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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 화

작가: 위위두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6 18:15:10
“임신은 좋은 일이지. 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배정아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주도운 그 자식 애야?”

“응.”

“젠장. 어떡해? 그 자식한테 말하려고?”

권은채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어차피 곧 이혼할 텐데.”

배정아는 멈칫하다가 말했다.

“그럼... 이 아이 낳을 거야?”

권은채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다.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를 지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후 많은 생각을 했다.

이건 그녀와 주도운 사이의 원한이지 배 속의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녀는 눈을 감을 때마다 3년 전 그 아이가 생명력을 잃어가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는다면...

권은채가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나중에 다시 얘기해.”

그녀가 더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자 배정아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 참, 좋은 소식이 있어. ‘퍼스트 러브’ 시리즈의 목걸이와 반지 모두 우리 출판사에서 호평을 받고 있고 벌써 내부 예약도 시작했어. 나중에 출시하면 엄청 잘 팔릴 거야. 지금 팔찌 하나만 남았는데... 일주일 뒤면 런칭회야. 시간이 될까?”

“응. 길어봤자 3일이면 돼.”

배정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임신했는데 제품을 만들 수 있어? 만드는 과정에 화학용품을 써야 하잖아. 아니면 그냥 공장에 맡길까?”

“괜찮아. 마스크랑 장갑 끼면 돼.”

“그럼 조심해. 안 될 것 같으면 나한테 얘기하고.”

권은채가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권은채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주도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꽤 울려서야 전화를 받았는데 서예빈의 우쭐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지금 나랑 같이 있으니까 망신당할 짓 하지 마.”

“그래.”

권은채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온 주도운은 서예빈이 그의 휴대전화를 옷 주머니에 넣는 걸 보고는 싸늘하게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했어?”

서예빈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아... 아니요...”

주도운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1분 전 권은채와의 통화기록이 남아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서예빈이 말했다.

“권은채 씨가 대표님이 어디 있냐고 묻더라고요. 대표님이 만나기 싫어하는 거 아니까 대충 핑계를 댔더니 아무 말이 없었어요.”

주도운은 휴대전화를 다시 넣었다. 이런 작은 수작 따위는 아예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

그때 협력 업체 측 사람이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대표님, 다행히 아직 계셨군요. 케이 클럽의 룸 하나 예약했는데 같이 가시죠.”

주도운이 대답했다.

“이번 협력의 주인공은 여기 서예빈 씨니까 전 이만 빠지겠습니다. 그럼 즐겁게 노세요.”

서예빈이 다급하게 불렀다.

“대표님...”

주도운은 협력 업체와 인사를 나눈 다음 클럽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대표님, 오피스텔로 갈까요, 호원 맨션으로 갈까요?”

주도운은 시선을 늘어뜨리고 휴대전화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호원 맨션.”

“알겠습니다.”

30분 후 주도운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다름 아닌 권은채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내심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주도운은 넥타이를 잡아당기면서 소파에 앉았다.

“말해.”

2초 정도 지난 후 떠보는 듯한 권은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일... 다 봤어?”

권은채도 그에게 전화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만약 설명하지 않는다면 주도운은 그녀가 막 나간다고 생각하여 나중에 이혼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전화가 그의 좋은 일을 망쳤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볼일이라니?”

권은채는 잠깐 침묵하다가 더는 파고들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오늘 미안했어. 일부러 안 간 게 아니라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간 거야.”

주도운이 차갑게 말했다.

“권은채, 난 널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

“정말 미안해. 진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어. 내일은 어때? 시간은 도운 씨가 정해. 아니면 내가 아침부터 가정법원 문 앞에서 기다릴까? 언제 시간 될 때 오면 돼.”

“내가 너처럼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내일 벨리에로 출장 가야 해.”

권은채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래? 그럼 출장 다녀와서 다시 얘기해.”

남편이 하도 바빠서 이혼마저 쉽지 않았다.

전화를 끊기 전에 주도운이 그녀에게 물었다.

“초콜릿 먹고 싶어?”

권은채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응?”

주도운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벨리에 출장 간다고 했잖아. 그래서 초콜릿 먹고 싶냐고.”

권은채는 그제야 문득 생각났다. 지난번에 주도운이 벨리에에 갔을 때 그쪽 협력 업체가 현지 특산품인 초콜릿을 선물로 주었는데 돌아온 후 그는 초콜릿을 테이블 위에 놓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단 음식과 간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도운과 달리 권은채는 아주 좋아했다.

주도운은 어차피 버릴 건데 쓰레기통에 버릴 바엔 그녀의 입에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권은채가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고마워.”

그는 코웃음을 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권은채가 자려고 침대에 눕자마자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주도운이 물었다.

“숙취해소제 어디 있어?”

“주방 들어가서 왼쪽 세 번째 서랍의 맨 위층에. 근데 그건 끓여서 먹는 거야. 할 줄 모르겠으면...”

주도운은 마치 그녀의 뒷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차분하게 기다렸다. 권은채가 계속하여 말했다.

“도우미한테 끓여달라고 해.”

주도운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권은채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휴대전화를 침대에 엎어놓았다.

‘어쩐지 오늘 평소답지 않게 다정하다 했더니 술을 마신 거였구나.’

주도운은 술만 마시면 성격이 많이 온순해졌고 말도 잘 들었다. 가끔 그에게 혼이 나서 억울하고 속상할 때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술 몇 병을 먹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냥 생각일 뿐이지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다.

...

주도운은 도우미를 깨우지 않고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 냉수 한 잔을 마신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방으로 들어온 그가 옷을 챙기고 욕실로 가려는데 건드린 흔적도 없는 여자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권은채가 집을 나간 지 벌써 한 달이 거의 되었다.

오늘 오후 가정법원 앞에서 주도운은 임남규에게 이런 질문을 건넸다.

“여자가 기어코 이혼하려는 이유 중에 재산을 나눠 가지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또 뭐가 있을까?”

그동안 주도운은 지칠 대로 지쳤다. 돈은 필요 없고 이혼만 하면 된다는 그녀의 말은 그냥 터무니없는 핑계일 뿐이었다. 그건 권정환이 오늘 주명 그룹 밑에서 소란을 피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권은채의 태도는 무척이나 단호했지만 오늘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임남규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떠보듯 말했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삐져서 이러는 건 아닐까요?”

“삐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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