러운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국외에서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머무르면서도 여전히 용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고성용은 용국에 대한 사랑이 진루안에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깊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바로 용국을 세운 공신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전하, 이번에...” 짜증을 참은 고성용은 조기의 귀에 속삭여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이번에 건성 정사당에 왔으니 대라신선이라도 태자의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조기의 안색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얼굴에는 더욱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면서 고성용의 팔을 움켜쥐고 소리쳤다.“선생님, 살려주세요!”“태자 전하, 이번에 미리 제게 말하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했기에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고성용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기의 손을 뿌리치고 회의석장으로 걸어갔다.건성 정사당의 10여명의 대신들도 심경도와 손복기의 인솔 하에 회의실 테이블 앞의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고성용은 당연히 회의석상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상부의 시찰을 대표하고 있기에 당연히 가운데에 앉아야 했다.모든 대신들이 자리에 앉았고, 진루안만이 회의실 입구에 선 채 웃으면서 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태자라니.’다만 진루안은 태자에 대해서 별로 불쌍한 생각이 없었다. ‘만약 조기가 불쌍한 사람이라면, 수많은 고생하는 서민들을 어떻게 불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태자 조기는 반드
“진루안, 이건 네가 수작을 부린 거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진루안을 바라보는 조기의 눈에는 싸늘함과 분노가 가득했다.조기는 필연적으로 진루안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성용이 포기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포기할 리가 없어.’‘내가 고성용과 7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무슨 말이든 다 하는 좋은 형제와 같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포기할 수 있어?’ 조기는 전혀 달갑지 않았다.‘필연적으로 진루안의 짓이야!’‘틀림없이 진루안이 꾸민 짓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진루안에 대한 조기의 증오는 더욱 짙어져서 이미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진루안은 냉담한 눈빛으로 조기를 힐끗 봤을 뿐, 이 태자의 지능에 대해서 더 이상 논평하지 않았다.“진루안, 죽여버리겠어!”조기는 갑자기 미친 듯이 진루안을 향해 돌진했다. 손에는 어느새 검고 반질반질한 권총을 들고 있었다.이를 본 진루안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태자다워. 마음대로 권총을 구할 수 있어.’‘이 물건은 나도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결국 용국의 총기 규제는 아주 엄격해.’‘물론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권총을 구할 수는 있지만, 쉽게 사용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탄알마다 모두 고유번호가 있기 때문이지.’“권총 한 자루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평온한 표정으로 조기를 바라보던 진루안이 냉담하게 웃으며 물었다.조기는 권총을 꽉 쥔 손을 떨면서 온몸을 떨었다. 기어코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일단 이 총소리가 울리면 완전히 퇴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진루안이 어떤 신분인지는 태자인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왜요? 주저하면서 감히 손을 쓰지 못하겠어요?” 조기가 온몸을 떨면서 안색도 창백해졌지만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걸 본 진루안은, 경멸의 비웃음을 지으면서 천천히 조기를 향해 걸어갔다.조기의 얼굴에는 복잡한 기색이 드러났다. 진루안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자 끊임없이 후퇴할 수밖
“겁쟁이는 총을 들 자격도 없어!”진루안은 높은 곳에서 태자 조기를 바라보며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권총을 바닥에서 주워 고철덩어리로 만든 뒤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앞으로 다른 사람의 생사를 위협하지 마. 만약 당신이 지금 태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어!”“당신은 지금 태자라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해. 살려주겠어!”“결국 임금을 시해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아서야”진루안의 말은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조기의 마음을 깊이 두드렸다. 이 순간 조기의 마음은 무너져 붕괴되면서 크게 울부짖었다.조기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태자의 후광을 가지고서도 그럴듯한 일을 할 수 없었고, 각 방면에서 고성용에 의지한 채 도움을 받아야 했다.‘만약 고성용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태자의 자리에서 폐위되었을 거야.’‘내 형제들도 모두 보통내기가 아니라서, 늘 나를 폐하고 태자가 되고 싶어했지.’‘이제 형제들은 소원을 이룰 수 있겠지?’낙담한 조기는 공허하게 웃었고, 더 이상 진루안을 상대하지 않았다.진루안도 조기를 상대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서 다시 정사당 회의실로 돌아갔다.지금 회의실에는 고성용 혼자 말하고 있었고, 다른 대신들은 모두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고성용은 용국 정사당의 요구에 따라서 하나씩 문서를 전달했다.지금의 고성용은 아주 진지하고 엄숙하게 행동해서, 겨우 20대의 재상이라는 것을 조금도 알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간사하고 교활한 4, 50대의 늙은 여우 같았다.회의실에 들어간 진루안은 회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방청했다.개인 간에 어떤 원한과 갈등이 있든지 간에, 지역의 발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작은 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쳐서 구설수에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시간이 천천히 흘러 어느덧 전체 회의는 족히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고성용은 경제를 발전시킨 경험과 어떻게 대중을 단결시키고 사회의 모순을 제거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성용은 심경도가 모두 고의로 자신의 체면을 깎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건성 정사당의 이렇게 많은 대신들의 단결과 조화된 모습을 보고 고성용은 다소 실망했다. 이간질을 통해서 건성에서의 진루안의 역량을 분열시키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고 재상, 벌써 오후인데 나가서 밥 먹지?” 활짝 웃고 있는 고성용을 바라보는 심경도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누구도 고성용의 결점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경도 심씨 가문과 경도 고씨 가문 출신인 두 사람은 모두 명문 대가의 자제다. 조부들은 모두 용국의 걸출한 인재이자 개국공신이었다.다만 최근에 고씨 가문은 약간 잠잠했지만, 심씨 가문은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심경도가 건성의 정사당 선임대신이 된 것 이외에도, 심씨 가문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군부에 재직하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2급 장군이다.심 씨 가문은 다른 가문과 달리 명문 장수 가문이기 때문이다.“밥은 먹지 않겠어. 내가 건성에서 직책을 이용해서 향응을 요구했다고, 누군가가 고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고성용은 고개를 저으면서 농담하는 투로 말했지만, 눈빛은 구석에 있는 진루안을 향했다.고성용이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두들 알게 되었다.진루안은 일어나서 미소를 지으면서 고성용 쪽으로 갔다.“여동생, 이 오빠가 밥을 살게. 이건 네가 향응을 받는 게 아니야!”고성용은 울분에 찬 표정으로 진루안을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내가 건성에 올 때 너한테 모욕을 당할 줄 알았어!”“됐어, 밥은 안 먹을래, 너한테 할 말이 있어!”“진 선생, 고 재상, 두 사람 얘기 나눠. 나는 먼저 나갈게.” 두 사람이 분명히 할 말이 있는 것을 본 심경도는, 눈치 빠르게 웃으면서 회의실에서 나갔다.결국 회의실 안에는 진루안과 고성용 두 사람만 남았다.심경도가 떠나면서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잠시 두 사람 다 입을 열지 않았다.한참 뒤 고성용이 먼저 이 적막을 깨뜨렸다.“진루안, 이번 일은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