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가짜 임신이 들통난 후 서예빈은 주도운이 크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몇 마디로 경고만 할 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밀어주는 걸로 봐서 아직 그녀에게 기회가 있는 것 같았다.지금 밖에서는 모두 자신을 주도운이 변덕스럽게 가지고 노는 물건일 뿐, 아직 그의 침대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며 조롱하는데 오늘 조금이라도 뭔가를 얻어내야 할 것 같았다.권강훈 때문에 깜짝 놀란 그녀는 성깔을 애써 참으면서 화를 내지 않고 주도운에게 부드럽게 말했다.“주 대표님, 좀 취하신 것 같은데 제가 모셔다드릴... 꺄악!”서예빈은 술잔
또 그 아르바이트생이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다.권강훈이 다시 앞으로 달려드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주도운의 경호원이 권강훈을 재빨리 제압했다.경호원이 주도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을 때 서예빈과 업장 매니저도 달려왔다.주도운은 그와 실랑이를 벌일 인내심이 없는 듯 차갑게 말했다.“신고해.”이를 본 매니저가 달려와 말했다.“주 대표님, 주 대표님,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경훈이가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경훈아, 빨리 주 대표님한테 사과해...”권강훈은 제압당하는
배정아가 불안한 마음에 입을 열려고 할 때쯤 권은채가 말했다.“정아야,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는 매니저를 바라보면서 이상한 느낌에 작게 덧붙였다.“내가 10분 안에 안 나오면 신고해.”매니저가 룸 문을 열어주었다.“권은채 씨, 들어가시죠.”안으로 들어가자 룸 문이 닫혔다.권은채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꼭 쥐고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갔다.몇 발짝도 떼지 못하고 소파에 기대어 눈을 살짝 감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주 대표
권은채의 손이 멈칫했지만 안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전에 계약 때문에 몇 번 행사에 데리고 다닌 거야.”“아.”주도운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며 다소 짜증스럽게 말했다.“내가 해명까지 했는데 왜 계속 이런 태도야?”권은채는 그의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설명해 준 건 고맙지만... 어차피 이혼할 텐데 나한테 해명할 필요 없어.”“그 여자가 임신하고 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해서 이혼하자는 거 아니야?”이전까지만 해도 권은채가 다른 이유로 이혼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임남규는 그녀가 투정을 부리는 걸 수도
권강훈이 얼굴을 찡그렸다.“여긴 왜 왔어?”권은채를 뒤따르던 배정아가 먼저 앞으로 나서며 찬 공기를 들이켰다.“우리 강훈이, 왜 이렇게 다쳤어? 그 개자식이 때렸어?”권강훈은 얼굴을 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권은채는 그를 바라보며 주도운이 권강훈에게 맞았다고 했지만 권강훈이 주도운을 때리려다 경호원에게 맞았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권은채가 조용히 말했다.“강훈아, 가자.”떠나기 전 권강훈은 라커룸으로 가서 짐을 챙긴 뒤 다시 매니저를 찾아갔다.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매니저는 조금 놀랐지만 이해가 갔다.
뒷좌석에 앉은 주도운은 눈도 뜨지 않았고 차갑게 말했다.“개한테나 줘.”임남규는 침묵을 지키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개는 초콜릿을 먹으면 안 돼요.”“...”...법원에서 권은채는 도로 상황과 여러 돌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늦지 않기 위해서 한 시간 일찍 입구에 도착해 기다렸다.혼인신고를 하고 연인에서 부부가 되어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나오던 사람과는 달리 여기서 이혼하는 부부의 얼굴엔 무심함과 증오로 가득했고 직원들의 표정조차도 다소 싸늘했다.이 장면을 본 권은채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주도운은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권은채는 단순히 이혼을 원했던 거다....오후에 권은채가 힐링 출판사에 도착했다.임성한과 ‘퍼스트 러브’ 후속 시리즈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러 왔다. 먼저 선보인 세 디자인 모두 잘 팔려서 힐링은 이 열기에 다른 디자인도 출시하자고 했다.회의 도중 갑자기 한 직원이 들어와 임성한의 귀에 몇 마디 속삭이자 임성한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권은채에게 말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요.”권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임성이 나가자마자 권은채는 회의실 밖이 순식간에 시
[힐링 주얼리는 디자이너와 계약하기 전에 알아봐야 하지 않나? 내연녀인 여자를 데려와 첫사랑 시리즈를 만들다니, 참 악랄하네.][좋은 무기를 엉망으로 만드네. 힐링 주얼리 사상 최대의 실패작이 될 것 같아.][루안에 대해 알아보는 사람 없나? 난 더 알고 싶은데. 재벌도 알아봐. 그 개 같은 남녀는 명성을 잃게 만들어야지.]이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권은채의 집안까지 들췄지만 소문의 재벌은 성조차 밝혀지지 않았다.임성한은 직원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문제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이 문제는 분명히
주도운은 침묵했다.“됐어.”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사생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주도운은 소위 혈연, 혈통이라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특히 주씨 가문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를 타고 반신불수가 된 채 음침한 눈빛을 드러낸 상대와 온갖 화려한 금은보화로도 감출 수 없는 더러움과 추악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러니 권은채가 아이를 협상 카드로 삼았다는 것은 그의 한계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주도운은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이미 지웠다가 다시 추가한 터라 둘만의 채팅창에는 더 이상 권은
하지만 추가하지 않으면 마치 빚을 지고 갚지 않는 것처럼 보여 한참이 지난 후에야 친구 요청을 수락했지만 채팅한 할 수 있게 설정해 놓았다.돈을 갚는 즉시 다시 차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한편, 주도운은 주씨 가문 부엌에 앉아 있다가 권은채가 자신의 친구목록에 다시 나타난 걸 발견했다.“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쁜 것도 아닌데 시간 나면 집에 자주 들러. 자꾸 재촉하게 하지 말고.”주도운은 무슨 문자를 보내야 이 배은망덕한 여자가 자신에게 와서 애원할지 생각하며 휴대폰을 쳐다보았다.주도운이 듣지도 않고 있는 것을 본 주일섭은
주도운은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제지했다.“그만해.”그는 조금 전 권정환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임남규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제게 알아보라고 하신 다음 날 사모님과 이혼하셨고 그날 오후에 제가 말씀드렸을 땐... 이미 이혼해서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당시 주도운은 권은채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신경 쓰지 못했다.잠시 후 주도운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힐링 측에 이번 쇼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주명그룹에서 후원한다고 해
권은채를 찾아 돈을 구하는 것보다 주도운을 직접 찾아 돈을 요구하기가 훨씬 쉽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부자들은 통이 커서 한 번에 1억씩 턱턱 쥐여주었다.주도운은 눈을 치켜뜨며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이번엔 얼마야?”권정환은 손가락을 내밀었다.“헤헤, 얼마 안 돼. 2억이면 돼.”주도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자선사업가인 줄 알아?”“사위, 2억 정도야 손해 볼 것 없잖아.”권정환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주도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그때 우리 은채가 케이 클럽에 팔려
김수연이 킥킥 웃으며 김경민을 바라보았다.“아직 어려서 그냥 재미 삼아 노는 걸 수도 있지. 경민이 네 생각은 어때?”김경민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머리가 아팠다.“누나, 난 차 가져올게.”“그래, 알았어, 가. 여기서 기다릴게.”김경민이 떠난 뒤에야 김수연이 말했다.“지희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가 뭘 어떻게 해요, 감정적인 일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내 눈 속일 생각 마. 이번에 주도운이 이혼해서 주씨 가문에서 결혼 주선하느라고 난리인데 그것 때문에 이번에 돌아온 거 맞지
권은채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했다.“그래.”병원 밖 카페에서 권은채와 김경민은 한참 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김경민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냈다.“은채야, 3년 전에...”“3년 전 일은 미안해. 다만 이제라도 이유를 알고 싶으면 지금 말해줄 수 있어.”권은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상을 받던 날 아버지가 사채업자에게 2억을 빚졌다는 소식을 듣고 파린에 갈 지원금을 현금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거절당했어. 그 뒤에 일은 주여진한테서 들은 그대로야.”김경민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이유일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주는 선물이라든지 협력업체에서 주는 선물이라는 등등 온갖 그럴듯한 핑계가 오갔다.롤스로이스 안은 잠시 묘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주도운은 눈을 떴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차갑고 적막했다.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종종 잊고 있었다.뼛속 깊이 박힌 습관이라 바꾸기가 쉽지 않았는데 권은채는 미련 없이 발을 뺐다.임남규가 덧붙였다.“대표님, 다음 주에 힐링에서 쇼를 주최하는데 그래도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로서 축하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회사 전체가 아니라 편집장, 사진작가... 디자이너
“...”“권은채,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했어?”“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보고 뻔뻔하다는데 이 정도쯤이야.”주도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을 보고 권은채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떠보았다.“지금 돈이 조금 있으니까 일단 일부분만 갚고 나머지는 매달 갚으면 안 될까?”“내가 은행이야?”권은채는 그가 쉽지 않을 줄 알았다.“그럼 어떡해?”“일시불로 갚아.”“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도운이 무심하게 말했다.“아니면 갚을 때까지 앞으로 매일 와서 내 방 청소하고 요리하든지
권은채는 차용증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두드리며 꼭 돈을 갚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거듭 말했다.그 모든 과정에서 주도운은 시종일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조롱과 조소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그동안 그녀는 며칠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온몸에 그가 남긴 보복이 가득했다.주도운은 그녀에게 잔뜩 비아냥거리며 돈을 건넸다.“갚을 필요 없어. 이러려고 수작 부려서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권은채는 말이 없었다. 꿈이 없다고 비난하던 자본가 덕분에 갚을 돈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주도운이 갚지 말라고 해도 차용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