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준은 전사한 병사들의 묘지를 방문하고 난 뒤 다시 군 병원으로 돌아왔다.강서준은 전사한 병사들의 생각에 또 죄책감이 들었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수십 명의 사명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군 병원 병동.강서준은 지하 동굴에서 찾은 박스를 캐비닛에서 꺼냈다.이 박스는 검은색이었고 박스에는 신비한 꽃무늬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박스는 봉인되어 있었고 열쇠를 넣을 만한 큰 구멍도 없었지만 박스를 자세히 보게 되면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강서준은 지하 동굴에서부터 이 구멍을 발견했지만 그때는 박스를 열어볼 겨를이 없었다.소요왕은 탁자 위에 놓인 검은색 박스를 바라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도대체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이기에 용수님이 이렇게까지 힘들게 찾아야 하는 거죠?”강서준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열어봐야 알 것 같은데.”소요왕이 이어서 말했다.“용수님이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이 박스를 열어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도무지 열수 가 없었어요.”그때 강서준의 옷소매에서 철사 하나가 떨어졌다.그가 철사를 집어 들자 철사가 갑자기 갈라지면서 가느다란 바늘로 변했다.강서준은 바늘 하나를 집어서 박스의 바늘구멍에 살짝 꽂았더니 사이즈가 딱 맞았고 바늘구멍에 완전하게 삽입되었다.박스에 총 108개의 구멍이 있는 것을 본 강서준은 다른 바늘을 꺼내서 다른 구멍에 차례대로 삽입했고 그 결과 역천 81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강서준이 마지막 바늘을 꽂자 박스는 순식간에 열렸고 그 안에는 두꺼운 책 한 이 들어 있었다.소요왕과 서청희도 너무 궁금해서 박스 안의 책을 한번 훑어보았다.이 책은 노란빛이 도는 책이었고 책 표지에는 몇 개의 고대 문자가 적혀 있었다.이것은 천 년 전 아주 오래된 문자였는데 만약에 강서준이 고대 문자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전혀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의학 서적, 하권.”표지를 본 강서준의 가슴이 떨려서 목소리까지 떨릴 정도였다.강서준에게는
”네? 뭐라고요?”두 사람은 동시에 강서준을 바라보았다.강서준은 설명을 이어갔다."제가 10년 전에 배운 의술은 의학 서적 상권이고, 이 박스 안의 이 책은 하권으로 역천 81침의 사용법이 기록되어 있어요."의학 서적 하권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서적 안에는 진기를 수련하는 방법과 진기를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역천 81침에 대한 사용법도 기록되어 있었다.비유하자면 10년 전에 터득했던 서적 상권에 있던 의술은 영어 알파벳 26자에 불과했고 서적 하권은 이 26개의 알파벳을 조합하여 서로 다른 단어와 다른 문자를 구성할 수 있었다. 즉 다시 말해서 내용을 해설해주는 것과 비슷했다.서청희는 기뻐하는 얼굴로 강서준에게 물었다.“그럼 서준 씨 이제 살 수 있는 거예요?”“아마도요.”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이 의학 서적 하권 만 있으면 위에 쓰인 방법대로 진기를 수련할 수 있다면 몸 안에 들어있는 고독은 자연스레 제 몸에서 빠져나올 거예요.”“너무... 자... 잘 됐네요.” 서청희는 흥분해서 목소리가 다 떨릴 정도였다. “용수 님도 이제 진기에 다다를 정도라니, 대단하시네요.”소요왕은 놀란 얼굴로 강서준을 바라보았다.강서준의 강인함은 소요왕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소요왕 님도 혹시 무도대종사의 존재를 알고 계셨나요?”강서준은 소요왕을 쳐다보며 물었다.“네, 들어본 적은 있어요. 용수 님, 이제 괜찮으신 거 같으니 저는 그만 가볼 게요.”소요왕은 말을 마친 후 서둘러 떠났다.강서준은 떠나는 소요왕을 의미심장한 얼굴로 쳐다보았다.무도대종사에 대해선 강서준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는데 소요왕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고 속에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다.강서준은 조금 의심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안 했다.“서준 씨, 배고프지 않아요?”서청희가 물었다.“음, 조금 배고프네요.”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했다.“식당 가서 먹을 것 좀 사 올 게요.”서청희는 말을 마치고 병실에서 나갔다.
명상은 그렇게 미묘한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가라앉혔다.강서준은 더 설명하지 않고 서청희가 건넨 밥공기를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그제야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비록 일반인과 비교도 못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꼭 진기를 수련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제 겨우 의경 하권의 첫 부분만 봤을 뿐이다. 아직 뒷부분을 보지 않았지만 분명 내가심법을 수련하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다.강서준의 안색이 좋아지자 서청희는 그제야 안심했다. ‘고진감래’라는 말에 다시 한번 공감을 느꼈다.식사를 마치고 강서준이 물었다.“최 장군이 저쪽 병실에 있죠? 보러 가야겠어요.”“치울 때까지 기다려요. 내가 데려다 줄게요.”서청희가 수저를 치우는 사이 강서준은 의서를 손에서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휠체어 필요해요?”강서준이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걸을 수 있어요.”간신히 침대에서 내려오자 서청희가 다가가 부축했다.강서준은 서청희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른 병실로 갔다.병실에는 전문 간호사가 돌보고 있었다.침대에 누운 중년남자는 팔에 링거를 끼고 얼굴에 호흡마스크를 썼다.“쉿!”두 사람이 들어가자 간호사가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최 장군이 방금 잠들었어요. 방해하면 안 돼요.”강서준이 천천히 병상에 다가가 최동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숨결은 안정되었지만 몸이 허약해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내가 처방을 드릴 테니 약을 달여서 마시게 해요.”강서준이 조용히 말했다. 처방은 최동의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고 신체 회복 속도를 강화할 수 있다.“알겠어요.”여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강서준은 처방을 써 주고 병실을 나왔다.“초현은 어디에 있어요?”서청희가 맞은편 병실을 가리켰다.“지금 상황이 어때요? 가족들도 알아요?”강서준의 물음에 서청희가 대답했다.“많이 다쳤어요. 허벅지에 총상 두 개를 맞아 심한 출혈로 정신을 잃었어요.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잘 회복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고 해서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어요.”
서청희는 병실 밖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마음이 심란하고 초조했지만 대체 왜 이러는지 몰랐다.병실 안에서 김초현은 침대에 누워 강서준을 애원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여보, 우리 재결합해요.”하지만 강서준은 슬쩍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재결합은 불가능하다.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더 이상 김초현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천자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건 뒤에 더 큰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지금 재결합하면 다시 김초현을 불구덩이에 끌어들이는 셈이 된다.김초현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보답하려고 남은 생을 옆에서 지켜 주기로 마음먹었지만 지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그런데 이 와중에 다른 여자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두 여자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하고 어떻게 감정 문제를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내가 잘못을 인정하는데도 받아줄 수 없는 건가요?”김초현은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흐느꼈다.“혹시 청희 때문이에요?”강서준은 침묵했다.“”알아요. 청희 때문이라는걸. 내가 어디가 부족한가요?”김초현이 짓궂게 묻자 그제야 강서준이 입을 열었다.“당신은 부족한 게 없이 훌륭해요. 다만…”“다만 뭐죠? 말해 봐요.”강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게 지금 적이 많아요. 이 일들을 해결하기 전에 감정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몸조리 잘하고 시간이 나면 또 보러 올게요.”“강서준!”김초현이 큰 소리로 불렀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매정하게 나가버렸다.너무 속상해서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병실 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서청희가 물었다.“얘기 잘 끝나지 않았어요?”강서준은 서청희를 바라봤다.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무슨 일이든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준다.정말 좋은 여자다.“미안해요.”“풉!”서청희가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미안해요?”“초현 가족에게 연락해요. 난 이만 퇴원할게요.”서청희는 강서준의 뒤를 따라 병실에 들어갔다.“강중에 머물 곳이 없잖아요. 의
의경 하권을 손에 넣었으니 잠시 건강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처리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그러니 독보운의 도움이 절실했다. 강서준은 다시 소요왕이 독보운에게 마련한 단지를 찾아갔다.이 단지는 수많은 군인들이 독보운을 지키고 있다. 그래도 본인이 도망치려고 작정한다면 누구도 잡지 못하지만 말이다.독보운은 도망치지 않고 얌전히 여기서 지냈다.강서준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오셨어?”독보운이 웃으면서 맞이했다.“그렇게 큰 소동을 일으키고 죽은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났네.”강서준은 빙긋 웃으며 바로 소파에 앉았다. 아직 서 있는 게 무리였다.독보운이 시가 한 자루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동굴에 가서 뭘 찾았어?”강서준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라이터 좀 주지.”독보운이 라이터를 던져 주었다.강서준은 시가에 불을 붙이고 깊이 들이마시다 쿨럭하고 심한 기침을 했다.서청희가 바로 일어나 등을 두드려주었다.“괜찮아요?”그 순간 독보운이 날카롭게 쳐다봤다. 마치 독수리가 노려보는 것 같았다.“별거 아니야. 내가심법을 찾으러 갔어.”강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정말?”독보운이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서더니 강서준을 뚫어지게 쳐다봤다.“내가심법을 찾으러 갔다고?”“그래.”“찾았어?”“당연하지.”강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여기 온 것도 그 얘기하러 왔어. 나랑 같이 해보지 않을래?”독보운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심법을 정말로 찾았는지 속으로 판단했다.블랙 진 보스로 산 세월이 얼마인데, 며칠 전에 보룡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용병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으니까.한참을 생각하던 독보운이 입을 열었다.“난 죽고 싶지 않아. 특히 당신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말이야. 아무리 내가심법을 찾아서 진기를 수련하고 무도대종사가 되더라도 당신은 모든 걸 뒤집을 만한 실력은 못 돼.”“그래?”강서준은 못마땅하게 웃었다.독보운이 심호
서청희가 강서준을 부축하며 물었다.“위험한 인물이라면서 굳이 협조하라는 이유는 뭐예요?”강서준이 멈칫했다.“블랙 진을 세운 사람이에요. 전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킬러 조직이니 지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요. 그 자가 협조한다면 내게 큰 도움이 되거든요.”하지만 서청희는 걱정스러웠다.“만약 협조하는 척하면서 해독약을 꾀어 내고 도망치면 어떡해요?”“설마요.”강서준이 또 멈칫했다. 독보운이 비록 잔인한 킬러지만 자신과 같은 무도가다.무공을 연마한 사람들은 일언을 중천금으로 여긴다.물론 수많은 소인배들은 하는 말마다 틀리지만 거물급 무도가는 의리가 있다.그러니 독보운 같은 거물이 자신이 대답한 것에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다.“강서준.”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강서준은 돌아서서 걸어오는 독보운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왜, 생각 좀 해봤어?”“들어와서 얘기하지.”독보운이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자 강서준도 따라 들어갔다.방에 들어가 보니 방금까지도 멀쩡하던 테이블이 산산조각이 났다.“힘이 엄청 세네.”독보운이 바로 질문했다. “어떻게 협조하면 되지?”강서준이 대답했다.“내가 흑룡에 책봉된 이후로 누군가 나를 겨냥하는 것을 느꼈어. 내가 사직하고 강중에 왔을 때도 성가신 일들만 발생했지. 위에서 사직을 허락하자마자 나를 암살하려고 시도했어. 다 천자 짓이었어. 처음엔 천자의 목적을 몰랐는데 내가 고독에 중독된 뒤로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지. 천자는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어.”“내 짐작이 맞다면 당신이 말한 것처럼 100년 전에 이루지 못한 계획을 실행하여 고독으로 세계를 통제하려고 해. 심지어 천자 한 사람뿐만 아니야. 배후에 누군가가 또 있어. 곧 대선이잖아. 교토 국면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왕의 자리를 노리는 자가 많아. 현재 왕은 이미 후보를 정해 놓고 새로운 왕을 위해 교토 정권을 한바탕 갈아치울 예산이야.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천자만 해도 상대하기 어려워.”독보운이 물었다.“난 정권에 관심 없어.
독보운이 협조한다면 일이 쉽게 진행된다.서청희는 강서준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도착하자마자 강서준은 바로 의경 하권을 꺼내 열심히 보았다.내용을 이해하려고 서청희에게 공책과 펜을 달라고 부탁했다.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노트북을 켜서 인터넷으로 직접 고대문서를 검색했다.하루 종일 그렇게 책만 연구했다.“서준 씨, 쉬면서 해요. 따뜻한 물도 마시고요.”서청희가 따뜻한 물을 들고 오더니 강서준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옆에 두고 걱정스럽게 말했다.“책만 몇 시간을 보는 거예요? 아직 몸이 허약해서 과로하면 안 돼요.”강서준이 기지개를 폈다. 하루 종일 연구했더니 확실히 피곤했다.심신이 피로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건네 주는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시고 싱긋 웃었다.“고마워요.”“고맙긴요. 당연한 일인데. 저녁에 뭘 먹고 싶어요? 배달시켜야겠어요.”서청희가 환하게 웃었다. 비록 강서준과 같이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옆에 있으면 왠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아무거나 시켜요.”강서준은 음식에 까다롭지 않고 주는 대로 먹었다.서청희가 옆에 붙어 앉더니 휴대폰을 들고 인기 있는 음식점을 검색했다. “소고기 볶음 어때요? 고추 넣어서 볶은 거로. 그리고 이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네.”강서준이 향수냄새를 맡고 쑥스러운 마음에 몸을 옆으로 움직여 거리를 두었다.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난 다 좋아요. 알아서 시켜요.”눈치챈 서청희는 좀 서운했다. 강서준은 자신을 애인이 아닌 평범한 여자 친구로 대하고 있다.신속하게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다.“뜨거운 물 받아 놨으니까 먼저 씻어요. 씻고 나오면 배달도 도착할 거예요.”“알았어요.”강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욕실로 걸어갔다.옷을 벗고 몸을 담그자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등 밀어줘요?”“호, 혼자 할 수 있어요.”강서준이 황급히 거절했다. 서청희가 들어오면 안 되었다.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여
그 말에 강서준은 더 쑥스러웠다.“머, 먼저 나가 있어요. 옷 입고 나갈게요.”“알았어요.”서청희는 대답하면서 욕조 안쪽을 힐끗 쳐다봤다. 뭘 보는지 모르지만 힐끗 쳐다보고는 돌아서 나갔다.강서준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 부랴부랴 옷을 입기 시작했다.욕실에서 나가니 벌써 음식들이 차려졌 있었다.서청희가 건네는 젓가락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한창 먹고 있을 때 강서준의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끊어버렸다.“안 받아요? 누군데요?”강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에요. 보나마나 광고 전화겠죠.”끊어버리자마자 또 휴대폰이 울렸다. 똑같은 발신자 표시 제한이다.전화를 받았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강서준! 지금 어디야? 지금 당장 병원으로 튀어 와!”김초현의 엄마 하연미다.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무슨 일이에요?”“무슨 염치로 나한테 물어? 똑똑히 들어. 만약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널 가만두지 않겠어. 지금 당장 오지 못해? 초현이 지금 너 땜에 죽고 못살겠다고 난리야!”“뭐라고요?”강서준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초현이 투신 자살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야!”그 말에 강서준이 당황했다. “지, 지금 갈게요.”서청희가 물었다. “왜 그래요?”강서준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초현의 어머니인데 초현이 지금 투실 자살하겠다고…”“네?”서청희도 당황하기 마찬가지였다.“앉아서 뭐해요? 데려다 줄게요.”“미안해요.”“뭐가 미안해요.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젠데. 빨리 가요.”서청희는 강서준을 끌고 군병원으로 향했다.김초현이 군병원 병동 8층 창가에 앉아 있다.병원 건물 아래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병실 밖에 SA 가족들이 초조하게 서 있다.오늘 아침에 서청희가 김초현의 가족에게 알려서 지금 병실에 달려온 것이다.하지만 창가에 앉아 있는 김초현의 모습을 보고 하연미가 눈물 콧물을 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