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옥현은 재미 삼아 한 놀이에 흥미가 돋는 듯 마지막 칩을 던지고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졌다는 것을 확인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가볍게 손짓을 했다.맞은편에 서 있던 직원들은 깍듯하게 머리를 숙인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그곳에는 화옥현과 허빈우 둘만 남았다.화옥현은 커피를 마시며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다.“최영하 말이야, 당신이 보냈어?”“내가 정보를 좀 흘렸죠. 소중한 당신 동생이 범죄자를 옹호하려 한다고 최영하한테 살짝 귀띔해 줬어요.”허빈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최영하가 그 소식을 듣고 얼른 현장으로 달려갔구요.”“방금 한바탕 바람이 불었죠. 최문성은 결국 그녀에게 끌려갔구요. 간단히 말해서 하현의 가장 큰 카드가 그의 수중에서 사라졌다는 거예요.”“앞으로 우리가 손만 좀 쓴다면 하 씨 성 가진 그 남자는 절대 나올 수 없을 거예요.”허빈우의 얼굴엔 간특한 미소가 가득했다.자신의 작전이 먹혔다는 생각에 승리의 자신감이 흘러넘쳤다.“당신, 최영하를 이번 일에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어.”허빈우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구요? 도련님, 어젯밤에 일어난 일 똑똑히 보셨잖아요.”“셋째 도련님이 하현 그놈에게 얼굴을 맞았어요. 그런데 그놈을 도와준 사람이 최문성이었구요.”“최문성과 하현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지만 최문성은 도성의 일류 가문 출신이기 때문에 그가 하현을 감싸고돌려면 못 할 것도 없는 일이에요.”화옥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완고하게 말했다.“당신이 틀렸어. 최문성이 영향력이 큰 건 사실이지만 경찰서 사람은 아니잖아.”“그는 경찰서의 사건 처리 과정을 몰라. 만약 하현을 강제로 꺼내려고 갖은 수를 썼다면 오히려 난 하현 그놈을 더 쉽게 감옥에 보낼 수 있었어.”“심지어 최문성이 이 일에 끼어들기만 했다면 난 그 여세를 몰아 최문성의 약점까지 잡을 수 있었어. 그 최 씨 집안 도련님이 끝내 별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 편이 될 수밖에 없
화옥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이라는 사람을 공격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게다가 최 씨 집안이라는 거물이 사이에 끼어 있으니 앞으로 다시는 경찰서에 끌고 가 그를 성가시게 하는 일은 만들지 마.”“알겠어요.”“그런데 도련님, 우리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설은아는 상대하기 어렵지 않지만 지금은 하현이라는 예상 밖의 변수가 하나 더 생겼어요.”“어르신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어요. 빨리 카지노의 모든 지분을 되찾지 않으면 상위권 경쟁에서 밀릴 수가 있다구요...”화옥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하현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아예 건드리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잖아.”“가서 홍성 사람들한테 말해. 최희정이 납치된 곳을 슬쩍 흘리라고. 반드시 하현의 귀에 들어가도록 말이야.”“도성이나 항성 같은 곳에서 그가 혼자 힘으로 어떻게 사람을 구해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이튿날 이른 아침.하현은 몇몇 수사관들의 공손한 배웅을 받으며 경찰서 문밖으로 풀려났다.도성의 법에 따라 혐의 없음일 경우 구금은 최대 24시간까지로 제한하고 있다.하지만 수사관들이 아주 점잖게 일을 처리해 주어서 일상적인 질의만 마치고 형식적인 절차를 거친 후 그들은 아주 공손한 자세로 하현을 내보냈다.물론 하현이 풀려나긴 했지만 아직 사건이 해결된 것은 아닌 관계로 당분간 그는 출국할 수 없었다.하지만 일상의 자유를 제한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항성과 도성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하현이 경찰서 밖으로 나오자 포르쉐 한 대가 반짝이는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고 차창이 유유히 미끄러지더니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하현은 설은아가 혹시나 데리러 왔을까 생각했다가 최문성일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가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 온 것이다.오늘 경찰서 앞으로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방재인이었다.그녀는 맨얼굴에 아무런 화장도 하지 않아서 약간 초췌해 보였다.아마도 밤새 그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방금 알아봤는데 당분간 오빠는 도성에서 출국할 수 없대요.”“도성과 항성에선 내가 오빠한테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요. 하지만 도성에 친한 친구가 몇 명 있어요. 만약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세요.”“오빠가 내 친구라고 하면 그 친구는 꼭 발 벗고 도와줄 거예요!”말을 하면서 방재인은 들고 있던 가방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방재인의 선의를 생각해 하현도 거절하지 않고 명함을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대충 훑어보았다.명함에 있는 이름을 보았을 때 그의 눈빛이 살짝 움츠려졌다.화소혜....방재인을 도성 국제공항에 데려다준 뒤 하현은 택시를 타고 송산 빌리지로 돌아왔다.“하현, 이제 왔어?”“당신 괜찮아?”밤새 한 숨도 못 잔 설은아가 하현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맞았다.어젯밤 그녀는 하현에게 수십 번도 더 전화를 걸었다.대구에서는 어디든 인맥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서 아무 문제없었는데 도성에서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그녀였다.이로 인해 설은아는 마음 고생을 적잖이 했다.급기야 화옥현에게 수중에 있는 주식을 모두 양도해 버릴까 생각하기도 했다.하지만 하현이 하룻밤만에 경찰서에게 풀려날 줄은 몰랐다.설은아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은아, 이제 푹 쉬어.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다 처리할게.”하현은 설은아를 위로했다.“내 일은 걱정하지 마. 어머니 일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이미 사람들에게 어머니 행방을 알아보게 했으니까 곧 좋은 소식이 올 거야.”설은아는 그동안 진전된 사항을 말하며 하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하현, 우리 그냥 순순히 지분을 양도할까?”“화옥현이 어머니를 풀어주기만 한다면 바로 주식을 양도할까 싶어.”“도성은 어쨌든 그들 집안 터전이니 이곳에서 그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게 우리한테는 아무런 이득이 없어.”비록 하현은 경찰서에서 무사히 풀려났지만 설은아는 계란으로 바위를 깰
”대표님!”마당에는 변백범, 공해원 그리고 대도 경수 세 사람이 이미 밤새 도성으로 달려와 있었다.그들은 온밤을 지새우며 그를 기다린 것이다.그들은 하현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공해원은 뜸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대표님, 저희가 각 방면에 수소문해 본 결과 최 여사님을 납치한 사람이 홍성 쪽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냈어요.”“배후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대충 짚이는 데는 있어요.”말을 하면서 공해원은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비행기 객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객실에는 제법 아리따운 얼굴의 여자가 중년 부인의 옷차림을 한 여자의 팔짱을 낀 채 구석진 자리에 앉는 것이 보였다.중년 부인은 뭔가 의식이 혼미한 듯한 모습이었다.“일주일 전 대구에서 항성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 안이에요.”“그리고 이것은 항성에서 도성으로 가는 유람선이구요...”“이건...”공해원은 역시나 뛰어난 첩보원이었다.일련의 단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맥락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최희정이 실종된 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대구에서 항성으로 움직였고 그 후 유람선으로 도성에 온 것이었다.모든 과정이 1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그 시간에 설은아의 집에서는 대구 안에서만 맴돌며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래서 장모님의 행방을 알아냈어?”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아직은 아니에요. 하지만 대충 어디에 있는지 소재는 파악했어요.”“항성, 남규 거리, 홍성 샛별이.”이 말을 들은 하현은 눈을 가늘게 떴고 잠시 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변백범, 믿을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남겨서 설은아를 경호하게 해.”“그리고 오늘 밤, 우린 항성에 가는 거야.”...“끼익!”밤 10시, 도성의 번호판을 단 도요타 엘파 한 대가 바다 건너 항성 남규 거리에 나타났다.전 세계 가장 유명한 술집 거리인 이곳은 다양한 피부색의 미남 미녀들이 모여 밤새 먹고 마시며 젊음을 불태우는 곳
”가자, 2층에 룸을 예약해 놨어. 몇 잔 마신 후에 홍성 샛별이를 오라고 하지 뭐.”“그녀의 신원이 확인되면 대표님과 백범이 형한테 알리자.”비록 항성 술집 거리에 있는 아가씨를 공해원이 중요시 여길 가치는 없지만 하현의 장모님과 관련된 일이니 작은 일도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대도 경수는 잠시 눈을 굴리며 주위를 유심히 살펴본 후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들에게 눈길을 돌렸다.“우리도 사람을 좀 더 불러올까?”“이따가 무슨 충돌이 생기면 지금 우리 사람으로는 버틸 수 없을 거야.”공해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그렇게 많은 사람을 부를 필요가 있어? 너무 눈에 띄면 오히려 손쓰기 힘들어져.”“게다가 대도 경수 당신도 남원에서는 힘깨나 쓰는 사람이니 열여덟은 못 되도 두서너 명은 문제없지 않아?”“게다가 백범이 형의 얼굴은 항성에서도 꽤 쓸모가 있어. 정말 불공평한 일을 당해도 백범이 형의 힘을 빌면 누가 감히 우릴 건드릴 수 있겠어?”공해원의 말에 대도 경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뼉을 치며 몇 명의 부하들에게 그들과 함께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술집의 룸은 특수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에서는 밖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지만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곳에 앉으면 은밀하게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쾌락을 위해 온 사람이라면 극강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손님, 무얼 도와드릴까요?”공해원과 대도 경수 두 사람이 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모노를 입은 여자 종업원이 문을 밀고 들어와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매혹적인 미소를 날렸다.“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술 중에 가장 좋은 술로 가져와. 당신까지 함께 팔 수 있는 그런 걸로.”공해원은 눈짓을 한 뒤 오른손으로 주머니에서 검은 바탕에 금빛 글씨가 반짝이는 카드를 탁자 위에 내던졌다.“글쎄. 얼마면 당신도 같이 살 수 있는지 모르겠군.”“손님, 농담도 참 잘 하시네요. 여기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을 것 같아.”“아니면 대표님과 백범이 형에게 먼저 인사를 시킬까?”“그게 그리 쉽진 않지?”공해원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그는 정보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 이런 일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경수, 어떻게 할 생각인데?”대도 경수는 눈썹을 살짝 들었다 놓으며 말했다.“술집이 이렇게 크고 경비원은 수십 명에 육박해. 홍성 샛별이 같은 여자가 손님이 술 몇 병 주문했다고 함부로 만나러 오겠어?”“그리고...”“펑!”대도 경수가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발길로 룸의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다.우람한 체격에 양복을 입은 사나이들이 수십 명씩 들이닥쳤고 그들은 하나같이 싸늘한 눈빛을 장착하고 있었다.선두에 선 남자는 흰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칼같이 검고 냉엄한 기운이 흘렀다.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눈앞의 모든 것을 도륙 낼 듯 살기가 넘쳤다.공해원은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났다.“당신들 누구세요?”“무슨 일로 여길 들이닥친 겁니까?”“시작해!”앞장선 남자는 쓸데없는 말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순간 검은 양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자가 손에 쇠파이프를 든 채 일제히 룸으로 달려들었다.“퍽!”공해원은 그 자리에서 발길질을 당해 그대로 벽에 몸을 부딪히고 말았다.“윽!”공해원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공해원!”대도 경수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넣어둔 비수를 꺼내려고 손을 갖다 대었지만 비수를 꺼내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의 허리춤에 발을 얹었다.“퍽퍽!”바로 그 자리에 엎어진 채 몇 대를 더 맞은 대도 경수는 벽 쪽으로 몸이 날아갔고 이마에선 한 줄기 피가 얼굴을 가르며 흘러내렸다.그들을 따라온 부하들도 수십 명의 검은 양복들에게 일방적으로 둘러싸여 매질을 당했다.이 좁은 공간에서 그들은 반격할 기회도 없이 모두 바닥에 나자빠졌다.공해원은 괴로워하며 가슴을 움켜쥐고 일어났
공해원은 그 자리에 물먹은 미역처럼 흐물거리며 쓰러졌다.대도 경수도 그들의 발길질에 벽에 다시 한번 부딪혀 고꾸라졌다.얼굴은 온통 핏자국과 멍으로 뒤덮여 있었다.두 사람은 남원에서는 그래도 힘깨나 쓰는 인물들이었는데 항성에서 이렇게 죽을 쑬 줄은 몰랐다.“말해 봐. 당신들 도대체 누구야?”“보아하니 처음 우리 가게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오자마자 우리 홍성 샛별 누님을 찾고 그래?”“당신들 뭐하러 왔어?”칼자국을 훈장처럼 얼굴에 새긴 남자가 긴 담배를 입에 물며 뿌연 연기를 내뿜었다.그는 공해원의 이마를 발로 지그시 밟으며 말했다.“내가 당신한테 3분 줄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바로 물고기밥이 되게 해 줄 테니까 잘 생각해.”공해원은 입안에 가득한 피를 내뱉으며 말했다.“우린 남원에서 온 변백범 형님 사람들이야!”“홍성 샛별이란 이름이 하도 유명하길래.”“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왔어.”“퍽!”칼자국이 깊이 패인 남자가 또 한 번 발로 걷어찼다.“말대꾸를 해?”“어디서 감히 말대꾸를 하냐고?”“뭐, 변백범의 사람들이라고?”“변백범은 남원 일인자잖아. 만약 그가 여기 온다면 우리 홍성이 친히 접대해 줘야겠군.”“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는 홍성 샛별이를 찾아? 무슨 이유로?”“자, 마지막 기회를 줄게. 여기 온 목적과 제대로 된 신분을 말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모두 저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밥이 될 거야!”공해원은 이를 갈았다.이러다간 오늘 밤 제대로 출사하기도 전에 죽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임수를 완수하기는커녕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뚜둑.”거센 발길질에도 공해원이 입도 뻥긋하지 않자 칼자국이 깊게 패인 남자는 공해원의 손목을 으스러지도록 힘껏 밟았다.“아!”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공해원은 아파서 몸서리를 쳤다.괴로워하는 공해원의 얼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항성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은 몰랐다.
이 광경을 보고 칼자국이 난 남자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분노에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어서 저놈을 쳐!”한동안 별러 왔던 양복 입은 두 남자는 맹렬하게 하현을 향해 달려들었다.양복을 입은 두 남자는 자신들이 합작해 공격을 퍼부으면 하현 같은 사람쯤 바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게다가 두 사람은 누구보다 실력이 출중했고 동작이 재빨라서 변백범이 합세해 맞서더라도 이미 반격하기에 늦을 거라고 예상했다.하현에게 바짝 다가선 두 남자는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가득 떠올렸다.하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왼손을 뻗어 아주 쉽게 양복을 입은 두 사나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그러고 나서 그는 왼손을 한 번 휙 휘둘렀다.“윽!”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멱살이 잡힌 남자가 포물선을 그리며 몸이 날렸고 그 바람에 옆에 있던 또 한 명의 양복 입은 남자와 부딪혀 둘은 서로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울부짖었다.변백범의 몸놀림은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하지만 덤덤한 표정으로 남자들을 향해 뻗은 하현의 손놀림은 정말로 무적의 기세와도 같았다.칼자국이 난 남자는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다.“당신들 도대체 뭐야?”“우리 홍성에 와서 말썽을 피우다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당신들 생각해 봤어?” 칼자국이 난 남자는 항성에서 주먹질로 잔뼈가 굳은 사람이었지만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예전에 과도를 들고 남규 거리에서 수없이 싸움판을 전전했음에도 하현처럼 이렇게 무서운 사람은 처음 보았다.“퍽!”하현은 대답 대신 냉엄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흔들었다.칼자국이 난 남자는 하현의 손을 피해 보려고 했지만 눈앞이 캄캄하고 얼굴이 욱신거려 오기 시작했다.갑자기 날아온 그의 손에 부딪힌 남자는 벽에 부딪혀 한참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했다.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온몸은 부들부들 떨렸다.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