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김애선과 그녀 주변의 여자 친구들을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희들 헛소리는 다 끝난 거야?”“말 다 했으면 길 비켜줘.”왕주아는 하현이 지금 뭘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김애선이 하현에게 눈짓을 하며 속삭였다. “하 도령, 너 소란 피우지 마. 이런 자리는 네가 끼어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네가 내 비밀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게 또 뭐 어때서?”“이런 비밀로는 왕씨 어르신을 위협할 수 없어!”“그가 상석에 앉는 걸 막으려는 건 헛된 꿈이야!”김애선은 왕화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회장 자리에 대해 그는 반드시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그는 반드시 그가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이다. 어떤 사람도 감히 그를 막거나 그의 일을 망칠 수 없을 것이다. 죽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왕화천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내를 죽이면서 까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런 잔인한 사람은 다른 것에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지금 눈을 가늘게 뜨고 링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쳐다본 후에야 하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내가 말했으니 그는 절대 앉지 못해.”“왜냐면 그 자리는 내 자리거든.”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왕주아는 살짝 어리둥절해져 순간 반응을 하지 못했다. 김애선도 멍하니 있다가 잠시 후 비웃으며 말했다. “하 도령, 네가 능력이 좀 있다는 건 인정해.”“하지만 용문 지회장 자리는 네가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네가 용문주를 이길 수 있겠어?”“용문주도 못 이기면서 너 같은 외지인이 상석에 앉을 수 있겠어?”“순진하긴!”지금 김애선은 하현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전에 그녀는 하현이 신비롭기 그지없고 실력도 강하고 젊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링 위.변백범이 손에 쥐고 있던 당도를 번개같이 휘두르자 맞은편에서 검을 든 용문 제자의 가슴에 핏물이 튀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것은 링 위에서의 싸움이었다. 소꿉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링 위에서는 승패가 갈리고 생사도 갈렸다. 이로써 왕화천은 5연패를 당했다. 그러나 이때 왕화천의 얼굴엔 패배자의 쓸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흥미로운 빛을 띠었다. 그는 변백범을 쳐다보더니 잠시 후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쓱!”키가 2m 가까이 되는 그림자가 천천히 통로를 빠져 나와 링 위로 뛰어 올랐다. “다음, 변백범 대 성준영!”성준영이라는 이 세 글자를 듣고 장내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성준영, 왕화천 휘하의 제1전장이자 용문 대구 지회의 제1용장!이런 인물은 용문 대구 지회 내에서 명성이 아주 높았다. 이전에 그는 줄곧 산속에서 수양을 하다가 오늘에서야 돌아온 것이다. 진행자의 소개와 함께 성준영은 도끼를 들고 링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는 몸집이 크고 온몸이 놀랄만한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인간 모양의 회색 곰처럼 보여 일종의 짐승이 지닌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호랑이와 표범을 찢는 능력이 있고, 몹시 추운 겨울 밤에 혼자 맨손으로 늑대와 싸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용문 대구 지회에서 진주희라는 뛰어난 제자가 뒤를 잇지 않았다면 성준영은 용문 대구 지회에서 1인자가 되었을 것이다. 진주희라고 해도 자신이 온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때 더없이 공포스러운 성준영을 보며 왕화천과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이것은 그들의 가장 큰 카드였다. 게다가 지금 진주희가 부상을 입어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왕화천은 성준영에게 기대기만 하면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현은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표정을 드러냈다. 대하 북서쪽의 마오 국민들은 전투 민족이라 불리며, 그 종족의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죽어!”성준영이 갑자기 격렬하게 외치니 울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이 소리는 마치 전설 속 불문의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장내의 모든 잡음은 ‘죽음’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고 진행자는 눈앞이 캄캄해져 피를 한 모금 뿜더니 거의 기절할 뻔했다. 김애선과 그녀 주변에 있던 몇 명의 귀부인들은 놀라 안색이 변했고 심지어 몇몇은 오줌을 쌌다. 진주희와 조남헌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서로 눈동자 속의 충격을 보았다. 그들은 성준영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왕화천은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준영의 오프닝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수록 그의 수하에 능력 있는 부하들이 많고 그가 지회장으로서 가장 적합한 후보라는 것을 더욱 부각시켜 주었다. 현장에 있던 변백범은 이때 기세가 꺾이고 온몸이 떨리면서 정신을 조금 잃었다. “휙______”성준영은 기세가 등등해져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순식간에 내리쳤다. 시체 산과 피 바다 같은 아우라로 앞을 향해 달려 들었다. 이 기세를 몰아 변백범을 죽이려는 것이 분명했다. “챙______”변백범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허리춤에 있던 당도는 지금 이 순간에만 꺼낼 수 있었다. 다만 산을 들어 올려 세상을 압도하는 듯한 성준영을 마주하고 있는 변백범의 칼날은 빠르긴 했지만 다소 쇠약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변백범은 벌써 진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왕화천 쪽의 모든 충신들은 참지 못하고 일어서 박수를 쳤다. “자!”“챙______”칼날이 번뜩이더니 변백범의 칼날은 성준영의 눈썹을 가리켰다. 성준영의 몸놀림은 순간적으로 침체되더니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진주희 쪽에서 막 한 숨을 돌린 순간 ‘띵’하는 소리와 함께 변백범의 당도가 갑자기 부러졌다. 이 칼로 변백범이 진 건가?장내는 살짝 멍해졌다. 잠시 후 산사태와 쓰나미가 같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변백범이 아무리 강해도 그는 용문 자제
“하씨, 너 설마 5연승을 한 변백범이 성준영의 도끼에 날아간 걸 모르겠어?“성준영의 강함을 설마 못 본 거야?”“왕화천이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에 오르는 건 벌써 정해진 일이야. 근데 네가 뭘 어떻게 하려고?”“막아보려고?”“네가? 자격이 있어?”김애선과 사람들은 곁눈질로 하현을 쳐다보며 더없이 비아냥거렸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이 놈은 성준영의 강함을 보고도 앞으로 나와 링에 오르려고 했다. 그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무슨 웃기는 소리인가!하현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왕 부인, 우리 내기 할까?”“어?”김애선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뺨을 때려 성준영을 날려 보낼게. 만약 내가 못하면 오늘 내가 여기서 기어나갈게.” “해내면 왕 부인이 여기서 기어 나가는 거야. 어때?”하현은 담담한 기색으로 마치 자신과 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너……”김애선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 지 몰랐다. “하현, 네가 능력이 좀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까짓 세발 고양이 솜씨로는 네가 자랑할 수 있는 밑천이 안돼!”“난 주아가 어떻게 너 같은 남자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의문이야.”“조금 재주가 있다고 이렇게 거만을 떨다니, 너 정말 네가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해?”“뺨을 때려서 성준영을 날리겠다고?”“성준영의 공격을 받고도 죽지 않으면 내가 무릎을 꿇고 할아버지라고 부를게.”“네가 나를 구해준 것을 봐서 나도 너에게 부탁하는 셈이야. 어때?”“현실적으로 좀 행동해. 창피한 짓 하지 말고!”김애선은 냉소를 금치 못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녀석이 아침에 무슨 수로 자신을 구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눈먼 고양이가 죽은 쥐를 만난 거겠지?하현은 김애선을 무시한 채 왕주아를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 “주아야, 너 내가 뺨을 때려서 날려버릴 수 있을 거 같아?”“물론이지. 전혀 문제 없어.” 왕주아는 하현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하현은 이 말을
왕화천의 시선이 다시 하현에게로 떨어지자 순간 추워졌다. “저 자식보고 꺼지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링에 올라간 거야?”“그가 자격이 있어?”왕화천은 지금 이 시기에 누군가가 자신의 좋은 일을 망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하현을 아주 싫어했지만 하현이 능력이 조금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용문 안에 있는 링이라는 생각에 왕화천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용문 사람이 아닌 사람은 링 위에 올라설 자격이 없었다. 변백범도 링에 오르기 전에 제자의 신분으로 입문했다. “야야야, 이 자식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우리 용문 대구지회의 링이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줄 알아?”“머리에 물 찬 거 아니야? 설마 지금 링에 오르는 게 왕 회장님과 성준영을 도발하는 것과 같다는 걸 모르는 건가?”“망했네. 오늘 사람 하나 죽게 생겼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탄식을 했는지 모른다. 어디서 나타난 지 모르는 이 녀석은 결말이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높은 단에서 진주희와 조남헌은 하현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일어섰고 눈동자에는 공손한 빛이 담겨 있었다. 링 아래에 있던 변백범 조차 손을 드리우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모두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쏠려 아무도 그들을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 믿을 수 없다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하현은 여유롭게 링 위로 올라섰다.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 귀찮아 성준영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를 이기면 왕화천은 지회장이 되는 거야.”“너______”성준영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자기도 모르게 왕화천을 쳐다보았다. 그가 약간 고개를 끄덕이자 성준영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도끼를 순식간에 세웠다. 강한 살의가 삽시간에 퍼졌고 무도관 전체의 온도가 지금 낮아진 것 같았다. 사방에서 떠들썩하던 소리도 사라졌다. 방금 욕설을 퍼붓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다음 순간 성준영의 회색 곰 같은 형체가 날아가 링 아래로 내동댕이쳐 졌다. 현장은 얼어 붙었다!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이 광경을 보며 자신이 잘 못 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뺨 한대!?뺨 한대로 전신 같은 성준영을 날려 버렸단 말인가?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왕화천은 살짝 멍해지더니 오른손이 자기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렸다. 옆에 앉아 있던 청허도장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그의 얼굴에 따끔한 통증이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하현이 그에게 뺨을 때려 자신을 날려 보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김애선과 그녀의 절친들은 온몸이 굳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하고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렸다. 결국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현, 확실히 뺨 한 대로 성준영을 날려 버렸다. 진행자조차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짝짝짝______”잠시 후 왕주아는 박수를 치며 흥분한 얼굴로 펄쩍펄쩍 뛰었다. 그녀는 하현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대단할 줄은 몰랐다. 왕주아의 행동이 장내를 흥분시키자 박수 갈채 소리가 전해졌다. 용문 자제들은 강한 자를 존경한다. 하현만큼 강한 강자는 그들로 하여금 존경하게 할 뿐 아니라 마음속에 깊은 두려움을 갖게 했다. 링 위에서 하현은 오른손을 한 번 휘둘러 장내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진정시킨 후 눈을 가늘게 뜨고 왕화천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왕 부회장님, 죄송하지만 당신의 꿈은 허사가 될 겁니다.”왕화천은 떨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하현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하씨, 너는 우리 용문 사람도 아니잖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링에 참가한 거야!?”“네가 우리 용문 대구 지회 링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너 죽고 싶구나!”“얘들아! 같이 가서 그를 죽여!”말을 하면서 왕화천은 재빨리 메시지 몇 개를 보냈다. 그리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전에는 하현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 나는 게 있었다. “하현, 하 회장?”“설마 조 회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던 바로 그 하현?”“세상에! 조남헌은 조 회장 아들 아니야? 진주희는 조 회장의 수제자잖아?”“그들이 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지지할 수 있겠어?”“그런데 그가 지회장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람들이 이렇게 깍듯하게 대할 수 있겠어?”“용문주가 진작에 용문 대구 지회장을 내정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설마 이 분 아니야!?”“그럼 전의 링은 웃음거리가 되는 거 아니야!?”“아니. 아니야. 그런 농담 하지마. 적어도 우리는 지금 성준영 같은 인물이 하 회장의 손바닥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잖아……”여러 가지 의론이 있었다. 왕화천 혈통의 용문 자제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현이 링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장면과 진주희와 조남헌이 깍듯이 대하는 장면은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했는가?아무리 바보라도 눈 앞의 이 사람이 지회장이라는 것은 알 것이다. 그가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진주희와 조남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그는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김애선은 온몸이 뻣뻣해지더니 가냘픈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하현과 접촉했던 모든 과정을 회상했고 순간 하현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하는 태도로 왕화천을 상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화천 만큼 강하다는 것은 그의 눈엔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아름다운 귀부인들은 하나같이 똥을 씹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다른 능력은 없었지만, 평소 누가 상위자이고 누가 미끼인지 한눈에 분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하현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때 바닥에 엎드려 있던 성준영은 힘겹게 일어나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하현이야? 조 회장님을 죽이
하현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성진호를 죽인 것은 도대체 누가 한 짓이야? 당시 현장에 용문 자제들이 많이 있었으니 나에게 정의를 세워 줄 수 있을 거 같은데.”“이런 일들은 내가 원래 너희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하지만 기왕 용문주가 나를 용문 대구 지회장의 임무를 맡겼으니.”“나는 용문 자제들에게 한 두 가지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현재 진주희와 조남헌 이 둘은 이미 모든 경위를 알고 있어. 내 설명을 믿고 지금 내 휘하에 투입되었어.”“왕 부회장 혈통만 남았어.”“내가 대구에 와서 상석에 앉은 이상 그럼 누구도 내 걸음을 막지 못해.”“오늘 밤 나 하현은 여기에 있을 테니 불복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링 위에 올라와봐. 누구든 이길 수 있으면 지회장 자리를 넘겨 줄게!”하현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분위기였다. 장내는 냉기가 돌았다. 하현이 정말 용문주가 내정한 용문 지회장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신분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설령 왕화천이라고 해도 거역할 자격은 없지 않겠는가?게다가 하현은 여유로워 보였지만 말 속에는 살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일부 왕화천의 충신들은 하현의 눈빛에 휩쓸려 순간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없이 자신 없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어떤 사람들은 출입구가 언제 닫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늘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 왕화천은 냉랭한 기색이었고 이때 천천히 단상 위에 일어서서 하현을 응시하며 말했다. “하씨, 쓸데없는 소리가 왜 이렇게 많아?”“만약 네 말대로 용문주가 너를 지회장으로 밀어줬다면 그 어르신이 너에게 그 지회장 영패를 줬겠지?”“그 영패는 어디 있어? 네가 꺼낼 수 있으면 내가 너를 회장으로 모실게!”왕화천 주변의 충신들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맞아, 네가 지회장 영패를 꺼낼 수 있다면 네가 지회장이야!”“만약 못 꺼내면 네가 한 말은 전
하현은 형나운의 말을 듣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의 상황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습니다. 음기가 몸에 들어온 것뿐입니다.”“그 뿌리만 뽑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예요.”“음기가 몸에 들어왔다고?”형홍익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난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지금까지 음험한 곳에 간 적도 없어.”“게다가 내 집 마당도 모두 풍수지리사의 손을 거쳐서 특별히 설계된 거야. 애초에 지하 공사할 때도 음기가 배어들 만한 음험한 곳은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음기가 들어왔을 수가 있어?”“난 여기서 수십 년을 산 사람이야.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어!”하현은 돌리지 않고 사실대로 솔직히 말했다.“이 음기가 이 댁에 들어온 것은 최근의 일이기 때문이죠!”“최근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고?”형나운은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아니, 하 씨! 우리 집안이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인 줄 알아?”“음기라는 것은 보통 더럽고 음험한 곳에서 생겨나는 거야.”“우리 집처럼 깨끗한 저택에 어떻게 그런 몹쓸 기운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거야?!”“게다가 그 음기가 최근에 들어온 거라고?”“왜? 그 음기의 근원이 할아버지라고 말하지 그래?”하현은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음기의 근원은 어르신이 아닙니다. 그게 언제쯤이라고 한다면, 말하기 좀 그렇지만...”형나운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할아버지의 상황이 지금 너무 안 좋아서 우리가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러 다니는 입장이긴 하지만 우리가 바보는 아니야!”“할아버지의 몸속에 음기가 뿌리내렸다면 지금 우리 할아버지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야?”형나운은 얼굴 가득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오른 데다 간민효에 대한 원망도 불쑥 치솟았다.이런 헛소리나 하는 사기꾼을 감히 형 씨 가문에 데려오다니!형 씨 가문이 아무리 은둔의 집안이라고 해도 무슨 개나 고양이나 다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허무맹랑한 말로 사람을 치료해
형나운은 형홍익의 면전에서 그날 밤의 일을 한 번 더 언급하고는 하현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했다구요.”“그때 할아버지가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벌써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예요.”“당신 같은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떠벌리겠지!”“난 당신 같은 사람 상대 안 해!”말을 하는 형나운의 눈동자에는 경멸의 빛이 가득했다.하현은 이를 듣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날 밤 내가 벤츠 차량의 철골 골격을 들지 않았더라면 이 어르신은 차량 밑에 깔렸을 거야.”형나운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개자식! 감히 우리 할아버지 목숨을 두고 뭐라고 하는 거야?”“당신이 한 말, 여러 사람 앞에서 책임질 수 있어?”“당신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 할아버지는 이틀 동안 입원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형나운은 얼굴 가득 한기를 드러내며 하현을 쏘아보았다.그날 밤 자신의 할아버지가 하현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형나운, 하현은 무술을 익힌 사람이야. 그의 힘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세. 그가 손을 쓴 이상 분명 자신이 있었을 거야.”간민효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손을 쓴 것은 호의로 한 것이지 돈 몇 푼 때문에 한 것이 아닐 거야. 하현은 인격적으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가 보장할 수 있어.”“게다가 그는 풍수지리에도 아주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어.”“신사 상인 연합회의 엄도훈이 하마터면 불운하게 죽을 뻔했는데 그를 구한 사람도 하현이고.”“바로 그 때문에 내가 오늘 이 자리에 하현을 데리고 온 거야.”“돈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마! 하현이 필요하다면 내가 언제든지 그에게 백억이든 천억이든 줄 수 있어!”“비행기에서 날 구해 줬기 때문이야!”간민효가 하현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하현의 인품을 인정해서이
그런데 간민효가 이 노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그의 뒤에 서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뭔가 언짢은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지금 이런 상태라면 아마도 이 노인은 머지 않아 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노인은 자신이 별로 가망이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 옅은 미소를 보였다.“민효야. 나 때문에 슬퍼할 필요없어. 생사는 운명이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난 진작에 내 몸이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참, 너 며칠 전에 비행기 안에서 피격당했다면서?”“그건 괜찮아?”“나한테 백 년 산삼이 몇 뿌리 있으니 가져가서 기운을 차리는데 써.”노인은 간민효에게 애정이 깊은 듯했다.간민효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삼촌,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괜찮아요.”말을 하면서 간민효는 하현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삼촌, 소개할게요. 이분은 하현이에요. 바로 이 사람이 비행기 안에서 날 구해 줬어요.”“하현, 이분은 내 삼촌, 형홍익 어르신이야.”“형 씨 가문은 금정 은둔가 중 하나이며 조상 중에는 어느 황실을 모신 적도 있어.”“형 씨 가문은 조용하지만 금정의 정상급 왕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집안이야.”“오늘 내가 당신을 여기 데리고 온 건 당신이 이분의 증상을 좀 도와줄 수 있는지 어떤지 좀 봐줬으면 해서였어.”간민효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하현, 당신이 비행기 안에서 우리 민효를 구했단 말이야?”형홍익은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마워. 우리 민효의 친구라면 앞으로 우리 형 씨 가문의 친구가 되는 거야.”하현은 서둘러 손을 뻗어 형홍익의 손을 잡았다.“어르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민효한테 소중한 사람은 저한테도 소중한 사람입니다.”잠시 후 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형혹익의 양미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하현의 눈에는 형홍익의
”붕!”15분 후 빨간 페라리 한 대가 설 씨 집안 앞에 멈추었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갔고 간민효의 아름다운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세련된 선글라스를 낀 그녀의 얼굴은 고혹적이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었다.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보였다.“하현! 여기!”하현은 이전에 간민효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지금 햇빛 아래서 빛나는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에 흠칫 놀랐다.설은아가 절세미인이긴 했지만 간민효도 절대 설은아에게 밀리는 얼굴은 아니었다.둘 다 절세미인에 한 떨기 아리따운 꽃이었지만 각기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 누가 더 예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정상적인 남자라면 절대 둘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단지 딱 한마디 할 수 있을 것이다.둘 다!하현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올라탔다.차 안은 그윽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힐끔힐끔 보이는 간민효의 긴 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설은아에게 인사 안 해도 될까?”간민효는 설은아와 친한 사이라도 되는 양 싱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하현은 인사는 무슨 인사냐는 듯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설은아가 질투라도 하면 어쩌려는 것인지?!하현의 맑은 눈빛과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고 간민효는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지금까지 자신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고 뜨거운 눈빛을 보내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었다.금정은 말할 것도 없고 연경 사람들조차 자신의 외모에 군침을 흘리기 일쑤였다.하지만 하현이 이렇게 냉정하고 침착한 얼굴을 보이다니!정말 이 남자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번이 그들의 두 번째 만남이었기 때문에 간민효도 별다른 말 없이 선글라스를 낀 채 액셀을 밟았다.30분 후 페라리는 고즈넉한 호숫가 주택지에 들어섰다.이곳은 넓은 부지를
이런 생각이 스치자 하현은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두며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파고들지 않기로 결정했다.그리고 싱긋 웃으며 돌아서서 설은아의 방에서 나갔다.하현의 행동을 보고 설은아는 내심 못마땅한 듯 조용히 콧방귀를 뀌었다.남자가 너무 마음이 약한 거 아닌가 하고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던 것이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김 씨 가문의 일을 좀 더 조사해 보려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나가기도 전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하현은 핸드폰을 힐끔 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하현,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하지 않으면 연락 안 할 셈이었어?”전화기 맞은편에서 간민효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간민효?”하현은 간민효가 이런 이른 시간에 자신에게 전화할 줄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해했다.“아직도 간민효야? 그냥 성 떼고 이름 불러!”간민효의 목소리에는 살짝 비트는 어조가 실려 있었다.“아, 민효.”하현는 간민효의 성화에 응하며 말했다.“아침 일찍부터 웬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하현은 간민효 같은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아침 일찍 전화할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아침 일찍 차라도 한잔하자고 전화할 리 만무했다.“사실 공항에서부터 당신한테 관심이 많았어.”“그래서 사람을 보내 당신을 좀 살펴보라고 했지.”간민효는 자신의 행동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어쨌든 누군가가 날 상대하려고 당신을 보낸 거라면 나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미리 말하지 않은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 사과할게.”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해해.”기내에서 C4 총기도 발견되었으니 간민효 입장에선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고 찝찝한 일이었을 것이다.간민효가 사람을 보내 자신을 미행하고 조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래서 요 며칠 동안 당신이 한 일을 난 거의 다 알고 있어.”“그래서?”하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시선을 올리며 물었다.“친한 어른이 한 분 계신데 한 달 전부터
설은아는 김나나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김나나, 난 네 오빠랑 일면식도 없고 얼굴도 몰라.”“그러니까 그만해.”김나나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우리 오빠는 훌륭한 사람이야. 우리 김 씨 가문 어른인 김준영의 심복이기도 해!”“금정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우리 오빠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인 줄 알아?”“난 네가 내 절친이니까 너한테 기회를 주려던 것뿐이야. 우리 오빠 같은 격조 높은 인물을 너한테 주는 거야!”“남들한텐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고!”김나나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설은아, 너 절대 지금의 행복에 젖어 살지 마!”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베개에 기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김나나, 이제 그만해. 나 내일 할 일 있어서 그만 자야겠어.”설은아는 김나나와 더 이상 이런 얘기로 왈가왈부하기 싫은 것이 분명했다.“그래, 잘 자.”화면 속 김나나는 빙긋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하지만 설은아, 난 우리 오빠한테 큰소리쳤단 말이야!”“너와 전 남편이 3년 동안 함께 했지만 한 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그러니 너 절대 엉뚱한 짓 하지 마!”“그렇지 않으면 우리 오빠가 네 전 남편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말을 마친 김나나는 ‘뚝’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설은아는 언짢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이 입을 열었다.“김나나는 뭐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 왜 이렇게 거만한 거야?”설은아는 하현이 묻는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김 씨 가문의 출신인 김나나는 예전에 대구에 있을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어. 그때 그런대로 사이가 괜찮았어.”“하현, 나나가 좀 거침없는 성격이라 그런 말을 한 거야. 그러니 나나가 한 말, 마음에 두지 마.”“그리고 나나가 자기 오빠에 대해 한 말도 신경 쓰지 마. 난 전혀 본 적도 없는 사람이야!”말을 마친 설은아는 문득 자신이 왜 하현에게 이
하현은 그 여자를 알지 못해서 살짝 의아해하며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설은아는 금정에 온 이후로 아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어찌 보면 사업상 많은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어머, 설은아. 지금 너 뒤에 있는 사람이 설마 그 소문으로만 듣던 네 남편은 아니겠지?”전화기 건너편에 있던 여자는 하현의 모습을 눈치채고는 갑자기 싫은 티를 팍팍 내었다.“그런 남자를 아직도 방에 들이는 거야?”설은아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김나나,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와 재결합한다고.”“설은아! 너 정말 진심이야? 아니면 농담하는 거야?”화면 속 김나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 남자 정말 아니잖아! 그건 금정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야! 그렇게 어렵게 이혼했는데 왜 갑자기 또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겠다는 거야?”“무엇보다 너 내가 한 말 잊었어?”“널 우리 오빠한테 소개해 주려고 한다는 말 잊었냐고?!”“우리 오빠는 김 씨 가문 거물이야!”“너와 우리 오빠가 함께 한다면 완전히 강대강의 연합이라고!”말을 하는 김나나의 얼굴에는 꼭 두 사람을 연결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설은아가 금정 김 씨 가문 사람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이 여자는 설은아를 김 씨 가문 사람과 연결시켜주려고 했다.자신에게 짓밟힌 김탁우를 떠올리자 하현은 이 모든 것이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하지만 잠시 후 설은아가 하는 말을 듣고 하현의 미간이 다시 한번 살짝 일그러졌다.“내 기억이 맞다면 네 오빠가 김탁우 맞지?”“어? 내가 듣기로는 그가 항성에서 누군가와 이미 약혼했다던데.”“어떤 것들이 그딴 쓸데없는 말을 퍼뜨리는 거야?”김나나는 하현을 향해 시위라도 벌이는 양 소리를 높였다.“설은아, 너 소식이 좀 늦구나!”“우리 오빠가 항성에 있을 때 남영 여자가 우리 오빠한테 첫눈에 반한 건 사실이야.”“하지만 어떤 남자가 달려
왕인걸의 말은 이의진을 탓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다.순간 이의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왕 사장님이 안 물어보셨잖아요?”“물어봤으면 진작에 알려줬을 거예요.”“그리고 하현과 밥을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씀만 하세요. 내가 왕 사장님을 도와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죠!”말을 마치며 이의진은 자신이 하현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듯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그러나 이의진은 정말로 자신이 있었다.자신의 오빠가 최희정을 압박하기만 한다면 데릴사위인 하현이 절대 최희정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이의진의 말에 왕인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좋아, 좋아! 내일 내 사무실로 와.”이의진은 눈에는 점점 더 환한 빛으로 가득했다.자신의 앞날에 환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다.이 씨 가족들도 모두 감격에 겨운 얼굴로 서 있었다.마음속으로는 역시 이의진이 인재는 인재라며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고 훗날 자신들의 뒤를 확실히 봐줄 인물이라고까지 여겼다.이러니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밖에!“이의진,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의진을 앞에 두고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고 그의 한마디에 그녀의 환상 같은 꿈이 일순 깨져버렸다.“왕인걸, 당신도 성인인데 왜 그렇게 쉽게 속는 거야? 옳고 그름이 분간이 안 되는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 알겠어!”왕인걸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하현을 배웅했고 이어 몸을 돌려 이의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이의진은 낭패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 상황은 전적으로 그녀가 자초한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몇 마디 하지 않았더라면 하현이 그녀의 면전에서 체면을 뭉개는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체면이 뭉개지는 하현의 말에도 이 관계를 이용하여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려는
그러나 왕인걸은 이 씨 가족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무시했다.그 대신 왕인걸은 재빨리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히 입을 열었다.“하현!”하현?!왕인걸의 목소리는 존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대도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의진의 부모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이의진의 집안 친척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뭐야, 이게?하현?하 씨 성을 가진 데릴사위가 정말 이렇게나 능력이 있다는 얘긴가?이의진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왕 사장님, 지금 누굴 보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은 데릴사위일 뿐이에요!”왕인걸은 이의진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굽신거리며 말했다.“하현, 아! 형수님도 와 계셨군요!”“이곳에서 두 분을 만나다니 제 생의 영광입니다!”“정말 오늘은 대운이 열린 날인가 봐요!”“만나서 영광입니다.”“너무 반가워요!”왕인걸은 흥분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왕인걸과 하현이 아는 사이란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왕인걸이 반가워서 잔뜩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이 씨 가족들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이의진은 입을 떡 벌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하현이 자신의 직속상관, 그것도 왕인걸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설은아는 왕인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의상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왕 사장님, 안녕하세요.”그러나 하현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왕인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아내를 탐하려고 했던 자에게 한 손만 부러뜨리고 놓아준 것만 해도 하현은 많이 봐준 셈이었다.“하현, 지난번엔 내가 많이 잘못했어. 두 사람이 돌아간 뒤 간민효한테 아주 호되게 혼났어!”“나도 내 잘못을 깊이 깨닫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하현의 냉담한 표정에서 초조함을 느낀 왕인걸은 마음이 떨려 허리까지 구부리며 안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