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우, 가식 떨지 말고 인정해. 넌 내가 제일 잘 알아, 너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거잖아.”이미 완전히 기절한 성혜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제원.시간은 이미 이틀이나 지났다. 반승제는 혹시나 성혜인이 자신을 보러 오진 않을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말이다.하지만 성혜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심인우만 두 번째 방문했다.“성혜인은 아직도 안 왔어?”“네, 하지만 방금 회사 측에 연락해 봤는데 페니 아가씨께서 한 주 뒤의 스케줄을 이미 다 잡아놨다고 하십니다. 결국 한 주가 지나서야 돌아오실 것 같아요. 아직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반승제는 얼굴을 구긴 채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창밖은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지는 태양이 마치 자신의 자작극을 비웃는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반승제는 실망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대표님, 혹시 페니 아가씨가 도움을 구하러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요?”하지만 심인우의 위로는 반승제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성혜인이 만약 정말 도움을 구하러 간 것이었다면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제원을 떠났을 리가 없었다.그가 손가락을 몇 번 탁자에 두드리고 있을 때, 바로 몇 분 전에 켠 핸드폰이 울리더니 낯선 번호로부터 한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그는 한눈에 사진 속의 성혜인을 알아봤다.그리고 사진 속에는 등을 보인 한 남자도 있었는데, 그는 마치 그녀의 귓가에 키스라도 하려는 듯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둘 사이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서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길가의 등불이 어두워서 성혜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딱히 반항하지 않고 얌전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반승제는 사진을 보고는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을 뿐, 핸드폰을 한쪽에 치워 버리고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문자를 보낸 사람도 보통이 아닌 것이, 의미심장한 사진 한 장만을 보냈을 뿐 아무런 사족도 붙이지 않았다.나흘 후.반승제와 한성
장사장 이마의 땀이 점점 많아지자 반기범은 사람을 시켜 회의실의 에어컨을 켜게 했다.여름이 다가오고 있는지라 확실히 조금 덥긴 했다.“장사장님, 사람을 시켜서 차가운 차를 한잔 내오게 할게요.”장사장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어찌 이 사람들이 주는 차를 마실 수 있을까. 차라도 한잔 얻어 마셨다가 반승제 씨가 배신이라고 생각하면 큰일이었다.장사장은 반승제보다 20살이나 많았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에는 존경이 가득했다.하지만 반기범을 대할 때는 사뭇 다른 태도로 손을 휘휘 젓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었다.반기범은 깍듯한 태도로 장사장을 대했다. 왜냐면 그의 손을 통해야만 20%의 지분을 얻을 수 있으니까.어느덧 시간이 흘러 반 시간만을 남겨두고 있었을 때, 회의실 내 반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반승제는 아직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던데. 그럼 이 베팅 계약이 끝나고 그를 도와줄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누가 도와준다고 그래요. 그가 거들먹거리는 걸 아니꼽게 본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에요? 우리보다 어린 주제에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는 게 얼마나 꼴 보기 싫었던지. 한 번쯤 밟아줄 때도 됐어요. 아니면 세상을 너무 쉽게 안다니까요.”“그리고 그 성혜인도 베팅 계약이 끝나기만 하면 진짜로 스카이웨어에 데려가서 손님 접대 시킬 거예요. 아가씨나 시키고 술이나 따르게 하죠. 성혜인도 우리 반씨 가문에 빚진 게 있잖아요. 그녀가 살고 있는 포레스트가 반씨 가문의 돈이 아니면 뭐예요?”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반승제의 주식을 탐낼 뿐만 아니라 포레스트도 탐내고 있었다.포레스트는 값이 꽤 나갔다. 반회장님이 그녀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포레스트를 그녀에게 결혼 전 재산으로 선물 해줬을까.몇백억의 값이 나가는 집인데 눈독을 들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집을 팔기만 해도 그 돈으로 여러 항목에 투자할 수 있었다.사람들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서로를 흘깃흘깃 쳐다봤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뺀 모든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오직 한성 그룹의 장사장만이 분위기에 끼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계약만료 기한까지 3분 정도 남았을 때, 반씨 가문의 사람들은 BH 그룹의 임원들을 불러 반기범이 BH 그룹의 새로운 대표가 되었음을 발표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모두 반기범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 난 상태였기에,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하고 회의실 문을 활짝 열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원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이번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저번 회의에 참석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다만 저번 회의 때 반승제 측에 서있던 사람들이 희망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면, 이번 회의 때는 이미 반기범의 사람들에게 내리 나흘 동안 타격을 받았는지라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반승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웃음기를 띠며 말했다.“모두 다 모였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나 하겠습니다. 앞으로 BH 그룹의 대표는 저희 아버지십니다.”회의실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반기범 측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이 떨어져라 박수를 치고 있었다.반기범도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흥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꿈에서도 자신이 반승제를 무너뜨리고 대표가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는 오래 전 장사장과 체결 했던 계약서를 가져오며 애써 담백한 목소리로 말했다.“장사장님, 이제 당신에게 있던 BH 그룹의 20% 의 지분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계약에 따라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사들이도록 하죠.”장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회의실 문 쪽에 계속 시선을 두었다.반기범은 장사장 손에 있는 지분을 사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고 할 수 있었다.집도 담보로 내놓고, 수중에 있는 현금도 모두 긁어모았고, 심지어 은행으로부터 4,000억을 대출받기까지 했다.반기범은 20% 의 지분을 손에 넣고, 가지고 있는 다른 몇 개의 주식을 팔아서야 저당잡힌 자신의 지분과 집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회의실
반승제는 자리에 앉더니 탁자 위로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지난번 회의와 똑같이 진행되는 상황에 반기범 측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반기범을 바라보았고, 반기범은 주먹을 꼭 쥔 채 낯빛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베팅 계약은 끝났고 승제 네 손에 있던 20%의 지분은 이미 내 손에 넘어왔어. 지금 여기 온건 네 얼굴에 먹칠 하는 것 밖엔 안 돼.”반승제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보았다.굳이 반승제가 입을 열 필요도 없이 장 사장이 대신 말해주었다다.“끝났든 안 끝났든 그게 무슨 상관이죠? 반승제 씨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애초에 저는 한성 그룹의 5%의 지분도 반승제 씨한테 주려고 했어요. 근데 반대표님이 한사코 사양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거고요.”장사장은 지금까지 반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을 대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반승제에게 살갑게 굴고 있었다.장사장의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그가 지분을 반승제에게 주려고 했다는 건 반승제는 이미 이 베팅 계약에서 이긴 것이나 다름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베팅 계약이 끝난 후에야 느긋하게 현장에 도착했다.‘말도 안 돼!’반기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장사장에게 화를 냈다.“장사장님, 지금 그게 무슨 뜻이죠?”“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반승제 씨는 이기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요.”장사장은 혹시 반승제가 더워할세라 곁에 있던 서류를 가져와 그에게 부채질을 해주었다.심인우는 반승제에게 아부를 떠는 장사장을 보며 겨우 웃음을 참았다.일전에 대표님이 장사장은 형세를 잘 읽고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말에 하나도 틀린 점이 없었다.현장에 있던 반씨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이기고 싶지 않다니, 반승제 너 허세 부리지마. 너한테 당한 게 얼만데 아직도 우리가 널 믿을 거 같아?”“그래, 맞아. 그러게 누가 어른들한테 그 따위로 대하라고 했어? 네 형이랑 비하면 넌 아직 멀었어.”“원래
반승제는 상석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1분이 지난 후 그가 반기범에게 말했다.“둘째 큰아버지, 장사장님 손에 있는 20% 의 지분을 사기 위해 집도 내놓으시고, 현금도 내놓으시고, 심지어 은행에 4000억도 빌리셨다면서요. 이제 어쩌시려고요.”그는 웃음을 지으며 현장에 있는 다른 반씨 가문의 사람들도 쭉 보았다.아까까지 의기양양하던 사람들은 모두 목을 움츠린 채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반승제는 담백한 시선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찬바람이 살을 후벼파는 듯했다.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굳힌 채 서로 눈치만 보기 바빴지 아무도 반승제에게 말을 걸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말도 안 돼. 이건 절대 말도 안 돼! 반승제, 네가 분명 더러운 수단을 썼을 게 뻔해.”몇 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일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던 찰나 반기범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반승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반기범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그 누구도 봐주지 않았다.“작은 아버지 손에는 현재 방금 사들인 20% 의 지분 밖에 없어요. 2가지 선택지를 드릴게요. 방금 그 지분을 시장가의 절반 가격으로 저한테 파세요, 그러면 제가 은행에 빚진 4000억을 갚아 드릴게요. 다른 한 가지 선택지는 제가 지금 당장 BH 그룹의 주식을 내려쳐서 당신 손에 있는 주식을 종이 쪼가리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어차피 저한테 있어서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으니까요.”2가지 선택지 모두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반승제가 이 미친 짓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그는 반기범에게 선택지를 주는 듯했지만 결국 두 선택지 모두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반기범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30% 의 주식을 저당잡히고, 또 두 배의 시장가격을 내세워서야 겨우 20% 의 주식을 사들였다. 하지만 지금 반승제에게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아 버린다면 그는 몇천억을 빚지
반승제는 웃긴다는 듯 등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다 같이 재현해 보세요.”임원은 지난 며칠 동안 같이 시달렸던 전우들을 끌어들이며 방금 벌어졌던 촌극을 다시 재현하기 시작했다.어떤 이는 손목이 떨어져라 박수를 쳤고, 어떤 이는 성혜인을 스카이웨어에 집어넣겠다고 큰소리쳤고, 어떤 이는 반승제가 감옥에 들어가도 싸다고 했다.반승제는 시종일관 표정 변화 없이 그들을 지켜보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박수 소리가 마치 자신들의 명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점점 사라지는가 하더니 결국 버티지 못한 한 사람이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승제야, 우리 모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단지 반기범이 눈치를 주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어. 우리 모두 사실 네가 BH 그룹의 대표가 되길 바라고 있었어. 게다가 반 회장님에 관한 일도 지금 경찰 특수팀이 조사하고 있는데, 네가 한 일이 아니라면 필시 반기범이 너한테 누명을 씌운 거겠지. 우리 모두 그 사람한테 속은 거야.”무릎을 꿇은 사람은 빨리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두서없이 말했다.하지만 그런다고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반승제는 이미 성혜인을 스카이웨어에 보내 접대시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눈빛이 차가워지며 입가에서 웃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말씀하시다니, 너무 늦은 것 같아요.”“승제야, 그래도 우리가 네 웃어른이잖아. 한 번만 기회를 줘.”반승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앞으로 매달 400만 원의 지출만 허락할 거예요. 이 숫자를 넘으신 분들은 알아서 반씨 가문에서 나가세요.”지금 당장 이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지 않는 건, 할아버지가 아직 계시기 때문이다. 반승제는 반태승이 노년에 외롭게 지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비록 이 사람들은 능력도 없고 남에게 빌붙을 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그중에는 반태승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자녀 중에서도 반태
심인우는 고개를 숙인 채 사무실 나가는 사람들과 아직 사무실에 남아서 서로 아부를 떠는 사람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그때 장사장이 몸을 일으키더니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심비서님, 그럼 저는 이만 먼저 북미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반승제 씨의 사업이 더 잘 번창하기를 기원합니다.”심인우는 장사장이 성격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인사했다.“네, 다음에 또 보시죠.”장사장은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아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심비서님, 대표님께 말 좀 전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몇 년 전, 대표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한성 그룹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저희는 그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심인우는 가슴이 약간 뭉클해졌다.이 바닥에서 이렇게 순수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많지 않았다.몇 년 전, 반승제도 장사장의 이런 인품을 알아보고 한성 그룹이 파산을 면하도록 도왔을 것이다.한성 그룹은 현재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이었는데, 그 가문은 95%의 지분을 주식 예탁 기관에 맡기고 있었다. 그 뜻인즉 장씨 가문은 서로를 믿고 뭉칠 수 있는 가문으로서 한성 그룹이 그 누구의 손에도 넘어가질 바라지 않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그리고 한성 그룹의 대표가 나머지 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건 그 가족들이 그에 대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이는 그들 가문이 얼마나 화목한지 잘 알려 주는 대목이었다. 반씨 가문의 복잡한 사정과는 다르게 말이다.“네, 알겠습니다. 대표님께서도 장사장님을 좋게 보고 계세요.”장사장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기분 좋게 자리를 떠났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자기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했다. 그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심인우는 사람들을 모두 지하 주차장까지 배웅하고, 그들의 차가 멀리 떠나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그는 반승제의 비서였기에 누구보다도 덤덤한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하지만 모든 사람을
온시환도 서주혁의 말을 거들었다.“맞아, 진짜 똑똑하긴 하더라. 우리한테 전화 몇 번 걸더니 바로 떠나더라니까. 한 발만 늦었어 봐, 반기범이랑 반승현이 무슨 짓이든 저질렀을걸. 그리고 누가 대표 아니랄까 봐 떠나기 전에 회사 일도 잘 정리 해놓고 떠나고. 정말 대단하셔.”두 사람은 비웃음을 가득 담아 말했고 반승제의 안목이 높지 않다며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하필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진세운은 오늘 자리에 없어서 성혜인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예전 같았으면 반승제는 두 사람의 말에 반박했을 테지만 오늘은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술잔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그는 현재 참을 수 없는 쓴맛을 느끼고 있었다. 술기운으로 이 맛을 누르려고 해보았지만 어쩐지 마시면 마실수록 더 입맛이 써지는 기분이었다.성혜인에게 있어서 한번 싫은 건 영원히 싫은 거고 무슨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나 보다.함께 밤을 보냈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다.반승제가 손에 들린 잔을 돌리며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설우현이 다가오더니 그를 불렀다.“반승제 씨, 잠깐 나와 봐요.”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술기운에 젖은 눈으로 설우현을 바라보며 거칠게 말했다.“꺼져.”미친!화가 난 설우현이 반승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내 동생이 제원에 온대. 걘 심장이 안좋으니까, 애지중지에 대해 줘야 해. 알겠어?”반승제는 짜증스러운 기분에 설우현의 손을 쳐내며 한마디 하려했지만 설우현이 더 빨랐다.“그리고 너랑 성혜인 씨 이미 끝난 사이 아냐? 내 동생 좀 보러 가는 게 뭐 어때서.”“내가 아무리 걔랑 끝났어도 네 여동생이랑은 안 만나.”설우현이 낯빛이 어두워져서 화를 내려는 찰나 뒤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작은오빠, 승제 여보 지금 많이 불편한 거 같아. 일단 그 손 좀 놓고 말하지 그래? 예의 없이 뭐 하는 짓이야.”룸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소문으로만 듣던 설씨 가문의 공주님이 서있었다.그녀는 마치 인형처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