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가 눈살을 찌푸리고 좌중을 훑어보더니 말했다.“둘째 큰아버지, 저번에 저한테 맞으시더니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대체 왜 당신이 절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그 말을 들은 반기범이 얼굴을 붉혔다.지난번, 그가 성혜인에게 모욕을 주는 바람에 반승제가 그를 돌려차기로 기절시킨 적이 있었다.사람들 앞에서 이 수치스러운 일이 밝혀졌지만, 반기범은 왜 반승제에게 맞았는지 이유조차 해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반승제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갔고 심인우가 곧 그 뒤를 지키며 따라 나갔다.사실 심인우도 반승제에게 어떤 방법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저 그를 깊이 신뢰할 뿐이었다.그때 반승제가 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심인우에게 말했다.“내가 만약 조사받으러 잡혀 가게 되면 꼭 성혜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그 말을 들은 심인우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성혜인 아가씨한테 알리라고?’‘하지만 이건 반씨가문 내부의 일인데, 성혜인 아가씨가 온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을까?’여기까지 생각한 심인우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힘든 상황일수록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 대표님께서는 성혜인 아가씨가 자신을 정말로 걱정하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대표님은 아직 성혜인 아가씨가 자신을 진짜로 좋아하는지 아닌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녀가 만약 반승제가 현재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면 그를 도우러 나설까, 아니면 그와 하루빨리 관계를 끊으려고 할까.만약 지금처럼 반승제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를 도우러 나선다면 그건 좋아하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성혜인이 반승제와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면, 반승제도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그게 그녀의 날개를 꺾어 자신의 새장 안에 가두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심인우는 반승제와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지라 한마디만 듣고도 그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대표님.”회의실 문이 열리고 그
얼마 지나지 않아, 반씨 가문의 계승자가 반기범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쭉 퍼졌다.사람들은 수수방관의 태도를 고수했으나 한편 놀라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반승제가 누구던가. 그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경고를 들으며 자랐다. 반승제는 사업을 함에 있어서 손속에 자비가 없으니 절대 그를 건드리지 말라고.근데 지금 반기범이 그 반승제의 위치를 대체한다고?하지만 소문은 반씨 가문 측에서부터 시작된 터라 신빙성이 있었다. 게다가 반승제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단기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다.*그 시각, 회사에 있는 성혜인의 맞은편에는 사설탐정 몇 명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사설탐정들을시켜 도송애의 스캔들을 찾아내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기자들에게 넘기면 도송애는 여론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심지어 도송애와 관계가 좋은 몇몇 고위 인사들도 남녀 관계가 아주 복잡했다.단적인 예로, 도송애의 오른팔이라 불릴 수 있는 조강우 이사는 그녀와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다만 도송애가 남자를 핍박하는 취향이 있었다면 조강우는 자기 회사의 연예인들을 취하는 취향이 있었다.고위 인사들의 이런 더러운 일들이 모두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 TJ 엔터의 이미지는 아마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그러면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소문이 퍼진 인사들은 모두 축출시켜야만 한다.성혜인은 사설 탐정들에게 꼭 결정적인 동영상을 찍을 것을 당부했다.사설탐정들을 보내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장하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성 대표님, 반 대표님 쪽에 일이 좀 생긴 거 같아요. BH 그룹의 친구한테서 들었는데 반 대표님이 잡혀가셨대요.”“누구한테 잡혀갔는데?”“경찰 특수팀 사람들이 반 대표님을 조사할 게 있다면서 데려가셨대요. 근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에 조사받으시는지는 모르고, 다만 BH 그룹의 대표가 바뀔 거라는 소문이 쫙 퍼졌대요.”성혜인은 당장 반승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그녀는 목소리에서부터 곱게 자란 티가 줄줄 흘러나왔다.온수빈은 이미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다 끝마치고 돌아온 상태였고 그가 이번 촬영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팬들 사이에도 소문이 쫙 퍼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가 이번에 참가 하지 않는다고 번복한다면 온수빈이 악플에 시달릴 건 물론이고 S.M엔터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었다.설씨 가문의 공주님이 말한 대로 성혜인은 이 일을 수습 할 능력이 없었다.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이어서 말했다.“성혜인 씨, 지금부터 승제 오빠한테 먼저 연락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당신과 당신 회사 다 내가 부숴버릴 거니까. 저 인내심 없는 거 아시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시면 저 건드리지 마세요.”그리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고, 성혜인은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와 동시에 설우현은 여동생이 곧 제원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핸드폰을 꼭 쥐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형이 너 오는 거 허락했어? 어머니랑 아버지는 허락하셨고?”설씨 가문의 공주님은 습관적으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큰오빠랑 엄마는 다 동의하셨어. 근데 아빠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하셨고. 작은오빠, 승제 여보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데 나 정말 그 사람 곁에서 도움이 되고 싶어. 오직 나만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려 주고 싶단 말이야.”설우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침묵했다.설우현은 줄곧 성혜인이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게다가 작은 공주님은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고 심장도 좋지 않아서 제원에 왔다가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누가 그 책임을 진단 말인가.“동생아, 그냥 지금처럼 북미에서 계속 지내지 그래?”“작은오빠, 솔직히 말해 봐. 성혜인더러 승제 여보한테서 떨어지라고 말한 적 있어 없어? 내가 부탁한 거 그냥 귓등으로 들은 거 아니야? 오빠도 설마 그 성혜인 좋아하는 거야?”“말도 안 되는 소리 하
성혜인이 흘러내리는 커피를 닦으며 반희월을 바라보았다.반희월은 경멸이 가득 찬 눈으로 그녀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반희월이 접한 성혜인의 소식은 모두 안 좋은 것들뿐이었다.그녀가 보기에 성혜인이 반승제를 꼬드기는 바람에 반승제가 일을 손에서 놓았고, 그 덕에 반씨 가문이 지금처럼 변하게 된 것이었다. 성혜인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그런데 심지어 자기 아들이 가만히 나가서 한다는 짓이 성혜인이랑 단둘이 만나는 거라니.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참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고 하며 오히려 자식들을 상처 입히는 일을 했다. 마치 사랑이 모든 일의 면죄부라도 되는 듯 말이다.성혜인은 그녀에게 반박하려고 했지만, 결국엔 하려던 모두 말을 삼키고 겨우 한마디만 내뱉었다.“사모님께서 정말 경헌씨를 위한다면 지금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실 텐데요.”반희월은 정곡을 찔린 듯 자리에 굳었다.임경헌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성혜인이 가방을 챙기고 계산하고 나가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했다.성혜인이 던진 한마디는 반희월에 가슴 속에 납덩이처럼 눌러앉아 오랫동안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임경헌이 떠나는 것을 보며 그녀는 다급하게 아무 말이나 꺼내려고 했지만, 쌀쌀맞은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는 결국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반희월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넋이 나간 듯 가죽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한편, 차에 탄 성혜인은 임경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유리를 두드리자, 그녀가 창문을 내렸다.“페니 씨, 미안해요.”“임경헌 씨,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위로의 말을 들었으나 임경헌은 풀이 죽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룻밤 새 그는 많이 성장한 듯싶었다. 예전의 그는 제멋대로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도련님이었다면, 지금은 많이 진중해졌다.성혜인은 반씨 가문에서 지금 가장 힘든 건 임경헌이 아닐지 생각했다.그는 그저 여자 친구와 함께 외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왔을 뿐인
반승제가 태연하게 말했다.“그냥 해본 말이에요. 나흘 동안은 여기 있을 생각이니까 방 하나 준비해 주세요. 반씨 가문 쪽에는 제 상황 알리지 마시고요.”“걱정하지 마세요. 반승제씨 비밀이 새어 나갈 일은 없습니다.”이윽고 반승제는 유일한 스위트룸으로 안내되었다.반승제가 나가고 남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아까 그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일이 아주 복잡해졌을 것이다.그는 서둘러 청소부를 불러 당부했다.“요 며칠 동안 반승제 씨한테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원하시는 게 있으면 다 들어 드리고요. 하루 세 끼는 시간 맞춰 꼬박꼬박 드려야 해요, 아셨죠?”“네, 알겠습니다.”반승제는 스위트룸에 들어온 후 창가 옆의 의자에 앉았다.스위트룸은 꽤 조용했다.그는 핸드폰을 꺼내서 성혜인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아마 반씨 가문의 일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했을 것이다.그는 자신이 대외로는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졌다는 걸 상기하며 전화를 꺼버리고 한쪽으로 치워버렸다.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턱을 괴고는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성혜인이 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반승제의 전화기는 이미 꺼져 있었다.그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예전에 일하면서 알게 됐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다들 반승제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고는 도우려 하지 않았다.지금 반승제는 거의 범인으로 확정된 상태라 서주혁과 온시환조차 도우려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도우려 할 리가 없었다.그녀는 마지막으로 진세운을 찾아갔다. 서주혁과 온시환이 바로 그녀를 거절한 데 비해 진세운은 적어도 그녀와 만나 주기라도 했다.그녀는 바로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해 진세운의 개인 사무실로 들어갔다.진세운은 방금 수술을 끝냈는지 손을 소독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온 것을 보더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앉으세요.”성혜인이 자리앉자, 진세연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제가 알아본 데 의하면 성혜인씨는 성씨 가문의 친딸이
때문에 지금 그녀에게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배현우를 알고 심지어 배현우와 그녀 둘만의 약속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성혜인은 편지를 열어 그 남자의 따스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그녀는 그가 정말로 죽었는지 알고 싶었다.그건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괴롭힌 수수께끼였고 새벽에 잠을 깨우는 악몽이었다.만약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그의 신분과 진짜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 반지와 편지는 영원히 그녀의 마음에 혹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그리고 반승제의 마음에 혹처럼 남을 것이기도 했다.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물건을 상자에 잠가놓고 다시 한번 진세운을 찾아갔다.진세운은 그녀가 떠난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진세운 씨, 정말 반승제 씨가 괜찮을 거라고 확신하시는 거죠? 그에게 방법이 있을 거라고.”진세운이 의료용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주혁이가 이렇게 덤덤한 걸 보면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해요. 서주혁이 당황하기 시작했다면 그때는 정말로 문제가 생긴 걸 테고요.”성혜인이 한숨을 쉬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다면 전 볼 일이 있어서 며칠 동안 제원을 좀 떠나 있어야겠어요.”진세운이 그녀를 흘깃 보더니 정곡을 찔렀다.“결정을 하시려나 보네요.”“네.”“미리 축하해요.”진세운이 자신의 명함을 한 장 꺼내서 그녀에게 쥐여주더니 웃으며 말했다.“만약 승제를 선택한다면 앞으로 저한테 와서 진찰받으세요. 전부 반값으로 해드릴 테니까.”명함을 받은 성혜인은 우중충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며 동시에 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그녀는 병원을 나와 메시지에서 봤던 주소로 차를 몰았다.옆도시의 마을에 도착하면 이미 다음날이었다. 그렇기에 반승제의 베팅 계약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돌아올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현재로서 그녀는 반승제가 괜찮을 거라던 진세운의 말을 믿는 방법밖에 없었다.만약 정말로 반승제에게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반기훈이 있는 곳을 찾아가 소식을
심인우는 웬만하면 성혜인의 편을 들어 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성혜인이 왜 꼭 지금, 이 타이밍에 떠나야 했는지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솔직히 말해 심인우도 성혜인에게 약간 실망했다. 그는 그래도 성혜인이 며칠은 더 애써 줄 줄 알았다. 비록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대표님을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그녀는 포기가 너무 빨랐고 이번 일은 그녀가 과연 반승제를 좋아하긴 했나 의심하도록 만들었다.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반승제는 창밖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창밖은 이미 땅거미가 졌다.이 밤, 아마 많은 사람이 잠들지 못할 것이다.많은 사람이 반씨 가문의 미래를 궁금해할 것이고 또 많은 사람이 반승제의 결말을 궁금해할 것이다.불세출의 반승제, 결국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모든 사람이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고 있을 때, 오직 반승제만이 어두운 눈빛으로 날마다 하염없이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이튿날.성혜인은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오후가 되어서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그녀는 메시지가 온 번호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일단 민박을 잡았다.저녁 7시, 그녀가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고 이번엔 몇 초간 연결이 되는가 싶더니 바로 전화가 끊어졌다.그녀는 창가에 앉아 마을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강물과 그 위에 떠 있는 몇 척의 배를 바라보았다.마을엔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고 그 덕에 지난 몇 년간 여행객이 끊임없이 찾아왔었다.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별안간 핸드폰이 울리더니 메시지로 한 가게의 이름이 도착했다.성혜인은 반지와 편지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가게의 위치를 물으며 그곳을 찾아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에 도착한 성혜인은 종업원을 따라 정원으로 들어갔다.정원에는 정원 전체를 가릴 만큼 큰 그늘을 가진 나무가 중간에 버티고 서 있었는데, 나뭇가지에는 소원을 적은 붉은 끈이 몇 개 묶여 있었다.도시
”반승우, 가식 떨지 말고 인정해. 넌 내가 제일 잘 알아, 너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거잖아.”이미 완전히 기절한 성혜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제원.시간은 이미 이틀이나 지났다. 반승제는 혹시나 성혜인이 자신을 보러 오진 않을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말이다.하지만 성혜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심인우만 두 번째 방문했다.“성혜인은 아직도 안 왔어?”“네, 하지만 방금 회사 측에 연락해 봤는데 페니 아가씨께서 한 주 뒤의 스케줄을 이미 다 잡아놨다고 하십니다. 결국 한 주가 지나서야 돌아오실 것 같아요. 아직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반승제는 얼굴을 구긴 채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창밖은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지는 태양이 마치 자신의 자작극을 비웃는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반승제는 실망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대표님, 혹시 페니 아가씨가 도움을 구하러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요?”하지만 심인우의 위로는 반승제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성혜인이 만약 정말 도움을 구하러 간 것이었다면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제원을 떠났을 리가 없었다.그가 손가락을 몇 번 탁자에 두드리고 있을 때, 바로 몇 분 전에 켠 핸드폰이 울리더니 낯선 번호로부터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그는 한눈에 사진 속의 성혜인을 알아봤다.그리고 사진 속에는 등을 보인 한 남자도 있었는데, 그는 마치 그녀의 귓가에 키스라도 하려는 듯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둘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서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길가의 등불이 어두워서 성혜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딱히 반항하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반승제는 사진을 보고는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을 뿐, 핸드폰을 한쪽에 치워 버리고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문자를 보낸 사람도 보통이 아닌 것이, 의미심장한 사진 한 장만을 보냈을 뿐 아무런 사족도 붙이지 않았다.나흘 후.반승제와 한성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