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표정은 당당했고 말투는 한껏 상대를 비아냥거리고 있었다.그 순간 전체를 장악할 것 같던 하수진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그녀는 하현의 오른손을 거칠게 툭 쳐내며 한 걸음 물러섰다.“이봐! 이 사람 손을 끊어버려!”“차칵!”하수진의 지근거리에 서 있던 십여 명의 제복 입은 남녀가 냉담한 표정으로 총을 열고 동시에 하현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그들이 뿜어내는 살기가 하현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이 순간 하현이 피식하고 조그만 웃음소리만 내어도 그들은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길 참인 것 같았다.하현은 공간을 억누르는 살의를 느끼며 침착한 표정을 핸드폰을 꺼내어 메시지를 보냈다.그런 다음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자신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자, 발포해. 날 없앨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구.”“만약 오늘 당신이 날 없앨 수 없다면 난 당신을 없애버리고 말 거야!”“용전 항도 지부 제 1팀장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용문 대구 지회장의 팔을 끊어낼 수 있는지 잘 봐야겠어.”하현은 사방에서 조여드는 살의를 당당하게 되받아쳤다.그는 용문 대구 지회장이라는 신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하지만 때로는 그 신분이 엄청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감히!”하현을 노려보며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진 그녀는 잠시 후 손을 흔들어 총구를 거두게 했다.하현에겐 약간 유감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만약 여기서 감히 하수진이 먼저 선제공격을 한다면 그에게도 큰 싸움을 일으킬 구실이 생기는 셈이었다.하현의 마음을 읽은 듯 하수진은 냉랭하게 입술을 들썩였다.“오빠, 걱정하지 마.”“언젠가 그 팔은 내가 반드시 없애버릴 테니까.”“내가 당신의 죄명을 정한 후에 기꺼이 보여줄게.”“내 죄명을 정한다고? 증거는? 당신들이 어젯밤에 수십 번 반복해서 물어본 질문들에 근거해서?”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이런 허무맹랑한 취조
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하수진의 미묘한 표정을 바라보며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자, 쓸데없는 말은 여기서 그만하지.”“감히 날 감금했으니 그 증거나 보여줘 봐!”하수진은 하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어젯밤 도성 국제공항에서 누군가가 촬영한 거야. 폭탄이 든 선물 상자는 서희진이 미리 준비해 놓은 거야.”“서희진이 폭탄을 터뜨리기 전에 당신이 미리 일어서서 유리를 부수고 몸을 피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어.”“이런 정황으로 볼 때 우리는 당신이 서희진과 함께 폭탄 설치를 모의했다고 의심하고 있어. 이 영상으로 보면 충분히 의심할 만하고 말이야.”“그리고 나중에 도성 경찰서에서 당신을 취조했을 때 최영하가 일부러 당신에게 불리한 이 영상을 삭제한 것도 당신이 이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지.”“모든 사건은 다 하현, 당신 때문이야!”“당신은 이 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해.”하수진은 증거를 제시했고 그 후 하현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수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 정도 증거로 날 단죄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하수진, 당신 머리에 총 맞았어?”하수진이 말했다.“물론 이걸로는 안 되겠지.”“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이 사건의 배후에 미국 최 씨 집안 최규문이 있는 것으로 추정돼.”“그런데 우리가 제일 먼저 최규문을 체포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심문을 했어. 본심을 털어놓는 일종의 최음제도 써 봤어.”“하지만 그 사람과 이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어.”“도성 국제공항에서 테러를 일으킨 건 황금 삼각주 지역의 놈들이었고 그들이 받은 보수는 10억 달러 상당의 칩이었어. 그런데 그 칩에 당신 지문이 있었어.”“이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보면 당신이 미국 최 씨 집안을 죽일 목적으로 이 일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가장 커!”“왜냐하면 희망호에서 당신과 최규문이 충돌했기 때문에 당신은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
하현은 냉엄한 표정으로 일관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용전 항도 지부에 오기 전 일찌감치 그는 만반의 준비를 한 터였다.이제 일의 전말도 대충 알았고 사건의 배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하구천이 있음도 알았다.이렇게 된 마당에 하현이라고 생면부지의 하구천이 목숨을 잃은들 무슨 상관있으랴.제복을 입은 십여 명의 요원들의 안내로 하현은 더 넓은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이곳은 예전의 법정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앞에는 높은 재단이 있었고 양쪽에는 실탄이 장전된 총을 메고 있는 남자들이 제복을 입고 도열해 있었다.홀의 양쪽에는 낡은 구호가 훈장처럼 걸려 있었다.“국가에 충성! 국민에 충성!”“청렴결백한 관청!”“위대한 기사도 정신!”등등...과거의 영욕을 상징하듯 걸려 있는 구호들을 하현은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이 구호들을 참관하러 오거나 공무를 수행하러 온 줄 알 것이다.하현이 구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밖에서는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곧 문이 열리고 냉랭한 표정으로 무장한 용전 사람들이 들어왔다.그리고 그들 뒤편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한 명은 최영하, 또 한 명은 최문성이었다.얼굴빛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최문성의 얼굴엔 선명한 손자국이 나 있었다.잡혀왔을 때 용전 사람들에게 맞은 것이 분명했다.하현의 눈에 그 손자국이 들어온 순간 그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대표님.”홀 안에 있던 하현을 보며 어리둥절해하던 최문성이 미안한 얼굴로 발걸음을 멈추었다.하현은 잠시 최문성을 바라본 뒤 시선을 하수진에게 옮겼다.“최문성이 이 일과 무슨 관련이 있어? 왜 최문성을 잡아온 거야?”하수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을 열었다.“희망호에 그가 나타났잖아. 그럼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을 순 없지. 최 씨 남매를 취조하는 건 절차상 엄연히 필요한 일이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하현이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을 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누
주위에 있던 용전 사람들은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 모르쇠로 일관했다.결국 이 모습을 참지 못한 최영하가 폭발한 것이다.최영하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며 소리쳤다.“그만해! 때리지 말고 놔 줘!”“퍽!최영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천강이 앞으로 한 발짝 나와 최영하의 목을 조르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빌어먹을! 무슨 자격으로 감히 소란을 피워?”“당신의 그 미련함 때문에 우리 화 씨 집안이 수백억이 넘는 손해를 봤다는 거 알아 몰라?”“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화 씨 집안의 개여야 해.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구!”“내 둘째 동생이 당신과 밤을 보내고 싶다고 했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구!”“감히 반항을 해? 죽으려고 환장했어!”무시무시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천강은 손바닥으로 최영하의 뺨을 이리저리 갈겼다.고통스러워하는 최영하의 얼굴에 벌건 손자국이 겹겹이 쌓였다.“그만!”하현은 화천강이 감히 용전에서 바로 손을 쓸 줄은 몰랐다.지금 화천강은 사람의 탈을 쓴 흉악한 괴물 같았다.“퍽!”화천강은 최영하의 뺨을 한 대 더 때린 후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하 씨, 기다려. 내 최 씨 남매 둘을 손본 다음에 너도 손봐 줄 테니까!”“여기가 어딘지 몰라?”“용전 항도 지부야.”“간단히 말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지!”“오늘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때리는지 당신 똑똑히 봐 둬!”“감히 함부로 몸을 움직이다간 내 사람들이 바로 당신을 죽여 버릴 테니까!”말을 하면서 화천강은 경호원들에 손짓했고 경호원 예닐곱 명이 동시에 총을 들고 하현을 가리키며 위협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당당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지, 그만두라고. 또 한 번 최 씨 남매에 손찌검을 하다간 나한테 죽을 줄 알아!”“그만하라고? 당신이 그만하라면 내가 그만둘 것 같아?”“당신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여기는 항성이야. 우리 구역
”퍽!”하현은 아무런 말도 없이 화천강의 목을 조르고 허리춤에 있던 총을 빼앗았다.그러고 나서 화천강의 왼쪽 다리에 총구를 갖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펑 하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화천강의 허벅지가 뚫렸고 장내는 혼돈과 충격으로 가득 찼다.사람들은 모두 이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놀라기는 하수진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이런 곳에서, 이런 상황에서 하현이 감히 아무 거리낌도 없이 화천강을 때리고 총을 쏘다니!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올 만한 짓을 할 수 있는가?하지만 하현의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보고 있던 사람들은 하현을 용전까지 데려왔음에도 그의 무릎을 꿇게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그러나 하현은 마치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이를 보던 최문성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는 항성과 도성에서 아무도 하현을 능가할 사람이 없음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최영하는 말문이 막힌 채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빌어먹을 놈!”잠시 후 고요 속을 헤치며 하민석이 손을 흔들자 주위에 있던 경호원 무리들이 일제히 앞으로 돌진했다.경호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하현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고 살벌한 눈빛으로 하현을 조준하며 언제든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화천강은 비록 온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벌렁벌렁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냉소를 터뜨렸다.“얼빠진 놈! 넌 곧 죽을 거야! 감히 나한테 총구를 들이대! 죽지 못해 환장했군!”“용전 같은 데서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당신 용문 대구 지회장 신분은 고사하고 당장 우리 손에 목이 댕강 날아갈 거야!”화천강이 보기에 용전에서 인질극을 벌인다는 건 무모하고도 무모한 짓이었다.게다가 사람한테 총을 쏴?하현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었다.스
하현은 여전히 담대한 표정으로 총구의 방향을 틀었다.이번에는 화천강의 이마를 겨누었다.총구의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화천강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렸다.어디선가 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엄습해 오는 것 같았다.하현의 총은 이미 발사될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오발이 되었든 의도한 것이든 총알이 나가기만 하면 화천강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었다.“자, 잠깐만.”화천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핏기를 잃어갔다.비록 그는 제멋대로에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그도 사람이었다.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었다.특히 하현처럼 자비 없는 잔인한 사람 앞에서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이 극에 달하는 것이다.지금 심정이 답답하고 초조하기로 화천강만 한 사람이 또 있을까?그도 쩨쩨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고 싶지 않았다.기껏해야 죽기 밖에 더하겠냐 싶어 하현을 안고 함께 죽으려고도 생각했다.하지만 삼엄한 총구 앞에서 그는 깨달았다.과거의 그에게 있어 죽고 사는 것은 그리 두려운 게 아니었다.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사였기 때문에 전혀 두려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생사의 기로가 자신에게 닥치고 보니 그는 누구보다 죽는 것이 두려웠다.생사의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자 화천강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두렵지 않은 척 호기로운 척하려고 해도 도저히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하현은 화천강의 고뇌는 안중에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길을 비켜.”한 무리의 용전 사람들이 언짢은 표정으로 버티고 서서 총구를 들이대며 하현의 앞길을 막았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화천강의 다리에 상처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이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10분 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그가 도대체 용전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잘못 보지 않
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동시에 다 같이 상대를 향해 쏴 보자구. 당신이 날 죽일 수 있는지 아니면 내가 당신들을 죽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구!”“하현,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이나 알아?”하민석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화천강이 어디 보통 신분이야? 그는 용전 항도 지부에서 중요한 인물이야. 그를 죽이면 당신이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그 대가를 다 치르지 못할 거라구!”“그리고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당신이 저지른 행동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정말 감히 우리 용전 사람들 앞에서 화천강을 죽일 셈이야?”“만약 당신이 감히 사람을 죽인다면 당신도 바로 총에 맞아 죽을 거야!”“당신이 감히 죽이지도 못하고 허풍을 떠는 거라면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당신은 도성 국제공항에서 테러를 일으켰다는 혐의도 벗지 못하고 오히려 흉악한 범죄자라는 사실만 더해질 뿐이야.”하수진은 계속된 말로 하현을 설득하려고 했다.“당신 자신은 그렇다 쳐도 당신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야? 그 사람들을 생각해야지.”“예를 들어, 최 씨 남매 말이야. 그들이 지금 당신과 함께 죽길 바라?”하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표정으로 하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됐어. 헛소리 그만해.”“당신이 인정하든 말든 당신들의 용전 항도 지부는 이미 변질되었어.”“이런 곳에서 무슨 자격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 혐의를 제기할 수 있냐구? 그저 사실에 대해 침묵하라?”“게다가 지금 이 장면이 어떻게 하다가 나오게 되었는지 당신 혹시 짐작 가는 게 없어?”“이 사건에서 특별히 중요하지도 않은 화천강과 하민석 두 사람을 나타나게 한 것은 그들이 최 씨 남매에게 거침없이 손찌검을 하게 한 다음 날 자극해서 반격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잖아? 아니야?”“내가 손을 쓰기만 하면 당신들 용전은 날 상대할 구실이 생기는 거니까.”“당신, 하 씨 가문에 있을 때보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자 하수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하수진 일행은 하현이 만반의 계획을 세우고 용전에 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오프로드 자동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순식간에 좌우로 흩어져 장내를 포위했다.총을 메고 허리에 당도를 찬 군인들을 바라보는 하수진 일행의 얼굴엔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았다.강남 병부 사람이라고?그들이 어떻게 항성에 나타났지?항성과 도성은 비록 강남 병부의 방어 지역이기는 했지만 어떻게?일반적으로 강남 병부는 이 두 지역의 외곽에만 일부 인원을 배치한다.하현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병력이 갑자기 용전에 나타나다니 정말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하수진 일행이 충격에 휩싸인 그 순간 오프로드의 조수석이 열렸고 군복을 입은 강남 병부 당도대 통솔자인 당인준이 뛰어내렸다.당인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위엄 있었다.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찬 칼자루를 지그시 눌렀다.용맹스러운 기운이 절로 뿜어져 나왔다.하수진은 안색이 일그러진 채 마른 입술을 떼었다.“당인준, 여긴 무슨 일이야?”“당신들 병부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용전 구역에 들어온 거냐구?”당인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강남 전역은 강남 병사의 방어 구역이야. 항성과 도성 두 도시는 비록 외부 행정 구역에도 속해 있지만 여전히 내 방어 구역 안에 있어. 난 어디든 올 수 있고 갈 수 있어.”“당인준, 당도대 사람들을 데리고 뭐하러 여길 나타난 거냐구? 도대체 왜?”하수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반란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야?”“반란?”당인준은 헛웃음이 났다.“우리 당도대는 대하 9대 최고 군대 중 하나야. 유라시아 일전에서 5대 강국을 휩쓸어 대하에 큰 공을 세웠어.”“그런 내가 반역을? 지금 우리 병부를 무시하는 거야?”“그럼 당신들은 왜 이 많은 사람들을 용전 항도 지부에 데리고 온 거야?”“관할 권한 상으로 당신들 병부는 용전 경내에 들어올 수 없다는 걸 설마 모르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