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원래 반박하려고 했으나 문득 설우현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계약에 따라 이익도 얻었고 온수빈도 이미 할리우드 제작진에 들어갔는데, 지금 약속을 어기고 반승제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고개를 떨구고 성혜인은 손으로 시트를 꽉 잡아당겼다.순간 자기가 정말 몹쓸 인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하지만 성혜인은 운명에 고개를 숙여야 하고 절대 설씨 가문의 작은 딸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반 대표님께 말씀드려도 누군지 모를 겁니다.”“하지는 않았지? 그치?”“네.”반승제의 말투도 눈빛도 덤덤하기 그지없다.성혜인을 바라보고 있는 반승제의 두 눈에는 어떤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다.다시 눈을 감고 또다시 눈을 떠보니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나하고 많이 하면, 그 사람 잊혀지지 않겠어?”“아니요.”반승제는 다른 한 손을 자연스레 축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성혜인의 답을 듣고 나서 손가락 끝이 움츠러 들었다.입은 웃고 있지만, 두 눈에는 더없이 차갑다.“그래? 내가 그 사람보다 그렇게 못났어?”성혜인은 더 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설우현과 했던 약속을 잊지 말고 있어야 했다.“굳이 비교하자면, 반 대표님은 그 사람 손톱도 따라가지 못합니다.”“펑!”반승제는 옆에 있는 서랍을 발로 단번에 넘어뜨렸다.성혜인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상처 입은 두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그런 반승제의 두 눈과 차마 마주칠 수 없어 성혜인은 고개를 뚝 떨구었다.반승제는 욕도 하지 않고 질의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렇게 한참 동안 종아리가 저리고 아파 날 때까지 서 있었다.한참 지나서 반승제는 씩 웃고는 그대로 뒤돌아서서 떠났는데,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처음으로 들은 말은 아니다. 반승제의 형인 반승우가 살아 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그때 엄마인 백연서와 친 할머니인 김경자는 반승제에게 반승우의 손톱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었다.“네 형은 너보다 뭐나 잘해.”“승제야, 너도 다른
건물 안에는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는 입구가 하나 있다.이 입구로 들어가면 해외에서 가장 크고 명성이 자자한 지하 격투장으로 향할 수 있다.이곳에서 진행되는 거래는 감히 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하다.그리고 격투장에는 거의 매일 시체가 실려 나가고 있다.하지만 링 위에서 딱 한 시간만 싸우면, 밖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지하 격투장은 지하에 7층이나 되는데, 위에 4층은 거래 장소이고 아래 3층은 목숨 걸고 노는 장소이다.층마다 부지면적이 3천 평정도 되는데, 해외에서 유명한 아무도 담당하지 않는 지역이다.그 누구도 이곳에서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 수 있다.킬러 차트에 오른 최고의 킬러라고 하더라도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얌전하고 순순하게 지내야 한다.이곳에서는 가면을 해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는 개인의 자유이다.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반승제는 특수 통로를 통해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이 방안에서 아래 격투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기를 똑똑히 볼 수 있다.지금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야생 늑대가 최후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앞에는 거대한 반투명 유리 창문이 있는데, 창문을 통해 지금 격투장 안에 걸려 있는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그리고 스크린 양쪽에는 각각 쌍방에 건 액수가 적혀 있다.남자가 이기는 데 건 액수는 2조인데, 야생 늑대에게 건 액수는 자그마치 20조에 달한다.이때 한 여자가 느릿느릿 다가와 반승제에게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하지만 반승제는 잔을 받지 않았고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경기에만 몰두했다.전에 해외로 왔을 때도 반승제는 가끔 이곳을 들렸는데, 보통 반나절 동안 앉아 있는다.이때 여자는 또다시 샤인머스켓을 들고 다가와 정성껏 껍질을 벗겼다.“승제야.”나지막한 소리로 반승제를 부르고는 먹여주었다.“장미 누나, 나 지금 먹고 싶은 생각 없어.”“왜 그래? 이번에도 갑자기 오고 말이야. 이제는 BH 그룹 대표 자리가 지겨워?”여자의 말투를 듣자 하니, BH 그룹을 그리 존중하는 것
격투장의 경기는 이미 시작된 지 한참 되었다.링 밖이든 링 안이든 가열되어 있는 상태다.마지막 늑대까지 죽이고 나자, 모든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었다.반승제를 향한 숭배 소리, 환호 소리, 땀 냄새, 담배 냄새 그리고 술 냄새까지 밀폐된 이 공간에 꽉 차 있다.공기 중의 강렬한 호르몬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갓! 갓!”“갓! 갓!”“갓!”반승제는 가면을 벗지 않았고 퇴장할 때 피가 묻은 천을 잡아떼냈다.땀은 이마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갈라진 근육을 타고 서로 방향을 달리했다.위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어 땀이 폭포수처럼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있다.제대로 한바탕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옆 사람이 건네준 물을 가지고 반승제는 조금 전에 있던 그 방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경호원이 여자의 두 다리를 안고 벽에 밀치고 여자는 고양이처럼 경호원의 허리를 꼭 감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반승제는 안구 정화를 하고 싶었다.여자는 반승제가 들어온 것을 보고 경호원을 툭툭 건드렸다.그러자 경호원은 속도를 높여 서둘러 끝냈다.그러고 나서 무릎을 꿇고 공손하고 세심하게 여자의 치마를 정리해 주었다.여자는 다리가 나른해져서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 반승제의 맞은편에 앉았다.반승제은 차갑게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언젠가 남자하고 침대에서 죽게 될 거야.”그러자 여자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숨을 내쉬었다.“인제 젊은 나이도 아닌데,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해. 승제야, 사랑을 원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거야.”그 말에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옆에 있는 외투를 들고 일어섰다.“샤워하러 갈게.”온몸이 땀범벅일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다.여자는 지금 밖을 바라보고 있다.아래 격투장에는 흥분에 겨운 사람들인데, 그들은 지금, 마치 극도로 흥분한 악마와 같다.그러나 이곳에서 나가게 되는 순간 그들은 직장의 엘리트로 변하게 된다.“승제야, 이 세상에는
반승제가 지금 있는 곳은 밤이다.전화를 끊고 나서 옆에 있는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는데, 별로 맛이 나지 않았다.이렇게 예쁜 경치 속에 성혜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곳에는 수영장도 있고 가장 번화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술도 과일도 모조리 다 있다.수영장 안에서 수영하면서 성혜인에게 뽀뽀할 수 도 있다.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계단 쪽으로 밀쳐 두 다리를 잡고 그 자세로 하면 된다.더는 깊이 생각하면 안 되었다.잔을 들고 있던 반승제의 손가락은 두어 번 흔들었다.하여 반승제는 아예 잔을 내려놓았다.휴대전화는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는데, 발신자는 서주혁이다.해외로 오기 전에 반승제는 그날 밤 성혜인을 추격했던 사람들을 알아보라고 부하에게 지시했었다.아마 이맘때쯤이면 그 결과도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지금 서주혁으로 걸려 온 전화는 반승우에 관한 일일 것이다.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반승우”라는 석 자를 떠올리게 되면 화가 치밀어 잔까지 손으로 깨뜨릴 뻔했다.수신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 서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제야, 승우 형님 지문 또 찾아냈어. 아직 살아있을 거야. 분명히 살아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제원에 있을 것인데, 그때 승우 형님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살짝 실마리를 찾아냈어. 해외에서 지금껏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데, 일종 무기에 관한 연구야. 근데 전통적인 백병과는 또 달라. 그들이 연구한 무기는 인간의 뇌에 관한 것이고 지금껏 인체 실험을 그만둔 적이 없어.”이에 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산 사람으로?”“그래. 네가 지금 있는 그 나라가 트러블메이커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지금까지도 여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발발하고 있으니, 참! 그 사람들은 인도주의를 위반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던 거야. 20여 년 전에 내막을 알고 있던 국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담판 시간을 가지며 연구를 막으려고 했어. 그 일로 시위까지 일어났어. 근데 듣기로는 연구소를 비밀 장소로 옮기고
장미는 한 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젊은 사람은 항상 자기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더라. 나중에 알게 될 거다.”반승제는 옆 탈의실로 들어가 양복을 갈아입고 나왔다.장미는 그제야 반승제가 풋풋했던 10대가 아니라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것이 아주 바르게 잘 컸다.격투장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반승제는 하마터면 동물에 물려 죽을 뻔했다.겨우 버티면서 그 동물의 눈알을 파내고 서야 살아난 것이다.그 후로 가면을 쓰고 격투장에 나타났으며 그때와 같은 낭패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사람들은 “갓”만 알고 있고 그 “갓”이 전에는 가만을 쓰지 않고 있던 불쌍한 아이라는 것을 모른다.장미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앞으로 여자 보내지 않을 게. 이래 봐도 너 보다 겪은 게 많은 나야. 생각 잘 하고.”반승제는 손목의 단추를 채우고 다시 고귀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조금 전까지 격투장에서 늑대와 싸우던 모습과는 완전히 두 사람이다.“날 좋아하지 않은 것만 빼고 다 좋아.”침대에서도 합이 잘 맞고 특히 길쭉하고 하얀 다리는 유독 좋다.허리도 짤록한 것이 한 손에 잡히고 말이다.“장미 누나, 나 간다.”“벌써?”갑자기 돌아간 다는 반승제의 말에 장미는 다소 의외였다.적어도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묶을 줄 알았다.하지만 반승제는 일부러 격투장에서 정력을 쏟아부으려고 온 것이다.이제 침착해 졌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비행기에 오를 때 장미는 반승제에게 당부했다.“다음에 데리고 같이 와.”이에 반승제는 흠칫 거리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납치해서라도 데리고 올게. 나만 좋아해야 하는 여자야.”그리고 손톱 만도 못하다고 했던 그 남자를 똑똑히 보고 말 것이다.도대체 어떤 미친 X을 좋아하는지 직접 보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다.…성혜인은 심인우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심인우는 오늘 시간이 없다며 다음 날에 다시 겨울이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하여 성혜인은 하는 수
라미연은 이런 말을 들려주면 성혜인이 화를 낼 줄 알았다.카운터에 여러 사람이 서 있는데, 일단 성혜인이 화를 내기만 하면 창피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에 라미연은 득의양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성혜인은 그런 말을 하는 라미연을 훑어보며 물었다.“반승제 씨와 딱 하룻밤 잔 거 가지고 벌써 몇 번이나 찾아와서 자랑했는지 알아요?”득의양양해 하던 얼굴은 순간 굳어지면서 성혜인의 말뜻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었다.“이봐요, 성혜인 씨, 그게 뭔 소리예요?”라미연은 더 이상 성혜인을 “성 사장님”으로 부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부른 것도 비꼬기 위함이었다.성혜인은 가볍게 씩 웃으며 말했다.“반승제 씨하고 딱 그날 하룻밤이 잔 거 같아서요.”이에 라미연은 순간 난처해 마지 못했는데, 더욱 정확히 말해서는 그날 하룻밤도 없었다.반승제가 술에 취한 바람에 일부러 속인 것뿐이다.하지만 라미연도 어떻게 쉽게 한 방에 성공했는지 말할 수 없지만,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이다.성혜인의 야유에 라미연은 말 문이 턱 막혔다.그런 라미연을 보고 성혜인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계속 덧붙였다.“딱 그날 하룻밤이 전부여서 계속 자랑하는 거 아니에요? 맨날 찾아와서 시시각각 자랑하고 싶죠? 나하고 그 사람은 벌써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어요. 근데 내가 찾아가서 자랑하던가요? 나한테 질린다고 그 사람이 그랬다는데, 사실 나도 질린 지 한참 됐어요. 그러니 굳이 찾아와서 강조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돈을 써 가면서 라미연 씨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는데, 그건 그 사람 일이에요. S.M에서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될 배우분들은 이미 정해 놓았어요. 이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때 캐스팅할 때 라미연 씨를 내가 탈락시킨 거 같은데, 인제 와 보니 참 현명한 선택이었어요.”성혜인의 말에 라미연은 무척이나 난처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성혜인이 말한 “딱 그날 하룻밤이 전부” 뿐이었다.사색이 되어 반박하려고 했으나 순간 뭐라고 반박
백현문은 코 앞까지 다가왔고 변함없이 멋진 얼굴에서 음산한 모습도 보인다.유해은은 그날 밤 처음으로 백현문과 마주쳤던 순간이 떠올랐다.그때 백현문은 더없이 낭패하며 배달원이라고 하면서 배달품을 훔치는 건달들과 싸움이 일어났다고 했었다.그 순간 유해은은 동정심이 부풀어 올랐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기 때문이었다.“해은아, 지영이가 당분간 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백현문의 말을 들어보면 여동생을 위한 마음이 순간마다 나타난다.그리고 마치 자기와 결혼한다는 건 유해은의 복이라며 거만한 모습을 보인다.이에 유해은은 그저 우습기만 하고 손을 들어 뺨을 날리고 싶지만, 아직 회복단계라 움직이면 안 된다.절대 이런 인간쓰레기 때문에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게 할 수 없다.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유해은을 바라보며 백현문은 유해은이 동의하는 줄 알았다.“아기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 근데 다음부터 그렇게 충동적으로 굴지 마.”이 말이 막 떨어지자 유해은은 고개를 들어 백현문을 바라보았다.백현문은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있었고 유해은을 만나게 돼서 기뻤는데, 눈을 마주치는 순간 유해은의 두 눈에 가득 그려진 한이 보였다.뼈에 사무칠 정도로 짙은 한.흠칫 놀라며 백현문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유해은의 말이 들려왔다.“백현문, 세상에 남자가 딱 너 하나만 남아도 넌 절대 아니야. 더 이상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마. 아니면...”“아니면 뭐?”백현문은 유해은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유해은이 뿌리쳐버렸다.“아니면 내가 똑똑히 보여 줄 거야. 이미 더러운 몸인데, 너하고 잘 수 있었다는 건 앞으로 다른 남자하고도 잘 수 있다는 말이야. 어차피 이미 너로 인해 더러워졌는데, 아니야?”이에 백현문은 침묵을 유지했다.고집스러운 유해은의 얼굴을 보면서, 순간 그러고도 남을 여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애초에 유해은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른 여자와 달라서였다.바로 이때
백현문은 차를 몰고 떠났다.이로써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황당한 일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이곳에서 누군가가 죽은 것도 아는 이가 없다. 먼 곳에 차를 대고 다가오지 않은 성혜인을 빼고.하도 거리가 멀어 성혜인은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백현문이 사람을 죽이고 유해은도 하마터면 죽게 될뻔 한 것만 알고 있다.그때 한서진은 유해은이 사막에서 피어난 장미 선인장과 같다고 형용했었다.선인장을 따려고 하면 우선 그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 때문이다.이제와 보니 그 말이 제법 이해가 갔다.성혜인은 그렇게 한 10분 동안 더 있다가 천천히 차를 몰고 다가갔다.이제 막 마주친 척을 하며 차창을 내렸다.“아직도 택시 못 잡았어요? 데려다줄게요.”갑자기 나타난 성혜인을 보고 유해은은 왠지 모르게 울고 싶었다.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아무도 관심해 주지 않고 아무도 낭패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며, 괜찮은 척하고 이를 악물고 가던 길을 꿋꿋하게 갈 수 있다.하지만 누군가가 일단 조금의 관심을 준다면, 그 억울함은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다.유해은은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조수석에 올랐다.액셀을 밟는 순간 성혜인은 흐느끼는 유해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하지만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조용히 차만 몰았다.유해은의 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묻지 않았고 한 시간 동안 운전한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방안의 불빛이 아직도 환한걸 보니 연로한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성혜인은 티슈를 건네주며 말했다.“그만 울어요. 엄마 아빠 아직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그러자 유해은은 손으로 얼굴을 마구 비볐다.“성 사장님,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유해은이 낡고 낮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시선을 돌리자 유해은이 서류를 놔두고 간 것을 보고 서류를 챙기고 뒤따라갔다.유해은의 부모님은 아직 주무시지 않고 있었다.문을 열자 유해은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되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