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정오, 하현은 차를 몰고 대구 국제공항 귀빈 통로 입구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는데도 여전히 자신이 기대하던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현은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죄송합니다. 핸드폰이 꺼져있습니다. 다시 걸어주십시오.”하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설은아는 항상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12시에 온다고 했으니 절대 늦지 않을 것이다. 곧 하현은 로비로 가서 설은아가 탄 항공편을 알아보았고, 그 비행기는 한 시간 정도 전에 이미 도착했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현은 매우 놀랐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난 후 또 설유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유아는 전화가 울리자 최대한 빨리 전화를 끊고 주소 하나를 보냈다. 대구회. 하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대구회,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설유아도 그런 곳에는 거의 가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가 이곳의 주소를 보내왔다……곧이어 하현은 엑셀을 밟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30분 후 하현은 대구회 입구에 차를 세웠고, 뒷짐을 진 채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 도착 했을 때, 그는 로비에서 낯익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최희정, 설재석, 설은아, 설유아였다. 이들 외에도 등장해서는 안 될 인물 두 명 더 있었다. 육혜경과 방현진……육혜경은 이때 비위를 맞추는 얼굴이었다. 방현진은 옆에서 담담한 기색에 눈동자는 반짝거리고 있었다. 희정과 재석은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오직 설은아와 설유아 두 사람만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얼굴이었다. 하현은 살짝 멍해졌다. 그는 육혜경이 희정을 대신해서 설은아와 방현진을 선보게 할 거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는 희정이 이렇게 잠시도 머뭇거림 없이 진행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은아의 핸드폰도 끄게 하고, 비행기가 착륙하는 즉시 이렇게 식사자리를
“너 뭐 하러 왔어?!”이때 이른 바 중매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육혜경은 순식간에 얼굴빛이 비할 데 없이 어두워졌다. “너 여기가 어떤 자린지 알아?”“마음대로 들어오다니, 너 네 신분을 생각해 본 적 있어?”“꺼져!”육혜경은 하현에게 아무런 호감이 없었다. 하현은 그의 아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고급차 수십 대를 되팔아 몇 백억을 벌어들인 후 그들 모자에게 한 푼도 나눠주지 않았다. 이 배은망덕한 놈!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없었을 거라는 걸 설마 모르는 건가?육혜경이 보기에 하현이 고급차를 되 팔아서 번 돈은 그들 모자들의 것이어야 했다! 이 놈은 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요 며칠 동안 행방불명 됐었다.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이때 희정은 방현진이 있는 방향을 한 번 쳐다본 후 자리에서 일어나 하현을 막아서며 차갑게 말했다. “하현, 누가 너보고 오라 그랬어?”“내가 분명히 말하는 데 네가 내 4천억을 가지고 날 속인 순간부터!“나에겐 너 같은 사위는 없었어!”“이해했으면 지금 4천억 계좌이체해!”“지금 당장 꺼져!”“내일 내가 사람 시켜서 이혼 합의서 보낼 테니까 빨리 서명해!”“우리 은아가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뺏지마!”“방 도련님은 연경 네 도련님 중 한 분이셔. 네가 그분과 견줄 수 있겠어?”하현은 희정을 담담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혼을 하든 말든 그건 어머니가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 이건 저와 은아 사이의 일이니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요.”“소용이 없다고?”옆에서 육혜경은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이번에 중매인이 돼서 일을 잘 성사시키면 5억 5천만 원의 중매 비용을 받을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최희정보다 더 이 일이 잘 성사되기를 바랬다. 이때 그녀는 하현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배은망덕한 놈, 너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너 잘 들어. 예로부터 결혼이라는 건 부모님
이때 희정은 하현에게 부탁할 마음이 조금 있었다. 하현이 기꺼이 떠나기만 한다면 방현진 이 ‘좋은 사위’를 얻기 위해 심지어 하현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할 수도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위협하고 또 환심을 사려는 희정의 모습을 보며 하현은 시선을 은아에게로 돌렸다. 한 달 넘게 못 본 설은아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전 보다 더 지적으로 느껴졌다. 높은 자리에 올라 수장이 된 것 때문인지 아주 짧은 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한 것 같았다. 하현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설은아는 하현을 쳐다보는 눈빛이 아주 차가웠다. 그녀는 입을 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마치 하현을 무시하는 듯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설유아를 한번 쳐다보았다. 설유아는 그래도 싸다는 표정이었다. 하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십중팔구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대체 누구한테서 얘기를 들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왕주아인가? 아니면 이슬기?육혜경은 은아가 하현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이 순간 엄청난 저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탁’하고 테이블을 내리친 후에야 차가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씨, 너 잘 들어. 방현진 도련님은 진정한 세자 도련님이야!”“너 밖에 나가서 연경 네 도련님이라는 몇 글자가 뭘 뜻하는 지 한 번 알아봐!”“은아는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야. 만약 네가 그의 좋은 일을 망친다면 너는 네가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알겠어?”“나도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빨리 썩 꺼져!”“안 그랬다간 네가 대구회를 막 나설 때 차에 치여 죽을까 무섭다!”말을 마치고 육혜경은 설유아에게로 시선을 향하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혼내며 말했다. “설유아, 너 히죽거리지 마. 네 핸드폰 켜져 있는 걸 보니 분명 네가 하현한테 메시지 보낸 거지?”“네가
하현은 설은아가 아직도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 어떻게 갑자기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현은 자신의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느꼈다. 적어도 오늘 이 선 자리만큼은 어떻게 해서는 계속 이어가게 할 수 없었다. 상대방이 방현진인 건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안 되었다. 자기 아내가 자기 면전에서 다른 남자와 선을 보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희정만이 이런 역겨운 일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좋은 개는 길을 막지 않는다고?”“너 나 보고 꺼지라는 말이야?”육혜경은 하현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세자 아니면 도련님? 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거야? 허세 부리기는!”“내가 볼 때 너 같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체면을 구기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득이 없어!”“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 우리랑 같이 서 있지 않았으면 넌 진작에 경비원들에게 끌려 나갔을 거야!”“너 한번만 더 말썽 피우면 정말 신고할 거야!”육혜경은 팔짱을 끼고 코를 치켜세우고 하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돈도 별로 없으면서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허풍을 떠는 대구 밖의 촌놈을 가장 경멸했다.물론 방현진 같은 연경 사람들은 결코 촌놈이 아니었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꺼져.”육혜경은 화를 냈다. “나보고 꺼지라고!?”“너 잘 들어. 지금 경비원을 부를 테니 얼마나 오래 뻐길 수 있는지 한번 보자!”“하씨, 계속 해봐!”“퍽______”하현은 담담한 기색으로 손등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육혜경은 날아가 뒤편에 있던 책상을 부서뜨렸고 온몸은 멍이 들었다. 그녀는 하현이 정말로 자기 뺨을 때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육혜경은 잠시 후에야 반응을 보이더니 발톱을 치켜 세우며 달려들었다. “하씨, 네가 감히 나를 때려? 2억 원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을 거
하현은 은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막 설명을 하려고 할 때 발코니에서 방현진이 전화를 끊고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하현과 상대방의 시선이 가볍게 충돌하자 공기 중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잘 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상류층 포스를 풍기는 방현진을 보며 하현은 희정이 왜 새 사위를 마음에 들어 하는 지 십분 이해가 갔다. 표면적으로 볼 때 방현진은 하현 보다 건질 것이 절대적으로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 도령, 정말 세상 참 좁네.”방현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쳐다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경매장에서 헤어진 후 하 도령 계속 잘 지냈나?”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주 잘 지냈지. 대구 나가주 H지대에 곧 착공할 거야.” “경매장 얘기를 꺼내다니, 방 도령의 대범함에 고맙게 생각해.”하현의 무뚝뚝한 대꾸에 방현진은 눈가가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그는 곧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오늘 밤 마침 설 아가씨와 선을 보러 왔는데 하 도령이 괜찮다면 같이 앉아서 식사하는 거 어때?”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방 도령, 설마 은아가 내 아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방현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 하 도령 몰랐구나. 나는 평생 무슨 취미는 없는데 다른 사람의 아내를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오늘 아마 하 도령이 이 일을 이뤄줄 거 같아!”“퍽______”하현은 손등으로 방현진의 뺨을 때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이런 요구는 처음 들어보네.”“이 정도면 충분한지 모르겠네?”“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해 줄게!”“건방지네!”“간이 크구나!”“죽으려고 작정을 했네!”하현이 뺨을 내려치는 순간 사방팔방에서 식객들이 갑자기 나타나 하나같이 손에 화기를 들고는 전부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조준했다. 방현진이 명령 한 마디만 내리면 하현은 총에 맞아 죽을 것이 분명했다. 희정 등 사람들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그곳에는 하현, 설은아와 설유아 세 사람만 남았다. 하현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설은아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아야, 결국 내 걱정을 하게 됐네.”말을 하면서 그는 은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부부가 여러 날 만나지 못했으니 조금 티격태격할 만도 했다. 설유아는 이 모습을 보고 순간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두 사람의 손을 떼어 놓으며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뭐 하는 거냐고요! 형부는 아직 제대로 해명을 하지도 않고 우리 언니를 건드리려고 하는 거예요!”“저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말을 하면서 설유아는 서류 한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하현은 한 번 쳐다보고는 눈꺼풀이 계속 뛰었다. 이 사진들을 누가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속 왕주아는 하현의 가슴에 엎드려 있었다. 차 안이었고 상황은 아주 급박했다. 그러나 제멋대로 편집이 된 상황이라 누구나 하현과 왕주아 사이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하현과 왕주아가 왕가에서 손을 잡는 장면, 무대 뒤에서 연극을 보는 장면들이 포착되었다……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절묘하게 사진이 선택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현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아야, 이 사람은 왕주아야. 대구에 있는 내 친구야.”“네가 본 이 사진들은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려고 일부러 찍은 거야.”“나와 주아 사이는 청화자처럼 아주 깨끗해.”“그래? 확실해?”은아의 얼굴에는 맹렬한 기색이 가득 찼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제일 좋아. 그렇지 않으면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해.”“자, 그럼 너 다시 확인시켜줘 봐.”말을 하면서 설은아는 보이스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주아는 내 여자친구예요. 주아가 결혼을 원치 않으면 아무도 주아를 강요할 수 없어요……
하현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대구회 밖에서 도요타 센추리가 방현진 앞으로 달려왔고 왼쪽 뒷문이 천천히 열렸다. 바람이 불자 누렇게 시든 낙엽이 방현진 앞에 떨어졌다. 그는 허리를 굽혀 떨어진 낙엽을 줍더니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문질러 바람에 날려 보냈다. 곧이어 더없이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바람이 멈추면 하현도 죽을 거야.”……대구회 안의 웨이터는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사라졌고, 이렇게 큰 소동 났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거 같았다. 설은아는 막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순간 눈을 뜰 수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을 타이르려고 하던 설유아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설은아는 너무 놀라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순간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떠오르더니 몸에 힘이 풀리고는 똑같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독이 퍼졌나!?” 하현의 눈꺼풀이 계속 뛰었다. 그는 다행이 장북산이 마련해 준 해독제와 금창약을 수년 동안 가지고 다녔다. 이때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개의 알약을 꺼내 설은아와 설유아 두 사람에게 먹였다. “왝______”해독제를 먹이자 두 여자는 동시에 구토를 했고,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떨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하현은 눈꺼풀이 펄쩍펄쩍 뛰었다. 재빨리 두 사람의 맥을 짚자 순간 그의 안색이 더없이 안 좋아졌다. 하현은 비록 의사는 아니었지만 살인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때 그는 은아와 유아에게 먹인 해독제가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작을 더 빨리 일으키게 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이 이 해독제를 먹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특별히 이 해독제의 효능을 뛰어넘는 독약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를 겨냥한 사람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독약을 이렇게 맞춤형으로 사용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띠리링______”하현이 안도의 한숨을 막 내쉬자마자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하현이 전화를 받자 맞은편에서 진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회장님, 큰 일 났습니다.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30분 전에 왕 아가씨가 차량 행렬에서 납치를당했다고 합니다. 그녀를 뒤따르던 보안요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하현은 충격을 받았다. “뭐? 주아 쪽은 용문 자제들이 지키고 있지 않았어?”진주희는 매끄럽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용문 자제들도 다 희생됐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죽은 것으로 볼 때 분명 저항할 수 없는 강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싸울 기회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회장님, 왕 아가씨를 잘 살피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하현은 심호흡을 하더니 냉정을 되찾고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변백범에게 알려서 슬기의 안전을 책임지라고 해!”“용문 사람들은 우리 장인 장모님을 보호하도록 하고.”“또 다른 정예부대를 대구회로 보내.” 차례차례 명령을 하며 하현의 긴장된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는 마치 어디에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상대에게 처음으로 꺼림직한 마음이 들었다. 곧 하현은 문제를 발견했다. 지금 대구 전체에서 위로는 임복원, 심가성, 아래로는 진주희, 조남헌 등 자신의 정체를 전혀 모른다.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해독제를 기반으로 계획을 짜는 것도 불가능 하다.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유일하게 신당류 대구 제 1검, 나카노 다로뿐…… 즉, 이 나카노 다로는 전에 겁에 질려 자신에게 수그리는 척했던 것이다. 심복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만약 정말 이것을 위해 상대방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한 거라면 그가 진정 원하는 건 다른 사람의 목숨이 아닐 것이다. 바로 하현의 목숨일 것이다. 곧이어 하현은 본능적으로 설은아와 설유아 두 사람을 안전한 구석으로 걷어 찼다. 동시에 그는 날렵하게 뒤로 물러났다.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