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진은 계속해서 따라왔다.“경민 오빠, 이대로 그냥 가지 마. 귀찮게 안 할게.”김경민은 어이가 없는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 순간 현장 전체가 조용해졌고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그는 다시 일어날 수도 없어 잠자코 있었다.강민기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주여진한테 이렇게 얌전한 면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그런데 왜 그때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외국으로 갔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온 거야?”주도운이 대꾸했다.“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면 직접 물어보지 그래?”“
권은채는 주도운이 힐링 주얼리와의 계약을 말하는 줄 알았다.“보이는 그대로야. 나도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 사람인데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도 안 돼?”“누가 그거 말한대?”권은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아니면 뭔데?”“네가 한 말...”주도운이 입을 열자마자 권은채는 메스꺼움이 밀려와 황급히 입을 가렸지만 손가락 사이로 헛구역질 소리가 흘러나왔다.권은채는 다른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며 힘겹게 말했다.“주 대표님, 멀리 떨어져 주세요. 좀 불편하니까.”주도운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연기 계속해 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차갑고도 덤덤한 목소리엔 온기가 전혀 없었다.권은채는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무슨 난장판인지.주도운이 오자 주여진은 얌전해졌고 동시에 믿는 구석이 생기자 더욱 무모하게 굴었다.“오빠, 권은채 좀 단속해. 뻔뻔한 것 좀 봐.”주도운의 감정 없는 시선이 권은채에게 향했지만 김경민은 그가 권은채를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주도운이 차갑게 웃었다.“뭐 하시는 겁니까, 김경민 씨?”김경민은 그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권은채가 이미 결혼했고 그 상대가 주도운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명예로운 결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만한 이별을 원했다.차가 막 집 아래에 멈춰 서는데 권은채의 휴대폰이 울렸고 낯선 번호를 보며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은채야, 나야.”권은채는 가만히 전화를 그러쥐었고 김경민이 말을 이어갔다.“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아무 얘기도 못 했잖아. 만날 수 있을까?”“김경민.” 권은채는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주여진 말이 맞아. 나 결혼했어. 수작 부려서 주씨 가문으로 시집온 거야.”“은채야, 네가 그럴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 주여진 말은
잠시 후 주도운은 임남규를 불러들였다.“진효준한테 가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봐.”“네.”임남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그는 권은채가 돈이 필요해서 그에게 덫을 놓았다고 생각했을 뿐 그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만약 권은채가 신예 디자이너 공모전의 후원자가 주명그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에게 접근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케이 클럽 직원 휴게실에서 몇몇 웨이터들이 근무 교대를 하면서 그중 한 명이 말했다.“엇, 방금 서예빈 오는 걸 봤어. 요즘 여기 자주 오네.”“오늘 누
지난번 가짜 임신이 들통난 후 서예빈은 주도운이 크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몇 마디로 경고만 할 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밀어주는 걸로 봐서 아직 그녀에게 기회가 있는 것 같았다.지금 밖에서는 모두 자신을 주도운이 변덕스럽게 가지고 노는 물건일 뿐, 아직 그의 침대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며 조롱하는데 오늘 조금이라도 뭔가를 얻어내야 할 것 같았다.권강훈 때문에 깜짝 놀란 그녀는 성깔을 애써 참으면서 화를 내지 않고 주도운에게 부드럽게 말했다.“주 대표님, 좀 취하신 것 같은데 제가 모셔다드릴... 꺄악!”서예빈은 술잔
또 그 아르바이트생이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차갑게 쳐다보기만 했다.권강훈이 다시 앞으로 달려드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주도운의 경호원이 권강훈을 재빨리 제압했다.경호원이 주도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을 때 서예빈과 업장 매니저도 달려왔다.주도운은 그와 실랑이를 벌일 인내심이 없는 듯 차갑게 말했다.“신고해.”이를 본 매니저가 달려와 말했다.“주 대표님, 주 대표님,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경훈이가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경훈아, 빨리 주 대표님한테 사과해...”권강훈은 제압당하는
배정아가 불안한 마음에 입을 열려고 할 때쯤 권은채가 말했다.“정아야,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는 매니저를 바라보면서 이상한 느낌에 작게 덧붙였다.“내가 10분 안에 안 나오면 신고해.”매니저가 룸 문을 열어주었다.“권은채 씨, 들어가시죠.”안으로 들어가자 룸 문이 닫혔다.권은채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꼭 쥐고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갔다.몇 발짝도 떼지 못하고 소파에 기대어 눈을 살짝 감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주 대표
주도운은 침묵했다.“됐어.”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사생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주도운은 소위 혈연, 혈통이라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특히 주씨 가문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를 타고 반신불수가 된 채 음침한 눈빛을 드러낸 상대와 온갖 화려한 금은보화로도 감출 수 없는 더러움과 추악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러니 권은채가 아이를 협상 카드로 삼았다는 것은 그의 한계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주도운은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이미 지웠다가 다시 추가한 터라 둘만의 채팅창에는 더 이상 권은
하지만 추가하지 않으면 마치 빚을 지고 갚지 않는 것처럼 보여 한참이 지난 후에야 친구 요청을 수락했지만 채팅한 할 수 있게 설정해 놓았다.돈을 갚는 즉시 다시 차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한편, 주도운은 주씨 가문 부엌에 앉아 있다가 권은채가 자신의 친구목록에 다시 나타난 걸 발견했다.“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쁜 것도 아닌데 시간 나면 집에 자주 들러. 자꾸 재촉하게 하지 말고.”주도운은 무슨 문자를 보내야 이 배은망덕한 여자가 자신에게 와서 애원할지 생각하며 휴대폰을 쳐다보았다.주도운이 듣지도 않고 있는 것을 본 주일섭은
주도운은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제지했다.“그만해.”그는 조금 전 권정환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임남규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제게 알아보라고 하신 다음 날 사모님과 이혼하셨고 그날 오후에 제가 말씀드렸을 땐... 이미 이혼해서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당시 주도운은 권은채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신경 쓰지 못했다.잠시 후 주도운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힐링 측에 이번 쇼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주명그룹에서 후원한다고 해
권은채를 찾아 돈을 구하는 것보다 주도운을 직접 찾아 돈을 요구하기가 훨씬 쉽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부자들은 통이 커서 한 번에 1억씩 턱턱 쥐여주었다.주도운은 눈을 치켜뜨며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이번엔 얼마야?”권정환은 손가락을 내밀었다.“헤헤, 얼마 안 돼. 2억이면 돼.”주도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자선사업가인 줄 알아?”“사위, 2억 정도야 손해 볼 것 없잖아.”권정환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주도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그때 우리 은채가 케이 클럽에 팔려
김수연이 킥킥 웃으며 김경민을 바라보았다.“아직 어려서 그냥 재미 삼아 노는 걸 수도 있지. 경민이 네 생각은 어때?”김경민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머리가 아팠다.“누나, 난 차 가져올게.”“그래, 알았어, 가. 여기서 기다릴게.”김경민이 떠난 뒤에야 김수연이 말했다.“지희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가 뭘 어떻게 해요, 감정적인 일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내 눈 속일 생각 마. 이번에 주도운이 이혼해서 주씨 가문에서 결혼 주선하느라고 난리인데 그것 때문에 이번에 돌아온 거 맞지
권은채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했다.“그래.”병원 밖 카페에서 권은채와 김경민은 한참 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김경민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냈다.“은채야, 3년 전에...”“3년 전 일은 미안해. 다만 이제라도 이유를 알고 싶으면 지금 말해줄 수 있어.”권은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상을 받던 날 아버지가 사채업자에게 2억을 빚졌다는 소식을 듣고 파린에 갈 지원금을 현금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거절당했어. 그 뒤에 일은 주여진한테서 들은 그대로야.”김경민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이유일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주는 선물이라든지 협력업체에서 주는 선물이라는 등등 온갖 그럴듯한 핑계가 오갔다.롤스로이스 안은 잠시 묘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주도운은 눈을 떴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차갑고 적막했다.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종종 잊고 있었다.뼛속 깊이 박힌 습관이라 바꾸기가 쉽지 않았는데 권은채는 미련 없이 발을 뺐다.임남규가 덧붙였다.“대표님, 다음 주에 힐링에서 쇼를 주최하는데 그래도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로서 축하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회사 전체가 아니라 편집장, 사진작가... 디자이너
“...”“권은채,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했어?”“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보고 뻔뻔하다는데 이 정도쯤이야.”주도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을 보고 권은채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떠보았다.“지금 돈이 조금 있으니까 일단 일부분만 갚고 나머지는 매달 갚으면 안 될까?”“내가 은행이야?”권은채는 그가 쉽지 않을 줄 알았다.“그럼 어떡해?”“일시불로 갚아.”“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도운이 무심하게 말했다.“아니면 갚을 때까지 앞으로 매일 와서 내 방 청소하고 요리하든지
권은채는 차용증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두드리며 꼭 돈을 갚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거듭 말했다.그 모든 과정에서 주도운은 시종일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조롱과 조소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그동안 그녀는 며칠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온몸에 그가 남긴 보복이 가득했다.주도운은 그녀에게 잔뜩 비아냥거리며 돈을 건넸다.“갚을 필요 없어. 이러려고 수작 부려서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권은채는 말이 없었다. 꿈이 없다고 비난하던 자본가 덕분에 갚을 돈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주도운이 갚지 말라고 해도 차용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