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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맞아요, 승진했어요. 월급은 아마 다음 달부터 오르겠죠.”

아이를 안고 있는 심청하와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짐가방을 보자마자 나는 그 패턴을 단번에 알아챘다.

매번 그랬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심청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곤 했다.

그들은 내가 심청하와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심청하를 데리러 가서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했다.

역시나 윤숙희는 또 나를 비난하며 깎아내렸다.

“그 돈은 자네가 알아서 해결하게. 누나가 동생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야. 그리고 준 돈을 다시 받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지.”

옆에 앉아 있던 심진수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청하랑 아이는 내가 데려가마. 잘 생각하고 우리를 찾아와.”

윤숙희도 서둘러 일어나더니 심청하의 짐을 들고 재빨리 문밖으로 나섰다.

“빨리 갑시다. 이 집은 작고 후져서 해도 안 들어오는데 청하랑 재민이가 어떻게 여기서 살았는지 몰라.”

과거에 이 집을 나에게 팔기 위해 얼마나 치켜세웠는지는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심청하가 아이를 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심청하가 나를 그저 이용만 하고 사랑이란 전혀 없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으니. 게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숨기려 하지 않고 있지 않은.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결혼 후에도 그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한심한 일가족은 거머리처럼 내게 기대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다.

그렇다면 나도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심 씨네 식구들이 떠난 후 나는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재민은 아직 너무 어려서 머리카락을 찾지 못했지만, 휴지통에서 심청하가 재민에게 잘라준 손톱을 발견했다.

나는 손톱을 모으고 재민이 자주 쓰던 젖꼭지 같은 물건도 챙겼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나의 샘플과 함께 병원에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문서를 찾아내고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중개인에게 열쇠를 넘긴 뒤, 나는 회사에 사내 기숙사를 신청했다.

간단히 짐을 챙기다가 문득, 이 집에서 3년 동안 내가 가진 물건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결혼 후에 심청하가 일을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나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다.

나는 모든 월급을 심청하에 주었다. 혹시나 살림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녀 입장에서는 말하기 어려울까 봐 신경 썼다.

그때 나는 혼자 감동하며 그녀가 나를 위해 기꺼이 가정으로 돌아와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이상, 절대 그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나는 출근할 때 입는 정장 두 벌과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 한 벌 외에 나 자신을 위해 사 본 것이 없었다.

업무 관련 서류와 일상적인 세면도구 외에 나의 소지품은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갔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난 뒤, 나는 묵묵히 병원의 결과를 기다렸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픈 건 피할 수 없었다.

재민은 내가 어린 시절에 못 받았던 아버지의 사랑까지 배로 쏟아부으며 키워온 아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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