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자리 배치로 볼 때 조성열이 메인 석에 앉고 그다음이 기윤미, 그다음이 조해인이다.기윤미의 자리는 조해인보다 더 높았다.이 광경을 본 강책은 문득 조해인이 왜 밖에서 수많은 애인들을 만나고 인당 별장 한 채씩 장만해 주는지 알 것 같았다.왜냐하면 그는 기윤미한테서 ‘사랑’ 이란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기윤미의 앞에만 서면 조해인은 비겁한 하인으로 변하니까.조씨 일가의 장남이자 차기 상속자, 지금의 부회장인 그가 어찌 이런 수모를 견뎌내겠는가?그러니까 밖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자리에 앉은 기윤미는 바로 강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오늘 연회에 참석한 목적이 바로 강책을 알기 위해서였다.극단적인 조건에서 조연진을 구출하다니, 강책의 실력이 엄청 뛰어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하지만 기윤미는 강책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압력을 가하며 자신의 위치를 더 확고히 할 생각이었다.조성열이 강책을 눈여겨보며 조연진을 그에게 시집보낼 의향이란 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만약 강책이 조씨 일가의 훌륭한 사위가 된다면 추후에 기윤미의 자리도 조금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강책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 이후에 조성열이 강책을 이용하여 기윤미를 제압할 수도 있다!하여 그녀는 오늘 강책에게 기선제압을 하며 조씨 일가에서 제멋대로 굴 수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처음 뵙네요 강책 씨, 반가워요.”기윤미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네, 반가워요.”강책도 간결하게 인사했다.이때 기윤미가 불쑥 난감한 발언을 했다.“강책 씨가 도씨 집안 어르신의 친손자라고 하던데? 정말인가요?”장내에 있던 모든 이가 표정이 얼어붙었다.강책이 도영승의 친손자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속에 얽힌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할아버지와 손주의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불쾌한 이 일을 먼저 언급하는 자가 거의 없었다.보아하니 기윤미는 일부러 강책의 심기를 건드릴 모양이다.다만 강책은 제법 교양 있게
강책이 수저를 들기도 전에 기윤미가 선뜻 닭고기를 집어 자기 그릇에 담았다. 그녀는 강책을 손님으로 대하지 않은 채 전혀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기윤미는 그릇 안의 닭고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아버님, 이 닭 혹시 반년 전에 아버님이 먼 산에서 거금을 들여 사 온 후 전문 인사를 찾아 정성껏 키운 그 닭이에요? 그 닭이 지금 닭볶음탕으로 변한 거예요?”조성열은 수염을 어루만지며 호탕하게 웃었다.“맞아! 내가 이 닭들에 심혈을 적잖게 기울였지. 웬만해선 꺼내지 않는다고.”조성열은 닭의 소중함을 말하며 오직 강책에게만 이 닭을 대접한다는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다만 기윤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아무리 예쁘고 소중한 닭도 결국 닭일 뿐이죠. 평소에 잘 먹이고 잘 키워도 나중에 삶아서 고기를 먹기 위해서잖아요. 어떤 이는 자신의 위치를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해요. 닭은 닭일 뿐, 절대 하늘을 날 수 없어요.”이는 엄연히 강책을 겨냥한 말이었다.기윤미는 닭으로 강책을 비유하며 제 분수를 지키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절대 ‘봉황’ 이 될 수 없으니 조씨 일가의 권력을 탐내지 말라는 뜻이었다.조씨 일가에서 지금 그에게 친절해도 언젠가는 식탁 위의 ‘고기’ 가 될 것이다.적절한 시기에 무조건 그를 잡아먹는다는 뜻이었다.사실 기윤미의 말은 조성열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그는 강책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정중하게 초대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말 때문에 오히려 강책에게 압력만 가하는 꼴이 되었다.조성열은 졸지에 양쪽에게 모두 미움을 사버렸다.“아니, 난... 그게 아니라...”조성열은 해명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주위 사람들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조해인은 몰래 웃음을 훔쳤다. 강책이 드디어 곤경에 빠지다니, 그는 마냥 깨고소할 따름이었다.한편 강책은 옅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자신이 조씨 일가를 도와준 것 때문에 기윤미의 시기와 질투를 받다니, 그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기윤미는 그릇에
이보다 10배 더 매워도 기윤미는 거뜬히 한 그릇 다 먹을 수 있다!하여 난폭한 성격에 안하무인 격의 그녀로 거듭날 수 있었다.기윤미는 당장이라도 불을 내뿜을 기세였다. 몸 상한다고 매운 걸 적당히 먹으라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뭇사람들도 강책의 말에 시큰둥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그에게 믿음이 두터운 조연진마저 이번엔 부정의 시선으로 변했다.기윤미는 또다시 닭고기 몇 점을 그릇에 담고 술까지 몇 모금 기울였다. 그야말로 여장부다운 모습이었다.“실은 강책 씨를 생각해서 고추를 적당히 넣었어요. 순한 맛만 드시는 강책 씨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거든요. 평소 같으면 10배 더 맵게 만들어서 화끈하게 먹거든요!”기윤미가 또다시 강책에게 쏘아붙였다.그녀는 사나운 기세로 줄곧 강책을 몰아붙였다.만약 강책도 함께 실랑이를 벌인다면 도리어 체면이 깎일 것이다. 사내대장부는 여자와 다투지 않는 법이니.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줄곧 물러서기만 한다면 그녀의 기세가 점점 더 사나워진다.기윤미는 그를 속수무책하게 만들었다.그 시각 조해인은 동정 어린 눈길로 강책을 바라봤다. 그에게서 평소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던 모습이 비쳤다.“어휴...”조해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술을 들이켰다.기윤미는 호탕하게 웃으며 닭볶음탕을 우걱우걱 먹었다.그렇게 점심 식사는 기윤미의 원맨쇼로 돼버렸다.자괴감에 빠져 몸 둘 바를 몰라야 할 강책은 오히려 평소처럼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또다시 기윤미를 일깨워주었다.“사모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는데 이젠 정말 멈추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진짜 몸에 이상 반응이 올 거예요.”“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나 정말 괜찮아요. 이 정도의 매운맛은 홀가분하게 먹어치울 수 있거든요!”옆에 있던 조성열은 연신 고개를 내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아이고, 강책 씨, 제발 그만 건드려요. 저 여잔 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당신이 무슨 수로 통제하겠어요!’강책은 얌전히 물러선 게 아니라 계속 다그쳤다.“사모님, 그만
“으악! 사람 살려!”기윤미는 마치 끓는 물에 덴 것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감싼 채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의 얼굴에 붉은 여드름이 하나둘씩 생기고 여드름 속은 온통 고름으로 가득 찼다.자칫 잘못하면 고름이 흘러나와 얼굴에 잔뜩 묻을 것만 같았다.피부에 고름이 닿자 마치 황산에 부식된 것처럼 통증이 더 심해졌다.순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맵부심이 강한 기윤미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좀 전에 강책이 했던 말이 무리수는 아니었다. 기윤미는 정말 매운 음식에 부작용을 보였다.조해인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여보, 왜 그래?”그가 손을 뻗어 어루만지려 하자 기윤미가 냉큼 막아 챘다.“다치지 마. 아파 죽겠단 말이야.”조성열이 황급히 강책에게 물었다.“강책 씨, 윤미가 왜 이래요? 얼굴에 왜 갑자기 고름이 가득 찬 여드름이 생긴 거죠?”강책이 대답했다.“이 닭은 일반 닭들과 조금 달라 사모님의 체질에 안 맞을 겁니다. 거기에 청양고추까지 더하니 충돌이 더 심해져서 갑자기 발병했어요. 사모님이 매운 음식을 잘 드셔서 이만큼 버텨낸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아마 얼굴 전체가 망가졌을 겁니다.”이렇게 심각하다고?뭇사람들은 식겁하여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폭식은 금물이라더니 기윤미는 결국 매운 닭볶음탕 요리에 ‘과민’ 하고 말았다.매운 닭볶음탕 요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그녀에겐 치명적인 음식이었다. 적당히 먹으라는 권유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술까지 기울이더니 체내 독소의 발효를 가속했다.의식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강책이 얼른 물었다.“제가 침을 챙겨오지 못했어요. 혹시 집에 침 있나요?”강책은 그녀의 병을 치료해 줄 기세였다.‘안돼, 이럴 순 없어!’정말 강책에게 치료를 받게 된다면 기윤미의 체면은 어디에 둬야 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그의 기를 확 꺾어버릴 참이었는데 졸지에 치료를 받게 된다면 기윤미만 제압당하는 꼴이 된다!그녀는 절대
“그럼 다행이고요.”한우식의 말을 들은 뭇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치료하기 어려운 큰 병만 아니면 천만다행이었다.곧이어 한우식이 기윤미에게 약을 몇 첩 지어주었다.그는 약 처방전을 조해인에게 넘기며 신신당부했다.“여기 적힌 대로 약을 지으세요.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해요. 이 병은 미룰 수 없거든요.”“네, 알겠어요.”조해인이 이제 막 약을 지으러 가려는데 강책이 또다시 시큰둥하게 말을 꺼냈다.“이 처방전 문제 있어요. 사모님께서 이대로 약을 드시면 병을 치료하지 못할뿐더러 설상가상으로 더 심해질 겁니다. 그때 되면 수습하기 힘들어요.”‘뭐라고?’한우식은 고개 돌려 언짢은 표정으로 강책을 쳐다봤다.의사가 가장 꺼리는 말이 바로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한우식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전부 순한 약재들이고 사모님의 체질에 맞춰서 드린 처방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죠? 게다가 난 사모님의 개인 주치의예요. 사모님의 컨디션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수년간 단 한 번도 약을 잘못 처방한 적이 없는데 당신 따위 외부인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삿대질하는 거죠?”조해인이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의사 선생님, 화내지 말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제 아내의 병을 치료하고 공로를 빼앗을까 봐 걱정돼서 저러는 거예요.”한우식은 코웃음 치며 쏘아붙였다.“가소롭군요! 병을 치료하고 목숨을 살리는 일에 어떻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죠? 어이없네요 정말.”두 사람은 서로 맞장구를 쳐주며 강책의 존엄을 한없이 짓밟았다.선심을 베풀려다가 졸지에‘공로’ 를 빼앗는다는 죄명을 뒤집어쓰다니, 강책도 그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조해인은 더이상 아무 말 없이 허둥지둥 처방전대로 약을 구해와 정성껏 달인 후 기윤미에게 먹였다.기윤미가 약그릇을 들 때 강책이 마지막으로 일침했다.“사모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이 약 드시면 안 돼요!”기윤미는 머뭇거렸다.아까도 강책의 말을 안 듣다가 발병했는데 지금 또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만약 또 강책의 말이
다들 의아한 눈길로 강책을 쳐다봤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잘난 척 하다니?한우식이 기윤미의 병을 다 치료했는데 왜 한사코 변명하는 걸까?조성열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강책 씨가 아무래도 체면을 너무 중히 여기나 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이를 악물고 버티는 걸 거야.’하지만 사실이 눈앞에 보란 듯이 펼쳐져 있는데 억지로 버틸수록 본인만 더 초라해지는 게 아닐까?그는 강책에게 이젠 그만하라고 타이르고 싶었지만, 돌연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어느덧 5분이 다 되었다.한우식은 기윤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고름은 싹 다 없어지고 딱딱한 각질만 남아있어 벗겨내면 그만이었다.한우식이 손을 뻗어 각질을 벗기려 할 때 놀랍게도 각질과 새 살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아니 이게...”한우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각질과 새 살이 함께 붙어있다니?“의사 선생님, 왜 그래요?”한우식은 말문이 막혀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손에 살짝 힘주며 낡은 각질을 떼어내려 하자 기윤미가 곧바로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다.“아파요, 아프다고요.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예요?”한우식은 이마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망했어, 낡은 각질을 아예 떼어낼 수가 없어.’그는 기윤미의 울퉁불퉁한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용모가 철저히 무너졌다는 걸 알아챘다.이젠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 걸까?기윤미도 바보가 아닌지라 한우식의 당황한 모습을 보더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거울, 당장 거울 줘봐요!”곧이어 누군가가 거울을 가져왔다. 기윤미는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사색이 되어 말까지 더듬거렸다.“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고름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낡은 각질과 새 살이 함께 자라면서 얼굴이 울퉁불퉁해졌다. 마치 비 오는 날 트럭이 지나간 진흙탕 길처럼 추하기 짝이 없었다.기윤미는 안 그래도 미모에 엄청 신경 쓰는 여자인데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리다니
그의 말을 들은 한우식은 그제야 알아챘다.스킨케어 제품과 약 처방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 거라니, 그래서 한우식이 좀처럼 문제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의사들은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알아내기 힘드니까.다만 강책은 단지 코로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기윤미가 천연 성분의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한다는 걸 알아챘다. 일반 의사들은 이런 능력을 지닐 수 없다.“그럼... 이젠 어떡해야 하죠?”기윤미가 겁에 질린 채 물었다.강책은 차분하게 대답했다.“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 계속 이 밸런스를 유지하며 각질과 새 살이 전부 자라난 후 정상적으로 세안할 수 있어요.”“그건 안 되죠. 어떻게 각질과 새 살이 함께 자라도록 놔두겠어요? 울퉁불퉁한 얼굴로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고요!”기윤미는 첫 번째 선택을 단호하게 거부했다.“그럼 두 번째 선택뿐이네요.”강책이 한숨을 내쉬었다.“처음처럼 회복할 순 있지만 그 과정이 조금 힘드실 겁니다.”“말씀만 하세요. 원래대로 회복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힘든 과정도 다 견뎌낼 수 있어요.”강책이 말했다.“제가 침을 놓을 겁니다. 아직 완전히 붙지 않은 낡은 각질과 새 살을 떼어낼 거예요. 하지만 이 과정이 엄청 고통스러워요. 뼈를 깎는 정도의 고통이에요. 참다가 기절하실까 봐 걱정이네요.”“마취제를 놓을 순 없나요?”“그건 안됩니다.”“아 네...”기윤미는 자초한 결과에 미친 듯이 후회됐다. 진작 강책의 말대로 했다면 이 지경까지 이를 필요도 없었을 텐데!그녀는 결국 마지못해 강책의 침을 맞기로 했다.고통을 참을 순 있어도 추악한 몰골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이어서 사람들은 방 하나를 비워둔 채 침대를 마련하여 임시로 병실을 만들었다. 한우식은 자신이 챙겨온 침을 전부 강책에게 건넸다.기윤미의 허락하에 뭇사람들은 그녀를 병상에 꽁꽁 묶어두고 혀 깨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입에 수건을 물게 했다.“준비됐어요?”강책이 물었다.기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스마 넘치던 그녀는 끝내 두 눈에 두려움
강책은 기윤미의 얼굴에 연고를 바른 뒤, 붕대로 그 부분을 감싸고는 그녀에게 매일 한 번씩 연고를 갈아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일주일이 지나면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강책은 몸을 돌려 한쪽 옆으로 가서 맑은 물에 손을 씻었다.조해인은 얼른 사람을 시켜 기윤미를 묶은 밧줄을 풀어주라고 했다. 기윤미는 어느덧 힘이 빠진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날 기운조차 없었다. 조해인은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 자리를 떠났다.떠나기 전 기윤미는 마지막으로 강책을 되돌아보더니 고맙다는 말만 남겼다.강책이 아니라면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다.강책은 그녀에게 모진 굴욕을 당했음에도 더 따지지 않고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말끔히 처리해 주었다. 그의 인품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큰 은혜를 입은 기윤미는 이 일을 평생 간직하며 후에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강책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화와 복은 서로 공존해요. 사모님도 너무 속상해하실 필요 없어요. 이번의 ‘변화’ 로 피부가 적어도 10살은 젊어지셨잖아요.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오매불망 그리던 일인가요? 오히려 ‘축하’ 드린다고 말하고 싶네요.”뭐라고?10살 젊어지다니?장내에 있던 모든 여인이 가슴이 설렜다. 세상 어느 여자가 10살 젊어지는 걸 원치 않겠는가? 남자들도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한 중년 여성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강책 씨, 10살 젊어진다는 말이 진짜인가요?”강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럼요. 다만 우연의 일치일 뿐 모두가 똑같은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좀 전의 고통을 겪고 죽거나 폐인이 됐을 거예요. 사모님의 의지가 강하고 운이 따라줬으니 좋은 결과를 얻은 거죠.”“그렇군요...”중년 여성은 곧바로 포기했다.좀 전의 광경은 모두가 보다시피 젊어지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휠체어에서.기윤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한순간 손해를 보았지만 이로 인해 이익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방금 그 고통을 겪은 후 10살 더 젊어진 것은 참으로 보람찬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