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F국 요리 음식점에서 고급스러움은 모두 서양의 얼굴이고, 원래의 F국 요리의 맛을 의미한다.F국인 일색의 종업원들이 모든 손님을 접대한다.“안녕하세요, 예약이 있으신가요?”서빙 복장을 한 F국 사람 얼굴의 금발에 푸른 눈의 남자가, 웃음기를 띤 채 F국의 말로 예약을 했는지 물었다.서경아와 채경전에게 있어서 F국어는 모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예전에 유학했던 곳이 바로 F국이기 때문이다.채경전도 이때 F국어를 사용하면 순진한 척할 수 없었다. 필경 서경아는 자신의 F어보다 더 실력이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러 F국어를 드러내는 건 스스로 모욕을 자초하는 것이다.“예약은 하지 않았습니다!”바로 그때, 예상치 못하게 양호석이 먼저 미소를 지으면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서양 남자를 향해 대답해서, 서경아와 채경전을 놀라게 했다.비서실의 고위 간부인 이태경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호석을 바라보았다. 이태경의 눈에는 이 양호석은 무식쟁이이기 때문이다. 양호석이 비록 보안 책임자라고 해도 결국 좀 듣기에 좋지 않은 표현을 쓰자면, 바로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팀의 두목에 불과하다.그러나 이런 보안팀의 두목이 F국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믿기 어려웠다.“F국 말을 어떻게 알아요?” 서경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양호석을 바라보며 주동적으로 한마디 물었다.F국어를 할 줄 아는 양호석과 F국어를 할 줄 모르는 그는 전혀 가치가 다르다.양호석이 외국의 언어를 알고 있다면, 서화그룹에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양호석이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고, 또한 보안팀의 두목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대표님, 저도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썼을 뿐입니다. 다만 예전에 교육을 받을 때 한동안 배운 적이 있습니다!”어수룩하게 머리를 긁적거리던 양호석은 좀 쑥스러워하면서 웃었다.필경 자신은 서 대표가 F국의 수재 유학생이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서경아 앞에서 F국어를 말하는 것은 확실히 공자 앞에서 문자 쓰
채경전은 식당 안쪽 구석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은 한적해서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게다가 모퉁이에 있는 곳이어서 무엇을 해도 편리했다.물론 이것은 채경전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서경아는 채경전의 이런 작은 수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요!”표정이 굳어진 양호석이 경계하면서 채경전을 쳐다보았다.일찍이 특전사 후보 병사였던 자신이 그 자리를 선택한 채경전의 계략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다.‘그 위치는 뒷문 근처에 있지만. 구석진 곳이라 조용했고 모퉁이에 있어서 방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전략적으로 고려하거나 노선의 계획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어.’‘물론 이것은 채경전의 나쁜 마음을 가리키기에 가장 좋은 예야’“저는 여기에 앉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양호석은 한쪽의 위치를 가리켰다. 그곳은 손님들이 모두 지나가는 공개적인 장소로 정문에서도 가까워서 무슨 꿍꿍이수작을 부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의아하게 양호석을 쳐다본 서경아는, 양호석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래요, 바로 여기...”“서 대표, 내가 만약 하버그룹 회장의 신분으로 당신과 담판한다면, 서 대표는 이 소란스러운 곳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거야?”서경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채경전이 바로 무례하게 말을 끊었다. 굳어진 표정을 하고 서경아에게 물었는데, 말투도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그 말을 들은 서경아는 약간 놀란 기색을 드러냈지만, 곧 채경전의 뜻을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이왕 이렇게 된 이상 안쪽에 앉도록 하지요.”“서 대표님, 안돼요...”서경아가 승낙하는 걸 들은 양호석의 표정이 갑자기 크게 변하면서 제지하려고 했다.“당신은 서 대표의 큰일을 망치려는 겁니까?”그러나 양호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채경전이 차갑게 경고 한마디를 내뱉고서 이미 안쪽으로 걸어갔다.“너...” 양호석은 주먹을 꽉 쥔 채 노기등등한 얼굴로 노려보았지만, 채경전은 이미 몸을 돌려 간 뒤였다.“됐어요. 그렇
“쥐꼬리 만한 채씨 가문도 감히 끼어들었어. 정말 죽고 싶은 거지!”진루안은 경도 채씨 가문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사람을 파견해서 한 번 알아보았다. 마지막에 모인 정보에 따르면 이 채씨 가문은 경도 안에서 관계 쪽으로 진출한 가문이 아니다. 즉, 그는 권문세가나 장군의 가문이 아니라 단지 호족일 뿐이다.당연히 부와 세력을 갖춘 호족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았다. 돈이 좀 있는 가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이런 가문은 동강시에 두면 큰 가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경도 안에서는, 이런 가문은 수많은 가문들 중에서 정말 보잘것없고 미미한 작은 가문에 불과했다.“나는 오히려 누가 채씨 가문이라는 이 바둑돌을 빌어서 나를 상대하는가를 봐야겠어.”진루안은 냉소를 연발했다. 전혀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 일이 필연적으로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서경아의 사업에서의 적은 이렇게 상대하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서경아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는 내 원수가, 서경아를 상대해서 나를 격노하게 만들고 내생각과 이성을 교란해서 최종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거야.’‘그러나 애석하게도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이 잘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야.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장님이나 귀머거리가 아닌데 상대방이 만지작거리고 계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내 수중의 정보 시스템이든 인맥 자원이든 모두 상대방이 목적을 달성하는 걸.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오히려 이런 방법은 농담일 수밖에 없어. 다만 이 농담이 도대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가늠할 수 있을 뿐이야.’천천히 식당 안으로 들어간 진루안은 마주 오는 서양인 웨이터를 만났지만, 웨이터가 말을 하기 전에 바로 자리에 앉은 진루안이 메뉴 위의 음료를 가리켰다.서양인 종업원은 진루안이 이러는 것을 보고도 더 이상 묻지 않고 가 버렸다.진루안은 고개를 살짝 젖히면 모퉁이에 있는 서경아를 볼 수 있지만, 채경전은 전혀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령 이쪽을 보더라
“후배는 지금 확실히 하버그룹의 운송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식품 산업의 판매 경로를 확장해야 해.”“과거에는 서화그룹의 식품이 내수에 그쳐서 용국의 각지에만 판매되었지만, 지금은 서화그룹이 한 걸음씩 커졌어요. 우리는 식품을 부근의 몇 나라에 판매할 계획이에요.”“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페리 운송이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선배의 하버그룹이 가장 좋은 선택 대상이지요.”“하버그룹의 작년 운송 마일리지는 5백만 해리에, 운송 능력은 5천만 톤을 넘었어요. 운송 능력은 용국 전체에서 5위 “채 선배, 만약 계약 조항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수정할 수 있습니다!”서경아는 극히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하면서 채경전을 바라보았다. 이는 완전히 공적인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태도로서 사사로운 정을 이야기할 의사는 조금도 없었다.이 말을 들은 채경전의 표정이 조금씩 엄숙해졌다. 마음은 약간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계속 웃으면서 말했다.“하하, 경아 후배는 역시 여장부야. 사업 얘기를 할 때는 정말 말과 행동이 사리에 들어맞아.”“경아 후배가 본론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야기해 보자!”“다만 우리 회사의 일부 비밀과 관련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들 두 분은 양해해 주세요...”이렇게 말한 채경전은 미안한 표정으로 서경아의 양 옆에 호법처럼 앉아 있던 이태경과 양호석을 바라보았다.그의 말은 이미 명백했다. 다음에 이야기할 내용은 쌍방 회사의 핵심 기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들이 여기서 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이태경은 채경전의 말을 듣고 나서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의자에서 바로 일어섰다.회사의 비밀은 당연히 외부인에게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이태경은 채경전의 염려를 잘 이해했다. 그러나 양호석이 채경전이라는 이 자식은 틀림없이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어떤 나쁜 마음으로 서경아에게 수작을 부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이 자식의
“선생님, 주문하신 요리와 와인이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이때 서양 얼굴의 두 종업원이 F국의 요리와 와인 한 병을 들고 올라왔다. 요리와 와인을 테이블 위에 놓고 채경전에게 한 번 보라고 표시했다.채경전은 차려진 F국의 음식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가 더 많아졌다.와인 뚜껑을 열고 직접 서경아에게 술 한 잔을 따른 채경전이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경아 후배, 우리가 캠퍼스에 있을 때의 우정을 위해 건배하지!”“그때의 파릇파릇하던 시절을 돌이켜보자, 어때?”채경전은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서경아를 바라보면서 먼저 와인잔을 쥐고 건배를 제의했다.서경아는 원래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채경전의 이유는 충분했다. 만약 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채경전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이 된다. 이는 다음의 담판에 불리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경아는 마음속으로는 어쩔 수 없이 한숨만 쉬었지만,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담고 건배를 하면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텁텁한 입안에 와인이 들어가자 감칠맛이 무궁무진한 특별한 향이 났다. 약간 매운 맛이 좀 있지만 좋은 와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이 한 잔은 우리 각자의 미래를 위해서야. 반드시 휘황찬란하게 출세할 거야 건배!”채경전은 서경아가 와인을 마신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면서 다시 서경아에게 술을 권했다. 또 마실 만한 충분한 이유도 가지고 있었다.서경아는 채경전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술을 먹이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미안하지만 선배, 우리는 여전히 담판을 위주로 해야 해요. 술을 마시는 이런 일은 술자리로 돌려야 하지 않겠어요?” 서경아는 비록 채경전이 이미 최선을 다해서 겸손과 예의를 보였다 해도, 채경전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그러나 서경아의 눈에는 정말 지극히 거짓된 연기였다. 이런 남자는 자신도 너무나 많이 접했었다. 진루안과는 전혀 비교할 수가 없다.만약 합작 때문이 아니었다면, 오늘 밥을 먹으면서 틀림없이 채경전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을 것이다.채경전은 지금도 욕심
“당신의 이름은 이태경인가요?” 진루안은 이태경의 긴장을 알아차린 듯 먼저 물었다.이태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잔뜩 긴장해서 일어서서 대답하려고 했다. 그러나 진루안은 이태경을 의자에 눌러 앉게 하고서,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날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의 상사도 아니고 당신의 월급도 깎지 않아요. 뭘 걱정하는 겁니까?”“진, 진 선생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저, 저는...”이태경의 얼굴에는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긴장이 가득했다. 이치대로라면 자신은 비서실의 고위 간부다. 평소에 시의 대신들을 상대해도 줄곧 침착했다. 그러나 이번에 진 선생님을 보자 마음가짐을 평온하게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진루안의 행적이 너무나 무서웠을 것이다.아무튼 이번에 이태경은 머릿속에 진루안의 대단함을 가득 생각했고, 당연히 진루안의 질문에 대답할 때 유난히 긴장한 것이다.“내 일을 하나 좀 도와주세요. 일이 성사되면 없어서는 안 될 좋은 점이 있을 겁니다!”이태경이 정말 긴장한 것을 본 진루안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이태경은 안색이 좋아졌다. ‘진 선생님이 말한 좋은 점은 일반적인 좋은 점일 수가 없어.’‘그리고 내게 일을 맡긴 건 내가 진 선생님의 도구가 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겠어?‘진 선생님의 도구가 된다면, 단 한 번이라도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일이야.’‘결국 큰 인물의 수중에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우수함을 증명하는 거야.’이렇게 생각한 이태경은, 그다지 긴장하지 않고 기대하는 표정으로 진루안을 바라보았다.이태경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진루안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타일러도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직접 일을 시키는 것이 나을 거야.’“이 쪽지를 저 채경전의 손에 갖다 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요!”진루안은 말을 하면서 주머니 안에 있는 쪽지를 꺼내 이태경에게 건네주었다.이태경은 조심스럽게 진루안의 손에 있는 쪽지를 받은 후 얼른 일어나 모퉁이
시간이 지나자 서경아는 냉정한 마음을 가졌다는 소문이 돌았다.다만 그때 채경전은 믿지 않았다. 자신은 서경아가 단지 안목이 높을 뿐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고백이 합리적인 시기라고 여기면서, 서경아의 안목이 높기에 채경전 자신과 충분히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채경전은 자신은 비록 어떤 세가의 도련님도 아니지만, 가문에도 수십 조의 자산이 있으니 충분히 명문가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경도 안에서는 지위나 인맥을 막론하고 우열을 가릴 사람이 없어.’‘이렇게 우수한 귀공자인데, 서경아는 뭐가 못마땅한 거야?’‘심지어 좀 무례하게 말을 한다면, 나는 서경아에게 아주 넉넉하게 잘 어울릴 거야. 심지어 서경아가 나와 함께 있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만약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채씨 가문에 한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주는 게 아니었다면, 자신은 전혀 이곳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설마 채경전이 바보란 말인가? 이 안에 음모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일까?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모두 밤늦게 외국에서 돌아와서 곧장 동강시로 달려간 뒤, 바로 서경아를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또 갑작스럽게 고백한 것이,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기운을 띠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이 모든 것을 채경전도 다 알고 있다.그러나 임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 했고,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경아 후배, 나는 정말 너를 좋아해. 나와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해 주겠어?” 채경전이 이렇게 말했을 때 표정에는 감동적인 기색이 가득했다. 천천히 손을 들어서 서경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자신이 충분히 진실하기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룰 수 있고, 이 냉정한 서경아도 자신의 진심에 완전히 감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짝!서경아는 사정없이 손바닥으로 채경전의 따귀를 때렸다.채경전은 왼쪽 얼굴을 가린 채 멍해졌다. 멍하니 서경아를 바라보면서 눈을 깜박였다.“너...”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경아가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누구세요?” 채경전은 경계하는 표정으로 진루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진루안은 채경전을 풀어준 뒤 옆자리에 앉아서 와인을 빈 와인잔에 따랐다.“경도 채씨 가문의 큰아들 채경전, 맞지?”진루안은 텅 빈 와인병을 손에 쥔 채, 좋지 않은 표정으로 채경전을 쳐다보았다.진루안의 눈빛에 채경전은 온몸이 싸늘해졌고, 맹수의 감시를 받는 듯한 긴박감이 들면서 질식감을 느꼈다.“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채경전의 심장박동이 빨라졌지만 침착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물었다.여하튼 자신도 한 명문 가문의 장자로서 기본적인 침착함은 여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진루안을 대할 때 이 가식적인 침착함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너는 나를 모르는 것 같네!”진루안은 입을 삐죽거리며 가볍게 웃었다. 채경전의 출현에 대해 결코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이미 자신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 서경아를 돌파구로 삼은 이상 당연히 상대방은 모든 방식을 이용할 수 있다.사람을 찾아 자신의 구석을 파는 것도 그 중의 악랄한 계책이다.‘다만 상대방은 분명히 서경아의 사람됨을 얕보았고, 이 채 공자의 매력도 높이 평가했어.’보잘것없는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서, 진루안은 지금 정말 채경전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상대방이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채경전을 선택해서 내 기둥뿌리를 파내는 건 유치하고 가소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이런 계책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도 필연적으로 마음이 모질고 악랄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귀엽게 어리석은 거야.’“내가 왜 당신을 알아야 돼? 내가 너를 알아야 하는 거야?” 채경전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쾌한 기색이 가득 찼다.이 순간의 채경전은 조금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았고, 말을 하면서도 더욱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이 말을 들은 진루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채경전에 대해서 더욱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미련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경아 씨, 이 사람이 당신의 선배이자 F국에서 유학했던 수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