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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첫 번째는 우리가 약혼하고 나서였다.

나는 마침내 대출금을 모아 회사와 가까운 곳에 신혼집으로 쓸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반대했고 가족들과 번갈아 가며 나에게 장단점을 설명해주었다.

결국, 내가 산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20년 동안 살던 낡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 아파트를 나에게 팔고 받은 돈과 내 결혼 혼수금을 더해 새로 개발된 강변 대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때 아내는 내 품에 안겨 달콤하게 ‘여보'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 집이 최고의 학군과 가까워서 우리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나와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었다.

그때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낡은 아파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니까.

회사와 좀 멀긴 했지만 내가 조금 더 노력해서 차를 사면 출퇴근도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아내가 유산한 직후였다.

그 당시 아내의 남동생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신부 쪽에서 1억 2천만의 혼수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집을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렸기에 그녀는 나에게 동생의 결혼비용을 대신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아직 몸조리 중이었던 아내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간절히 바라보며 내가 들었던 것 중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나를 ‘여보'라고 불렀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미안한 마음에 나는 술 접대 때문에 피를 토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때 받은 프로젝트 보너스 전액과 차를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보태서 남동생의 혼수금을 마련했다.

그 두 번을 제외하고 아내는 늘 차갑게 나를 태성오빠라고 불렀다.

나는 늘 그녀가 부모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동생만 신경 쓰는 환경에서 자라서 감정 표현에 서툴고 사랑을 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녀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이 ‘사랑하는 여보’가 주고받는 대화는 열정적이고 솔직했으며 그런 말들을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만약 내가 그녀의 법적 남편이 아니었다면 정말 행복한 세 식구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대화 내용에는 재민이가 처음 웃었던 순간, 처음 기어 다녔던 순간, 그리고 처음 ‘아빠'라고 불렀던 순간을 그 남자와 함께 공유한 기록들이 있었다.

그건 내가 너무 아쉬워하며 놓친 아들의 소중한 성장 순간들이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재민을 바라보면서 전에는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아들의 모습이 이제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의 감각은 매우 예민했다. 재민은 내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의 다정한 아빠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평소 재민의 버릇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서둘러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때 아내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곧 깨어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급히 메시지를 읽지 않은 상태로 돌려놓고 휴대폰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음. 당신 왔어.”

심청하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재민을 안고 있는 것을 보더니 서둘러 일어나 아이를 받았다.

“고생했어. 밥솥에 남은 밥 있으니까 가서 먹어.”

그녀는 항상 이렇게 나와 재민이가 가까워지는 걸 극도로 꺼렸다. 재민이가 나와 더 친해질까 봐 걱정하는 듯 말이다.

전에는 그녀가 정말 내 고생을 이해해서 내가 집에 오면 아이까지 돌보는 수고를 덜어주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먹었어. 오늘은 좀 피곤해서 먼저 잘게.”

지금의 나로서는 어떤 표정으로 그녀와 재민을 대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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