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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화

작가: 위위두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6 18:15:10
가뜩이나 주씨 가문 사람들이 권은채를 싫어하는데 가짜 임신인 게 밝혀지면서 온갖 미움이란 미움은 다 받았다. 권은채만 보면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주도운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나 했더니 서예빈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

권은채는 돌아와서 며칠 더 기다렸지만 주도운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날 케이 클럽에서 만난 후로 권은채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도운이 이혼하지 않고 버티는 게 권은채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고 또 어딜 가든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면서 예전의 복수를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주도운은 계속 질질 끌 인내심이 있었지만 권은채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전에는 이혼한 다음에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하려 했으나 생활해야 했기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는 권은채의 말에 배정아는 먹던 감자 칩도 내팽개쳤다.

“우리 출판사로 와.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디자이너와 계약해서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 생각이거든.”

권은채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벌써 공백기가 3년이나 지났는데.”

“할 수 있어, 은채야.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데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뭐.”

권은채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행동파인 배정아는 이튿날에 바로 권은채의 3년 전 작품을 챙기고 편집장의 사무실로 갔다.

임성한은 작품을 확인한 후 디자이너의 사인을 한참 동안 보다가 말했다.

“루안 씨가 정아 씨 친구라고요?”

“네. 진짜 재능이 뛰어나고 작품 센스도 있는 친구예요. 계약하면 우리한테는 절대 나쁠 게 없어요.”

임성한은 당연히 루안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루안은 액세서리 디자인 업계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인재였다. 하지만 잠시 반짝이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상을 받은 후 영감이 고갈되어 더는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재벌가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산다고 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3년 만에 사람들이 그녀를 다 잊었을 때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임성한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대요? 같이 밥 한 끼 하면 좋겠는데.”

그가 이렇게 물었다는 건 거의 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차린 배정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죠. 지금 바로 전할게요.”

...

식사 자리에서 권은채와 배정아의 편집장 임성한은 말이 꽤 잘 통하는 듯했다. 3년 동안 작품을 한 적이 없다고 거듭 얘기했는데도 임성한은 괜찮다고 하면서 이번 주 내로 정해진 주제의 대략적인 설계도만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대표가 설계도를 보고 문제없다고 하면 바로 계약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쳤을 땐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임성한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 근처에서 택시 잡기 어렵고 여자들만 다니기에 위험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요.”

“좋아요, 좋아요. 그럼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권은채를 보며 물었다.

“너도 갈래?”

“같이 가자, 그럼.”

배정아가 말했다.

“편집장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임성한이 웃으면서 답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다녀와요.”

화장실에서 나온 배정아가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

“너무 잘됐어. 곧 계약할 수 있겠어.”

권은채는 일이 너무 술술 풀려서 오히려 불안했다.

“대표님이 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야. 그럼 너랑 편집장님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배정아가 말했다.

“괜한 생각 하지 마, 은채야. 우리 대표님 엄청 좋은 분이셔. 출판사의 크고 작은 일들 대표님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대부분 편집장님이 알아서 결정하시거든. 그냥 절차 때문에 대표님을 거쳐야 하는 것뿐이야. 편집장님이 널 중히 여기니까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배정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장실 입구 쪽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서예빈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이곳에서 만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다들 흠칫했다. 잠시 후 서예빈이 코웃음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끈질겨서, 원. 어딜 가나 따라온다니까.”

권은채는 휴지 한 장을 뽑아 손을 닦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맞고 싶으면 말해. 빙빙 돌리지 말고.”

“당신...”

서예빈은 지난번에 권은채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게다가 오늘에는 상대가 두 명이라 아무런 승산이 없었다.

배정아가 말했다.

“뭐? 사람들한테 내연녀가 어떤 꼴인지 와서 좀 보라고 소리라도 지를까?”

서예빈이 차갑게 웃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권은채 씨, 사람이 어쩜 이렇게 뻔뻔해? 그때 무슨 수단으로 주씨 가문에 들어갔는지 잊었어? 대체 무슨 낯짝으로 내가 내연녀라고 하는지 모르겠네. 은채 씨도 나보다 나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사모님 자리에 앉았으면 함부로 해도 된다는 거야?”

배정아가 반격하려던 그때 권은채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렸다. 권은채는 서예빈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도운 씨가 그렇게 얘기했어?”

서예빈은 딱 봐도 머리가 텅 비어 생각이 없는 여자였다. 전에 두 번 만났을 때 얘기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우쭐거린다는 건 금방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래. 당신 같은 여자는 쳐다보기도 싫대. 그리고 이번 생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케이 클럽에서 은채 씨를 만난 거라고 했어. 은채 씨랑 몸이 닿기만 해도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면서 박박 씻어야 그 냄새가 사라진다고 했어.”

권은채의 표정이 여전히 흔들림이 없자 서예빈은 그제야 겁을 먹고 경계하면서 권은채가 또 손찌검할까 봐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권은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때리려는 마음도 없어 보였다. 그저 손을 닦은 휴지를 휴지통에 버린 다음 나가버렸다.

배정아도 곧장 그녀 뒤를 따라나섰다.

“은채야, 저 여자가 한 말 마음에 담아두지 마. 두 연놈들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어. 그냥 개 짖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화내지 마...”

그런데 배정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연놈 중 하나인 주도운이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와 덤덤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권은채는 못 본 척하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빠르게 걸어갔다.

강민기는 살벌한 살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여자를 보고 말했다.

“네 와이프 아니야? 왜 여기 있지?”

주도운이 고개를 들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두 눈에 짜증이 스쳤다.

‘여기까지 쫓아오고서는 그저 단순히 이혼하고 싶은 거라고? 이 여자 대체 언제부터 이런 못된 짓만 골라 했지?’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주도운이 뭐라 하려는데 권은채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발걸음을 멈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어찌나 빨리 스쳐 지나갔는지 휙 지나간 바람 같았다.

“...”

오히려 뒤에서 따라오던 배정아가 주도운의 옆에 멈춰 섰다. 마음 같아서는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다시 가버렸다.

이 과정을 목격한 강민기는 웃음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주도운이 아내를 싫어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정도라는 걸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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