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등을 지그시 기대고 살짝 웃으며 답했다.“그래, 성혜인.”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내 흐뭇해하는 반승제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차는 병원 앞에 멈춰 섰고 “비뇨기과”라는 글자를 보게 되었을 때, 반승제는 좀 불편했다.남자는 이 일에 있어서 언제나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는 편이다.절대 그쪽으로 능력이 없다며 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하지만 성혜인과 좀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 위해 자존심 따위는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모든 검사를 마치고 의사도 윗사람의 지시를 받은 상황이라 애매모호하게 설명했다.“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심리적인 문제인지 신체적인 문제인지 제대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두 분께서 많이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만약 다음 부부 관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내분께서도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일단 지켜보시죠.”의사의 말에 성혜인은 목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다.게다가 처방까지 내려주는 의사의 모습에 순간 당황해 마지 못했다.“정말 문제 있어요?”반승제는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으며 마치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의사도 성혜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런 염치 없는 일은 의사도 처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일자리를 보존하고 싶다면, 계속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네, 아마도 문제가 있는 걸로 보입니다. 많이 자극해 주시고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다시 와서 검사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의사는 남자 성적 기능에 좋은 약을 가득 담아 성혜인에게 정중하게 건네주었다.병원을 나설 때까지 성혜인은 머리가 텅 빈 상태였다.남녀 사이의 일에서 반승제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성혜인은 잘 알고 있다정신을 잃게 할 정도인데, 갑자기 문제가 생기며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약까지 처방해 줬으니 말이다.반승제는 조수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손으로 턱을 괴고 팔꿈치로 기대면서 여유로운
두말하지 않고 성혜인은 액셀을 밟았다.반승제는 제자리에 서서 차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왔다.눈치가 빠른 심인우도 이제야 달려왔다.“대표님, 이건 반기범 씨에 관한 행적입니다. 반희월 씨의 지분까지 차지하면서 모두 30%의 지분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어르신 손에 있는 15%의 지분을 겨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반기범 씨는 두 달 전에 이미 북아메리카로 가서 한성 그룹의 사장님을 만났습니다.”반승제는 자료를 훑어보면서 덤덤하게 대답했다.“음.”심인우도 귀신이 곡했지는 갑자기 자료를 내려놓고 한 마디 뱉었다.“페니 씨 회사는 점점 잘 되는 것 같습니다.”반승제도 그 말을 들었는지, 자료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 듯했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온시학을 보면서 다소 의외였다.이 시간이라면 온시학은 응당 포드 모델 계약서를 체결하고 광고 촬영 준비에 몰두해야 한다.“무슨 일이에요?”“사장님, 포드 모델에 관해서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이 사장님께서 저와 계약을 맺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새로 발탁된 모델이 있는데, TJ 엔터 소속이라고 합니다.”그보다도 S.M 측에서 이미 온시환이 포드 향수 모델로 되었다며 기사까지 내라고 했다.모든 일이 성사되기 일보 직전인데, 포드 쪽에서 갑자기 다른 소리를 할 줄은 몰랐다.성혜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이동해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이동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침에 이동해와 전화를 한 적이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차질이 없었다.하여 SNS에 기사를 내라고 한 것인데, 계약하기 몇 분 전에 포드 쪽에서 갑자기 취소한 것이다.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하기 그지없었다.지금 네티즌들은 또다시 악플을 달면서 설전을 벌이고 있다.온시환이 주제 파악 못하다면서 S.M에서 일부러 포드의 영향력을 받으려고 한다면서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다.얼굴이 한껏 차가워진 성혜인은 이동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만 되고 받는 이가 없었
메시지 말투를 보아하니 설씨 가문 작은 공주가 틀림없다.성혜인은 메시지를 무시해 버렸다.지금 95%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내놓지 않는 한 절대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가장 먼저 꺼야 할 불은 포드 모델에 관한 일로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다.하지만 설씨 가문 작은 딸은 이미 설우현에게 전화를 걸어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둘째 오빠, 오빠도 내가 반승제 좋아하는 거 알잖아. 옆에서 알짱거리는 여자 좀 없애줄 수 없어? 제발 오빠 내 부탁 좀 들어줘. 안 들어 주면 큰오빠, 엄마 몰래 제원으로 갈 거야.”설우현은 머리가 지끈해졌다.“그냥 집에 얌전하게 있어. 어쩌면 너하고 편지 주고받은 사람이 반승제가 아닐 수도 있잖아.”“아니야! 반승제 맞아! 필적도 이미 전문 센터에 맡겨서 확인했어. 반승제 맞는데, 그 사람이 지금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뿐이야.”설우현의 머릿속에는 성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떠보면서 물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야?””난 승제 여보 옆에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어. 다 싫어. 근데 오빠 생각엔 승제 여보하고 그 여자 다시 합칠 것 같아? 승제 여보가 그 여자 많이 좋아한다고 들었어.”“좋아하면 이혼하지 않았겠지. 반승제 할아버지가 밀어붙이는 바람에 결혼한 거야.”“암튼 다른 건 모르겠고 3일 지나고 나서도 승제 여보 옆에서 알짱거리면 엔디를 제원으로 보낼 생각이야. 오빠도 알다시피 엔디는 단 한번도 실수한 적 없어.”말을 마치고 전화를 단번에 끊어 버렸다.설우현은 마냥 골치가 아파 큰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분 지난 뒤, 수화기 너머 차갑고 성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형, 동생이 엔디를 제원으로 보내서 사람을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예요?”“상대가 누군데?”“반승제 옆에 있는 여자인데, 동생이 반승제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남자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번지면서 사부작사부작 소리를 냈다.“반승제한테 물어봐
설우현은 성혜인의 앞으로 다가가 막아서며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바닥을 보고 얼굴이 어두워졌다.“반승제, 얼굴에 화상이라도 입으면 어떡하려고 이러는 거야?”반승제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덤덤하게 말했다.“밖에서 함부로 놀아나지 못하게 그러는 게 좋겠어.”에둘러서 설우현을 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말 속에 뜻을 알아차린 설우현은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하지만 반승제는 이곳에 더 있지 않고 심지어 성혜인을 보지도 않고 가버렸다.화가 잔뜩 난 설우현은 쫓아가려고 했지만, 성혜인이 손을 들어 말렸다.“X발! 네가 이러고도 남자야! 여자한테 손을 대는 XX가 남자야!”설우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성혜인이 한스러워 덧붙였다.“페니 씨, 이거 좀 놔요. 내가 대신 화 풀어 줄게요. 반쯤 죽여 놓을게요.”성혜인은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떨어진 도시락을 줍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보고 설우현은 뭔가 좀 짠한 마음이 들었다.“미안해요. 반 대표가 갑자기 회사에 올 줄은 몰랐어요.”주워 담은 도시락을 옆에 쓰레기통에 버리고 성혜인은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그런 성혜인을 설우현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다른 여자라면 이미 눈물을 터뜨렸을 텐데, 평온한 성혜인의 모습이 마냥 대단하기만 했다.“페니 씨.”“설우현 씨.”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성혜인은 테이블에 있는 휴지를 뽑아 가슴에 묻은 국물 흔적을 지웠는데, 당장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았다.“페니 씨 먼저 말하세요.”“그 사람 화김에 하는 말이에요.”“그 사람”은 반승제를 가리키고 있다.성혜인은 장하리에게 전화를 걸어 갈아입을 옷을 부탁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설우현을 보며 덧붙였다.“내가 한 말을 들어서 홧김에 그러는 거예요.”하지만 설우현이 보기에는 지금 반승제를 위해 해명하는 것처럼 들렸다.그런 험한 말을 한 것까지 용서해 줄 수 있는 걸 보면, 성혜인도 반승제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이대로 반승제 곁에서 떠나라고 한 건 다소 잔인해 보이지만, 동생한테는
반태승은 소파에 앉아 반승제를 보고 테이블을 가리켰다.“대충 먹어. 네 둘째아버지는 어떻게 된 거야? 한성 그룹과의 베팅 계약은 또 무슨 말이냐?”반승제는 밥이 들어가지 않아 테이블로 가지 않고 소파 옆에 앉았다.“할아버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그러자 반태승은 지팡이로 반승제를 때렸다.“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네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잖아!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냐! 마누라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회사 관리도 못하고!”한 대 맞은 반승제는 울분이 터지고 말았다.“저라고 붙잡지 않은 줄 아세요. 설우현이 할리우드 진출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단번에 절 팔아넘겼어요.”반태승도 그만 때리려던 동작을 멈추고 답답해했다.“참, 헐값이구나.”“헐값”이라는 두 글자는 반승제의 가슴을 움푹 아프게 찔렀다.성혜인을 위해 내놓은 BH그룹의 지분이 할리우드 캐릭터를 얼마나 많이 살 수 있는지 모른다.하지만 설우현의 제안을 듣는 순간, 성혜인은 불과 딱 일 분밖에 망설이지 않았다.모든 노여움은 순간 사라진 채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반승제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회사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둘째아버지도 욕심낸지 한 참되었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어요.”반태승은 이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반승제가 어떻게 처리할지도 잘 알고 있다.한숨을 내쉬며 반태승은 말머리를 돌렸다.“그럼, 한성 그룹과 체결한 베팅 계약은 어떻게 된 거야?””보여주기식입니다. 한성 그룹은 해외에 있는 제 친구의 자산입니다. 대외로 공개된 사장은 그냥 제 친구의 꼭두각시일 뿐입니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반기범이 한성 그룹 사장과 연합한 것도 반승제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것인데, 자기가 빠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반승제는 반기범이 쥐고 있는 지분을 도로 거두고 싶은지 오래 되었고 기회가 없어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반태승은 눈을 가늘게 뜨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위아래로 반승제를 훑어보며 손을 흔들었다.“알았
위층에서 반승제는 모든 양복 세트를 꺼내 침대로 던졌다.심인우는 반승제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와 지금 정성껏 옷들을 정리하고 있다.반승제는 텅텅 비어 있는 옷장을 바라보다가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상자에 시선이 쏠렸다.“대표님, 정리 다 했습니다.”심인우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이에 반승제는 옷장 문을 닫고 침실을 한 번 훑어보면서 창문 앞에 있는 수랍장에 시선이 멈췄다.어젯밤의 야릇했던 분위기는 아직도 침실에서 감돌고 있는 듯했으나, 그렇게 순간 무정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고개를 떨구고 반승제는 주저 없이 밖으로 나갔다.차에 오르려고 하던 찰나에 겨울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바짓가랑이를 물었다.“멍멍멍.”“멍멍.”겨울이는 처음부터 반승제를 좋아했었다.두 사람이 이혼하지 않았을 때도 생떼를 써가며 반승제에게 매달려 있으려고 했다.하물며 지난번 동물 병원으로 안고 가기까지 했으니, 감지 능력이 뛰어난 겨울이는 반승제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꼬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흔들고 있다.반승제는 고급 양복바지에 묻은 겨울이의 침을 보고 눈빛이 차가워졌다.차문을 열고 들어가자, 겨울이도 고급스러운 기술을 뽐내며 잇따라 들어왔다.“...”반승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개도 성혜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앞줄에 있던 심인우는 반승제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걸 알고 화들짝 놀랐다.만약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된다면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당장 쫓아내겠습니다.”반승제는 겨울이를 한참 바라보더니 생각에 잠긴듯했다.지난번 긴장해 마지 못하던 성혜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심인우에게 말했다.“포레스트에 있는 감시 카메라 데이터 모두 삭제해. 겨울이가 나 따라 갔다는 걸 그 누구도 모르게 해.”이 말을 들은 심인우는 입꼬리가 실룩거렸다.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짜로 지낸 것도 모자라 강아지까지 훔쳐간다는 것이 우스꽝스러웠다.하지만 반승제의 명령이기에 감시 카메라 관리실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이곳에 남아 있는 사
그녀는 순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서류를 꺼내며 한서진을 바라보았다.“한 매니저님, 장 비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이름도 생김새도 아주 익숙했는데 바로 예전 백지영에 의해 배역을 뺏긴 여자 연예인이었다.그녀의 두 손에 문제가 생긴 뒤, 성혜인은 여자에게 찾아가 송아현과 함께 우애로운 동료처럼 “연기”하는 데에 동의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가장 좋은 의사를 찾아 손을 치료해 주겠다고 했었다.그렇게 그녀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체 언제 S.M과 계약을 체결한 건지에 대해서는 성혜인도 여태 알지 못했다.이때, 한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사장님, 이 일은 장 비서님과 상관없습니다. 제가 독자적으로 계약을 제안한 거예요.”“이유는요?”한서진은 현시점 업계에서 가장 능력 있는 매니저이다. 때문에 절대 허투루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그에 눈에 든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할 수 있다.“인내심이 강하고, 생김새가 예쁘고, 타고난 연기파, 심지어 송아현 씨보다 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송아현 씨의 연기는 아직 다듬어야 하는 반면 이분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연예계에 발을 들인 건 전부 그분 본인의 선택입니다. 또한 제가 직접 면접을 본 사람이에요. 어느 배역이든 잘 어울릴 겁니다.”성혜인은 한서진과 계약할 때 그가 다른 사람을 발굴하고 계약까지 인도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한서진의 안목을 믿었으니 말이다.“사장님, 만약 송아현 씨가 온실 속의 화초라면 그분은 태생부터 사막의 선인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백씨 집안 사람이 그분을 지키는 것은 어떠한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들었습니다.”성혜인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순간 그의 생각을 알아챘다.이 소녀는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만약 앞으로도 이 길을 고집한다면 장차 어떤 회사와 계약하든 명성을 떨칠 것이다.소녀와 백씨 집안의 원한은 오래전부터 쌓여 있었다. 백현문이
온수빈이 떠나자, 송아현은 그제야 부랴부랴 도착했다.할리우드 배역에 출연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벌떡 일어나 성혜인에게 거의 엎드리다시피 안겨 계약서에 뽀뽀하고, 하늘을 향해 성혜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떠났다.세 사람 중에서 가장 평온한 사람은 유해은이었다.유해은의 손은 아직 무엇을 들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게 그녀는 계약서를 자세히 한 번 읽었고, 10분이 지나서야 자신의 이름 세자를 적었다.떠날 때 그녀는 성혜인을 가볍게 안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이 행동은 성혜인의 마음을 가장 움직이게 했다.유해은의 부모님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그녀도 한때 교만했지만 백씨 집안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이후로 자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한서진의 말이 맞다. 그녀는 사막 속의 장미처럼 인내심이 강하고 굳세다.게다가 그녀는 외모도 훌륭했다.모든 것을 다 끝마치자, 때는 이미 새벽 1시가 다 되어갔다.기진맥진한 성혜인은 장하리가 데려다주는 도중, 차에서 잠들 뻔했다.그녀는 거실에서 반승제를 볼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을 구부리고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었을 때야 유경아가 오늘 전화한 것이 생각났다. 그가 짐을 뺐다는 소식 말이다.‘좋아, 이제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겠군.’그녀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파에 기대고 있는데, 유경아가 다른 도우미들에게 묻는 것이 들려왔다.“여기 없는 게 확실한가요? 이상하네요. 대체 어디로 더 갈 수 있는지...”성혜인은 피곤함에 눈도 뜨지 못했고 물을 장시간 마시지 않은 탓에 목소리도 조금 쉬어있었다.“아주머니, 왜 그러세요?”“겨울이가 없어졌어요. CCTV도 조사해 봤는데 안 보입니다. 지난번에 그 구멍도 우리가 막아놔서 도리상 어딘가로 빠져나갈 데가 없는데... 하지만 별장 주변을 샅샅이 찾아봐도, 제집에 있지도 않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성혜인은 지난번 겨울이가 개장수에게 끌려간 일이 떠올라 잠이 확 가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