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씨 가문 사람들은 반씨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게 되었다.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반씨 가문에는 여러 가지 일로 엉망진창인 상태였다.반태승에게 쫓겨 제원을 떠나야만 했던 반기태, 그리고 그런 일을 당했던 반승혜, 지금은 백연서까지 사고를 당했다.한창 회의 중에 있던 반승제는 반씨 저택의 하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백연서가 지금 병원에 실려갔고 생명이 위독하다고 말했다.그리고 반승혜는 과도한 충격으로 또다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누가 그런 겁니까?”“성혜인 씨입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합니다.”성혜인의 이름을 듣고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되물었다.“누구라고요?”“성혜인 씨가 했다고요. 오늘 아가씨와 사모님 찾으러 왔는데, 싸움으로 번져지면서 홧김에 사모님을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꽃병을 던져 아가씨까지 다치게 했습니다. 저희 왔을 때, 성혜인 씨의 손에 꽃병이 쥐여 있었습니다.”성혜인은 절대 그런 잔혹한 일을 할 리가 없는데, 하인은 성혜인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저희가 알아서 신고했고 경찰에서 성혜인 씨를 데리고 갔습니다. 반 대표님, 사모님 뵈러 병원으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백연서는 반승제의 친 어머니이다.어두운 얼굴로 전화를 끊고 나서 회의까지 중단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 외투를 가지고 주저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차에 오를 때, 그는 그만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할아버지에게는 먼저 알리지 마세요.”반태승은 요즘 여러 충격을 받았는데, 만약 백연서와 반승혜에게 일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쓰러질지도 모른다.반승제는 우선 병원으로 향했다.백연서는 응급실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고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리고 반승혜는 진정제를 맞고 이마에 상처를 봉합하고 있다.상처가 제대로 아문다고 해도 기나긴 흉터가 생길 것이 뻔하다.워낙 얼굴을 소중히 가꾸는 반승혜인데, 앞으로 흉터로 인해 영향을 많이 받을
빈승제는 여전히 덤덤한 모습을 보이며 손으로 얼굴을 만지더니 침착하게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포기한 걸 형도 알게 되면 아마 기뻐할 거예요.”반희월은 순간 말 문이 막혀 입만 벙긋거렸다.반씨 가문에는 이렇게 치정인 남자가 없고 반기범과 반기태도 밖에 집을 따로 두고 있다.때문에 그가 성혜인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반승제는 고개를 들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았다.“주식양도 서류는 심 비서에게 맡길 거예요. 응급처치 끝나고 나면 알려 주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반희월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지금 위독한 사람이 네 어머니다. 승제야, 네 어머니가 누워있는데, 이렇게 급하게 떠나야만 하니?”“고모, 여기 서 있는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건 없잖아요.”순간 반희월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눈앞에 있는 반승제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반씨 가문의 모든 것을 잘 처리한 반승제이다.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감정이 너무 적다.가족애도 사랑도 그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감정들이다.하지만 또 성혜인을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희생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모를까?성혜인을 좋아하고 있을뿐더러 사랑하고 있다.…반승제는 이미 병원에게 걸어 나왔고 그러한 감정이 사랑인지 뭔지 자기도 모른다.다만 성혜인이 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차에 올라 그는 경찰서로 향하지 않았다.교훈으로 삼아 며칠 동안 고생을 하게끔 가만히 두다가 다시 나오게 하면 그에게 더욱 감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는 사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단인데, 부하의 진급 과정을 길게 늘이면 더욱 많은 충심을 얻게 된다.차를 몰고 BH 그룹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냉정한 자기 모습에 자신도 놀라웠다.하지만 고개를 숙여 핸들을 보았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은 어느새 핏줄이 가득 설 정도로
장하리와 한서진이 떠나고 나서 성혜인은 다시 방으로 갇혀버렸다.장하리는 스카이웨어로 곧장 달려갔다.네이버에서 설우현의 이름을 검색하자마자 이미지가 떠올라 사진을 들고 그를 찾아 나섰다.얼마 지나지 않아 설우현이 여자를 품에 안고 걸어오는 모습이 시선으로 들어왔다.그리고 여자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이 어슴푸레 들렸다.“영화 보지말고 날 봐. 내가 더 재미있게 해줄게.”장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설우현 씨.”의심을 잠시 거두고 장하리는 한걸음에 다가가 설우현을 막았다.그러자 설우현은 여전히 눈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누구세요?”“사장님이 경찰서에 잡혀갔는데, 저보고 설우현 씨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사장님이 누구십니까?”“성혜인 사장님이십니다.”순간 설우현의 얼굴에 만발했던 웃음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여자의 허리도 풀어주며 말투도 제법 진지해졌다.“일단 제 차에 타세요. 가면서 얘기해요.”장하리는 그와 함께 차에 올라 옆 좌석에 앉았다.설우현은 차 문을 닫고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쥐었다.“어떻게 된 일입니까?”“반씨 가문과 관련되어 있는데, 반승제 씨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어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설우현은 주저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반승제는 한창 회의 중이고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면서 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결국에는 받았다.“무슨 일입니까?”“혜인 씨가 지금 경찰서에 갇혀 있다고 하는데 들으셨습니까?”기분이 본래 좋지 않았던 반승제인데, 설우현까지 끼어들자, 기분이 더더욱 나빠졌다.“네, 그래서요?”“반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상관하지 않을 겁니까?”“네.”그러자 설우현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혜인 씨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 참 구차하네요. 상관하지 않을 거면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마찬가지로 그의 말을 듣게 되는 반승제는 얼굴빛이 어둡기 그지없었다.“아니요. 상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말을
이를 보게 된 반승제도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눈에 살의가 번쩍거리는 듯했다.“왜?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성혜인은 침대에 앉아 입을 꾹 다물었다.이때, 옆에 있던 경찰이 침묵을 깨뜨렸다.“이제 반승제 씨와 함께 떠나셔도 됩니다.”성혜인은 마치 못 들은 것처럼 눈까지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반승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듯했다.반씨 가문에서 성혜인을 괴롭힐까 봐 주저 없이 10%나 되는 지분을 내놓으며 지켜주고 있는데, 겨우 이런 태도로 자기를 대하니 말이다.“네가 바라던 사람이 설우현이야?”이름을 듣게 되는 순간 성혜인의 눈초리는 살짝 떨렸다.그녀가 바라는 사람이 설우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제대로 폭발하여 성혜인을 단번에 끌어 당겼다.“실망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근데 맨날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는 설우현이 뭐가 아쉽다고 널 생각 하겠어.”성혜인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침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반승제를 보는 것만으로 화가 났다.점점 화가 극으로 달리고 있는 반승제는 눈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한겨울의 칼바람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하지만 결국엔 먼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어 성혜인의 손을 잡았다.인제 그만 실랑이를 벌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그러나 성혜인은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지금 이게 무슨 뜻이야?”“반 대표님, 그냥 가세요. 저 대표님 필요 없어요.”말을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워 등을 돌리기까지 하며 완강하게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반승제는 문 앞에 서서 성혜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지금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그러자 성혜인은 몸을 새우처럼 말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반승제도 문을 닫아버리고 양복도 벗어 던지며 범인을 정탐하는 작은 창문까지 막아버렸다.모든 걸 마치고 나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는데, 우아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어둡기 짝이 없고 잔혹하고 차가운 느
뺨을 때리고 나니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더는 기운을 낼 수 없었다.반승제의 얼굴에는 손가락 모양으로 선명하게 자국이 났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샤워 볼에 바디워시를 가득 묻히고 성혜인의 몸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손에 핸드워시를 묻혀 성혜인의 두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문질렀다.성혜인의 몸에는 흔적이 많이 남았는데, 짙고 옅은 것이 한곳으로 모이니 백지장에 그려진 유화처럼 유난히 예뻐 보였다.반승제의 시선은 그렇게 성혜인의 몸에서 몇 분간 배회하고 나서야 욕조에서 건져 옆에 있는 수건으로 닦았다.그에게 안겨서 침대로 오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 성혜인은 욕을 퍼부었다.“짐승!”하지만 반승제는 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이미 좋은 시간도 보냈고 욕을 먹는다고 해서 목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이불을 덮어주고 나니 심인우에게서 지분 양도 서류 준비를 맞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반승제는 옆에 누워있는 성혜인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답했다.“그래.”“대표님, 정말 양도하실 겁니까? 만약 반기범 씨께서 반씨 가문 다른 사람 손에 있는 지분까지 얻고 어르신 몫까지 합치게 된다면, BH 그룹의 대표님이…”“둘째아버지의 속셈이라는 거 알고 있어. 아니면 반승현을 그룹으로 들이지 않았을 거야.”“반기범 씨가 BH 그룹의 대표가 된다면…”“할아버지께서 주식을 주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고 반승제는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물렀는데, 다시 덧붙였다.“준다고 해도 상관없어. 이미 질리도록 앉았어.”이 자리에 앉게 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이 그에게 훈계를 두었었다.이 모든 건 본래 반승우의 몫이어야 하는데, 그가 죽었기에 반승제의 몫이 된 것이라고 말이다.반승제는 형을 진심으로 존중하나 마음을 나누며 지낼 수 없었다.어렸을 때부터 형의 그늘에 살아왔었고 그로 인해 부대로 몸을 숨기기도 했기 때문이다.만약 상속자의 자리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반승제는 지금 상업계를 뒤흔드는것이 아니라 부대에서 목숨을 걸고 있을
“그냥 좋아하는 거야.”반승제의 대답은 사랑이 아니었고 온시환도 이에 한숨을 돌렸다.“알았어. 그래도 한 번만 더 말할게. 후회하는 일 만들지 마. 모든 일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특히 혜인 씨 같은 여자는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처럼 대하면 안 돼.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자유를 줘야 너에 대한 마음이 더 커져.”“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좋아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옆에 꽁꽁 묶어 놔야 한다는 것이 반승제의 마인드다.반승제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숙여 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랜만에 너무 힘들게 괴롭힌 바람에 성혜인은 줄곧 깨나지 않았다.그도 천천히 침대에 누워 성혜인을 품에 꽉 끌어안았는데, 그제야 편안함이 들었다.반승제의 성질대로라면 고마움을 느끼게끔 구치소에서 좀 더 고생하게 놔두고 구세주처럼 등장해야 하는데, 회의실에서 도통 한 글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혼자서 슬프게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다.도저히 마음을 잡을 수 없었고 머릿속에 온통 성혜인으로 가득 찼다.설우현에게 걸려 온 전화는 그에게 아주 좋은 핑계가 되었고 주저 없이 차를 몰고 달려갈 수 있었다.그리고 지금 성혜인을 품에 안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원하던 것이다.“성혜인?”반승제는 성혜인을 한 번 불렀는데, 깊이 자는 바람에 아무런 답도 없었다.10분이 지나고 나서 그는 나지막이 다시 입을 열었다.“혜인아?”이렇게 부르고 싶은지 오래되었지만,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부를 수 있었다.비록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지만, 반승제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그렇게 또 10분이 흘러서야 마음 놓고 크게 불렀다.“혜인아?”“혜인아?”그러자 성혜인은 귀찮아하며 소리를 질렀다.“시끄러워요!”반승제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어젯밤에 들려온 “혜인아”라는 소리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반승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혜인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입만 벙긋거리며 토씨 하나 뱉지 못했다.묵묵히 성혜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성혜인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고 반승제의 각도에서 보면 귓가에 빨간색의 흔적이 선명하다.어젯밤 반승제가 성혜인의 몸에 남긴 흔적이다.성혜인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장하리에게 전화를 걸었고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반승제는 한참 서 있다가 침울하게 입을 열었다.“데려다줄게.”성혜인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며 운을 뗐다.“지금 이러는 모습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간주해도 될까요? 만약 정말로 잘못을 인정한다면, 우리 오빠를 죽게 한 대가로 반승혜 씨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해요.”“우리 오빠 목숨을 간접적으로 앗아간 동생을 감싸고 있는 건 고사하고 구치소까지 찾아와서 저에게 그런 짐승만도 못한 짓은 하지 말았어야죠.”성혜인은 덤덤한 말투로 이 모든 걸 뱉어냈다.사실 화를 낸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신경 쓰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성혜인은 그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냉담한 태도야말로 반승제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다.천천히 눈을 감으며 마른침을 몇 번 삼키고 나서야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미안해. 난 몰랐어.”성혜인은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얼굴을 보는 순간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웃다 보니 더없이 처량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됐어요. 대표님이 사람을 시켜서 감시 카메라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해도 전 끝까지 고소할 거예요.”반승제는 그 거지가 성혜인의 사촌 오빠일 줄은 몰랐다.그리하여 두려움은 무한대로 커지고 있는 것이었다.“대표님도 가족분들도 참 역겨워요!”이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반승제의 심장에 꽂히게 되었다.반승제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곧 덤덤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변하는 모든 과정을 목격했다.그는 옆으로 다가가 차문을 열고 고집을 부렸다.“데려다줄게.”
반승혜는 이제 막 상처 치료를 끝냈고 성혜인이 평생 감옥에 있을 줄만 알았다.하지만 10분 전에 사촌 오빠인 반승제가 BH 그룹 지분 10%를 내놓으면서 성혜인을 구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그리고 지금 정신 병원으로 옮기라는 전화까지 걸려 왔다.“싫어! 안 가! 이게 다 성혜인 때문이야! 그 X이 오빠 꼬시는 바람에 오빠가 이러는 거라고! 흑흑흑, 할아버지 만날 거야! 할아버지 불러줘!”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반승혜는 두 사람에게 꽉 잡혀 차에 실리게 되었다.울음이 끊이지 않고 모습도 낭패하기 그지없었고 이마의 상처까지 터져버렸다.차창에서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를 때, 반승혜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꺼져! 꺼져!”“내 몸에 손대지 마!”반승혜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지 한참 되었다.아름다웠던 세상만큼 와르르 무너지고 난 지금은 어둡기 그지없다.무너진 세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만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성혜인을 미워하는 것이다.성혜인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지만, 인간은 본래 복잡한 동물이고 인성 또한 그러하다.반승혜는 정신 병원으로 끌려가는 내내 차에서 소리를 질렀다.“제발 건드리지 말아주세요!”“꺼져! 살려줘! 누가 나 좀 살려줘!”“성혜인! 성혜인, 너 어디에 있어!”멘탈이 극도로 붕괴하자 끝끝내 가장 외치고 싶었던 그 이름을 뱉게 되었다.서천 빌딩에 있었던 그날도 반승혜는 자기를 구해 줄 성혜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했다.기도하면서 성혜인을 기다렸고 나타나기만 하면 일생의 부귀영화를 남김없이 넘겨주려고 했다.하지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본때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짐하며 목이 빠지게 기다렸지만,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남자는 벌써 몇 번이나 끝냈지만, 성혜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건드리지 마!”반승혜는 차 끝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다.그날에 있었던 그 일은 반승혜가 주동적으로 움직였던 것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살고 나니 받아들이기 힘들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