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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화

작가: 위위두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1-26 18:15:10
권은채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절친 배정아는 먼저 10분 동안 주도운의 욕만 주야장천 했다.

“그 자식 진짜 일전 한 푼도 안 줬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날 때는 거금을 쓰더니 어쩜 아내인 너한테는 이렇게 쪼잔할 수가 있어?”

“쪼잔한 건 아니야. 3년 동안 도운 씨한테 받은 돈이 꽤 많아. 그 돈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데.”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되지. 두 사람은 부부야. 주도운의 돈도 네 거고 네 돈도 네 거지. 그리고 맨날 네 몸을 탐내면서 욕구를 풀었는데 돈을 좀 쓰면 뭐 어때서?”

권은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배정아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미안. 순간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

권은채는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욕했다.

“오늘 내가 이혼 얘기 꺼내니까 그 자식이 나한테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는 거 있지? 이혼 합의서는 쳐다보지도 않았어. 내가 뭐 거액이라도 뜯어낼까 두려운가 봐.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

“그나저나 왜 이혼하겠다는 건데? 누가 끝까지 버티나 지켜볼 거지.”

그녀의 말에 권은채도 마음을 가라앉혔다.

“서예빈이 임신했대.”

서예빈은 최근에 유명세를 얻은 모델이다. 주도운과도 가깝게 지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권은채와 주도운은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주도운이 그녀를 어느 정도로 혐오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한 달에 두 번 집에 들어오는 것도 그녀에 대한 최대의 인내심이었다.

매번 잠자리를 할 때도 주도운은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주지 않았다. 그녀가 아프든 말든 자기 욕구를 푸는 데만 급급했다.

서예빈은 주도운의 옆에 나타난 첫 번째 여자가 아니기에 권은채는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주일 전, 권은채가 기쁜 마음으로 곧 다가오는 3주년 결혼기념일의 선물을 고르던 그때 서예빈이 갑자기 임신 결과서를 들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

“나 임신했어. 그러니까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서 이만 물러나.”

임신 결과서를 본 순간 권은채가 3년 동안 자신을 기만했던 게 전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잔인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권은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권은채, 눈앞의 이 여자 파렴치하면서 역겹지? 근데 너도 주도운이랑 결혼할 때 똑같은 수단을 썼잖아. 배 속의 아이로 결혼을 강요한 거 아니었어? 너도 똑같아. 그러니까 주도운이 널 그렇게 혐오하지. 지금 다른 사람이 너랑 똑같은 수단을 썼을 뿐이야.’

배정아가 분노를 터트렸다.

“그게 어떻게 같아? 네가 주도운이랑 결혼할 땐 주도운이 솔로였어. 근데 서예빈은 너의 존재를 알면서도 끼어들었어. 걔는 그냥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내연녀야.”

“괜찮아. 다 비슷한데 뭐.”

권은채가 이어 말했다.

“사실 도운 씨랑 결혼한 3년 동안 난 하루도 편히 잠든 날이 없었어. 어쨌거나 그때 나랑 마지못해 결혼한 건 사실이잖아.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 나도 이젠 그 사람한테 빚진 게 없고.”

배정아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라 주도운과 서예빈을 30분 넘게 욕한 후에야 잠기운이 쏟아지는 권은채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앞으로는 여기서 지내. 어차피 남자 친구도 여기 없고. 안 그래도 집이 커서 혼자 지내기 무서웠어.”

권은채는 하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자.”

이튿날 오후, 주도운의 사무실 테이블 위에 이혼 합의서가 놓여있었고 사인이 그에게 시위라도 하듯 눈에 거슬렸다.

임남규는 주도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보고 다가와 말했다.

“대표님, 호원 맨션 쪽에 확인해 봤는데 사모님께서 어젯밤에 집을 나가셨답니다. 개인 물건을 제외하고는 다 그대로 두고 가셨대요.”

주도운은 이혼 합의서를 옆에 툭 던졌다.

“아무것도 안 챙기고 맨몸으로 나갔다고?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이야?”

임남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와이프도 아닌데 부부가 무슨 장난인 건지 그가 알 리가 있겠는가.

주도운도 임남규에게서 쓸모있는 대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덤덤하게 말했다.

“나가.”

임남규가 돌아섰다가 다시 들어왔다.

“대표님, 파린에서 제작한 목걸이 도착했습니다. 목걸이는...”

이 목걸이는 주도운이 권은채에게 주려고 준비한 결혼 3주년 선물이다. 이렇게 된 이상 줄 필요도 없게 되었다.

“버려.”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한마디였다. 임남규가 대답했다.

“네.”

임남규가 나간 후 주도운은 이혼 합의서를 주워 사인하는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피식 웃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희생도 마다하지 않던 여자가, 케이 클럽에서 내 옷자락을 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여자가, 게다가 임신으로 결혼까지 강요하던 여자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그 여자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야. 지금 단지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 이러는 거겠지.’

주도운은 이혼 합의서를 구겨서 휴지통에 버렸다.

...

권은채가 집에서 며칠이나 기다렸지만 주도운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첫째 날:[이혼 합의서 받았지? 난 이미 사인했으니까 시간 되면 말해.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 진행하게.]

다정하면서도 고분고분한 말투였다.

둘째 날:[안녕? 내 문자 봤어? 이혼 합의서에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어?]

그를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셋째 날:[주 대표, 많이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시간 좀 내서 이혼해주면 안 될까?]

아무리 무시해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넷째 날:[주도운, 계속 이럴 거야? 이혼하는데 왜 이렇게 꾸물거려? 날 만나기 싫으면 하루라도 빨리 이혼해. 그럼 앞으로 다신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정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섯째 날.

[당신은 친구가 아닙니다. 연락처를 추가하고 상대가 허락한 후 연락할 수 있습니다.]

‘허허, 나쁜 자식.’

권은채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케이 클럽으로 향했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기다리는 주도운은 만나지 못하고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서예빈을 만났다.

친구들을 만나러 나왔던 서예빈은 문 앞에 서 있는 권은채를 보고는 경멸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하이힐을 또각또각 밟으면서 다가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

“설마 아직도 도운 씨를 포기하지 못하고 찾으러 온 거야?”

권은채는 그녀를 덤덤하게 흘겨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예빈은 권은채가 겁먹은 줄 알고 더 날뛰었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뻔뻔해? 내가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도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서 계속 버티고 있어? 싫다는 사람한테 매달리는 꼴이 얼마나 한심한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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