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채가 이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절친 배정아는 먼저 10분 동안 주도운의 욕만 주야장천 했다.“그 자식 진짜 일전 한 푼도 안 줬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날 때는 거금을 쓰더니 어쩜 아내인 너한테는 이렇게 쪼잔할 수가 있어?”“쪼잔한 건 아니야. 3년 동안 도운 씨한테 받은 돈이 꽤 많아. 그 돈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데.”“그렇게 생각해선 안 되지. 두 사람은 부부야. 주도운의 돈도 네 거고 네 돈도 네 거지. 그리고 맨날 네 몸을 탐내면서 욕구를 풀었는데 돈을 좀 쓰면 뭐 어때서?”권은채는 머리가 지
“그래? 근데 아무리 한심해도 남의 가정을 파탄 낸 불륜녀보다 더하겠어?”권은채의 반박에 서예빈은 한참 동안 넋을 놓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 권은채의 따귀를 내리치려 했다.권은채는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가차 없이 따귀를 후려갈겼다.“전에 예빈 씨를 가만히 내버려 둔 건 예빈 씨가 자기 능력으로 도운 씨의 아이를 가져서야. 하지만 단지 임신했다는 이유로 내 앞에서 잘난 척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왜? 불륜녀 주제에 우월감이라도 생겼어?”권은채가 따귀를 날린 바람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가뜩이나 주씨 가문 사람들이 권은채를 싫어하는데 가짜 임신인 게 밝혀지면서 온갖 미움이란 미움은 다 받았다. 권은채만 보면 냉랭하기 그지없었다.주도운이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나 했더니 서예빈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권은채는 돌아와서 며칠 더 기다렸지만 주도운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그날 케이 클럽에서 만난 후로 권은채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도운이 이혼하지 않고 버티는 게 권은채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고 또 어딜 가든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하면서 예전의 복수를 하려는 게
하여 평소 밖에 나올 때도 아내와 동행하지 않았다. 강민기는 지금까지 권은채를 딱 두 번 봤다.한 번은 주도운이 서류를 놓고 갔는데 일에 지장 줄까 봐 권은채가 직접 회사까지 가져다줬었다. 주도운이 아무리 싸늘하게 대해도 권은채는 잠깐 실망만 할 뿐 그 어떤 원망도 쏟아내지 않았다. 보기에는 참 말도 잘 듣고 철이 든 여자였다.또 한 번은 주씨 가문 어르신의 생신 연회였는데 그 해는 주도운과 권은채가 결혼한 이듬해였다. 주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고 소개하는 사람도 없었다.그날 저녁 권은채는 주씨 가문에서 공짜로
그 말을 마친 후 권은채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어떤 낯선 방에 누워있었는데 옆에 낯선 남자가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 널브러진 옷가지들만 봐도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그녀는 갈증 때문에 목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속상함도 잠시 자신을 위로했다. 적어도 어젯밤의 뚱뚱한 중년 남자보다는 훨씬 더 잘생겼다고 말이다.어젯밤의 일로 권강훈이 걱정됐던 권은채는 재빨리 옷을 입고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인기척에 침대 위의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깨려 하자 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주고 가
“내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이러는 거라고 의심하는 거 알아. 그래서 각서도 쓰겠다고 했잖아. 이혼할 때 변호사와 촬영 감독까지 불러도 돼. 내가 먼저 이혼하겠다고 했고 일전 한 푼도 받을 생각 없어.”주도운은 입술만 적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혹시 내가 이혼한 걸 이용해서 언론에 도운 씨와 주씨 가문을 욕할까 봐 그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도운 씨랑 이혼한 거로 그 어떤 이득이라도 얻는다면 난 죽어도 싸.”한참 후에야 주도운이 입을 열었다.“네가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내가 믿을 것 같아?”권은채의 인내
권은채가 웃으면서 일어났다.“TV나 계속 봐.”그녀는 약국에 들러 약을 산 후 마트로 걸어갔다. 배정아가 요구했던 물건을 사고는 생리대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그녀도 두 달 정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났다.3년 전에 유산한 후 생리 주기가 항상 불규칙했고 두세 달에 한 번씩 생리하곤 했다.‘곧 하겠지, 뭐.’권은채는 혹시라도 생리대가 모자랄까 봐 몇 봉지 더 샀다. 결제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한 여자가 들어오면서 그녀와 어깨를 부딪쳤다. 그 바람에 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자기 옷을 툭툭
권은채는 고개를 들어 빌딩의 유리벽 안을 바라보았다. 안이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 눈빛에 그녀는 등골이 다 오싹했다.‘이런 소란까지 피웠으니 내가 얼마나 싫을까. 죽이고 싶은 생각도 들겠어.’권은채는 임남규가 데려온 경비의 도움을 받아 인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바닥에 앉아서 난동을 부리는 권정환을 본 순간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예요?”권정환은 그녀를 보더니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마침 잘 왔어. 주도운더러 내려오라고 해. 이혼
주도운은 침묵했다.“됐어.”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사생아라는 타이틀을 달고 주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주도운은 소위 혈연, 혈통이라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다.특히 주씨 가문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를 타고 반신불수가 된 채 음침한 눈빛을 드러낸 상대와 온갖 화려한 금은보화로도 감출 수 없는 더러움과 추악함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러니 권은채가 아이를 협상 카드로 삼았다는 것은 그의 한계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주도운은 다시 휴대폰을 열었다. 이미 지웠다가 다시 추가한 터라 둘만의 채팅창에는 더 이상 권은
하지만 추가하지 않으면 마치 빚을 지고 갚지 않는 것처럼 보여 한참이 지난 후에야 친구 요청을 수락했지만 채팅한 할 수 있게 설정해 놓았다.돈을 갚는 즉시 다시 차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한편, 주도운은 주씨 가문 부엌에 앉아 있다가 권은채가 자신의 친구목록에 다시 나타난 걸 발견했다.“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쁜 것도 아닌데 시간 나면 집에 자주 들러. 자꾸 재촉하게 하지 말고.”주도운은 무슨 문자를 보내야 이 배은망덕한 여자가 자신에게 와서 애원할지 생각하며 휴대폰을 쳐다보았다.주도운이 듣지도 않고 있는 것을 본 주일섭은
주도운은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제지했다.“그만해.”그는 조금 전 권정환이 돈을 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임남규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제게 알아보라고 하신 다음 날 사모님과 이혼하셨고 그날 오후에 제가 말씀드렸을 땐... 이미 이혼해서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당시 주도운은 권은채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신경 쓰지 못했다.잠시 후 주도운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힐링 측에 이번 쇼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주명그룹에서 후원한다고 해
권은채를 찾아 돈을 구하는 것보다 주도운을 직접 찾아 돈을 요구하기가 훨씬 쉽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부자들은 통이 커서 한 번에 1억씩 턱턱 쥐여주었다.주도운은 눈을 치켜뜨며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이번엔 얼마야?”권정환은 손가락을 내밀었다.“헤헤, 얼마 안 돼. 2억이면 돼.”주도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자선사업가인 줄 알아?”“사위, 2억 정도야 손해 볼 것 없잖아.”권정환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주도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그때 우리 은채가 케이 클럽에 팔려
김수연이 킥킥 웃으며 김경민을 바라보았다.“아직 어려서 그냥 재미 삼아 노는 걸 수도 있지. 경민이 네 생각은 어때?”김경민은 두 사람의 이야기에 머리가 아팠다.“누나, 난 차 가져올게.”“그래, 알았어, 가. 여기서 기다릴게.”김경민이 떠난 뒤에야 김수연이 말했다.“지희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제가 뭘 어떻게 해요, 감정적인 일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내 눈 속일 생각 마. 이번에 주도운이 이혼해서 주씨 가문에서 결혼 주선하느라고 난리인데 그것 때문에 이번에 돌아온 거 맞지
권은채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했다.“그래.”병원 밖 카페에서 권은채와 김경민은 한참 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김경민은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냈다.“은채야, 3년 전에...”“3년 전 일은 미안해. 다만 이제라도 이유를 알고 싶으면 지금 말해줄 수 있어.”권은채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상을 받던 날 아버지가 사채업자에게 2억을 빚졌다는 소식을 듣고 파린에 갈 지원금을 현금으로 바꾸고 싶었지만 거절당했어. 그 뒤에 일은 주여진한테서 들은 그대로야.”김경민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런 이유일
회사에서 누구에게나 주는 선물이라든지 협력업체에서 주는 선물이라는 등등 온갖 그럴듯한 핑계가 오갔다.롤스로이스 안은 잠시 묘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주도운은 눈을 떴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차갑고 적막했다.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종종 잊고 있었다.뼛속 깊이 박힌 습관이라 바꾸기가 쉽지 않았는데 권은채는 미련 없이 발을 뺐다.임남규가 덧붙였다.“대표님, 다음 주에 힐링에서 쇼를 주최하는데 그래도 한때 같이 일했던 동료로서 축하 선물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회사 전체가 아니라 편집장, 사진작가... 디자이너
“...”“권은채, 언제부터 이렇게 뻔뻔했어?”“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보고 뻔뻔하다는데 이 정도쯤이야.”주도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가 바로 전화를 끊지 않는 것을 보고 권은채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떠보았다.“지금 돈이 조금 있으니까 일단 일부분만 갚고 나머지는 매달 갚으면 안 될까?”“내가 은행이야?”권은채는 그가 쉽지 않을 줄 알았다.“그럼 어떡해?”“일시불로 갚아.”“난...”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도운이 무심하게 말했다.“아니면 갚을 때까지 앞으로 매일 와서 내 방 청소하고 요리하든지
권은채는 차용증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서재 문을 두드리며 꼭 돈을 갚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거듭 말했다.그 모든 과정에서 주도운은 시종일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며 조롱과 조소로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그동안 그녀는 며칠 내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온몸에 그가 남긴 보복이 가득했다.주도운은 그녀에게 잔뜩 비아냥거리며 돈을 건넸다.“갚을 필요 없어. 이러려고 수작 부려서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권은채는 말이 없었다. 꿈이 없다고 비난하던 자본가 덕분에 갚을 돈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주도운이 갚지 말라고 해도 차용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