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알겠지만 권은채는 단순히 이혼을 원했던 거다....오후에 권은채가 힐링 출판사에 도착했다.임성한과 ‘퍼스트 러브’ 후속 시리즈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러 왔다. 먼저 선보인 세 디자인 모두 잘 팔려서 힐링은 이 열기에 다른 디자인도 출시하자고 했다.회의 도중 갑자기 한 직원이 들어와 임성한의 귀에 몇 마디 속삭이자 임성한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권은채에게 말했다.“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요.”권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임성이 나가자마자 권은채는 회의실 밖이 순식간에 시
[힐링 주얼리는 디자이너와 계약하기 전에 알아봐야 하지 않나? 내연녀인 여자를 데려와 첫사랑 시리즈를 만들다니, 참 악랄하네.][좋은 무기를 엉망으로 만드네. 힐링 주얼리 사상 최대의 실패작이 될 것 같아.][루안에 대해 알아보는 사람 없나? 난 더 알고 싶은데. 재벌도 알아봐. 그 개 같은 남녀는 명성을 잃게 만들어야지.]이 글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권은채의 집안까지 들췄지만 소문의 재벌은 성조차 밝혀지지 않았다.임성한은 직원들과 긴급회의를 열고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문제를 진압하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이 문제는 분명히
주도운은 짧게 대꾸하며 인터넷 페이지를 닫았다.“홍보팀에게 가보라고 해.”힐링과 주명그룹이 함께 일해 온 인연이 없었다면 권은채가 나락으로 가도록 내버려뒀을 거다.임남규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떠났다. 상사에게 움직일 거창한 핑계를 찾아주는 게 참 힘들었다....인터넷에서 온갖 여론이 빗발치는 와중에 임성한은 주명그룹 홍보팀에서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주명그룹 홍보팀은 국내 최고 수준의 팀으로 주명그룹이 연예계에도 관여하고 있었지만 한번도 연예인을 위해 나선 적이 없이 회사의 이미지 관
주도운의 목소리가 점점 차가워졌다.“어떤 여자든 내 아이를 배기만 하면 주씨 가문으로 시집와도 된다는 거예요?”“널 위해서 이러는 거야! 네 아이를 밖에 떠돌게 할 생각이야? 애초에...”“그런 일 없게 할 테니 굳이 말하실 필요 없어요.”말을 마친 주도운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는 한참 동안 책상 위에 놓인 이혼 증명서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셔츠 주머니에 이혼 증명서를 넣고 긴 다리로 사무실을 나갔다....힐링 주얼리.권은채는 간담회 내내 기자들의 칼날 같은 날카로운 질문에도 침착하게 대처하며 차분한
“난...”권은채는 막 한 글자를 내뱉었을 때 또다시 메스꺼움이 밀려왔지만 이번에는 반나절이 지나도 토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조금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배를 문질렀다. 꼬맹이가 성격도 참...배정아는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은채야, 일단 내가 집으로 데려다줄게.”이때 두 사람 옆을 지나가던 힐링 직원 몇 명이 귓속말로 이야기를 나눴다.“이번에 주명그룹에서 왜 에이스 홍보팀까지 보내서 도와줬을까? 하윤도 이런 대접은 못 받았는데.”“맞아, 아무리 그래도 하윤은 최정상 여배우고 주명그룹 간판스타인데 스캔들이 한창일
이혼까지 했는데 왜 전화하는 건지, 또 누굴 조롱하려고.상대도 그의 카톡을 차단했으니 그녀가 번호를 차단한 것으로 퉁 치련다....스튜디오에서 마지막 촬영을 마친 서예빈은 광고대행사 직원들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선생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주문한 밀크티가 밖에 도착했으니까 다들 갈 때 하나씩 챙겨가세요.”“고마워요. 예빈 씨도 수고했어요.”“저는 서서 동작만 취하면 되는 거라 여러분만큼 힘들지 않죠. 다들 돌아가서 푹 쉬시고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해요.”가식적인 예의를 차린 후 서예빈
권은채는 침착하게 말했다.“미리 말하는데 먼저 뒤에서 수작 부린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죠. 난 똑같이 되돌려주는 것뿐이고. 다시는 나 건드리지 마요. 주도운한테 결혼까지 강요했는데 당신 하나 상대하는 건 더 쉽지 않겠어요?”권은채가 거친 말을 내뱉고 돌아서서 그대로 떠나려는데 문 앞에 훤칠한 실루엣이 알 수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주도운의 얇은 입술이 비웃듯 휘어져 있었고 목소리는 약간 차가웠다.“그렇게 유능한 권은채 씨에게 손뼉이라도 쳐 드릴까?”권은채는 잠시 침묵했다.“그... 됐어요.”재수가 없
엥?“이혼 말이야.”“고맙지만 됐어요.”권은채는 말을 마친 후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문을 나서는 순간 벽을 뚫고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곧장 걸어갔다.아래층에 내려가서 배정아를 통해 오늘 서예빈이 촬영했던 광고주 측 연락처를 알아내 녹음파일을 보냈다.애초에 좋은 사람도 아니었고 더 이상 서예빈과 시답잖은 입씨름을 할 생각도 없었다.갚아줘야 하는 건 빼놓지 않고 되돌려주는 편이다....보름 후 ‘퍼스트 러브' 시리즈가 정식으로 출시됐고 시장 반응이 너무 좋아 다른 모델도 빨리 출시해달라는 요청
주도운은 침묵했다.“됐어.”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사생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주도운은 소위 혈연, 혈통이라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특히 주씨 가문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를 타고 반신불수가 된 채 음침한 눈빛을 드러낸 상대와 온갖 화려한 금은보화로도 감출 수 없는 더러움과 추악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러니 권은채가 아이를 협상 카드로 삼았다는 것은 그의 한계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주도운은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이미 지웠다가 다시 추가한 터라 둘만의 채팅창에는 더 이상 권은
하지만 추가하지 않으면 마치 빚을 지고 갚지 않는 것처럼 보여 한참이 지난 후에야 친구 요청을 수락했지만 채팅한 할 수 있게 설정해 놓았다.돈을 갚는 즉시 다시 차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한편, 주도운은 주씨 가문 부엌에 앉아 있다가 권은채가 자신의 친구목록에 다시 나타난 걸 발견했다.“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쁜 것도 아닌데 시간 나면 집에 자주 들러. 자꾸 재촉하게 하지 말고.”주도운은 무슨 문자를 보내야 이 배은망덕한 여자가 자신에게 와서 애원할지 생각하며 휴대폰을 쳐다보았다.주도운이 듣지도 않고 있는 것을 본 주일섭은
주도운은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제지했다.“그만해.”그는 조금 전 권정환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임남규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제게 알아보라고 하신 다음 날 사모님과 이혼하셨고 그날 오후에 제가 말씀드렸을 땐... 이미 이혼해서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당시 주도운은 권은채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신경 쓰지 못했다.잠시 후 주도운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힐링 측에 이번 쇼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주명그룹에서 후원한다고 해
권은채를 찾아 돈을 구하는 것보다 주도운을 직접 찾아 돈을 요구하기가 훨씬 쉽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부자들은 통이 커서 한 번에 1억씩 턱턱 쥐여주었다.주도운은 눈을 치켜뜨며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이번엔 얼마야?”권정환은 손가락을 내밀었다.“헤헤, 얼마 안 돼. 2억이면 돼.”주도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자선사업가인 줄 알아?”“사위, 2억 정도야 손해 볼 것 없잖아.”권정환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주도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그때 우리 은채가 케이 클럽에 팔려
김수연이 킥킥 웃으며 김경민을 바라보았다.“아직 어려서 그냥 재미 삼아 노는 걸 수도 있지. 경민이 네 생각은 어때?”김경민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머리가 아팠다.“누나, 난 차 가져올게.”“그래, 알았어, 가. 여기서 기다릴게.”김경민이 떠난 뒤에야 김수연이 말했다.“지희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가 뭘 어떻게 해요, 감정적인 일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내 눈 속일 생각 마. 이번에 주도운이 이혼해서 주씨 가문에서 결혼 주선하느라고 난리인데 그것 때문에 이번에 돌아온 거 맞지
권은채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했다.“그래.”병원 밖 카페에서 권은채와 김경민은 한참 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김경민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냈다.“은채야, 3년 전에...”“3년 전 일은 미안해. 다만 이제라도 이유를 알고 싶으면 지금 말해줄 수 있어.”권은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상을 받던 날 아버지가 사채업자에게 2억을 빚졌다는 소식을 듣고 파린에 갈 지원금을 현금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거절당했어. 그 뒤에 일은 주여진한테서 들은 그대로야.”김경민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이유일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주는 선물이라든지 협력업체에서 주는 선물이라는 등등 온갖 그럴듯한 핑계가 오갔다.롤스로이스 안은 잠시 묘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주도운은 눈을 떴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차갑고 적막했다.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종종 잊고 있었다.뼛속 깊이 박힌 습관이라 바꾸기가 쉽지 않았는데 권은채는 미련 없이 발을 뺐다.임남규가 덧붙였다.“대표님, 다음 주에 힐링에서 쇼를 주최하는데 그래도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로서 축하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회사 전체가 아니라 편집장, 사진작가... 디자이너
“...”“권은채,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했어?”“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보고 뻔뻔하다는데 이 정도쯤이야.”주도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을 보고 권은채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떠보았다.“지금 돈이 조금 있으니까 일단 일부분만 갚고 나머지는 매달 갚으면 안 될까?”“내가 은행이야?”권은채는 그가 쉽지 않을 줄 알았다.“그럼 어떡해?”“일시불로 갚아.”“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도운이 무심하게 말했다.“아니면 갚을 때까지 앞으로 매일 와서 내 방 청소하고 요리하든지
권은채는 차용증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두드리며 꼭 돈을 갚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거듭 말했다.그 모든 과정에서 주도운은 시종일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조롱과 조소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그동안 그녀는 며칠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온몸에 그가 남긴 보복이 가득했다.주도운은 그녀에게 잔뜩 비아냥거리며 돈을 건넸다.“갚을 필요 없어. 이러려고 수작 부려서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권은채는 말이 없었다. 꿈이 없다고 비난하던 자본가 덕분에 갚을 돈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주도운이 갚지 말라고 해도 차용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