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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2 화

작가: 위위두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6 18:15:10
주여진은 계속해서 따라왔다.

“경민 오빠, 이대로 그냥 가지 마. 귀찮게 안 할게.”

김경민은 어이가 없는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순간 현장 전체가 조용해졌고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그는 다시 일어날 수도 없어 잠자코 있었다.

강민기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주여진한테 이렇게 얌전한 면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그런데 왜 그때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외국으로 갔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온 거야?”

주도운이 대꾸했다.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면 직접 물어보지 그래?”

“그냥 물어보는 거지.”

“나도 몰라.”

주여진이 출국할 당시 그는 연국에서 출장 중이었는데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가 상관할 일도 아닌데 굳이 물어볼 이유도 없었다.

곧 런칭회가 시작되자 먼저 힐링 주얼리 창업자가 무대에 올라 창업 과정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어서 임성한이 개발 전략에 대해 말하며 ‘퍼스트 러브’ 세 디자인의 출시는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다양한 스타일과 컬렉션이 출시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모델들의 쇼가 시작되었다.

주여진이 말했다.

“경민 오빠, 이번 컬렉션 너무 예뻐. 다 사고 싶어.”

그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김경민은 모델들이 착용한 제품 말고도 백스테이지를 여러 번 돌아보았다.

힐링 주얼리 측에서 오늘 디자이너를 공개할 거라고 했다.

한편 강민기 역시 평가를 했다.

“루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우라가 대단하네. 저 작품을 보고 어떤 여자가 혹하지 않겠어. 나조차도 현장에 새콤달콤한 첫사랑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주도운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모델의 목에 걸린 목걸이만 쳐다보았다.

그는 그 목걸이를 권은채의 목에 걸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은채는 하얀 피부에 백조같이 가는 목, 아름다운 쇄골을 가지고 있으니 그녀보다 더 목걸이가 잘 어울리는 여자는 없을 테다.

주도운의 시선이 이번에는 모델들의 손에 낀 반지로 향했다. 권은채가 받기만 한다면 반지를 선물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모델들의 쇼가 모두 끝나자 사회자가 말했다.

“힐링 주얼리 ‘퍼스트 러브' 컬렉션의 디자이너 루안 씨를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박수가 끝나고 무대 앞에 한 인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힐링 주얼리와 계약한 디자이너 루안입니다.”

강민기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 네 와이프 아니야?”

주도운은 무대 쪽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얼굴을 찡그렸다.

권은채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제품의 디자인 콘셉트와 소재에 관해 설명했고 진행자가 다시 물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퍼스트 러브' 컬렉션은 젊은 층을 타깃으로 출시됐는데요. 그렇다면 루안 씨에게 첫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니면 기억에 남는 멋진 추억이 있나요?”

권은채는 잠시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었고 진행자가 귀띔해 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저한테 첫사랑은 풋풋하고도 달콤해서 가끔은 술 같아요. 충분히 숙성된 후에 맛보면 또 다른 맛이죠. 추억이라고 한다면... 첫사랑에 관해서는 마음속 깊이 간직할 때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아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주도운은 침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 여자가 지금 나한테 애정 표현하는 거야.”

“?”

주도운은 이유 모를 흥미가 당겨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 말고 무슨 첫사랑이 있겠어.”

“참... 대단한 애정 표현이다.”

주도운은 입꼬리를 올린 채 짐짓 우아하게 무대를 바라봤다.

‘제법이네.’

이런 방식으로 그를 기쁘게 한다니.

이때 무대 아래에 있던 취재진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럼 루안 씨 첫사랑은 언제였어요?”

권은채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대답했다.

“대학교 때요.”

“...”

“...”

와우.

무대에 있던 다른 기자가 물었다.

“루안 씨가 잊지 못하는 걸 보면 상대도 분명 훌륭한 사람이겠죠?”

무대 밖에서 배정아가 간절하게 눈치를 보내자 진행자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화제를 전환했다.

“이건 루안 씨 사생활이니까 이만 넘어갈게요. 다들 주얼리 관련된 질문 많이 해주세요.”

진행자의 안내에 모두 권은채의 첫사랑을 물고 늘어지는 대신 다시 런칭회로 화제를 돌렸다.

무대 밖에서 주여진은 이를 악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저 여자가, 역겨워! 사촌 오빠랑 결혼해 놓고 첫사랑을 못 잊었대!”

김경민은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뭐라고 했어?”

“오빠, 저 여자가 내가 전에 말했던 여자야. 임신했다는 거짓말로 내 사촌 오빠한테 결혼을 강요한 여자. 절대 저 겉모습에 속지 마. 얼마나 꿍꿍이가 많은 여자인데! 우리 오빠도 속아 넘어갔잖아.”

구석에서 그 속아 넘어간 당사자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웠고 다문 입술은 그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주도운 옆에 있던 강민기 역시 소리 내 웃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조금 전 자기한테 애정 표현하는 거라고 했는데 아내가 여지없이 따귀를 날려버리며 매정하게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

런칭회가 끝나고 관중석으로 불빛이 환하게 비출 때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

권은채는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운 느낌을 받으며 무대 뒤로 걸어갔다.

토하고 싶었다.

막 물을 마시고 있는데 배정아가 달려왔다.

“은채야, 이번 런칭회 아주 성공적이야. 예약 판매량도 불티나게 팔려서 세 디자인 모두 주문 10만 대를 돌파했어. 이제 겨우 런칭했는데.”

권은채는 상당히 좋은 결과에 안도하며 물었다.

“김경민은 갔어?”

객석의 불빛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어. 난 아까 못 봤는데 아마 안 갔을 거야. 분명 찾아올 텐데...”

배정아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훤칠하고 꼿꼿한 체격의 인물이 문 앞에 나타났다.

서늘한 표정의 주도운은 온몸이 싸늘한 기운에 뒤덮여 있었다.

권은채와 배정아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동시에 서로의 눈에서 같은 의문을 느꼈다.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몇 초 후, 배정아는 분장실의 온도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며 이가 덜덜 떨렸다.

“저... 은채야, 문 앞에서 기다릴 테니 먼저 얘기 나눠.”

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홀연히 자리를 떠났고 분장실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주도운은 탁자 위에 놓인 여러 개의 보석을 덤덤하게 훑어보더니 긴 다리로 권은채에게 다가왔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권은채는 그가 왜 무섭도록 살기 어린 기운을 내뿜는지 알 수 없었고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두 발짝 뒤로 물러서며 테이블에 닿았다.

“무... 무슨 설명?”

주도운은 그녀 앞에 멈춰 서서 무심코 뒤에 있는 목걸이를 집어 들더니 검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가늘어졌다.

“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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