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들이 반태승을 데리고 떠난 뒤, 방안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그리고 이때 반승우의 목소리가 적막을 다시 깨뜨렸다.“그 자료 손에 넣는다고 해도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그래서 반승우 씨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내 말만 들으면 노인네 목숨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물론 성혜인 목숨도 가만히 두겠습니다. 그때도 그 여자 때문에 일찌감치 몸을 빼려고 한 거 아닙니까?”반승우는 대답하지 않았고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반승우는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한숨마저도 어둠에 묻어버렸다....반승제 측의 사람들은 밤새 찾아다녔지만, 반태승의 종적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하여 반승제는 반태승이 스스로 그 사람들과 떠난 것이라며 추측했다.아니면 단 하나의 실마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리가 없다.이때 집사로부터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도련님, 회장님 침실 쓰레기통에서 피 묻은 손수건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회장님 병세가 호전된 것이 아니라 더욱 악화한 거 같습니다.”반승제의 두 눈에는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고 말투는 대수롭지 않지만, 위엄이 가득 베어 있었다.“할아버지 병세에 대해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그동안 의사한테 검사도 받았잖습니까?”“회장님께서 약도 꼬박꼬박 드셨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회장님의 병세에 대해서 말을 아끼셨습니다. 게다가 회장님께서 활기찬 모습만 보여주셔서, 우린 호전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반승제는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무르며 전화를 끊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도대체 누굴까? 몸도 편찮으신 분을 불러낸 사람이 누굴까?’그러던 찰나 문득 무언가가 번쩍이더니 즉시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지난번에 우리 형 살아 있다고 한 거 사실이야?”“지문은 최근에 지문이었어. 세상에 똑같은 지문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할아버지 실종되셨는데, 우리 형이 불러서 나가신 거 아닐까?”반태승의 실종은 결코 반씨 가문 만의 일이 아니라 위에도 관련되어 있다.하여 서주혁은 순간 신중해지면서 눈
“아니.”반승제는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는데, 이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역력했다.성혜인은 단 한 번도 반승제와 반승우의 상황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지만, 반승우는 반씨 가문에서 사랑을 받고 그와 반대로 반승제는 홀대를 당했다는 건 명확히 알고 있다.더 이상 이 화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성혜인은 편안하게 조수석에 기대었다.반씨 고택에 이르러서 성혜인은 반승제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그중 한 방문 앞에 섰는데, 밖에서 잠겨 있는 방이고 오랫동안 안으로 들어간 이가 없어 보였다.반승제는 집사에게 키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집사는 참지 못하고 당부의 말을 했다.“도련님, 안에 있는 물건들은 함부로 만지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사모님께서 그전까지만 해도 자주 들어가셨습니다.”여기서 사모님은 김경자를 가리키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김경자는 반승우를 편애하는 쪽이다.반승제는 키를 건네받아 문을 열었는데, 열자마자 텁텁한 먼지 냄새가 풍겨왔다.게다가 커튼도 닫은 상태라 어둡기 그지없다.성혜인도 방으로 들어서려고 했으나, 집사가 나서서 말렸다.“성혜인 씨, 죄송합니다만 이 방은 반씨 가문 극소수의 구성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사모님께서 당부하셨습니다.”그 말은 즉 반씨 가문 사람일지라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성이 다른 사람은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이다.성혜인은 전에 김경자의 태도가 떠올라 스스로 발걸음을 멈추었다.비록 김경자는 지금 제원을 떠났지만, 갑자기 문득 돌아올 수도 있으니, 불필요한 화를 끌어오고 싶지 않았다.반승제느 들어서자마자 커튼을 젖히고 그 중한 수납장 앞으로 걸어갔는데, 그 위에는 반승우에게 받은 선물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모두 작은 선물들이라 일일이 검사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와 관련된 단서는 없었다.시선을 아래로 옮기며 반승제는 반승우와 찍은 사진에 시선을 두었다.두 형제는 눈매가 좀 비슷한데, 반승우는 부드러운 스타일이고 그를 보게 되면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
성혜인은 반승제가 지금 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에 대해 깊이 알고 싶지 않았다.고개를 돌려 차창 밖의 햇살을 바라보면서 반태승의 안위가 걱정될 뿐이었다.그러나 반승제는 성혜인을 S.M으로 바래다주며 당부했다.“회사 일 잘 처리해. 반씨 가문은 한 동안 좀 바쁠 거 같아.”반승제가 말한 “바쁠 거 같아”는 반기범 그 무리 사람들을 가리킨다.성혜인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수심이 짙은 모습으로 성혜인은 회사 건물로 들어섰고 반승제는 반기범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받게 되었는데, BH 그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반승제는 액셀을 밟았을 끝까지 밟아 곧 BH 그룹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위층으로 향했다.가장 위층의 분위기는 매우 이상했다. 반기범은 그 동안 각종 서류 처리를 하고 있었고 가장 위층의 직원들은 반승제를 못 본지 한참 되었었다.그들은 반승제를 보고 이제 막 입을 열려고 했으나, 조금 전 반기범을 포함한 한 무리의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간 것을 보고 오늘 BH그룹에 거센 바람이 일 거 같다며 감히 선뜻 나서서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반승제는 차가운 모습으로 홀 가장 중앙에 섰다. 그러고 나서 음침하기 그지없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직원들 사이를 지나갔는데, 그 순간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그렇게 반승제는 회의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문을 여는 순간 가장 중간 자리에 앉은 반기범이 시선으로 들어왔는데, 그 자리는 줄곧 반승제가 앉던 자리였다.하지만 반기범은 인제 버젓이 그곳에 앉아 그를 두목으로 한 다른 임원들은 말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지금껏 쭉 반승제를 믿고 지지해 왔던 임원들은 그가 없는 시간 동안 억울함을 많이 당했는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구세주라도 본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대표님, 드디어 오셨네요.”“대표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자리에서 일어선 임원들은 3분의 2를 차지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이미 반기범 진영으로 넘어간 것
반기범은 다시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승제야, 이분은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한성 그룹의 사장님이시다.”반승제는 뒤로 몸을 기대며 탄탄한 근육라인이 양복을 뚫고 나와 날카로움을 과시했다.“알고 있습니다.”말하면서 반승제는 한성 그룹 사장을 바라보았다.“베팅 계약을 체결한 사이라 모를 리가 없습니다.”이에 반기범은 냉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 전에 사장님과 체결한 베팅 계약이 곧 기한이 다 된다고 들었는데, 만약 계약대로 한성 그룹의 5% 지분을 얻지 못할 시, 넌 BH 그룹의 20%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네.”무덤덤한 반승제의 태도에 다들 왠지 모르게 울화가 차올랐다.거창하게 판을 깐 반기범과 달리 반승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에 다들 그를 진흙탕 속으로 던져 미친 듯이 짓밟으며 세상의 모든 고통을 느껴봤으면 했다.반기범은 입을 열어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옆에 앉아 있는 임경헌이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사촌 형 베팅 계약 기한까지 아직 며칠 남았잖아요.”그러자 반희월은 즉시 임경헌을 꾸짖었다.“경헌아, 넌 가만히 있어.”임경헌은 얼마 전 여자 친구와 함께 해외로 휴가를 떠났었다.하지만 그 휴가에서 여자 친구의 식견이 무척이나 좁음을 느끼며 모든 감정이 조금씩 사라져 버렸다.그래서 주저없이 이별을 고했는데, 여자친구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붙잡았고 이에 임경헌은 머리가 아팠었다.어젯밤 귀국하자마자 요즘에 일어난 모든 일을 알게 되었고 성혜인이 바로 사촌 형이 거들떠도보지 않았던 전 사촌 형수라는 것까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임경헌은 머리가 텅 비어 있었는데, 반태승이 실종되고 사촌 형인 반승제가 더 이상 BH 그룹의 사장이 아님을 듣게 되었다.모든 것이 폭풍우처럼 밀려와 임경헌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그래서 어머니 따라 보러 온 것이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반승제를 밀어내려는 것이 확실하다며 생각했다.전에 사
“고모, 경헌이한테 그럴 필요 없어요.”반승제의 블랙홀과 같은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는 반희월을 향했고 이에 반희월은 온몸이 굳어졌다.비록 입으로는 아들을 욕하고 나무라 하지만, 모두 아들을 위한 마음에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전에도 임경헌을 때린 적이 있으나, 지금처럼 얼굴에 선명한 자국이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조금 전 한순간에 반희월은 단지 아들이 못나 보여서 지금껏 쏟아부은 자기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아서 그런 것이다.반승제의 두 눈을 마주하며 반희월은 주먹을 꽉 잡아당긴 채 목소리도 한껏 부드러워졌다.“경헌이 넌 앞으로 한 글자도 말하지 마.”왜냐하면 반기범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들이 이미 연합하여 위에 전문 조사팀을 조성하여 조사에 임하게끔 신청했다.반태승은 위쪽에서 아직 여세가 남아 있어 그의 실종은 거대한 음모를 끌어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연루될 수도 있다.반승제는 주범으로 반드시 엄하게 벌을 받을 것이고 만약 엄중할 경우에는 모든 재산이 동결되고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다.하여 반희월은 자기 아들이 이쯤에서 그와 엮이는 것을 거북해하고 반씨 가문 다른 사람들의 의심까지 초래할까 봐 두려웠다.이때 반기범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승제야, 너 정말로 경헌이를 위한다면, 내가 제기한 요구에 승낙해야 한다.”모든 지분을 내놓고 반씨 가문에서 당장 나가는 것.하지만 반승제가 승낙한다고 한다면 그에게는 절대 내일이 없을 것이다.반기범은 절대 이렇게 대단한 경쟁 대상이 살아 숨 쉬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반기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약서 하나를 반승제 앞으로 천천히 밀었다.“승낙한다면 이 계약서에 사인하면 된다. 네 발로 반씨 가문을 떠나면 위에서 회장님 일에 관해 조사를 펼칠 때 우린 널 위해 합의도 해줄 수 있다. 아니면, 네가 곧 직면하게 될 일은 감옥에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듣기 좋게 말하면 계약서이지만, 실은 불공평한 조약으로 반승제가 무상으로 손에 있
반승제가 눈살을 찌푸리고 좌중을 훑어보더니 말했다.“둘째 큰아버지, 저번에 저한테 맞으시더니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대체 왜 당신이 절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그 말을 들은 반기범이 얼굴을 붉혔다.지난번, 그가 성혜인에게 모욕을 주는 바람에 반승제가 그를 돌려차기로 기절시킨 적이 있었다.사람들 앞에서 이 수치스러운 일이 밝혀졌지만, 반기범은 왜 반승제에게 맞았는지 이유조차 해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반승제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고 심인우가 곧 그 뒤를 지키며 따라 나갔다.사실 심인우도 반승제에게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저 그를 깊이 신뢰할 뿐이었다.그때 반승제가 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심인우에게 말했다.“내가 만약 조사받으러 잡혀 가게 되면 꼭 성혜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그 말을 들은 심인우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성혜인 아가씨한테 알리라고?’‘하지만 이건 반씨가문 내부의 일인데, 성혜인 아가씨가 온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을까?’여기까지 생각한 심인우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힘든 상황일수록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 대표님께서는 성혜인 아가씨가 자신을 정말로 걱정하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대표님은 아직 성혜인 아가씨가 자신을 진짜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녀가 만약 반승제가 현재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면 그를 도우러 나설까, 아니면 그와 하루빨리 관계를 끊으려고 할까.만약 지금처럼 반승제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를 도우러 나선다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성혜인이 반승제와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면, 반승제도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게 그녀의 날개를 꺾어 자신의 새장 안에 가두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심인우는 반승제와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지라 한마디만 듣고도 그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회의실 문이 열리고 그
얼마 지나지 않아, 반씨 가문의 계승자가 반기범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쭉 퍼졌다.사람들은 수수방관의 태도를 고수했으나 한편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반승제가 누구던가. 그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경고를 들으며 자랐다. 반승제는 사업을 함에 있어서 손속에 자비가 없으니 절대 그를 건드리지 말라고.근데 지금 반기범이 그 반승제의 위치를 대체한다고?하지만 소문은 반씨 가문 측에서부터 시작된 터라 신빙성이 있었다. 게다가 반승제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단기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그 시각, 회사에 있는 성혜인의 맞은편에는 사설탐정 몇 명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사설탐정들을시켜 도송애의 스캔들을 찾아내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자들에게 넘기면 도송애는 여론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심지어 도송애와 관계가 좋은 몇몇 고위 인사들도 남녀 관계가 아주 복잡했다.단적인 예로, 도송애의 오른팔이라 불릴 수 있는 조강우 이사는 그녀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다만 도송애가 남자를 핍박하는 취향이 있었다면 조강우는 자기 회사의 연예인들을 취하는 취향이 있었다.고위 인사들의 이런 더러운 일들이 모두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 TJ 엔터의 이미지는 아마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그러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소문이 퍼진 인사들은 모두 축출시켜야만 한다.성혜인은 사설 탐정들에게 꼭 결정적인 동영상을 찍을 것을 당부했다.사설탐정들을 보내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장하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성 대표님, 반 대표님 쪽에 일이 좀 생긴 거 같아요. BH 그룹의 친구한테서 들었는데 반 대표님이 잡혀가셨대요.”“누구한테 잡혀갔는데?”“경찰 특수팀 사람들이 반 대표님을 조사할 게 있다면서 데려가셨대요. 근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에 조사받으시는지는 모르고, 다만 BH 그룹의 대표가 바뀔 거라는 소문이 쫙 퍼졌대요.”성혜인은 당장 반승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그녀는 목소리에서부터 곱게 자란 티가 줄줄 흘러나왔다.온수빈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다 끝마치고 돌아온 상태였고 그가 이번 촬영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팬들 사이에도 소문이 쫙 퍼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가 이번에 참가 하지 않는다고 번복한다면 온수빈이 악플에 시달릴 건 물론이고 S.M엔터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었다.설씨 가문의 공주님이 말한 대로 성혜인은 이 일을 수습 할 능력이 없었다.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이어서 말했다.“성혜인 씨, 지금부터 승제 오빠한테 먼저 연락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당신과 당신 회사 다 내가 부숴버릴 거니까. 저 인내심 없는 거 아시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시면 저 건드리지 마세요.”그리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고, 성혜인은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와 동시에 설우현은 여동생이 곧 제원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꼭 쥐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형이 너 오는 거 허락했어? 어머니랑 아버지는 허락하셨고?”설씨 가문의 공주님은 습관적으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큰오빠랑 엄마는 다 동의하셨어. 근데 아빠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셨고. 작은오빠, 승제 여보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데 나 정말 그 사람 곁에서 도움이 되고 싶어. 오직 나만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려 주고 싶단 말이야.”설우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침묵했다.설우현은 줄곧 성혜인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게다가 작은 공주님은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고 심장도 좋지 않아서 제원에 왔다가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누가 그 책임을 진단 말인가.“동생아, 그냥 지금처럼 북미에서 계속 지내지 그래?”“작은오빠, 솔직히 말해 봐. 성혜인더러 승제 여보한테서 떨어지라고 말한 적 있어 없어? 내가 부탁한 거 그냥 귓등으로 들은 거 아니야? 오빠도 설마 그 성혜인 좋아하는 거야?”“말도 안 되는 소리 하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