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변백범이 손에 쥐고 있던 당도를 번개같이 휘두르자 맞은편에서 검을 든 용문 제자의 가슴에 핏물이 튀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것은 링 위에서의 싸움이었다. 소꿉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링 위에서는 승패가 갈리고 생사도 갈렸다. 이로써 왕화천은 5연패를 당했다. 그러나 이때 왕화천의 얼굴엔 패배자의 쓸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그는 변백범을 쳐다보더니 잠시 후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쓱!”키가 2m 가까이 되는 그림자가 천천히 통로를 빠져 나와 링 위로 뛰어 올랐다. “다음, 변백범 대 성준영!”성준영이라는 이 세 글자를 듣고 장내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성준영, 왕화천 휘하의 제1전장이자 용문 대구 지회의 제1용장!이런 인물은 용문 대구 지회 내에서 명성이 아주 높았다. 이전에 그는 줄곧 산속에서 수양을 하다가 오늘에서야 돌아온 것이다.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성준영은 도끼를 들고 링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는 몸집이 크고 온몸이 놀랄만한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인간 모양의 회색 곰처럼 보여 일종의 짐승이 지닌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호랑이와 표범을 찢는 능력이 있고, 몹시 추운 겨울 밤에 혼자 맨손으로 늑대와 싸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용문 대구 지회에서 진주희라는 뛰어난 제자가 뒤를 잇지 않았다면 성준영은 용문 대구 지회에서 1인자가 되었을 것이다. 진주희라고 해도 자신이 온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때 더없이 공포스러운 성준영을 보며 왕화천과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이것은 그들의 가장 큰 카드였다. 게다가 지금 진주희가 부상을 입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왕화천은 성준영에게 기대기만 하면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현은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표정을 드러냈다. 대하 북서쪽의 마오 국민들은 전투 민족이라 불리며, 그 종족의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죽어!”성준영이 갑자기 격렬하게 외치니 울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이 소리는 마치 전설 속 불문의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장내의 모든 잡음은 ‘죽음’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고 진행자는 눈앞이 캄캄해져 피를 한 모금 뿜더니 거의 기절할 뻔했다. 김애선과 그녀 주변에 있던 몇 명의 귀부인들은 놀라 안색이 변했고 심지어 몇몇은 오줌을 쌌다. 진주희와 조남헌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서로 눈동자 속의 충격을 보았다. 그들은 성준영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왕화천은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준영의 오프닝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수록 그의 수하에 능력 있는 부하들이 많고 그가 지회장으로서 가장 적합한 후보라는 것을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현장에 있던 변백범은 이때 기세가 꺾이고 온몸이 떨리면서 정신을 조금 잃었다. “휙______”성준영은 기세가 등등해져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순식간에 내리쳤다. 시체 산과 피 바다 같은 아우라로 앞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이 기세를 몰아 변백범을 죽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챙______”변백범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허리춤에 있던 당도는 지금 이 순간에만 꺼낼 수 있었다. 다만 산을 들어 올려 세상을 압도하는 듯한 성준영을 마주하고 있는 변백범의 칼날은 빠르긴 했지만 다소 쇠약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변백범은 벌써 진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왕화천 쪽의 모든 충신들은 참지 못하고 일어서 박수를 쳤다. “자!”“챙______”칼날이 번뜩이더니 변백범의 칼날은 성준영의 눈썹을 가리켰다. 성준영의 몸놀림은 순간적으로 침체되더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진주희 쪽에서 막 한 숨을 돌린 순간 ‘띵’하는 소리와 함께 변백범의 당도가 갑자기 부러졌다. 이 칼로 변백범이 진 건가?장내는 살짝 멍해졌다. 잠시 후 산사태와 쓰나미가 같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변백범이 아무리 강해도 그는 용문 자제
“하씨, 너 설마 5연승을 한 변백범이 성준영의 도끼에 날아간 걸 모르겠어?“성준영의 강함을 설마 못 본 거야?”“왕화천이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에 오르는 건 벌써 정해진 일이야. 근데 네가 뭘 어떻게 하려고?”“막아보려고?”“네가? 자격이 있어?”김애선과 사람들은 곁눈질로 하현을 쳐다보며 더없이 비아냥거렸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이 놈은 성준영의 강함을 보고도 앞으로 나와 링에 오르려고 했다. 그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무슨 웃기는 소리인가!하현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왕 부인, 우리 내기 할까?”“어?”김애선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뺨을 때려 성준영을 날려 보낼게. 만약 내가 못하면 오늘 내가 여기서 기어나갈게.” “해내면 왕 부인이 여기서 기어 나가는 거야. 어때?”하현은 담담한 기색으로 마치 자신과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너……”김애선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 지 몰랐다. “하현, 네가 능력이 좀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까짓 세발 고양이 솜씨로는 네가 자랑할 수 있는 밑천이 안돼!”“난 주아가 어떻게 너 같은 남자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의문이야.”“조금 재주가 있다고 이렇게 거만을 떨다니, 너 정말 네가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해?”“뺨을 때려서 성준영을 날리겠다고?”“성준영의 공격을 받고도 죽지 않으면 내가 무릎을 꿇고 할아버지라고 부를게.”“네가 나를 구해준 것을 봐서 나도 너에게 부탁하는 셈이야. 어때?”“현실적으로 좀 행동해. 창피한 짓 하지 말고!”김애선은 냉소를 금치 못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녀석이 아침에 무슨 수로 자신을 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눈먼 고양이가 죽은 쥐를 만난 거겠지?하현은 김애선을 무시한 채 왕주아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주아야, 너 내가 뺨을 때려서 날려버릴 수 있을 거 같아?”“물론이지. 전혀 문제 없어.” 왕주아는 하현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하현은 이 말을
왕화천의 시선이 다시 하현에게로 떨어지자 순간 추워졌다. “저 자식보고 꺼지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링에 올라간 거야?”“그가 자격이 있어?”왕화천은 지금 이 시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좋은 일을 망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하현을 아주 싫어했지만 하현이 능력이 조금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용문 안에 있는 링이라는 생각에 왕화천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용문 사람이 아닌 사람은 링 위에 올라설 자격이 없었다. 변백범도 링에 오르기 전에 제자의 신분으로 입문했다. “야야야, 이 자식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우리 용문 대구지회의 링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줄 알아?”“머리에 물 찬 거 아니야? 설마 지금 링에 오르는 게 왕 회장님과 성준영을 도발하는 것과 같다는 걸 모르는 건가?”“망했네. 오늘 사람 하나 죽게 생겼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했는지 모른다. 어디서 나타난 지 모르는 이 녀석은 결말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높은 단에서 진주희와 조남헌은 하현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고 눈동자에는 공손한 빛이 담겨 있었다. 링 아래에 있던 변백범 조차 손을 드리우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두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쏠려 아무도 그들을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믿을 수 없다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하현은 여유롭게 링 위로 올라섰다.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 귀찮아 성준영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이기면 왕화천은 지회장이 되는 거야.”“너______”성준영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자기도 모르게 왕화천을 쳐다보았다. 그가 약간 고개를 끄덕이자 성준영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도끼를 순식간에 세웠다. 강한 살의가 삽시간에 퍼졌고 무도관 전체의 온도가 지금 낮아진 것 같았다. 사방에서 떠들썩하던 소리도 사라졌다. 방금 욕설을 퍼붓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다음 순간 성준영의 회색 곰 같은 형체가 날아가 링 아래로 내동댕이쳐 졌다. 현장은 얼어 붙었다!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이 광경을 보며 자신이 잘 못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뺨 한대!?뺨 한대로 전신 같은 성준영을 날려 버렸단 말인가?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왕화천은 살짝 멍해지더니 오른손이 자기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렸다. 옆에 앉아 있던 청허도장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그의 얼굴에 따끔한 통증이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현이 그에게 뺨을 때려 자신을 날려 보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김애선과 그녀의 절친들은 온몸이 굳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하고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렸다. 결국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현, 확실히 뺨 한 대로 성준영을 날려 버렸다. 진행자조차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짝짝짝______”잠시 후 왕주아는 박수를 치며 흥분한 얼굴로 펄쩍펄쩍 뛰었다. 그녀는 하현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다. 왕주아의 행동이 장내를 흥분시키자 박수 갈채 소리가 전해졌다. 용문 자제들은 강한 자를 존경한다. 하현만큼 강한 강자는 그들로 하여금 존경하게 할 뿐 아니라 마음속에 깊은 두려움을 갖게 했다. 링 위에서 하현은 오른손을 한 번 휘둘러 장내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진정시킨 후 눈을 가늘게 뜨고 왕화천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왕 부회장님, 죄송하지만 당신의 꿈은 허사가 될 겁니다.”왕화천은 떨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하현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하씨, 너는 우리 용문 사람도 아니잖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링에 참가한 거야!?”“네가 우리 용문 대구 지회 링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너 죽고 싶구나!”“얘들아! 같이 가서 그를 죽여!”말을 하면서 왕화천은 재빨리 메시지 몇 개를 보냈다. 그리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전에는 하현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 나는 게 있었다. “하현, 하 회장?”“설마 조 회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던 바로 그 하현?”“세상에! 조남헌은 조 회장 아들 아니야? 진주희는 조 회장의 수제자잖아?”“그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지지할 수 있겠어?”“그런데 그가 지회장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깍듯하게 대할 수 있겠어?”“용문주가 진작에 용문 대구 지회장을 내정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설마 이 분 아니야!?”“그럼 전의 링은 웃음거리가 되는 거 아니야!?”“아니. 아니야. 그런 농담 하지마. 적어도 우리는 지금 성준영 같은 인물이 하 회장의 손바닥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여러 가지 의론이 있었다. 왕화천 혈통의 용문 자제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현이 링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장면과 진주희와 조남헌이 깍듯이 대하는 장면은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했는가?아무리 바보라도 눈 앞의 이 사람이 지회장이라는 것은 알 것이다. 그가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진주희와 조남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그는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김애선은 온몸이 뻣뻣해지더니 가냘픈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하현과 접촉했던 모든 과정을 회상했고 순간 하현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는 태도로 왕화천을 상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화천 만큼 강하다는 것은 그의 눈엔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아름다운 귀부인들은 하나같이 똥을 씹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다른 능력은 없었지만, 평소 누가 상위자이고 누가 미끼인지 한눈에 분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현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바닥에 엎드려 있던 성준영은 힘겹게 일어나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하현이야? 조 회장님을 죽이
하현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성진호를 죽인 것은 도대체 누가 한 짓이야? 당시 현장에 용문 자제들이 많이 있었으니 나에게 정의를 세워 줄 수 있을 거 같은데.”“이런 일들은 내가 원래 너희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하지만 기왕 용문주가 나를 용문 대구 지회장의 임무를 맡겼으니.”“나는 용문 자제들에게 한 두 가지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현재 진주희와 조남헌 이 둘은 이미 모든 경위를 알고 있어. 내 설명을 믿고 지금 내 휘하에 투입되었어.”“왕 부회장 혈통만 남았어.”“내가 대구에 와서 상석에 앉은 이상 그럼 누구도 내 걸음을 막지 못해.”“오늘 밤 나 하현은 여기에 있을 테니 불복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링 위에 올라와봐. 누구든 이길 수 있으면 지회장 자리를 넘겨 줄게!”하현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위기였다. 장내는 냉기가 돌았다. 하현이 정말 용문주가 내정한 용문 지회장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신분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설령 왕화천이라고 해도 거역할 자격은 없지 않겠는가?게다가 하현은 여유로워 보였지만 말 속에는 살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일부 왕화천의 충신들은 하현의 눈빛에 휩쓸려 순간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없이 자신 없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출입구가 언제 닫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 왕화천은 냉랭한 기색이었고 이때 천천히 단상 위에 일어서서 하현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씨, 쓸데없는 소리가 왜 이렇게 많아?”“만약 네 말대로 용문주가 너를 지회장으로 밀어줬다면 그 어르신이 너에게 그 지회장 영패를 줬겠지?”“그 영패는 어디 있어? 네가 꺼낼 수 있으면 내가 너를 회장으로 모실게!”왕화천 주변의 충신들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맞아, 네가 지회장 영패를 꺼낼 수 있다면 네가 지회장이야!”“만약 못 꺼내면 네가 한 말은 전
하현의 말할 수 없는 비아냥거림은 왕화천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원래 지회장 영패는 오늘의 큰 비장의 무기였지만 하현이 이 영상을 내보냈을 때 소위 비장의 무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지회장 자리는 어쨌든 주먹으로 만회해야 한다. 왕화천의 안색이 안 좋아지자 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왕 부회장님, 요즘 저희 둘이 접전이 많았네요. 지회장 자리를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이렇게 지회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니 달갑지 않으실 겁니다.”“아니면 이렇게 합시다. 제가 기회를 드릴 테니 당신의 비장의 카드를 다 꺼내세요.”“당신이 나를 놀라게 할 수만 있다면 지회장 자리를 내 줄게요!”하현은 흥이 넘쳤고 여유로웠다. 마치 왕화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왕화천은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안색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그리고는 냉랭하게 말했다. “자, 기왕 하 회장이 이렇게 선의를 가지고 있으니 왕 아무개는 받아들여야지!”“하지만 너는 후회하게 될 거야!”“내 뒤에 있는 힘 때문에 너는 절대 대항할 수 없을 거야!”말을 마치자 마자 왕화천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려고 했다. “참, 진주희.”하현은 마치 갑자기 한 가지 일이 생각난 듯 했다. “왕 부회장님이 전화를 하기 전에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먼저 드리도록 해.”진주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용문 제자가 선물 상자를 들고 왕화천에게 건네주었다. 왕화천은 자기도 모르게 선물 상자를 열었고 곧이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구로타 타로!원래 진주희를 상대하기 위해 사용했던 구로타 타로는 지금 머리 하나만 남아 선물 상자에 담겨 있었고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화천은 자기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가까스로 몸을 바로 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며 설명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진주희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말했다.
관공서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문밖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주택건설부 수장 주광록이었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그의 친동생이자 경찰서 수장인 주향무가 함께하고 있었다.두 사람이 함께 모이니 더욱 살벌하고 근엄한 분위기가 풍겼다.“주 부장님...”황택호와 이홍파는 모두 깜짝 놀라 용수철처럼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오늘 무슨 일로 이렇게 두 분이 함께 오셨습니까?”“무슨 일이 있으시면 부하들한테 전화 한 통만 하시면 되는데 뭐 하러 이렇게 직접 오셨어요?!”주광록은 두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곧바로 하현에게 달려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하 대사님! 이렇게 또 뵙네요!”“덕으로 원한을 대신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이 주광록이 눈이 멀었어요!”“제발 대인배의 도량으로 너그러이 봐주시고 더 이상 그 일은 따지지 말아 주십시오.”“제발 저를 좀 살펴봐 주세요!”주광록은 겁먹은 표정으로 아우디 차량 열쇠를 꺼냈다.혹시라도 하현이 거절할까 봐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주 부장님, 제가 도와드리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문제는 저의 증명서가 가짜라고, 다 무효라고 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불법 풍수 관상 및 무면허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만약 제가 저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부장님한테 뭐라고 말한다면 저들이 주장하는 죄목의 증거가 눈앞에 존재하는 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요?”“그러면 원죄에 죄가 더해져서 더 무거운 벌을 받겠죠. 저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개자식!”하현의 말을 듣고 주광록의 눈빛이 차갑게 돌변했다.순간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관청 직원으로서 국민을 위해 힘쓰기는커녕 권력을 믿고 함부로 남을 괴롭히고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우다니!이런 무법천지를 봤나!주광록의 얼굴에는 분노로 차올랐다.“오늘 당신들은
한바탕 자신의 부하에게 화풀이를 한 황택호의 시선이 이 사건의 장본인인 이홍파에게 떨어졌다.이홍파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흐린 낯빛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하현이 데릴사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어떻게 데릴사위 주변에 이렇게 대단한 거물들이 몰려들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있는가?이건 정상이 아니다!“두 분, 머리가 좀 어지럽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온몸에선 약간 오한도 느껴지시죠?”이때 하현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고 눈동자에는 냉소가 가득 차 있었다.지금껏 있었던 일은 하현에게 있어 재미난 연극 한 편이나 마찬가지였다.“이제야 두려움을 알았다니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차갑게 비꼬는 하현의 말에 이홍파는 참을 수가 없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그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하현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개자식! 너 지금 뭐라고 했어?”“부자 몇 명 안다고 지금 유세 떠는 거야?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잘 들어!”“당신은 불법으로 풍수 관상을 봐주다가 이제 우리 손에 넘어왔어. 천왕 노자가 와도 당신을 구해 줄 수 없을 거야!”“내가 말하는 거 똑똑히 기억해!”“지금 당장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게 좋을 거야! 나중에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없어!”이홍파는 자신의 뒤에 있는 그분이 금정에서는 안 될 것이 없는 무적의 존재라는 것을 확신했다.하현의 주변에 있는 부자들이 얼핏 무서워 보이지만 자신의 뒤에 있는 그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하현을 몰아붙이는 조직들과 그가 이미 한배를 탔다는 것이다.그래서 이제 와 기세를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현은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내가 불법으로 풍수 관상을 봤는지, 내 증명서들이 가짜인지 아닌지, 당신들 보고도 전혀 아무 생각이 없는 거야?”이홍파와 황택호는 이 말을 듣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불안한 기색이 눈동자를 스쳐 지나갔다.순간 하현의 증명서가 완벽했다는 사실
”개자식! 이게 무슨 태도야?!”“어?!”하현의 모습을 보고 이홍파는 분노가 치밀었다.“내가 당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홍파가 손을 쓰려고 했을 때 취조실 바깥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빠르게 노크를 했고 곧이어 잔뜩 긴장한 얼굴의 형사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황택호는 침착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이홍파의 행동을 제지하며 옆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이 자식의 동료들이 입을 열었어?”부하 형사가 빠르게 말했다.“반장님, 이놈의 공범들의 신원을 모두 다 파악했습니다!”“잘 됐군. 요즘 놈들은 관뚜껑을 보기 전까진 정신을 못 차리거든...”황택호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일부로 하현을 힐끔 쳐다보며 보이지 않는 압박을 주었다.그러나 하현은 그의 눈빛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그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눈동자에는 미동이 없었다.“말해 봐! 그 패거리들이 어떤 신분이야? 하 씨 이놈이 잘 이해하도록 보고해 봐!”“반장님, 그게...”부하 형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뒤치다꺼리를 해 주는 사람은 바로 신사 상인 연합회 수장이라고 합니다. 수하에 몇십 명의 건달들을 거느리고 있고요...”황택호는 부하의 말을 듣고 희미하게 눈을 흘기며 냉랭하게 말했다.“신사 상인 연합회? 그 사람들이 이런 막노동을 할 줄은 몰랐군. 보아하니 엄도훈도 요즘 할 일이 없는 모양이야...”비록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황택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신사 상인 연합회가 꽤나 힘이 있는 집단이었지만 그가 관리하고 상대하는 조직이었다.엄도훈같이 똑똑한 사람이 이런 조무래기들 때문에 자신을 귀찮게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자 황택호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래, 조사한 걸 계속 말해 봐. 무슨 죄가 있는지, 하현과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지!”“그건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쓸모없는 것들!”황택호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다른 놈들의 신분은?”“놈들?”이
하현 일행은 모두 공무 차량에 탑승했다.심지어 핸드폰도 모두 압수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되었다.“웅! 웅! 웅!”차가 중간쯤 도착했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 위에는 낯선 전화번호가 표시되었다.황택호는 불안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맞은편에서 정중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저기 하 대사님 맞으시죠? 저는 일전에...”황택호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 대사는 무슨 하 대사! 하현은 무면허로 관상을 보고 불법적으로 영업을 해서 우리한테 잡혔어!”“내가 좋은 마음으로 충고하는데, 앞으로 이 사기꾼 찾지 마!”“곧 감옥에 처박힐 테니까!”상대는 잠시 조용히 듣고 있다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주광록인데, 당신은 누구야?”“내가 누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상대방의 말투에 황택호는 화가 났다.“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니면 당신도 같이 잡아넣을 거야! 알았어?”“알았냐고?!”말을 마친 후 황택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었다....공무 차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정 경찰서 제6지서에 도착했다.취조실 안은 에어컨이 강하게 켜져 있어 방 전체가 싸늘했다.하현 앞에는 싸구려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커피라고 하기엔 너무나 구역질 나는 냄새가 풍겼다.그의 맞은편에는 황택호와 이홍파 두 사람이 다리를 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노려보며 건방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이름!”“성별!”“직업!”“돈이 어디서 나서 이 풍수관을 산 거야?!”“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였어?”“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냔 말이야?!”“어서 말해!”두 사람은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칼날 같은 말투로 하현을 몰아붙였다.분명 그들은 심문 경험이 매우 풍부한 것 같았다.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여 하현을 단죄하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
하현에게 서류로 얼굴을 두드려 맞은 듯한 이홍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화를 내고 싶어도 더 이상 핑곗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때 나박하는 이러다 둘 사이에 충돌이라도 일어날까 봐 서둘러 억지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와 화해를 시도했다.“이 팀장님! 오해예요! 오늘 오해하셔서 이렇게 헛걸음을 하셨네요!”“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만났는데 헛걸음만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제가 점심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오해로 시작되었지만 모두 좋게 끝나야지요!”“오해? 뭐가 오해야? 내가 당신을 오해한 모양이군!”이홍파는 나박하를 발로 걷어차며 악랄하게 입을 열었다.“당신 함부로 입 놀리지 마! 우리한테 밥을 사네 마네 이런 식으로 뇌물을 주려고 시도한다면 공무집행 방해로 당장 고발할 거야!”“감옥에 당장 처넣을 거라고!”잘못도 없는 사람한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려다 실패로 돌아가자 엄한 사람한테 적반하장격으로 화풀이를 하는 이홍파를 보고 나박하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나박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 때 하현이 급히 손짓을 하며 그를 말렸다.그러고 나서 하현은 웃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자, 두 분. 우리 집복당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아셨죠? 난 자격증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조사가 끝났고 이번에는 당신들이 해명할 차례입니다.”“어서 설명해 보시죠!”이홍파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아무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지금까지 함부로 횡포를 부리던 그의 성정으로 봤을 때 어떻게 평범한 시민한테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해명을 할 수가 있겠는가?그건 너무나 창피스러운 일이었다!이때 한쪽에 서 있던 황택호가 갑자기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이런 조그만 풍수관이 모든 증명서를 다 갖추고 있다고?”“흥! 난 믿지 않아!”“설마 가짜 증명서를 만든 건 아니겠지?”“어디 한번 보자고!”말을 마치자마자 황택호는 이홍파
”불법적인 일?”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던 손님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형사님, 뭔가 잘못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맞아요. 이곳 집복당은 오랫동안 운영되어 오던 풍수관이에요. 이웃 중 많은 사람들이 이곳 단골이고요!”“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결코 함부로 부당한 요금을 받지 않았다는 거예요!”“그런데 불법적인 일이라니요? 수상한 일이라니요?”“맞아요. 집복당은 왕조 시대 때부터 있었는데 어떻게 절차상 미비한 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설마 두 분 머리를 다치신 건 아닙니까? 컨디션이 좀 안 좋으신 건 아닌지요?”이웃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이홍파와 황택호는 이 모습을 보고 흰자위를 가득 드러내며 버럭 했다.“우리는 관청을 대신해서 법을 집행하고 있어요.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까?”“이 집복당은 사이비 집단입니다!”“그걸 왜 모르는 거예요?”이홍파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주위를 향해 소리쳤다.“어서 물러들 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도 다 잡아서 조사할 겁니다!”“잘못이 있든 어떻든, 그것은 당신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풍수관이란 곳은 원래 민간이 하는 작은 소일거리 장사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곳을 믿고 있어요!”“왜냐하면 우린 여기서 많은 일들을 해결했거든요. 우리 딸이 결혼했을 때도 여기서 날을 잡아 결혼했어요. 그래서 지금 아주 화목하게 잘 삽니다!”“특히 하 대사는 우리들의 구세주입니다!”“경찰서와 주택건설부 사람들이 쓸데없이 여기 와서 조사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폐유 처리 업체나 두부 공장 공정이나 조사하세요! 괜히 우리 하 대사 귀찮게 하지 말고요!”“점점 더 많은 손님들과 이웃들이 몰려들었다.합동 단속반이 집복당 간판을 철거하고 집복당을 봉쇄한다고 하니 다들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합동 단속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닥쳐! 모두 닥쳐요!”황택호는 일순 안색이 험상궂게 변했고 손을 세차게 흔들
하현 일행이 집복당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십여 대의 관용차가 서 있었다.이 차들은 경찰서 소속인 것도 있었고 주택건설부 소속인 것도 있었고 동사무소 소속인 것도 있었다.말하자면 정부 차원의 합동 집행부가 다 모인 것이다.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집복당을 둘러싸고 저마다 삿대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채굴기를 몰고 와서 위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대머리 남자였고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뚱뚱했다.키가 큰 사람은 주택건설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 새겨진 명패에는 이홍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뚱뚱한 사람은 경찰서의 황택호 형사였다.두 사람은 관청 동기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함께 출동해 각종 불법 건축물과 불법 매장을 소탕했다.오늘 그들의 목표는 바로 집복당이었다.고명원은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하들을 시켜 집복당 문을 막도록 하여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합동 단속반은 기세가 등등해서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한다면 내부 인테리어 전부를 깡그리 부술 태세였다.이렇게 되면 일이 더 커진다.고명원은 연합 단속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직 하현의 집복당이 잘못되어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왕인걸도 와 있었다.그는 집복당에 와서 아첨이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왕인걸과 고명원이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얼른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박하가 합동 단속반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이거 이홍파 팀장님과 황택호 형사님 아닙니까?”“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이 함께 우리 집복당엘 다 오셨습니까?”“이 누추한 곳에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시니 영광입니다.”말을 하면서 나박하
”전부?”이 말을 듣고 강우금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꼴에 자기가 재벌 2세인 줄 아나?”“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너무 몰라!”“전부는 고사하고 그의 전 재산을 다 부어도 소남가인 옷 한 벌 못 살 거야. 아니, 양말 한 켤레라도 산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어!”금정의 스타트업 사장이나 재벌 2세들도 소남가인 브랜드의 옷을 함부로 사지 못한다.그런데 한낱 한량에 불가한 하현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비싼 옷을 산단 말인가?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시선을 집중했다.소남가인 직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황보정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곧 황보정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모두 골랐다.수십 개의 옷 가방들이 순식간에 매장에 늘어섰다.이게 다 얼마인가?몇십억은 되어 보였다!“삑!”하현은 별일 아닌 듯 단번에 카드를 긁었다.그러자 승인되었다는 소리가 나면서 영수증이 좌르륵 쏟아져 나왔다.“어머?!”순간 소남가인 매장 안팎에선 수군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보정에게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하현이 저 많은 옷을 한 번에 결제하다니!그야말로 거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이럴 수 없어! 절대로!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강우금과 그녀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뒤늦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그녀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그들은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방금까지 그들은 입만 열면 하현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노점상에나 가서 옷을 사라고 쫓아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들의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역시 가장 난처해하는 사람은 강우금이었다.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강우금의 말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옷도 안 사고 민폐만 끼치다니!덜떨어진 저런 사람이 이런 가게를 드나들 수는 없다!정말 재수없어!황보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강우금, 당신 같은 점장이 어디 있어요?”“정말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할 거예요?”“우리가 정말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식으로?”강우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보정,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난 금정 쇼핑몰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연봉이 일억이 넘는다고요!”“흥! 그런데 당신은 뭐죠? 하얗게 세탁한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입고 와서 무슨 부자 행세를 하고 그래요?”“그리고 정말로 옷을 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여긴 당신이 살 수 있는 옷이 없어요!”말을 하면서 강우금은 바깥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1킬로미터 정도 나가면 많은 노점상들이 있을 거예요!”“거기 가면 한 벌에 몇 천 원짜리가 널렸을 거라고요!”“그래도 당신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그래도 집복당 아가씨니만큼 이월된 재고 상품들 중 쓸 만한 것을 권해 줄 수는 있어요.”“하지만 문제는 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월 상품이라고 해도 값이란 게 있는 건데 당신이 살 수 있겠어요?”하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뿌리치며 물건을 카운터에 올렸다.그리고 나서 황보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른 데 가서 사자고!”황보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하현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강우금은 이 광경을 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그들이 만진 물건들과 지나간 자리 얼른 소독하고 방향제 뿌려!”“저런 싸구려 인간들이 우리 가게를 더렵히게 놔두면 안 되지!”“뭐라고?”“다른 가게에 가서 산다고? 흥! 아무리 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