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은 원래 반박하려고 했으나 문득 설우현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계약에 따라 이익도 얻었고 온수빈도 이미 할리우드 제작진에 들어갔는데, 지금 약속을 어기고 반승제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고개를 떨구고 성혜인은 손으로 시트를 꽉 잡아당겼다.순간 자기가 정말 몹쓸 인간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하지만 성혜인은 운명에 고개를 숙여야 하고 절대 설씨 가문의 작은 딸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반 대표님께 말씀드려도 누군지 모를 겁니다.”“하지는 않았지? 그치?”“네.”반승제의 말투도 눈빛도 덤덤하기 그지없다.성혜인을 바라보고 있는 반승제의 두 눈에는 어떤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다.다시 눈을 감고 또다시 눈을 떠보니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나하고 많이 하면, 그 사람 잊혀지지 않겠어?”“아니요.”반승제는 다른 한 손을 자연스레 축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성혜인의 답을 듣고 나서 손가락 끝이 움츠러 들었다.입은 웃고 있지만, 두 눈에는 더없이 차갑다.“그래? 내가 그 사람보다 그렇게 못났어?”성혜인은 더 이상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설우현과 했던 약속을 잊지 말고 있어야 했다.“굳이 비교하자면, 반 대표님은 그 사람 손톱도 따라가지 못합니다.”“펑!”반승제는 옆에 있는 서랍을 발로 단번에 넘어뜨렸다.성혜인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상처 입은 두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그런 반승제의 두 눈과 차마 마주칠 수 없어 성혜인은 고개를 뚝 떨구었다.반승제는 욕도 하지 않고 질의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렇게 한참 동안 종아리가 저리고 아파 날 때까지 서 있었다.한참 지나서 반승제는 씩 웃고는 그대로 뒤돌아서서 떠났는데,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처음으로 들은 말은 아니다. 반승제의 형인 반승우가 살아 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그때 엄마인 백연서와 친 할머니인 김경자는 반승제에게 반승우의 손톱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었다.“네 형은 너보다 뭐나 잘해.”“승제야, 너도 다른
건물 안에는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는 입구가 하나 있다.이 입구로 들어가면 해외에서 가장 크고 명성이 자자한 지하 격투장으로 향할 수 있다.이곳에서 진행되는 거래는 감히 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하다.그리고 격투장에는 거의 매일 시체가 실려 나가고 있다.하지만 링 위에서 딱 한 시간만 싸우면, 밖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지하 격투장은 지하에 7층이나 되는데, 위에 4층은 거래 장소이고 아래 3층은 목숨 걸고 노는 장소이다.층마다 부지면적이 3천 평정도 되는데, 해외에서 유명한 아무도 담당하지 않는 지역이다.그 누구도 이곳에서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 수 있다.킬러 차트에 오른 최고의 킬러라고 하더라도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얌전하고 순순하게 지내야 한다.이곳에서는 가면을 해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는 개인의 자유이다.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반승제는 특수 통로를 통해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이 방안에서 아래 격투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기를 똑똑히 볼 수 있다.지금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야생 늑대가 최후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앞에는 거대한 반투명 유리 창문이 있는데, 창문을 통해 지금 격투장 안에 걸려 있는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그리고 스크린 양쪽에는 각각 쌍방에 건 액수가 적혀 있다.남자가 이기는 데 건 액수는 2조인데, 야생 늑대에게 건 액수는 자그마치 20조에 달한다.이때 한 여자가 느릿느릿 다가와 반승제에게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하지만 반승제는 잔을 받지 않았고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경기에만 몰두했다.전에 해외로 왔을 때도 반승제는 가끔 이곳을 들렸는데, 보통 반나절 동안 앉아 있는다.이때 여자는 또다시 샤인머스켓을 들고 다가와 정성껏 껍질을 벗겼다.“승제야.”나지막한 소리로 반승제를 부르고는 먹여주었다.“장미 누나, 나 지금 먹고 싶은 생각 없어.”“왜 그래? 이번에도 갑자기 오고 말이야. 이제는 BH 그룹 대표 자리가 지겨워?”여자의 말투를 듣자 하니, BH 그룹을 그리 존중하는 것
격투장의 경기는 이미 시작된 지 한참 되었다.링 밖이든 링 안이든 가열되어 있는 상태다.마지막 늑대까지 죽이고 나자, 모든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었다.반승제를 향한 숭배 소리, 환호 소리, 땀 냄새, 담배 냄새 그리고 술 냄새까지 밀폐된 이 공간에 꽉 차 있다.공기 중의 강렬한 호르몬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갓! 갓!”“갓! 갓!”“갓!”반승제는 가면을 벗지 않았고 퇴장할 때 피가 묻은 천을 잡아떼냈다.땀은 이마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갈라진 근육을 타고 서로 방향을 달리했다.위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어 땀이 폭포수처럼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있다.제대로 한바탕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옆 사람이 건네준 물을 가지고 반승제는 조금 전에 있던 그 방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경호원이 여자의 두 다리를 안고 벽에 밀치고 여자는 고양이처럼 경호원의 허리를 꼭 감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반승제는 안구 정화를 하고 싶었다.여자는 반승제가 들어온 것을 보고 경호원을 툭툭 건드렸다.그러자 경호원은 속도를 높여 서둘러 끝냈다.그러고 나서 무릎을 꿇고 공손하고 세심하게 여자의 치마를 정리해 주었다.여자는 다리가 나른해져서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 반승제의 맞은편에 앉았다.반승제은 차갑게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언젠가 남자하고 침대에서 죽게 될 거야.”그러자 여자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숨을 내쉬었다.“인제 젊은 나이도 아닌데,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해. 승제야, 사랑을 원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거야.”그 말에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옆에 있는 외투를 들고 일어섰다.“샤워하러 갈게.”온몸이 땀범벅일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다.여자는 지금 밖을 바라보고 있다.아래 격투장에는 흥분에 겨운 사람들인데, 그들은 지금, 마치 극도로 흥분한 악마와 같다.그러나 이곳에서 나가게 되는 순간 그들은 직장의 엘리트로 변하게 된다.“승제야, 이 세상에는
반승제가 지금 있는 곳은 밤이다.전화를 끊고 나서 옆에 있는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는데, 별로 맛이 나지 않았다.이렇게 예쁜 경치 속에 성혜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곳에는 수영장도 있고 가장 번화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술도 과일도 모조리 다 있다.수영장 안에서 수영하면서 성혜인에게 뽀뽀할 수 도 있다.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계단 쪽으로 밀쳐 두 다리를 잡고 그 자세로 하면 된다.더는 깊이 생각하면 안 되었다.잔을 들고 있던 반승제의 손가락은 두어 번 흔들었다.하여 반승제는 아예 잔을 내려놓았다.휴대전화는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는데, 발신자는 서주혁이다.해외로 오기 전에 반승제는 그날 밤 성혜인을 추격했던 사람들을 알아보라고 부하에게 지시했었다.아마 이맘때쯤이면 그 결과도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지금 서주혁으로 걸려 온 전화는 반승우에 관한 일일 것이다.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반승우”라는 석 자를 떠올리게 되면 화가 치밀어 잔까지 손으로 깨뜨릴 뻔했다.수신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 서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제야, 승우 형님 지문 또 찾아냈어. 아직 살아있을 거야. 분명히 살아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제원에 있을 것인데, 그때 승우 형님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살짝 실마리를 찾아냈어. 해외에서 지금껏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데, 일종 무기에 관한 연구야. 근데 전통적인 백병과는 또 달라. 그들이 연구한 무기는 인간의 뇌에 관한 것이고 지금껏 인체 실험을 그만둔 적이 없어.”이에 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산 사람으로?”“그래. 네가 지금 있는 그 나라가 트러블메이커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지금까지도 여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발발하고 있으니, 참! 그 사람들은 인도주의를 위반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던 거야. 20여 년 전에 내막을 알고 있던 국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담판 시간을 가지며 연구를 막으려고 했어. 그 일로 시위까지 일어났어. 근데 듣기로는 연구소를 비밀 장소로 옮기고
장미는 한 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젊은 사람은 항상 자기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더라. 나중에 알게 될 거다.”반승제는 옆 탈의실로 들어가 양복을 갈아입고 나왔다.장미는 그제야 반승제가 풋풋했던 10대가 아니라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것이 아주 바르게 잘 컸다.격투장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반승제는 하마터면 동물에 물려 죽을 뻔했다.겨우 버티면서 그 동물의 눈알을 파내고 서야 살아난 것이다.그 후로 가면을 쓰고 격투장에 나타났으며 그때와 같은 낭패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사람들은 “갓”만 알고 있고 그 “갓”이 전에는 가만을 쓰지 않고 있던 불쌍한 아이라는 것을 모른다.장미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앞으로 여자 보내지 않을 게. 이래 봐도 너 보다 겪은 게 많은 나야. 생각 잘 하고.”반승제는 손목의 단추를 채우고 다시 고귀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조금 전까지 격투장에서 늑대와 싸우던 모습과는 완전히 두 사람이다.“날 좋아하지 않은 것만 빼고 다 좋아.”침대에서도 합이 잘 맞고 특히 길쭉하고 하얀 다리는 유독 좋다.허리도 짤록한 것이 한 손에 잡히고 말이다.“장미 누나, 나 간다.”“벌써?”갑자기 돌아간 다는 반승제의 말에 장미는 다소 의외였다.적어도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묶을 줄 알았다.하지만 반승제는 일부러 격투장에서 정력을 쏟아부으려고 온 것이다.이제 침착해 졌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비행기에 오를 때 장미는 반승제에게 당부했다.“다음에 데리고 같이 와.”이에 반승제는 흠칫 거리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납치해서라도 데리고 올게. 나만 좋아해야 하는 여자야.”그리고 손톱 만도 못하다고 했던 그 남자를 똑똑히 보고 말 것이다.도대체 어떤 미친 X을 좋아하는지 직접 보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다.…성혜인은 심인우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심인우는 오늘 시간이 없다며 다음 날에 다시 겨울이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하여 성혜인은 하는 수
라미연은 이런 말을 들려주면 성혜인이 화를 낼 줄 알았다.카운터에 여러 사람이 서 있는데, 일단 성혜인이 화를 내기만 하면 창피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에 라미연은 득의양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성혜인은 그런 말을 하는 라미연을 훑어보며 물었다.“반승제 씨와 딱 하룻밤 잔 거 가지고 벌써 몇 번이나 찾아와서 자랑했는지 알아요?”득의양양해 하던 얼굴은 순간 굳어지면서 성혜인의 말뜻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었다.“이봐요, 성혜인 씨, 그게 뭔 소리예요?”라미연은 더 이상 성혜인을 “성 사장님”으로 부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부른 것도 비꼬기 위함이었다.성혜인은 가볍게 씩 웃으며 말했다.“반승제 씨하고 딱 그날 하룻밤이 잔 거 같아서요.”이에 라미연은 순간 난처해 마지 못했는데, 더욱 정확히 말해서는 그날 하룻밤도 없었다.반승제가 술에 취한 바람에 일부러 속인 것뿐이다.하지만 라미연도 어떻게 쉽게 한 방에 성공했는지 말할 수 없지만,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이다.성혜인의 야유에 라미연은 말 문이 턱 막혔다.그런 라미연을 보고 성혜인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계속 덧붙였다.“딱 그날 하룻밤이 전부여서 계속 자랑하는 거 아니에요? 맨날 찾아와서 시시각각 자랑하고 싶죠? 나하고 그 사람은 벌써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어요. 근데 내가 찾아가서 자랑하던가요? 나한테 질린다고 그 사람이 그랬다는데, 사실 나도 질린 지 한참 됐어요. 그러니 굳이 찾아와서 강조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돈을 써 가면서 라미연 씨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는데, 그건 그 사람 일이에요. S.M에서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될 배우분들은 이미 정해 놓았어요. 이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때 캐스팅할 때 라미연 씨를 내가 탈락시킨 거 같은데, 인제 와 보니 참 현명한 선택이었어요.”성혜인의 말에 라미연은 무척이나 난처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성혜인이 말한 “딱 그날 하룻밤이 전부” 뿐이었다.사색이 되어 반박하려고 했으나 순간 뭐라고 반박
백현문은 코 앞까지 다가왔고 변함없이 멋진 얼굴에서 음산한 모습도 보인다.유해은은 그날 밤 처음으로 백현문과 마주쳤던 순간이 떠올랐다.그때 백현문은 더없이 낭패하며 배달원이라고 하면서 배달품을 훔치는 건달들과 싸움이 일어났다고 했었다.그 순간 유해은은 동정심이 부풀어 올랐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기 때문이었다.“해은아, 지영이가 당분간 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백현문의 말을 들어보면 여동생을 위한 마음이 순간마다 나타난다.그리고 마치 자기와 결혼한다는 건 유해은의 복이라며 거만한 모습을 보인다.이에 유해은은 그저 우습기만 하고 손을 들어 뺨을 날리고 싶지만, 아직 회복단계라 움직이면 안 된다.절대 이런 인간쓰레기 때문에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게 할 수 없다.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유해은을 바라보며 백현문은 유해은이 동의하는 줄 알았다.“아기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 근데 다음부터 그렇게 충동적으로 굴지 마.”이 말이 막 떨어지자 유해은은 고개를 들어 백현문을 바라보았다.백현문은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있었고 유해은을 만나게 돼서 기뻤는데, 눈을 마주치는 순간 유해은의 두 눈에 가득 그려진 한이 보였다.뼈에 사무칠 정도로 짙은 한.흠칫 놀라며 백현문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유해은의 말이 들려왔다.“백현문, 세상에 남자가 딱 너 하나만 남아도 넌 절대 아니야. 더 이상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마. 아니면...”“아니면 뭐?”백현문은 유해은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유해은이 뿌리쳐버렸다.“아니면 내가 똑똑히 보여 줄 거야. 이미 더러운 몸인데, 너하고 잘 수 있었다는 건 앞으로 다른 남자하고도 잘 수 있다는 말이야. 어차피 이미 너로 인해 더러워졌는데, 아니야?”이에 백현문은 침묵을 유지했다.고집스러운 유해은의 얼굴을 보면서, 순간 그러고도 남을 여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애초에 유해은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른 여자와 달라서였다.바로 이때
백현문은 차를 몰고 떠났다.이로써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황당한 일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이곳에서 누군가가 죽은 것도 아는 이가 없다. 먼 곳에 차를 대고 다가오지 않은 성혜인을 빼고.하도 거리가 멀어 성혜인은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백현문이 사람을 죽이고 유해은도 하마터면 죽게 될뻔 한 것만 알고 있다.그때 한서진은 유해은이 사막에서 피어난 장미 선인장과 같다고 형용했었다.선인장을 따려고 하면 우선 그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 때문이다.이제와 보니 그 말이 제법 이해가 갔다.성혜인은 그렇게 한 10분 동안 더 있다가 천천히 차를 몰고 다가갔다.이제 막 마주친 척을 하며 차창을 내렸다.“아직도 택시 못 잡았어요? 데려다줄게요.”갑자기 나타난 성혜인을 보고 유해은은 왠지 모르게 울고 싶었다.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아무도 관심해 주지 않고 아무도 낭패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며, 괜찮은 척하고 이를 악물고 가던 길을 꿋꿋하게 갈 수 있다.하지만 누군가가 일단 조금의 관심을 준다면, 그 억울함은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다.유해은은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조수석에 올랐다.액셀을 밟는 순간 성혜인은 흐느끼는 유해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하지만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조용히 차만 몰았다.유해은의 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묻지 않았고 한 시간 동안 운전한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방안의 불빛이 아직도 환한걸 보니 연로한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성혜인은 티슈를 건네주며 말했다.“그만 울어요. 엄마 아빠 아직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그러자 유해은은 손으로 얼굴을 마구 비볐다.“성 사장님,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유해은이 낡고 낮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시선을 돌리자 유해은이 서류를 놔두고 간 것을 보고 서류를 챙기고 뒤따라갔다.유해은의 부모님은 아직 주무시지 않고 있었다.문을 열자 유해은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