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허풍 좀 그만 떨어요!”“당신네 내륙인들은 어쩜 허풍이 그리 세! 아주 그냥 허풍이 하늘을 찌르네 찔러! 이제 그만 작작 좀 하라구요!”키가 크고 영리하게 생긴 여자 경찰이 하현에게 면박을 주며 다가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당신이 하현이란 사람입니까?”“화씨 집안 경호원들과 우리 경찰들을 때렸다는 신고가 들어왔어요!”“우리랑 같이 좀 가 보시죠!”하현은 여자 경찰이 하는 말은 무시한 채 차가운 눈빛으로 곽추연을 바라보았다.“부인, 잠깐만요!”“당신들은 내 장모님을 납치한 죄가 있어요.”“그리고 오늘 내 아내를 괴롭힌 죄가 있죠.”“난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요.”“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이 모든 것 열 배 백 배로 다 갚아드릴 테니까.”“난 당신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옥패도 다른 가문에 떨어지는 걸 꼭 지켜볼 거니까요!”하현은 곽추연 한 사람 없애는 것에는 추호의 관심도 없다.이런 사람들에게는 냄비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는 새 지옥의 맛을 보여줘야 한다.“지금 우리 화 씨 가문을 멸망시키겠다는 소리야?”화옥현은 긴말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매섭게 하현을 노려보았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 경찰서에서 어떻게 걸어 나올지 그것부터 걱정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화옥현은 하현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어 하현의 얼굴을 건드렸다.“이것도 인연이라 내가 한 가지 일러두지. 경찰서에 있는 사람들 중 70%는 우리 화 씨 집안사람들이야.”“내가 말했지. 도성에선 우리 집안이 곧 왕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똑똑히 보여줄게.”“지금 당신 속이자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곽추연은 위엄 서린 몸짓으로 다시 상석으로 올라와 앉으며 말했다.“몇 년 동안 내 앞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이 수백 명은 될 거야.”“하지만 결국 모두가 다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용서를
하현은 어깨를 약간 으쓱하며 말했다.“진실은 모두 CCTV에 있어요. 전체를 다 촬영한 영상이 있다구요. 당신들 필요해요?”“전체를 촬영한 영상이라고?”여자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은 우리 도성 경찰이 바보인 줄 알아요? 우리도 진작에 현장에서 확인했어요. CCTV는 이미 누군가의 손에 부서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전체를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는 거예요?”“지금 당신이 말한 그 영상, 가짜죠?”“현재 기술로 동영상을 편집 조작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게다가 난 현장 증인한테도 벌써 증언을 받아두었어요. 모든 증인이 나서서 증거를 제시했어요. 당신이 사람을 때리고 경찰을 때렸다는 일관적인 진술을 확보했죠.”“이제 와서 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인정하지 않겠다면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경찰들 탓은 하지 마세요.”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왜요? 소위 말하는 증인 몇 명 데려다가 나한테 누명 씌우려고 준비 단단히 하셨나 봐요?”“사건의 발단 경위는 조사해 봤어요?”“현장 증인의 진술은 확실한 건가요?”“현장에서 물증이라도 발견되었습니까?”“아무것도 없으면서 어떻게 내가 죄를 저질렀다고 단정 지을 수 있습니까? 당신 무슨 생각인 거예요?”여자 경찰이 발끈하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가르치는 거예요?!”하현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전화 좀 하고 싶어요.”그는 도성 경찰들과 하나하나 이치를 따지고 싶었지만 화옥현이 그에게 말했듯이 경찰서 사람들 70%가 화 씨 집안사람들임을 확인한 것 외에 아무런 수확도 얻을 수 없었다.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런 경찰들과는 어떤 법도 공정하게 집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 사람들이 이렇게 법도 규칙도 없이 움직이니 하현도 그들의 박자에 맞춰 줄 수밖에.남자 경찰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자백이나 하지 무슨 전화는 전화예요!?”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전화
하현은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최문성에게 전화했어요.”“최문성?!”여자 경찰은 눈동자가 멍하니 굳어졌다.도성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기에 그 정도 거물들은 대부분 이름을 알고 있다.그러나 여자 경찰은 얼른 얼굴 표정을 바꾸어 비꼬는 기색을 보였다.“최문성이라면 우리 도성에서 유명한 그 최 씨 집안 그 최문성 말입니까? 항상 공정하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분이죠.”“게다가 우리 경찰서의 고위층인 그야말로 거물이에요.”“그런 사람이 어떻게 당신 같이 사람을 때리는 놈을 도와준다는 거예요?”“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예요?”“힘 있는 사람의 인맥을 이용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될 만한 사람을 거들먹거려야지, 이건 뭐 가당키나 하겠어요?”“아니면 이름만이라도 거론하면 우리가 벌벌 길 줄 알았나 보죠?”남자 경찰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난조로 말했다.남자가 아무 능력도 없이 경찰서 와서 속임수를 쓰려는 수작은 보기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하현은 그들의 냉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되는지 기다려 보든지요.”“그러죠. 당신이 죄를 인정하든 말든 우린 상관없어요. 우린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법에 따라 우리는 당신을 72시간 동안 감금할 수 있어요!”여자 경찰은 심드렁하게 말했다.“우린 먼저 가서 밥이나 먹자구요. 다 먹고 나서 당신과 천천히 다시 실랑이를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앞으로 며칠 동안 당신 잠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 우리가 당신과 아주 천천히 놀아 줄 거니까요. 당신이 즐거울 때까지 끝까지 놀아줄 거예요!”“물론 당신은 최문성이 당신의 구세주가 되어 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요!”여자 경찰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허풍 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2, 3일 가둬두면 저절로 꼬리를 내리고 살려달라 울고불고 매달릴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하현은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고 혼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뿐 아무 말도
최문성은 나무라듯 말했다.“대표님,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밥 먹을 기분이 나세요?”하현은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만약 내가 일부러 여길 들어왔다면 당신 믿겠어?”최문성은 하현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일부러 들어와요? 여길?”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대구에서 도성으로 온 요 며칠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장모님이 납치되셨고 난 여러 차례 습격을 당했어. 아내는 카지노 지분을 빼앗기게 생겼고...”“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밀하고 끈질겨. 세상에 이런 우연은 없어.”“일부러 누군가 치밀하게 계획한 게 아니라면.”하현은 돼지국밥을 먹으며 최문성에게 한 가지 일깨워주었다.“최문성, 당신도 우리 당도대 출신이야. 때론 겉으로 보이는 거 말고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어.”“예를 들어 말이야. 지금 날 여기서 내보내는 게 유리한지?”“아니면 이 기회에 배후에 있는 진범을 찾아내는 게 더 유리한지?”최문성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대표님은 누가 장모님을 납치했는지 이미 알고 계시는 거예요?”“도대체 누가 대표님을 습격했는지 아세요?”하현은 조용조용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추측일 뿐이지만.”“오늘 여기 들어와서 지난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곰곰이 되짚어 봤어. 내 짐작이 맞다면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분명히...”“그 손은 아마도 항성 4대 가문 중 하나일 거야.”“4대 가문 중 유일하게 항성 곽 씨와 항성 이 씨 가문이 나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어.”“하지만 항성 곽 씨 집안은 역량이 그리 크진 않아. 이렇게까지 길게 손을 뻗진 못해.”“그렇다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항성 이 씨 가문이야. 아니면 항성 이 씨 가문의 배후에 있는 큰손이든가.”최문성은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대, 대표님, 그러니까 항
양복을 입은 도성 경찰 십여 명이 스물일곱 여덟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를 에워싸고 있었다.여자는 키가 170 센티미터에 육박하는 늘씬하고 육감적인 몸매에 아주 세련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언뜻 보기로도 보통내기는 아닌 듯했다.그녀의 얼굴은 차가운 바람을 집어삼킨 듯 식어 있었고 화를 내고 있지 않았음에도 당당한 위엄이 묻어났다.그녀의 아우라에 남자들은 똑바로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자세히 이목구비를 뜯어보니 얼굴 생김새가 최문성과 비슷해 보였다.그녀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저절로 공손해졌고 함부로 얼굴을 찌푸리지도 못했다.그녀의 출현으로 사무실 전체가 숨쉬기조차 힘든 팽팽한 긴장감으로 휩싸였다.모든 경찰들은 지금 입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자칫 사소한 말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최문성은 그녀를 보고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모든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든 그녀의 정체는 도성 최 씨 가문, 최영하였다!“뭔가 소란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어떻게 안 와 보겠어?”최영하는 싸늘함이 극에 달한 표정으로 최문성에게 호통쳤다.“다 큰 어른이 해야 할 일이 뭔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뭔지 아직도 분간이 안 되는 거야?”“우리 최 씨 가문이 비록 도성의 최고 위치에 있지만 내가 항상 말했잖아!”“이런 자리일수록 더욱 조심하면서 법을 잘 따라야 한다고!”“누가 너더러 최 씨 가문의 힘을 빌려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랬어? 누가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어기고 비행을 저지르라고 했냐구?”겁에 질린 듯 최문성은 우물쭈물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누나, 나 아무...”“시끄러!”“어제 일은 내가 말도 안 꺼냈어! 지금 경찰서 와서 이런 소란을 피우면서 뭘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거야!?”최영하는 불같은 얼굴로 최문성을 노려보다가 싸늘한 눈빛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당신이 하현, 맞죠?”“당신이 어디서 나타난 사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한다구요?”최영하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지금 그녀는 세부 사항을 캐묻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하현, 당신은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우리 도성은 당신네 내륙과는 달라요. 우리는 왕법 사회라구요!”“경찰서에 들어온다고 함부로 사람을 대할 수도 없고 일부러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없어요.”“그런데 지금 내 동생을 불러서 어떻게 좀 봐 달라고 한 거 아니에요?”“당신은 분명히 내 동생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당신을 도와주길 원하면서 오히려 누군가가 당신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말하는군요!”“날 바보 취급하는 겁니까?”“나이도 젊은 사람이 우리 도성에 와서 법과 규율을 무시하다니. 이제 보니 내륙의 아주 몹쓸 관행들만 가지고 왔군요!”“잘 들어요. 우리 도성에선 그런 수작 안 통해요!”최영하는 현장 수사관 몇 명을 지목하더니 차갑게 말했다.“이 사건은 특히 더 공정하게 처리하세요. 사익을 위해 법을 어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제가 직접 관할하겠어요.”“사건은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면 됩니다!”“누구도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어길 수 없어요!”최영하는 도성 제일가는 당찬 아가씨일 뿐만 아니라 도성 경찰서에서는 이인자이며 실세 중의 실세였다.신분으로 본다면 최문성보다 한 급 위였다.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녀의 사람됨이었다.그녀는 성격이 칼같고 군더더기 없는 사람이었다.절대로 어영부영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말 한마디면 최문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게 할 수도 있다.하지만 하현은 그녀의 어마어마한 위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최영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최문성의 누나라는 이 여자가 모든 수사관들에게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스스로 결연하게 죽을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누구를 그렇게 결연하게 처리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최영하는 최문성을 데리고 나갔고 방금 하현을 심문했던 두 경찰관은 이번
화옥현은 재미 삼아 한 놀이에 흥미가 돋는 듯 마지막 칩을 던지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졌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가볍게 손짓을 했다.맞은편에 서 있던 직원들은 깍듯하게 머리를 숙인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그곳에는 화옥현과 허빈우 둘만 남았다.화옥현은 커피를 마시며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다.“최영하 말이야, 당신이 보냈어?”“내가 정보를 좀 흘렸죠. 소중한 당신 동생이 범죄자를 옹호하려 한다고 최영하한테 살짝 귀띔해 줬어요.”허빈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최영하가 그 소식을 듣고 얼른 현장으로 달려갔구요.”“방금 한바탕 바람이 불었죠. 최문성은 결국 그녀에게 끌려갔구요. 간단히 말해서 하현의 가장 큰 카드가 그의 수중에서 사라졌다는 거예요.”“앞으로 우리가 손만 좀 쓴다면 하 씨 성 가진 그 남자는 절대 나올 수 없을 거예요.”허빈우의 얼굴엔 간특한 미소가 가득했다.자신의 작전이 먹혔다는 생각에 승리의 자신감이 흘러넘쳤다.“당신, 최영하를 이번 일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어.”허빈우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구요? 도련님, 어젯밤에 일어난 일 똑똑히 보셨잖아요.”“셋째 도련님이 하현 그놈에게 얼굴을 맞았어요. 그런데 그놈을 도와준 사람이 최문성이었구요.”“최문성과 하현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지만 최문성은 도성의 일류 가문 출신이기 때문에 그가 하현을 감싸고돌려면 못 할 것도 없는 일이에요.”화옥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완고하게 말했다.“당신이 틀렸어. 최문성이 영향력이 큰 건 사실이지만 경찰서 사람은 아니잖아.”“그는 경찰서의 사건 처리 과정을 몰라. 만약 하현을 강제로 꺼내려고 갖은 수를 썼다면 오히려 난 하현 그놈을 더 쉽게 감옥에 보낼 수 있었어.”“심지어 최문성이 이 일에 끼어들기만 했다면 난 그 여세를 몰아 최문성의 약점까지 잡을 수 있었어. 그 최 씨 집안 도련님이 끝내 별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 편이 될 수밖에 없
화옥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이라는 사람을 공격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게다가 최 씨 집안이라는 거물이 사이에 끼어 있으니 앞으로 다시는 경찰서에 끌고 가 그를 성가시게 하는 일은 만들지 마.”“알겠어요.”“그런데 도련님, 우리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설은아는 상대하기 어렵지 않지만 지금은 하현이라는 예상 밖의 변수가 하나 더 생겼어요.”“어르신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어요. 빨리 카지노의 모든 지분을 되찾지 않으면 상위권 경쟁에서 밀릴 수가 있다구요...”화옥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하현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아예 건드리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잖아.”“가서 홍성 사람들한테 말해. 최희정이 납치된 곳을 슬쩍 흘리라고. 반드시 하현의 귀에 들어가도록 말이야.”“도성이나 항성 같은 곳에서 그가 혼자 힘으로 어떻게 사람을 구해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이튿날 이른 아침.하현은 몇몇 수사관들의 공손한 배웅을 받으며 경찰서 문밖으로 풀려났다.도성의 법에 따라 혐의 없음일 경우 구금은 최대 24시간까지로 제한하고 있다.하지만 수사관들이 아주 점잖게 일을 처리해 주어서 일상적인 질의만 마치고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 후 그들은 아주 공손한 자세로 하현을 내보냈다.물론 하현이 풀려나긴 했지만 아직 사건이 해결된 것은 아닌 관계로 당분간 그는 출국할 수 없었다.하지만 일상의 자유를 제한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항성과 도성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하현이 경찰서 밖으로 나오자 포르쉐 한 대가 반짝이는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고 차창이 유유히 미끄러지더니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하현은 설은아가 혹시나 데리러 왔을까 생각했다가 최문성일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 온 것이다.오늘 경찰서 앞으로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방재인이었다.그녀는 맨얼굴에 아무런 화장도 하지 않아서 약간 초췌해 보였다.아마도 밤새 그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