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안에는 많은 사람이 지키고 있는 입구가 하나 있다.이 입구로 들어가면 해외에서 가장 크고 명성이 자자한 지하 격투장으로 향할 수 있다.이곳에서 진행되는 거래는 감히 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하다.그리고 격투장에는 거의 매일 시체가 실려 나가고 있다.하지만 링 위에서 딱 한 시간만 싸우면, 밖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지하 격투장은 지하에 7층이나 되는데, 위에 4층은 거래 장소이고 아래 3층은 목숨 걸고 노는 장소이다.층마다 부지면적이 3천 평정도 되는데, 해외에서 유명한 아무도 담당하지 않는 지역이다.그 누구도 이곳에서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 수 있다.킬러 차트에 오른 최고의 킬러라고 하더라도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얌전하고 순순하게 지내야 한다.이곳에서는 가면을 해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는 개인의 자유이다.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반승제는 특수 통로를 통해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이 방안에서 아래 격투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기를 똑똑히 볼 수 있다.지금 한 남자와 미친 듯한 야생 늑대가 최후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앞에는 거대한 반투명 유리 창문이 있는데, 창문을 통해 지금 격투장 안에 걸려 있는 스크린에 카운트다운이 진행되고 있다.그리고 스크린 양쪽에는 각각 쌍방에 건 액수가 적혀 있다.남자가 이기는 데 건 액수는 2조인데, 야생 늑대에게 건 액수는 자그마치 20조에 달한다.이때 한 여자가 느릿느릿 다가와 반승제에게 차 한잔을 건네주었다.하지만 반승제는 잔을 받지 않았고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경기에만 몰두했다.전에 해외로 왔을 때도 반승제는 가끔 이곳을 들렸는데, 보통 반나절 동안 앉아 있는다.이때 여자는 또다시 샤인머스켓을 들고 다가와 정성껏 껍질을 벗겼다.“승제야.”나지막한 소리로 반승제를 부르고는 먹여주었다.“장미 누나, 나 지금 먹고 싶은 생각 없어.”“왜 그래? 이번에도 갑자기 오고 말이야. 이제는 BH 그룹 대표 자리가 지겨워?”여자의 말투를 듣자 하니, BH 그룹을 그리 존중하는 것
격투장의 경기는 이미 시작된 지 한참 되었다.링 밖이든 링 안이든 가열되어 있는 상태다.마지막 늑대까지 죽이고 나자, 모든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었다.반승제를 향한 숭배 소리, 환호 소리, 땀 냄새, 담배 냄새 그리고 술 냄새까지 밀폐된 이 공간에 꽉 차 있다.공기 중의 강렬한 호르몬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갓! 갓!”“갓! 갓!”“갓!”반승제는 가면을 벗지 않았고 퇴장할 때 피가 묻은 천을 잡아떼냈다.땀은 이마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갈라진 근육을 타고 서로 방향을 달리했다.위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어 땀이 폭포수처럼 미친 듯이 흘러내리고 있다.제대로 한바탕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옆 사람이 건네준 물을 가지고 반승제는 조금 전에 있던 그 방으로 돌아갔다.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경호원이 여자의 두 다리를 안고 벽에 밀치고 여자는 고양이처럼 경호원의 허리를 꼭 감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순간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반승제는 안구 정화를 하고 싶었다.여자는 반승제가 들어온 것을 보고 경호원을 툭툭 건드렸다.그러자 경호원은 속도를 높여 서둘러 끝냈다.그러고 나서 무릎을 꿇고 공손하고 세심하게 여자의 치마를 정리해 주었다.여자는 다리가 나른해져서 경호원의 부축을 받아 반승제의 맞은편에 앉았다.반승제은 차갑게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언젠가 남자하고 침대에서 죽게 될 거야.”그러자 여자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숨을 내쉬었다.“인제 젊은 나이도 아닌데,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해. 승제야, 사랑을 원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멍청한 거야.”그 말에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옆에 있는 외투를 들고 일어섰다.“샤워하러 갈게.”온몸이 땀범벅일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다.여자는 지금 밖을 바라보고 있다.아래 격투장에는 흥분에 겨운 사람들인데, 그들은 지금, 마치 극도로 흥분한 악마와 같다.그러나 이곳에서 나가게 되는 순간 그들은 직장의 엘리트로 변하게 된다.“승제야, 이 세상에는
반승제가 지금 있는 곳은 밤이다.전화를 끊고 나서 옆에 있는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는데, 별로 맛이 나지 않았다.이렇게 예쁜 경치 속에 성혜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곳에는 수영장도 있고 가장 번화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술도 과일도 모조리 다 있다.수영장 안에서 수영하면서 성혜인에게 뽀뽀할 수 도 있다.그러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계단 쪽으로 밀쳐 두 다리를 잡고 그 자세로 하면 된다.더는 깊이 생각하면 안 되었다.잔을 들고 있던 반승제의 손가락은 두어 번 흔들었다.하여 반승제는 아예 잔을 내려놓았다.휴대전화는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는데, 발신자는 서주혁이다.해외로 오기 전에 반승제는 그날 밤 성혜인을 추격했던 사람들을 알아보라고 부하에게 지시했었다.아마 이맘때쯤이면 그 결과도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지금 서주혁으로 걸려 온 전화는 반승우에 관한 일일 것이다.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반승우”라는 석 자를 떠올리게 되면 화가 치밀어 잔까지 손으로 깨뜨릴 뻔했다.수신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 서주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제야, 승우 형님 지문 또 찾아냈어. 아직 살아있을 거야. 분명히 살아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제원에 있을 것인데, 그때 승우 형님이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살짝 실마리를 찾아냈어. 해외에서 지금껏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는데, 일종 무기에 관한 연구야. 근데 전통적인 백병과는 또 달라. 그들이 연구한 무기는 인간의 뇌에 관한 것이고 지금껏 인체 실험을 그만둔 적이 없어.”이에 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산 사람으로?”“그래. 네가 지금 있는 그 나라가 트러블메이커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지금까지도 여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발발하고 있으니, 참! 그 사람들은 인도주의를 위반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던 거야. 20여 년 전에 내막을 알고 있던 국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담판 시간을 가지며 연구를 막으려고 했어. 그 일로 시위까지 일어났어. 근데 듣기로는 연구소를 비밀 장소로 옮기고
장미는 한 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젊은 사람은 항상 자기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더라. 나중에 알게 될 거다.”반승제는 옆 탈의실로 들어가 양복을 갈아입고 나왔다.장미는 그제야 반승제가 풋풋했던 10대가 아니라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것이 아주 바르게 잘 컸다.격투장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반승제는 하마터면 동물에 물려 죽을 뻔했다.겨우 버티면서 그 동물의 눈알을 파내고 서야 살아난 것이다.그 후로 가면을 쓰고 격투장에 나타났으며 그때와 같은 낭패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사람들은 “갓”만 알고 있고 그 “갓”이 전에는 가만을 쓰지 않고 있던 불쌍한 아이라는 것을 모른다.장미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앞으로 여자 보내지 않을 게. 이래 봐도 너 보다 겪은 게 많은 나야. 생각 잘 하고.”반승제는 손목의 단추를 채우고 다시 고귀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조금 전까지 격투장에서 늑대와 싸우던 모습과는 완전히 두 사람이다.“날 좋아하지 않은 것만 빼고 다 좋아.”침대에서도 합이 잘 맞고 특히 길쭉하고 하얀 다리는 유독 좋다.허리도 짤록한 것이 한 손에 잡히고 말이다.“장미 누나, 나 간다.”“벌써?”갑자기 돌아간 다는 반승제의 말에 장미는 다소 의외였다.적어도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묶을 줄 알았다.하지만 반승제는 일부러 격투장에서 정력을 쏟아부으려고 온 것이다.이제 침착해 졌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비행기에 오를 때 장미는 반승제에게 당부했다.“다음에 데리고 같이 와.”이에 반승제는 흠칫 거리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납치해서라도 데리고 올게. 나만 좋아해야 하는 여자야.”그리고 손톱 만도 못하다고 했던 그 남자를 똑똑히 보고 말 것이다.도대체 어떤 미친 X을 좋아하는지 직접 보고 말겠다고 마음 먹었다.…성혜인은 심인우에게 전화를 했었는데, 심인우는 오늘 시간이 없다며 다음 날에 다시 겨울이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하여 성혜인은 하는 수
라미연은 이런 말을 들려주면 성혜인이 화를 낼 줄 알았다.카운터에 여러 사람이 서 있는데, 일단 성혜인이 화를 내기만 하면 창피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에 라미연은 득의양양한 모습을 띠고 있었는데, 성혜인은 그런 말을 하는 라미연을 훑어보며 물었다.“반승제 씨와 딱 하룻밤 잔 거 가지고 벌써 몇 번이나 찾아와서 자랑했는지 알아요?”득의양양해 하던 얼굴은 순간 굳어지면서 성혜인의 말뜻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었다.“이봐요, 성혜인 씨, 그게 뭔 소리예요?”라미연은 더 이상 성혜인을 “성 사장님”으로 부르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부른 것도 비꼬기 위함이었다.성혜인은 가볍게 씩 웃으며 말했다.“반승제 씨하고 딱 그날 하룻밤이 잔 거 같아서요.”이에 라미연은 순간 난처해 마지 못했는데, 더욱 정확히 말해서는 그날 하룻밤도 없었다.반승제가 술에 취한 바람에 일부러 속인 것뿐이다.하지만 라미연도 어떻게 쉽게 한 방에 성공했는지 말할 수 없지만,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이다.성혜인의 야유에 라미연은 말 문이 턱 막혔다.그런 라미연을 보고 성혜인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계속 덧붙였다.“딱 그날 하룻밤이 전부여서 계속 자랑하는 거 아니에요? 맨날 찾아와서 시시각각 자랑하고 싶죠? 나하고 그 사람은 벌써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어요. 근데 내가 찾아가서 자랑하던가요? 나한테 질린다고 그 사람이 그랬다는데, 사실 나도 질린 지 한참 됐어요. 그러니 굳이 찾아와서 강조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돈을 써 가면서 라미연 씨한테 잘 보이려고 한다는데, 그건 그 사람 일이에요. S.M에서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될 배우분들은 이미 정해 놓았어요. 이건 사실이에요.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때 캐스팅할 때 라미연 씨를 내가 탈락시킨 거 같은데, 인제 와 보니 참 현명한 선택이었어요.”성혜인의 말에 라미연은 무척이나 난처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성혜인이 말한 “딱 그날 하룻밤이 전부” 뿐이었다.사색이 되어 반박하려고 했으나 순간 뭐라고 반박
백현문은 코 앞까지 다가왔고 변함없이 멋진 얼굴에서 음산한 모습도 보인다.유해은은 그날 밤 처음으로 백현문과 마주쳤던 순간이 떠올랐다.그때 백현문은 더없이 낭패하며 배달원이라고 하면서 배달품을 훔치는 건달들과 싸움이 일어났다고 했었다.그 순간 유해은은 동정심이 부풀어 올랐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기 때문이었다.“해은아, 지영이가 당분간 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백현문의 말을 들어보면 여동생을 위한 마음이 순간마다 나타난다.그리고 마치 자기와 결혼한다는 건 유해은의 복이라며 거만한 모습을 보인다.이에 유해은은 그저 우습기만 하고 손을 들어 뺨을 날리고 싶지만, 아직 회복단계라 움직이면 안 된다.절대 이런 인간쓰레기 때문에 손가락에 문제가 생기게 할 수 없다.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유해은을 바라보며 백현문은 유해은이 동의하는 줄 알았다.“아기 일은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 근데 다음부터 그렇게 충동적으로 굴지 마.”이 말이 막 떨어지자 유해은은 고개를 들어 백현문을 바라보았다.백현문은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있었고 유해은을 만나게 돼서 기뻤는데, 눈을 마주치는 순간 유해은의 두 눈에 가득 그려진 한이 보였다.뼈에 사무칠 정도로 짙은 한.흠칫 놀라며 백현문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유해은의 말이 들려왔다.“백현문, 세상에 남자가 딱 너 하나만 남아도 넌 절대 아니야. 더 이상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마. 아니면...”“아니면 뭐?”백현문은 유해은의 손을 잡으려고 했으나, 유해은이 뿌리쳐버렸다.“아니면 내가 똑똑히 보여 줄 거야. 이미 더러운 몸인데, 너하고 잘 수 있었다는 건 앞으로 다른 남자하고도 잘 수 있다는 말이야. 어차피 이미 너로 인해 더러워졌는데, 아니야?”이에 백현문은 침묵을 유지했다.고집스러운 유해은의 얼굴을 보면서, 순간 그러고도 남을 여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애초에 유해은을 좋아하게 된 것도 다른 여자와 달라서였다.바로 이때
백현문은 차를 몰고 떠났다.이로써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황당한 일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이곳에서 누군가가 죽은 것도 아는 이가 없다. 먼 곳에 차를 대고 다가오지 않은 성혜인을 빼고.하도 거리가 멀어 성혜인은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싸우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백현문이 사람을 죽이고 유해은도 하마터면 죽게 될뻔 한 것만 알고 있다.그때 한서진은 유해은이 사막에서 피어난 장미 선인장과 같다고 형용했었다.선인장을 따려고 하면 우선 그 가시에 찔려 피가 나기 때문이다.이제와 보니 그 말이 제법 이해가 갔다.성혜인은 그렇게 한 10분 동안 더 있다가 천천히 차를 몰고 다가갔다.이제 막 마주친 척을 하며 차창을 내렸다.“아직도 택시 못 잡았어요? 데려다줄게요.”갑자기 나타난 성혜인을 보고 유해은은 왠지 모르게 울고 싶었다.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아무도 관심해 주지 않고 아무도 낭패한 모습을 보지 않았다며, 괜찮은 척하고 이를 악물고 가던 길을 꿋꿋하게 갈 수 있다.하지만 누군가가 일단 조금의 관심을 준다면, 그 억울함은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다.유해은은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조수석에 올랐다.액셀을 밟는 순간 성혜인은 흐느끼는 유해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하지만 그 이유를 묻지 않고 조용히 차만 몰았다.유해은의 집 주소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묻지 않았고 한 시간 동안 운전한 끝에 드디어 도착했다.방안의 불빛이 아직도 환한걸 보니 연로한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성혜인은 티슈를 건네주며 말했다.“그만 울어요. 엄마 아빠 아직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그러자 유해은은 손으로 얼굴을 마구 비볐다.“성 사장님,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유해은이 낡고 낮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시선을 돌리자 유해은이 서류를 놔두고 간 것을 보고 서류를 챙기고 뒤따라갔다.유해은의 부모님은 아직 주무시지 않고 있었다.문을 열자 유해은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되
포레스트로 돌아왔을 때, 이미 새벽 4시가 되어 있었다.조금 전 문 앞에서 들렸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 성혜인은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매사에 동정심을 보이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유해은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 임지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사실 한 가정이 부유하거나 가난한 건 아이의 성격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이 부모의 태도이다.물질적으로 빈곤하다고 하더라고 정신세계만 풍족하면 아이는 강하게 자랄 수 있다.설령 골짜기에 빠지게 되더라도 줄 하나만 쥐여 주면 아득바득 어떻게든 기어 나온다.성혜인은 침대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다.작은 회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바램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송아현, 한서진, 장하리, 온수빈, 유해은...그 어느 한 사람도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어깨의 짐이 많아질수록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아지게 되는 법이다....새벽 6시.반승제는 제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성혜인을 추격하던 이들이 백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받았다.이에 반승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백씨 가문?백지영?하지만 백씨 가문에서 백지영의 위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대표님, 백현문, 즉 백지영의 큰 오빠가 시킨 일입니다. 백현문은 그동안 그 댁 어르신의 중시를 받으면서 지내왔다고 합니다. 백씨 가문의 상속자 자리가 지금 흔들리고 있는데, 아마 백현문이 그 자리에 앉을 것 같습니다.”백씨 가문과 반씨 가문은 친척 사이이다.반승제는 심지어 백씨 가문 어르신을 외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만약 백씨 가문을 상대로 손을 쓰게 된다면 두 가문에 피 바람이 불 것이다.하여 반승제는 지금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백현문, 그 사람이 신경 쓰는 건 있어?”신경 쓰는 무언가에 손을 댄다면 상대를 미치게 할 수 있다.“그... 신경 쓰는 여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유해은인데, 성혜인 씨 회사의 연예인으로 들어갔습니다.”반승제는 순간 성혜인의 뜻을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