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소서림은 옆에 서 있던 고운 얼굴의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여자는 웃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곧 양복 입은 사나이가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들어왔다.“열어!”소서림이 손짓을 하자 몇 명의 양복 입은 사나이가 앞에 있는 트렁크를 열었다.순간 하현의 눈앞에 가지런히 줄 세워져 있는 돈뭉치들이 나타났다.트렁크 하나 가득 모두 항성 달러였다.또 한 트렁크에는 미국 달러가 가득 들어 있었고 또 다른 트렁크에는 유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행과 열을 맞춰 숨죽인 듯 놓여 있는 돈뭉치들은 잉크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의 가슴을 흥분시키고 숨 가쁘게 만들었다.심지어 트렁크를 열었던 양복 입은 남자들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그들이 평생 일한다고 해도 절대 만질 수 없는 거액이었기 때문이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돈뭉치에 떨어졌던 시선을 주워 올려 소서림에게 옮겼다.“풍수사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소서림은 트렁크들을 하현 앞에 밀어 놓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이 안에 항성 달러가 들어 있어. 넷째 부인과 화 씨 집안사람들을 구해 줘서 고맙네!”“내가 구했어야 하는데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잘 안 풀리더군.”“자네가 아니었으면 화 씨 집안사람들 몇 명은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네. 나한테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지.”“난 은혜를 갚는 사람이야!”“그러니 이 돈은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게!!소서림은 말을 하면서 항성 달러를 하현 앞에 밀어붙였다.하현이 아까 화소혜가 주신 은행 카드를 받아드는 것을 보고 소서림은 하현이 분명 돈을 노리고 이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하현은 웃으며 손을 뻗어 돈뭉치를 집어 들고 잠시 뒤적거리다가 느럭느럭 말했다.“풍수사님은 역시 항성 제일의 풍수사다우십니다. 이렇게 손이 크시다니!”“누구나 이렇게 많은 돈을 보면 설레고 흥분되겠죠.”“더 설레고 흥분되는 것이 있다네!”소서림은 두 번째 트렁크를 하현 앞에 밀어 놓으며
하현은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며 소서림에게 물었다.“그럼 이 마지막 유로가 가득 든 트렁크는 무슨 의미입니까?”환율로 볼 때 이 트렁크가 가장 금액이 높았기 때문에 뭔가 요구 사항이 더 높을 것이다.“좋아 좋아. 아주 똑똑한 사람이야, 자네는!”소서림의 얼굴에 탄복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의 총명함과 흐름을 간파하는 눈빛에 진정 감탄한 것이었다.그가 손을 흔들자 옆에 있던 양복 입은 남자는 유로 트렁크를 들어 올려 현금 다발이 눈앞에 선명하도록 밀어 놓았다.“자네 피 한 방울로 사악한 기운을 날려버리는 비술과 나와 같이 일하겠다는 약속...”“천만 유로. 내 비술을 팔고 난 평생 당신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겁니까?”소서림의 말에 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하현은 돈에 눈이 먼 싸구려 장사꾼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소서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의 눈에 소서림에 대한 경멸의 빛으로 흘러넘쳤다.“풍수사님은 정말 주판 튕기는 데는 비상하군요.”“너무 잘 튕기는 바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두렵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죠?”하현의 말에 옆에 있던 고운 여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감히 소서림 앞에서 저런 건방진 태도를 보이다니 스승님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이번에 화 씨 집안으로 올 때 너무 성급하게 와서 못 가져온 게 많아.”소서림은 하현의 눈에서 예리하게 빛나는 촉을 발견하지 못한 듯 연신 돈뭉치를 밀어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내가 상황을 빨리 진정시키려고 급하게 와서 이 정도 성의밖에 못 가져온 것이네!”“하지만 오늘 자네를 만난 것은 하늘이 내게 주신 또 다른 기회인 것 같네!”“자네 피 한 방울로 사악한 기운을 다스릴 수 있다면 앞으로 나와 함께 더 높은 풍수의 경지를 익힐 수 있다네. 심지어 대하 풍수 일인자도 넘볼 수 있지.”“나중에 자네가 내 뒤를 이었으면 좋겠어!”“나를 포함한다고 해도 항성의 일인자는 자네 몫이 될 걸세!”
”결국 풍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자신보다 더 강한 풍수사가 한 명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당신의 지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죠!”“그래서 당신은 지금 나를 끌어들인 다음 날 죽여야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결국 당신은 반드시 날 죽일 거예요, 그렇죠?”소서림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하현을 바라만 보았다.하현이 이렇게 깊고 멀리까지 볼 수 있을 줄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소서림은 속마음을 감추고 얼른 얼굴을 추스른 후 미소를 머금었다.그리고 하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하현, 자네 이렇게 악의적으로 추측하면 안 돼. 그건 나에 대한 모욕이야!”“그래, 내가 명성과 돈을 좋아하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네.”“적어도 돈푼깨나 얻자고 살인까지 저지를 무모한 사람은 아니야, 안 그런가?”“자네 아직 한창일 나이에 어떻게 그런 어두운 생각을 하는가?”소서림은 복정 백차를 한 모금 삼키며 교활한 여우 같은 얼굴로 말했다.“내가 정말 그렇게 음흉한 생각을 했다면 뭐하러 자네한테 이런 큰돈을 주겠나? 왜 자네를 만나자고 했겠어?”“하지만 아직 젊은 혈기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면 그건 탓할 순 없네.”소서림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자신이 너그러운 배포의 소유자라는 것과 하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싶은 모양이었다.하현이 이렇게 추측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매우 슬프고 참담한 일이었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소서림을 담담하게 쳐다보았다.“왜 날 당신의 문하로 두려고 하는 겁니까? 속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닙니까?”“내가 문하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직접 살인을 할 필요가 없겠죠.”“당신은 돈으로 나를 속박하고 견제하고 심지어 파멸시킬 수 있는 겁니다!”“당신에게 있어 돈으로 내 입을 막는 것은 임시방편인 거죠.”“어느 날
”그래서요?”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합니다. 사당으로 가서 화풍성 어르신을 살펴봐야겠습니다.”“사람을 구하기만 한다면 화풍성 어르신이 기꺼이 곳간을 열어 주실 테고 그것은 아마도 이것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많을 거라고 믿어요.”하현은 돈다발이 가득 든 트렁크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그대로 돌아섰다.“에이!”하면의 모습을 보고 소서림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시가를 물고 연기를 내뿜었다.“어린놈이, 내가 자기 체면을 세워주는 줄도 모르고 건방지게!”“결국 젊은 놈은 잘난 척만 할 줄 알았지 세상 물정을 모른다니까!”“저놈이 날 무시했어!”“흥! 반드시 혼쭐을 내주고 말 거야!”“사람 위에 사람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순간 소서림의 얼굴에서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은 온데간데없었다.표독한 발톱을 드러낸 사나운 맹수의 얼굴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하현은 다시 뒤로 돌아서서 흥미로운 눈빛으로 소서림을 바라보았다.“풍수사님, 날 어떻게 해 보려는 겁니까?”“어떻게 해 보려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어떤 위치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려는 거야.”소서림은 손짓을 하며 옆에 있던 여자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예니, 하현이 제대로 반성 좀 하게 해 줘.”“제대로 반성하고 피를 흘려 귀신을 쫓는 비술을 우리에게 전수하고 내 문하로 들어오게 만들어.”말을 마친 후 소서림은 하현을 향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서재를 떠났다.하현이 한 발자국 떼려 하자 이예니가 손을 뻗어 하현을 저지했다.“하현, 멈춰.”“여길 떠나려면 풍수사님의 조건을 들어주어야 해.”하현은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이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이예니는 하현을 말을 듣고 피식 웃으며 손바닥 위에 노란색 부적을 보여 주었다.동시에 그녀는 다른 손으로 뒤에 있던 복숭아나무 검을 집어 들며 하현에게 말했다.“풍수와 관상술은 사람을 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일
”퍽퍽!”이예니가 들고 있던 검이 하현의 몸에 박히기도 전에 하현의 발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순간 여자는 바로 공중으로 몸이 날려 뒤에 있던 책장에 부딪혔고 한참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했다.그녀의 손에 있던 복숭아나무 검도 두 동강이 났다.이예니는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은지 연신 두 눈을 부릅뜨고 씩씩거렸다.하현은 쓰려진 사람들을 쳐다도 보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나섰다.그는 사람들 속을 헤치고 곧장 걸어가 풍수판을 손에 쥔 채 뒷짐을 지고 있는 소서림에게 다가갔다.소서림의 제자들이 막을 사이도 없이 하현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그들이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하현이 소서림의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뒤였다.풍수판을 든 소서림은 고개를 살짝 들고 하현을 힐끔 보았다.“풍수사님 죄송합니다.”하현은 소서림에게 다가온 소서림의 제자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그리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 인생 어디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분을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하현의 모습에 소서림은 적잖이 놀랐다.자신의 기술을 전수받은 이예니가 하현 하나 붙잡지 못하고 이렇게 방자하게 소란을 피우며 이렇게 빨리 그의 눈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하현을 보며 소서림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지금 뭐하는 건가?”“별것 아닙니다.”하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그냥 말해 주고 싶어서요. 내가 오기 전에 화풍성 어르신이 나한테 전화를 하셨어요.”“당신이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난 기꺼이 어르신을 구해낼 것입니다.”“그때 당신이 살아서 이 도성을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소서림은 안색이 확 일그러지더니 화를 벌컥 내며 하현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무엄한 놈! 어디 감히 나한테 그런 모욕적인 말을 해! 자네 똑똑히 들어...”“퍽!”소서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소서림의 얼굴에 손바닥을 휘
하현의 얼굴에 짙은 한기가 드리워졌다.마치 천년의 세월 동안 사람의 흔적이 없었던 동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스산하고 오싹한 한기였다.원래 그리 크지 않던 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그러나 다행히 모두 살아남았다.비록 살기를 띠고 총구를 겨누었지만 정확히 겨누지는 않은 모양이었다.그들은 사당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모두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멈춰 서 있었다.하현이 안의 상황을 보려고 발걸음을 떼자 멀지 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하현...”하현은 구석으로 눈길을 돌렸다.화풍성이 구석진 곳에서 낭패한 얼굴로 기대어 있었다.그의 앞에는 총에 맞고 죽은 사람이 있었는데 보아하니 난사당한 것 같았다.하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화풍성은 입에 가득 품고 있던 피를 뱉어내며 입을 열었다.“내가 경솔했어. 그 소서림이란 놈이 문제를 해결해 줄 줄 알고 믿었더니.”“그놈이 술수를 부리다가 상황이 잘못되자 핑계를 대고 먼저 도망쳐 버렸어.”“그러다 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나가지도 못하고 보다시피 이 꼴이 되었다네.”“귀신이 이렇게 만들었다고요?”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들이마시는 공기에 약간 환각 성분이 느껴졌다.그제야 화풍성과 그 일행들이 왜 사당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그뿐만 아니라 귀신들이 아주 사납고 흉악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수가 없었어. 귀신 때문에 서로 죽이려고도 했어.”화풍성은 말을 하면서도 아직 귀신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듯 몸을 떨었다.그 귀신의 힘은 그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화풍성은 지금 눈앞에 하현을 보고도 그가 이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다.“하현, 자네가 날 데리고 이곳에서 도망갈 수만 있다면 오늘부터 난 당신 사람이 되겠네. 이 집도 모두 다 자네 것이네!”화풍성은 분명 하현이 그 귀신을 진압하지 못할 거라 믿는 것
도망쳐 나간 사람은 결국 하현과 맞붙었다.그러나 하현의 몸놀림은 매우 빨랐다.하현의 한 방에 놈은 땅바닥에 널브러져서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하현은 이에 멈추지 않고 발로 놈의 발을 짓밟았다.“빠직!”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악!”처절한 비명이 들려오면서 결국 놈은 정체를 드러내었다.검은 피부에 고약한 체취를 풍기는 남양 복장을 한 사람이었고 생김새는 꼭 원숭이 같은 형상이었다.“빌어먹을! 죽여!”“빌어먹을 놈! 감히 내 일을 방해해!”“어서 놔! 이거 놓으라고!”“안 그러면 내가 당신 가족들 다 죽여 버릴 거야!”이 남양인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패악을 부리고 있었다.“빠지직!”상대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하현은 몸을 움직여 다른 한쪽 발도 밟아 버렸다.“으아!”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남양인은 가시덤불 속에 뒹구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이리저리 몸부림쳤다.하현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밟을 줄은 몰랐다.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던 남양인의 눈빛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휩싸였다.땅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남양인을 보고는 화풍성이 잠시 어리둥절해했다.“원대조?”화풍성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을 듣고 하현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어르신, 이 사람을 아십니까?”“남양파 사람이네. 남양파는 항성에서 주로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인데 왜 우리 화 씨 집에 있는 건가?”남양파는 남양인들이 항성에서 조직한 세력으로 홍성과도 비등비등한 관계에 있었다.게다가 남양인들은 행동이 사악하고 교활해서 홍성도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그래서 남양파는 항성에서 악명이 높았다.대부분의 상류층 사람들도 그들을 만나면 기꺼이 돈을 내주고 몸을 사렸다.남양파에게 미운 털이 박히면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구역질이 나도록 끈질기게 괴롭힘을 당했다.하현은 잠시 원대조를 힐끔 보면서 입을 열었다.“내 추측이 맞다면 이 사람이야
복잡한 심경이 가득한 하현의 눈빛이 화풍성을 향했다.독한 사람!속을 알 수 없는 이 늙은 여우가 독살스러워졌을 때 보이는 행동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총성이 늙은 여우의 독살스러움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적을 향한 화풍성의 도전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원대조를 죽인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가장 중요한 것은 화풍성의 이런 면모가 하현을 매우 흡족하게 했다는 것이다.“잘 하셨습니다!”하현은 손을 들어 화풍성의 어깨를 살며시 건드렸다.“어르신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성의를 보여야죠.”“날이 밝기 전에 사람을 보내 사당을 모두 불태운 뒤 굴착기 한 대로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화풍성은 잠시 머뭇거렸다.아무래도 후환이 두려운 것이었다.그러나 만약 자신이 방금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거나 남양파가 두려워 하현을 팔았더라면 나중에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화풍성은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모든 것은 자네 뜻에 따르겠네.”그는 하현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화풍성은 우선 하인들을 불러 사당을 불지르게 했다.그리고 날이 밝아오자 굴착기 한 대가 도착했다.하현은 불에 탄 사당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가늘게 뜬 뒤 천장 아래를 손을 가리켰다.“여길 파헤쳐요.”비록 이곳은 화 씨 집안에서 가장 중요하고 명당인 곳이어서 화풍성은 가슴이 안타까웠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손을 흔들며 인부들에게 굴착기 작업을 시작하라고 손짓했다.바닥에 깔린 벽돌이 파헤쳐지자 조그마한 입구가 나왔다.그 입구는 점점 더 커지고 깊어져 얼마 지나지 않아 너비가 35미터나 되었다.한 시간쯤 지났을까.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뭔가가 있습니다!”동그란 지하 공간에서 사람과 동물의 썩은 시신들이 나왔고 중앙에는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관이 놓여져 있었다.딱 보아도 묻은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았다.옅은 음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보고 있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