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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1 화

작가: 위위두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6 18:15:10
“네. 여자들은 원래 삐져도 속 시원하게 말하지 않고 다른 일로 남자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잖아요. 사모님께서 이혼 얘기를 꺼내신 건 대표님이 달래주길 기다리는 거 아닐까요?”

주도운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꿈 깨라고 해.”

‘제 주제도 모르고 어디서 그런 황당한 걸 바라는지, 참.’

임남규가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은 돈밖에 모르는 분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사모님 아버님이 주명 그룹 앞에서 난동을 부릴 때 사모님이 그러셨거든요. 대표님 돈은 사모님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요. 그리고 아버님한테 따귀까지 맞았어요.”

주도운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맞았다고?”

“네, 그것도 꽤 심하게요. 손바닥 자국이 다 낫다니까요.”

주도운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 갚아줘. 그리고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하고.”

시계가 3시 10분을 가리킨 그때 주도운이 또 말했다.

“회사로 가자.”

안방.

주도운의 시선이 파란 줄무늬 셔츠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짜증이 났다. 만약 벨리에에서 돌아온 후에도 권은채가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이 옷과 함께 그녀까지 버릴 생각이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힐링 주얼리의 런칭회 당일이 되었다. 권은채는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에게 목걸이의 길이를 조절해주고 있었다.

그때 임성한이 들어왔다.

“루안 씨, 오늘 유명한 디자이너분들과 상업계 유명 인사들이 다 참석한 자리라 루안 씨 작품이 꼭 빛을 볼 겁니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루안 씨를 알게 될 거예요.”

권은채가 웃으며 말했다.

“이 명예는 다 힐링 주얼리 것이지, 전 그저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에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힐링 주얼리라는 화려한 겉옷이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없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누가 쳐다보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그때 배정아가 뛰어오면서 말했다.

“겸손하긴. 이건 우리 모두의 명예야. 맞죠? 편집장님?”

임성한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서로 도와서 잘되도록 하는 거죠.”

임성한이 떠난 후 배정아는 권은채를 잡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은채야, 할 얘기 있는데 듣고 놀라지 마.”

“뭔데?”

“방금 김경민을 봤어.”

쿵.

권은채는 모델에게 씌워주려 했던 머리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배정아가 다급하게 주우면서 말했다.

“사실 김경민은 계속 널 찾고 있었어. 힐링 주얼리에서 이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고 ‘3년 전 신예 디자이너 대회 우승 후 사라진 디자이너의 3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내용으로 홍보했잖아. 김경민이 여기까지 찾아온 게 사실 어렵지는 않아.”

권은채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배정아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위로했다.

“괜찮을 거야. 괜한 생각 하지 말고 되는대로 흘러가게 해. 어차피 곧 이혼할 텐데 새로운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퍼스트 러브’ 시리즈에 관한 인터뷰를 생각하고 있었어.”

첫사랑이라는 건 아름다우면서도 예민한 단어였다. 전에 출판사에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작품의 영감에 관한 인터뷰는 가능하지만 그녀의 첫사랑에 관한 그 어떤 질문도 꺼내선 안 된다고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괜히 당사자를 끌어들여서 난감하게 할 수 있으니까.

권은채가 결혼했다가 이혼한 건 둘째치고 김경민의 여자 친구가 이 인터뷰를 본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배정아가 머리를 치면서 말했다.

“그렇긴 하네. 기자들한테 질문 가려서 하라고 말해야겠어. 내가 있으니까 넌 걱정하지 마.”

이어지는 준비 시간 동안 권은채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

런칭회 현장, 임성한의 말대로 수많은 상업계 유명 인사들이 자리했다. 그중에는 강민기와 벨리에에 출장 갔다가 돌아온 주도운도 있었다.

임성한은 주도운을 보더니 이런 엄청난 거물까지 이곳에 올 줄은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강민기가 웃으면서 설명했다.

“편집장님, 제일 먼저 선보이는 주얼리가 ‘퍼스트 러브’ 시리즈라면서요? 이미 엄청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주 대표도 와이프한테 선물하겠대요.”

임성한은 그저 웃기만 했다. 원래는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이 판매용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삼켜버렸다. 주명 그룹이라는 엄청난 회사에 밉보여봤자 득이 될 게 없으니 말이다.

런칭회가 끝난 후 주도운이 사겠다고 하면 디자이너와 상의해볼 수도 있었다.

“두 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런칭회 곧 시작합니다.”

강민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일 보세요.”

임성한이 자리를 비운 후 강민기가 고개를 돌렸다.

“너 와이프를 싫어한다며? 이 시리즈 이름이 ‘퍼스트 러브’야. 선물했다가 네 와이프가 오해라도 하면 어쩌려고?”

주도운이 덤덤하게 말했다.

“오해하면 걔가 괜한 생각 했다는 거지.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산 건데.”

강민기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런칭회에 달려오고선 그냥 산 거라고? 그럴 바엔 로켓이라도 사서 날아가는 건 어때?’

강민기가 뭐라 말하려던 그때 문 앞에 익숙한 모습의 누군가가 보였다.

“주여진 아니야? 언제 귀국했대?”

주도운이 그녀를 힐끗거렸다.

“몰라.”

시큰둥한 주도운과 달리 강민기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왜냐하면 줄곧 막무가내던 주여진이 지금 이 순간 한 남자에게 딱 붙어서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주여진도 그들을 보고는 옆에 있던 남자를 억지로 끌고 와서 인사했다.

“오빠, 민기 오빠, 여긴 어쩐 일이야?”

주도운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일이 있어서.”

강민기는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여진아.”

“오랜만이야, 민기 오빠.”

주여진이 남자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 소개할게. 이 사람은 유학할 때 알게 된 김경민 오빠야.”

김경민은 강민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경민입니다.”

강민기가 악수를 받았다.

“아,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김씨 가문 어르신의 생신 연회에서 어르신이 경민 씨가 3년 전에 해외로 나갔다고 하던데 이제 돌아온 건가요?”

김경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도운을 쳐다보았다.

“주 대표님,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주도운도 예의상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주여진은 끼어들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아는 사이였어? 경민 오빠가...”

주여진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현장의 조명이 전부 꺼졌다.

곧이어 사회자가 말했다.

“귀빈 여러분 착석해주십시오. 런칭회가 곧 시작됩니다.”

주여진은 주도운의 앞자리에 자리가 비어있는 걸 보고 김경민을 끌고 갔다.

“오빠, 우리 저기 앉자.”

김경민은 오늘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기에 주여진과 붙어 있고 싶지 않았다.

“난 볼 일이 있어. 네가 가서 앉아.”

그러고는 주여진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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