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아무렇게나 핸드폰 메시지를 보내고 난 후 왕주아의 안전벨트를 풀었다. 왕주아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하현, 뭐 하려고?”“너 너무 운전을 느리게 해서 내가 하려고.”하현은 직접 너가 왕주아 뒤에 딱 맞게 앉았다. 왕주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고 마치 하현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숨결이 닿아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이 장면은 왕주아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컸지만 한 남자와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하현은 이때 순간 팔에 안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은 무시한 채 왕주아에게 조수석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안전벨트를 당겼다. “쾅_____”페라리 488이 스포츠 모드로 바뀌자 엔진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앞을 향해 질주했다. 뒤따라오던 도요타는 뭔가를 눈치 채고는 숨기지 않고 살벌하게 달려들었다. 하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핸드폰의 내비게이션을 켜 지도를 몇 번 훑어보았다. 핸들을 빠르게 돌리자 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곡선으로 드리프트 하더니 바다가 보이는 산길을 향해 휘몰아쳤다. 두 대의 난폭한 차는 멈출 줄 모르고 페라리를 따라갔다. 하지만 난폭한 차는 오프로드 차량이라 성능은 좋았지만 속도는 페라리보다 못해 한 순간에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이 사람들 왕씨 집안 사람이야?”하현은 차를 몰면서 호기심에 입을 열었다. “아니. 정용 사람들 같아.”왕주아는 안색이 굳어졌다. “하현, 정용은 미친 놈이야. 나랑 연관된 일이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지금 네가 가려고 해도 이미 늦었어!”“유일한 방법은 신고하는 거야!”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겨우 보잘것없는 새우 몇 마리 가지고 그럴 필요 없어!”“내가 곧 그들을 해결해 줄게.”하현의 담담한 말에 왕주아는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흔적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담담한 기상은 상위자에게서만 볼
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쳐다보더니 머리가 바닷물에 잠기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다시 시동을 걸고 왔던 길을 향해 달렸다. 왕주아는 한참 후에야 반응을 했다. “하현, 그들은 죽었을 거야!”이때 비록 비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눈앞에는 악명 높은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차가 바다로 들어가면 생존할 확률은 제로였다. 하현은 조금의 감정 기복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주아야, 너도 이제 3살짜리 어린 애가 아니니 분명히 알아야 해.”“방금 만약 그들이 우리 차를 막았다면 죽은 사람은 아마 나였을 거야.”“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내가 반항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물론 네가 만약에 나를 매정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떠날게.”“네가 나랑 같이 왕화천의 지회장이 되고 싶어하는 꿈을 무산시키고 김애선과 정용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도 네 어머니를 위해 정의를 찾아주는 셈이야.” 하현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는 왕주아를 이용해 왕화천에게 접근했는데 이것의 주된 목적은 확실히 용문 대구 지회의 일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주아의 일을 알게 된 이후 하현도 그녀에게 어느 정도 기꺼이 보상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예를 들어 그녀만의 정의를 되찾고 그녀 자신만의 것을 되찾는 것을 돕고 싶었다. 물론 만약 왕주아가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라면, 이런 일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을 정도로 천진난만하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현도 이제부터 그녀와 관계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왕주아는 잠시 할말을 잃었고, 표정은 굳어졌다. 차창 밖의 계속 변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얼굴에는 온통 무거운 빛이 가득했다. 그녀와 하현은 단지 두 번째 만나는 것일 뿐이었고 하현의 능력과 내막은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두 번의 만남에서 하현은 그녀를 해치지 않았고 심지어 하현의 관계 때문에 그녀는 김애선에게 대항할 배짱이 생겼다. 이 생각이 들자 왕주아의 얼굴에는 갑자
눈앞에 펼쳐진 1호 별장의 문을 보고 있던 왕주아는 놀라며 의아하게 여겼다. “하현, 너 정말 임복원 선생님하고 친분이 두터운 거야?”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편이지. 이 1호 별장은 그가 나한테 준 거야.”“이제 네 싸구려 남자친구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말을 마치고 하현은 왕주아에게 방을 하나 주고는 샤워를 하러 갔다. 오늘 그는 하루 종일 바빴고 조금 피곤했다.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것이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하현이 샤워를 하는 동안 왕주아는 별장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결국 그녀는 별장에 있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보면서 하현이 정말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아끼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일부 가치 있는 장식과 가구까지 그가 훼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곳은 정말 그의 것이었다. 어쨌든 손님들은 미안해서 이런 물건들을 부서지게 하지는 않는다. “띵______”바로 이때 거실에 있는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왕주아는 핸드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핸드폰 맞은편에서 살짝 어리둥절해 하더니 되물었다.“그러는 당신은 누구세요?”왕주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상대방의 적의를 느끼자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당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으면 저는 전화를 끊겠습니다!”상대방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잠시 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하현을 찾는데요.”“하현을 찾는 다고요?”왕주아는 잠시 멍해있더니 핸드폰을 내려 놓은 후에야 자신이 핸드폰을 잘못 가져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쨌든 다 같은 모델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녀는 급하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핸드폰을 잘못 가져왔네요. 하현은 샤워하고 있으니 이따가 다시 전화해 주세요.”말을 마친 후 왕주아는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한번 쳐다보았고 핸드폰에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하현이 샤워 중이라고요?”핸드
“만약 제가 방금 전화한 게 회장님의 일을 방해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슬기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하현은 질투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슬기는 내 비서다. 우리 둘 사이는 결백하고 아무 것도 없었다. 하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후에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슬기, 너 함부로 생각하지 마. 정말 일이 있어.”“이 여자애 이름은 왕주아야. 왕씨 집안 딸이야. 나는 오후에 그녀와 같이 외출을 했었어. 확실히 일이 있었어……”“회장님 여자친구라고 하던데 아무 일이 없을 수 있었겠어요?”슬기는 웃을 듯 말 듯 말했다. “회장님, 속이지 마세요.”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슬기야, 그만 좀 해.”“내가 그녀에게 접근한 목적은 용문 대구 지회 일 때문이야. 그녀는 왕화천의 딸이야. 그녀에게 먼저 손을 대서 평화롭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 기회를 보고 있는 거야.”“또 내가 그녀를 이용했으니 그녀는 또 불쌍한 사람이라 그냥 그녀를 좀 도와주려고.”그리고 난 후 하현은 자신이 왕주아를 알게 된 경위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슬기는 평정을 되찾고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회장님, 왕화천을 잡는데 아무 것도 낭비할 필요가 없는데 왜 이렇게 일을 번거롭게 하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왕화천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기왕 내가 손을 대는 김에 한번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래.”“정용이든 그들 배후에 있는 섬나라 사람이든 내가 확실히 조사해야 할 일이 있어.”“정용이요?”슬기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말투가 이상했다. “참, 회장님, 회장님이 저 경호하라고 보내신 사람이 오후에 왔는데 오셔서 그 사람들 한번 만나보시겠어요?”슬기는 단호하게 화제를 바꿔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당분간은 그럴 필요가 없어. 이 경호원들은 다른 관계를 통해 모셔온 거야. 그는 내 신분을 모르니 굳이
겨울이 다가오자 대구의 바다에는 북풍이 휘몰아쳤다. 임해 별장 단지, 낡은 건물에는 난로에 불을 피워져 있었다. “자, 자, 세자, 50년된 마오타이 주 한번 다시 열어봐!”“최근 몇 년 우리는 대하에서 양주, 와인을 좋아했지만 겨울이 왔으니 백주가 몸을 따뜻하게 해 줄 거야.”왕씨 저택은 모든 가구를 새 가구로 교체해 거실은 어수선했다. 직사각형의 식탁 양 끝에 각각 한 사람씩 앉아 있었다. 얼굴에 약간 붓기가 있는 김애선을 제외하고 맞은 편에는 모직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있었다. 김애선은 전에 하현을 만났을 때의 불 같은 성격을 고쳐 지금은 상류사회에서 키워온 모든 세련된 자질을 발산하고 있었다. 개봉된 오래된 마오타이 외에도 테이블 위에는 미슐랭 셰프가 방금 준비한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식이 있었다. “세자,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으니 따뜻한 것을 먹고 몸을 좀 녹여.”김애선은 말할 수 없는 감탄과 형언할 수 없이 흡족해 하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만약 몇 살 어렸으면 그녀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왕 부인!”정용은 이때 사양하지 않고 백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정성스럽게 맛있는 요리를 몇 입 먹은 후 웃으며 말했다. “술도 괜찮고 음식도 좋네요.”“연경에서 지내면서 만족스럽게 식사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었어요.”“부인께서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뭔지를 알게 해주셨네요.”세자로 불리는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의 얼굴은 아주 준수했고 나이는 기껏해야 27, 28살 정도로 남자로서 가장 매력적인 나이였다. 그의 옷차림은 단순했지만 잘 어울려 그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기품과 고귀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누구나 그를 보면 부끄러워질 것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왕자이고 진정한 귀족이기 때문이다. “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 우린 조만간 가족이 될 거예요. 아주머니는 진작부터 저를 친 아들로 대해주셨잖아요.”김애선은 장사할 때
정용은 빙긋 웃었다. “아주머니, 안심하세요.”“저와 주아의 감정은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어요.”“저를 믿으세요. 주아는 아주머니의 딸일 뿐 아니라 제 약혼녀이기도 해요.”“정용의 약혼녀니 제가 당연히 아끼고 사랑해줘야죠.”말을 마치고 그는 가볍게 손을 한번 튕겼다. 순간 멀리서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가 걸어 나오더니 살짝 허리를 굽혔다. “유지애, 그들에게 전화해.”“그들에게 주아를 데려오라고 전해.”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 유지애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냉담한 표정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전혀 미동이 없었던 그녀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재빨리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난 후 세 번, 네 번……연이여 열 번을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거나 통화 중이었다. 유지애는 마침내 침착함을 잃고 재빨리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통화가 안됩니다.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맞은편의 김애선의 의심하는 눈빛에 정용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위치를 파악해서 지원자들을 보내.” 유지애는 또 몇 번 더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눈에 경련이 일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차와 핸드폰의 위치는 모두 표시가 뜨는데……”“대구 악마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구역에서……”“그곳은 수심이 천 미터고, 파도가 거칠어요.”“우리가 보낸 사람은 아마 좋지 않은 일을 겪은 거 같아요……”“탁______”김애선은 손에 든 술잔을 탁자 위에 내리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그녀는 정용의 사람들 조차 하현의 손에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정용이 누구인가?그는 대구 여섯 세자 중 한 사람이다! 대구에서 뿐 아니라 대하에서도 그는 힘과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인물을 어찌 보잘것없는 촌놈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와
유지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 세자의 흥을 깨뜨릴 뜻은 없습니다.”“다만 중요한 일이라 말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아서요!”정용은 차가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말해 봐!”유지애는 황급히 그의 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몇 마디 말이 끝나자 정용의 여유롭고 가벼운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변했다. “부인, 안심하세요. 날이 밝기 전에 제가 주아를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정용은 감정을 추스르고 오히려 일어서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그런데 제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내일 다시 식사해요!”“그때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정용은 항상 품위를 유지했다.“그래. 일 봐.”김애선은 눈을 반짝이며 그를 억지로 잡아두지 않고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주아 이 계집애가 철이 없어. 나이가 어린 걸 봐서 이해해줘.”김애선이 보기에 정용은 하현과 주아를 쫓아가라고 보낸 사람들이 죽은 것을 확인한 것 같았다. 정용은 지금 분노가 치밀어 올라 하현의 뼈를 부러뜨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자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정용이 손을 쓴다면 하현 같은 사람 열 명이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용이 떠나자 김애선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고 마침내 거침없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몇 분 후, 도요타 엘파는 벨라루스가 있는 곳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정용의 얼굴에는 진작에 담담한 빛이 사라졌고 보기 어려운 검푸른 빛이 돌았다. 이번에 연경에서 급하게 돌아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호준이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정용이 막 돌아오자 벨라루스의 매니저 방승훈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이때 막 어떤 사람이 정호준의 머리를 가지고 왔다. 이 소식은 정용을 극도로 화나게 만들었다. 정호준은 그의 최고 부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호준이 그와 섬나라 사이의 관계를
현장에는 한 무리의 경비원 외에도 방승훈과 몇몇 일꾼들이 있었는데 정용을 보는 순간 이 들은 동시에 무릎을 꿇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자!”정용은 호통을 치며 말했다. “정호준은?”방승훈은 선물 상자를 하나 들고 건너 갔다.“좋네! 아주 좋아!”정용은 손을 뻗어 선물 상자 안의 머리를 보고는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정호준의 표정은 흉악했고 죽어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정호준, 걱정 마. 내가 반드시 배후의 검은 손을 찾아내 산산조각 내 복수할 테니까!”지금 이 순간 정용은 분노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분노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복수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상자를 막 내려 놓으려고 했다.그런데 이 순간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번뜩였다. 그는 지금 정호준의 미간에 뭔가가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싹______”정용은 손을 뻗어 쪽지 하나를 빼냈다. 종이 쪽지에는 주홍색 글씨가 적혀있었다. “용문 사람들을 함부로 건드리려고 하는 자들이여!”“죽어라!”정용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잠시 후 웃음을 그쳤다. “용문!?”“나를 협박하는 거야!?”“나에게 경고를 주려고!?”“도대체 누가 감히 내가 용문 대구 지회장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방해 하는 지 봐야겠어!”“이 자리는 나 정용이 정한다!”……대구의 밤거리는 전설적인 교통 체증이 없었다. 하현은 새 람보르기니를 몰고 서두르지도 느긋하지도 않게 루나 씨네마 촬영장으로 갔다. 차가 반쯤 갔을 때 진주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 도련님, 방금 소식을 들었습니다.”“정용이 저녁 무렵 연경에서 돌아왔습니다.”“제때에 정호준의 머리도 보냈습니다.”“정용은 도련님이 예상하신 대로 정호준의 미간에 박힌 메모를 발견했습니다!”“그는 현장에서 화가 나서 용문 대구 지회장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맹세했다고 합니다.”“아마 내일부터 전력을 다해 공세를 펼 겁니다.
이의진도 눈살을 찌푸리며 거들었다.“하현, 내 말 잘 들어! 지금 당장 사과해!”“그리고 무릎 꿇어!”“그렇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벽돌 나를 생각은 하지도 마!”“당신은 그냥 굶어 죽어!”하현은 이 씨 남매가 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으로 오만방자한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3분, 고명원에게 어서 와서 차를 따르라고 해.”“나 하현이 말했다고 전해.”“어서 어서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을 넘길 시엔 차를 따르는 걸로 해결될 일이 아니야.”이영산을 비롯한 이 씨 가족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얼굴빛이 새까맣게 변했다.하현이 이렇게 고명원을 도발하는 것은 그들을 불구덩이로 집어넣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이놈이 이 씨 가족들을 데리고 같이 죽으려고 작정한 거야?“야! 당신이 뭔데? 감히 고 사장님을 오라 마라, 차를 따르라 마라 하는 거야?”장발의 사내는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사는 게 지겨워?”장발의 사내는 여차하면 하현을 밟아 죽일 듯 눈을 부라렸다.그때 온몸에 거즈를 두른 남자가 뒤에서 들어왔다.알고 보니 소항 회관에서 하현과 충돌한 그 남자였다.남자는 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순간 두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 서린 눈빛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그는 장발의 사내에게 얼른 귓속말로 속삭였다.소항 회관에서 그는 하현에게 단번에 걷어차였다.고성양의 손발은 부러졌다.엄도훈은 하현 앞에서 나라님 모시듯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이로 미루어 보아 하현의 신분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장발의 사내는 남자의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그의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났다.“하현! 당신은 이제 죽었어!”이영산은 하현을 가리키며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의 최후를 한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따가 일이 생기면 당신 혼자 다 책임져! 절대 우리 끌어들이지 마!”이 씨 가족의 친척들도 모두 사나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
장리나는 이 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하현, 얼른 형님께 감사하다고 해야지!”“형님이 아니었으면 어디 가서 그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겠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그러다 혓바닥 깨물까 봐 겁도 안 나?”“하 씨! 당신 나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당신 정말...”장리나는 하현에게 조롱이 가득 담긴 말을 퍼부으려고 했다.그런데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발로 문을 차고 들어왔다.차를 마시고 있던 하현은 들고 있던 찻잔을 든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이어 러닝셔츠를 입은 남자 몇 명이 들이닥쳤다.그들 앞에 서서 담배를 물고 있는 긴 머리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씨 가족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모두 꺼져! 이 룸은 우리가 접수한다!”이영산은 오늘 아침 마침내 인생의 절정을 맞이했는데 어떻게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술기운을 내뿜으며 테이블을 세게 쳤다.“무슨 소리야? 우리 아직 다 못 먹었다구!”“우리 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이 여기서 밥을 먹을 건데 당신들 감히 이런 식으로 굴 거야?”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는 무심한 듯 이영산을 쳐다보았다.장청 캐피털 고 사장님?고명원?고명원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영산은 술이 확 깨는 듯했다.방금까지의 원망과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무례하다고 느끼던 이 씨 가족들도 장청 캐피털이라는 말을 듣고 모두 겁을 먹었다.고명원은 어쨌든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절대로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게 어떻게...”이영산은 말할 수 없이 난감한 표정이었다.그는 얼굴을 돌려 주변 친척들을 몇 번이나 쳐다본 뒤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거의 다들 드셨죠?”“고 사장님이 이렇게 내 사업을 챙겨주시고 수백억짜리 프로젝트도 맡겨주셨는데 이 룸을 원하셨다니 드려야죠!”“다
설은아는 안색이 약간 변하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하현에게 제지당했다.그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이영산이 도대체 어떻게 기고만장한 허풍을 떠는지 보기 위해서였다.이제 막 좋은 볼거리가 시작되었는데 못하게 막아서면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이영산의 부모도 소리를 듣고 와서 눈동자에 살벌한 눈빛을 떠올린 채 주시하고 있었다.데릴사위인 주제에 우리 아들의 경사를 축하하는 자리에 와서 재를 뿌리겠다는 것인가?!하현이 아니었으면 자신의 아들에게 아내가 하나 더 생겨 설 씨 가문의 모든 자산을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아이고, 이게 누구야? 바로 그 전설의 데릴사위 아니야?!”“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머리가 좋았으면 노점에서 사 온 무 따위를 장모에게 선물했을까?! 흥!”“게다가 우리 영산이가 선물한 그림을 감히 가짜라고 모욕하다니!”“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꼴같잖게 센 척하기는!”이영산은 그동안 설 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포장해서 이 씨 일가들에게 한껏 허풍을 떤 것이 분명했다.장리나는 당연히 이영산의 편이니 이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은아는 이영산이 이렇게 낯짝이 두꺼울 줄은 몰랐다.순간 그녀는 참지 못하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됐어! 뭐가 어떻게 되고 저렇게 되고 상관없어!”“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고 그 분수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거야!”“자기 것이 아니라면 노력해서 얻을 생각을 해야지!”이 씨 가문 둘째 할아버지는 경험자 같은 자태로 말을 이었다.“젊은이, 내가 자네라면 지금쯤 순순히 설 씨 집안을 떠나 경비원이라도 해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했을 거야. 그게 데릴사위보다는 훨씬 나아!”“자네가 그러는 걸 자네 조상이 알면 무덤에서도 벌떡 일어날 거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맞는 말씀입니다. 딱 봐도 데릴사위 경험자로서 하시는 말씀이신 듯하군요!”“뭐?
”물론 두 사람이 오늘의 이 성과를 이룬 데는 여러 친척들, 어른들, 형제, 자매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저와 제 남편이 이런 연회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이영산의 부친은 거만한 자세로 껄껄 웃으며 일어섰다.“여러분, 오늘은 마음 편히 즐겁게 먹고 마시길 바랍니다!”“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82년산 마오타이든 뭐든 원하는 만큼 준비해 뒀으니까요!”이영산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일어섰다.“부모님, 여기 어르신들, 형제, 자매 여러분!”“오늘 저를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저 이영산, 절대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건배!”말을 마치며 그는 호탕한 얼굴로 술 한 잔을 마셨다.“영산이와 의진이가 능력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 이렇게 빨리 출세할 수 있었던 거구요! 앞으로 우리 친척들 좀 많이 살펴 주세요!”“맞아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런 대단한 성과를 거두다니! 정말 대단해요!”“장청 캐피털 일을 따내다니! 그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성월TV도 마찬가지예요! 배후에 금정 간 씨 가문이 떡 받치고 있는 곳이죠! 따라서 이것은 금정 간 씨 가문과 연줄을 맺은 거나 마찬가지예요!”“이제 우리 이 씨 가문이 완전히 떴어요!”친척들은 하나같이 영광스러운 얼굴로 이영산 남매를 바라보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항렬이 가장 높은 둘째 할아버지가 테이블을 탁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자손을 낳으려거든 이영산 같은 아들을 낳아야지!”“우리 이 씨 가문에 이영산이 있으니 이제 우리 가문은 더 높은 곳으로 갈 일만 남은 거야!”이에 이영산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에 내걸며 호탕하게 웃었다.“둘째 할아버지, 숙모님, 숙부님. 과찬이십니다!”“저와 제 여동생이 아무리 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가 이 씨 가족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이 씨 가문에 꼭 보답하겠습니다!”이어 이의진도 곱게 화장한 얼굴
이튿날 아침, 밤잠을 설친 하현은 방을 나서자마자 설은아의 차에 몸을 실었다.차에 오르자마자 그녀는 하현을 원망하기 시작했다.분명 오늘 이영산이 밥을 사기로 했다고 어제 다 얘기를 했는데 결국 하현은 이렇게 늦게 일어난 것이다.설은아의 스포츠카에 올라타서야 하현은 알게 되었다.이영산이 요 며칠 동안 무슨 개똥 같은 운이 그렇게 좋았는지 수천억짜리 공사를 수주했고 그와 함께 신분이 순식간에 치솟았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여동생, 이의진도 직장에서 순풍에 돛 단 듯 승진하며 겹경사를 맞았다고 했다!최희정과 설재석 부부도 원래 이 자리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임시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설은아를 대표로 내세웠다.설은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영산은 하현을 콕 집어 말하며 꼭 데려오라고 했다.말하자면 자신의 높아진 위상을 하현에게 보여줌으로써 코를 납작하게 할 셈인 것이다.하현도 이영산이 절대 좋은 마음으로 자신을 부른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상관없었다.설은아가 참석하라고 하니 함께 가 보는 것이다.낮 12시.하현과 설은아가 홍궁관 2번 룸에 도착했다.룸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안에는 커다란 테이블 다섯 개가 놓여 있어서 한 번에 오십 명 정도가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테이블당 최소 몇백만 원이 든다고 하니 이영산이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했다.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고 화색이 가득한 그들의 얼굴은 상류층 자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설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씨 집안사람들이라고 하현에게 설명했다.이 씨 집안은 삼류 가문이었지만 그 수는 적지 않았다.게다가 금정 토박이였기 때문에 항상 자신들의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며 한껏 자존심을 치켜세우고 다녔다.설은아와 하현의 등장은 이 씨 집안사람들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이영산의 친부모는 이 자리를 주최한 장본인이지만 하현을 보고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태로 문 바로 앞자리를
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아. 내가 엄도훈의 목숨을 구해 줬으니 그는 나한테 신세를 진 셈이야.”말을 마치며 하현은 화제를 바꾸었다.“참,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나 되면서 왜 갑자기 자금난이 생긴 거야?”“그리고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하현은 이미 돌아가는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원래 아홉 번째 집안에는 아무런 자금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설은아가 상석에 앉게 되자 대구 정 씨 가문의 일부 친족들이 불만을 품었고 그들은 비밀리에 물밑으로 많은 일을 벌여 원래 가문의 자금이었던 돈의 일부를 소리 소문도 없이 빼내었다.아홉 번째 집안이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에 자금이 유출된 후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설은아는 최선을 다해 구멍을 메워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 봐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특히 그녀는 금정에 온 후 대구 정 씨 가문이 벌여 놓은 난장판을 떠안아 자금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커졌다.설은아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은행에 두 배의 이자를 물고 대출을 했지만 여전히 이천억이란 돈이 모자랐다.그래서 그는 오늘 고성양을 만나 돈을 빌려볼 생각이었던 것이다.“당신한테 왜 말 안 했냐고?”설은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말해 봤자 무슨 소용 있어?”“당신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한 번에 이천억을 융통하기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의 일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당신한테 이로울 게 없거든.”설은아가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그것은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과 대구 정 씨 가문 고위층 사이에 일생일대 도박과도 같은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만약 그녀가 하현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청한다면 계약을 어기는 것이 된다.문제는 대구 정 씨 가문은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만만찮은 가문이라는 것이다.하현은 말끝마다 그녀를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으로 만들겠다고
저녁 9시.술과 밥을 배불러 먹은 하현은 소항 회관을 떠나 설 씨 가문으로 돌아갔다.하루 종일 고생한 그는 전에 최희정과 한바탕 크게 싸운 것도 있고 해서 그녀를 다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 소리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자신의 방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설은아의 방에서 ‘아앗’하는 소리가 들렸다.하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설은아는 방금 목욕을 한 것으로 보였고 하얀 목욕 수건은 몸의 중요 부위만 감싸고 있었다.그녀의 백옥 같은 긴 다리는 수건 바깥으로 훤히 드러나 있어서 하현의 눈앞을 아찔하게 만들었다.하현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미녀들을 만났다.그녀들 각각의 매력도 상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를 가장 설레게 한 사람은 역시 설은아였다.순간 하현은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그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아 얼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들어왔어?”누군가 들어오자 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하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긴장을 풀었다.하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들어왔어. 괜찮아?”설은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조금 삔 것뿐이야. 주물러주면 괜찮아질 거야.”“내가 해줄게.”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설은아는 침대에 앉아 곧고 긴 다리를 하현 앞에 쭉 뻗었다.하현은 설은아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긴 다리를 주물렀다.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펄쩍 뛰었다.백옥같이 아름답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만큼 그녀의 다리는 곱고 매끄러웠다.하현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설은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현, 안마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만지작
고명원의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렸다.“뭐라구요?”정홍매도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남편이 고향에 가서 조상님께 향불을 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줄곧 그 이유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간단합니다. 당신은 기가 강한 사람입니다. 남을 압도할 만큼. 그래서 당신의 강한 기운이 조상의 기운을 눌렀던 거죠.”“만약 당신의 기운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당신은 열 번도 더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스스로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 평생, 당신 아들이 태어난 후 당신이 몇 번이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지!”하현의 말을 듣고 고명원은 마침내 큰 충격을 받았고 탄복해 마지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엄 회장님이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군요!”“맞습니다. 난 정말이지 몇 번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그때마다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하지만 운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죠.”“옛날 사람들은 큰 재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온다고 했어요.”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런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당신에게 조상의 비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신에게 후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죠!”“그래서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 보길 권합니다.”“그러면 다음에 조상님께 제를 올릴 때 저절로 향불을 태우고 싶을 겁니다.”“봉분의 풀들도 그렇게 푸르지는 않은 것 같군요.”“조상들의 숨결이 모두 기운을 다했기 때문이죠!”“개자식!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자꾸 그런 말 하면 내가 당신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여보! 가! 가자구!”“자기가 무당이야? 뭐야?”“저 말을 믿느니 차리리 죽는 게 나아!”말을 마치자마자 정홍매는 고명원을 데리고 얼른 나가려고 했다.“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의술은 정말 잘 몰라. 하지만 살인술은 좀 알지.”“한번 보여줘?”“단번에 당신의 목숨을 앗아버릴 수 있는데.”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리고 나서 아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농담하지 마세요! 형님! 농담도 참!”“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전 지금 형님이 제 목숨을 구해 주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구요!”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은침을 자신의 손가락에 살짝 찔러 피 한 방울을 짜낸 뒤 엄도훈의 미간에 떨어뜨렸다.그리고 큰 혈이 지나가는 명치 몇 군데에도 떨어뜨렸다.그러자 가슴에 있던 흔적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어? 어? 사라지고 있어?! 정말로 사라졌다구!”몇몇 측근들은 모두 놀란 얼굴을 한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들은 눈앞에서 흔적들이 서서히 옅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똑바로 목격했기 때문이다.엄도훈은 처음에 하현이 뭘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온몸을 얽매고 있는 기운도 함께 사라졌고 이윽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고명원도 눈앞의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처음에 하현이 농간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일을 보고 자신의 식견이 이렇게 모자랄 줄은 몰랐다.“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대단해요!”“정말 감동했어요!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에요!”엄도훈의 얼굴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다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긴 해요.”“집이나 가게에 팔괘경을 비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거예요?”“그 물건이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들 그런 골동품을 쓰니까요.”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가지고 있던 팔괘경은 출토될 때부터 원한에 얽혀 있었어.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그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