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먼저 좀 쉬고 있어. 아직 이렇게 흥분하면 안 돼.”임남호는 새우처럼 몸을 감싼 채 입술까지 파르르 떨고 있다.“정말 너무 무서웠어. 총도 들고 칼도 엄청나게 많았어. 문 앞까지 기어간 엄마를 억지로 잡아당겨 오면서 물건을 찾으려고 했어.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물건인 거 같았는데, 그래!도장이라고 했어. 도장만 얻으면 조직의 두목이 될 수 있다고 그걸 내놓으라고 했어.”한참이나 혼잣말하더니 텅텅 비어 있는 다리를 만지며 목소리까지 떨렸다.“다리가 없어. 어떡해? 내 다리 없어졌어. 혜인이 찾아가야 해. 가서 밥 먹을 돈도 없다고 배고프다고 할 거야.”처참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혜인은 울컥했다.“오빠, 이제 나 찾았으니 괜찮아.”그녀의 말에 위안받았는지, 임남호는 점점 안정되었다.성혜인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감정을 조절하느라 애를 썼다.“먼저 쉬고 있어. 내가 알아서 간병인 보낼 테니까 오빠는 일단 건강에만 신경 쓰고 있어. 그동안 너무 말랐어.”뼈가 앙상할 정도로 마른 그는 본래의 모습을 거의 다 잃은 것만 같았다.“반씨 가문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어떻게든 반승혜 감옥에 보낼 거야.”“그래. 혜인이 너만 믿을게.”그러자 성혜인은 그를 향해 한 번 웃었다.“나 회사에 가봐야 해. 퇴근하고 오빠 보러 올게.”“그래. 혜인이 너만 믿을게.”고개를 끄덕이고 의사에게 제일 비싼 영양식으로 부탁했다.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임남호의 몸부터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의사의 답을 듣고 나서야 성혜인은 병실에서 몸을 돌릴 수 있었다.그러나 아래층에 막 도착했는데, 위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병원 잔디밭 옆에 있는 가로등에 그대로 꽂히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졌다.임남호이다.임남호는 성혜인의 앞에서 뛰어내렸다.머리가 멍해지면서 땅에 주저앉을 뻔했고 앞으로 다가가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물끄러미 피로 물들인 가로등을 보고만 있었다.주위에 있던
성혜인은 임남호가 사고를 당했던 지역을 조사해 보라고 시켰고 부하들은 빠르게 그 지역을 찾아냈다.주변에는 감시 카메라가 확실히 많았고 이런 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을 보면 반승혜는 이 일로 초래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보였다.다만 임남호를 괴롭히게 하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성혜인은 그중 한 감시 카메라의 책임자를 찾았는데, 책임자는 우물쭈물하며 그날의 자료를 넘기려 하지 않았다.“혹시 명령이라도 받았습니까?”책임자는 순간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죄송합니다. 그 지역의 영상은 이미 삭제되었고 그날 밤과 관련된 자료도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한발 늦으셨습니다.”성혜인은 포기 하지 않고 다른 곳의 책임자도 찾아가 보았지만, 영상은 정말로 깨끗하게 삭제되었다.기분이 가라앉았지만, 반승제 쪽에서 처리한 일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행여나 그들에게 잊혀진 감시 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자세히 훑어보았지만, 단 하나도 없었다.반승제라는 사람은 본래 일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차로 돌아온 성혜인은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핸들을 꽉 잡아당겼다.가슴도 벌렁벌렁 뛰고 있는데, 반승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혜인 씨, 감시 카메라 찾아보러 갔다면서요?”성혜인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반승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오빠가 벌써 사람 시켜서 다 지웠어요. 평생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에요. 저 지금 반씨 저택에 있는데, 여기로 와서 얘기 좀 할래요?”“우리 사이에 얘기할게 남았나요? 저를 그렇게 싫어하시면서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어요?”“오든지 말든지 혜인 씨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백화점에 있을 때, 납치범이 나눴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거든요. 혜인 씨 엄마에 관한 얘기인 것 같았어요.”이것은 미끼이다.성혜인은 임남호에게서 임지연이 살아 있을 확률은 아주 낮다고 들었지만, 반승혜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우연히 들어맞은 것이다.그리하여 승혜인은 반씨 저택으로 향했고 마침 반승혜
반씨 가문 사람들은 반씨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게 되었다.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반씨 가문에는 여러 가지 일로 엉망진창인 상태였다.반태승에게 쫓겨 제원을 떠나야만 했던 반기태, 그리고 그런 일을 당했던 반승혜, 지금은 백연서까지 사고를 당했다.한창 회의 중에 있던 반승제는 반씨 저택의 하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백연서가 지금 병원에 실려갔고 생명이 위독하다고 말했다.그리고 반승혜는 과도한 충격으로 또다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누가 그런 겁니까?”“성혜인 씨입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합니다.”성혜인의 이름을 듣고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되물었다.“누구라고요?”“성혜인 씨가 했다고요. 오늘 아가씨와 사모님 찾으러 왔는데, 싸움으로 번져지면서 홧김에 사모님을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꽃병을 던져 아가씨까지 다치게 했습니다. 저희 왔을 때, 성혜인 씨의 손에 꽃병이 쥐여 있었습니다.”성혜인은 절대 그런 잔혹한 일을 할 리가 없는데, 하인은 성혜인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저희가 알아서 신고했고 경찰에서 성혜인 씨를 데리고 갔습니다. 반 대표님, 사모님 뵈러 병원으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백연서는 반승제의 친 어머니이다.어두운 얼굴로 전화를 끊고 나서 회의까지 중단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 외투를 가지고 주저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차에 오를 때, 그는 그만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할아버지에게는 먼저 알리지 마세요.”반태승은 요즘 여러 충격을 받았는데, 만약 백연서와 반승혜에게 일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쓰러질지도 모른다.반승제는 우선 병원으로 향했다.백연서는 응급실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고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리고 반승혜는 진정제를 맞고 이마에 상처를 봉합하고 있다.상처가 제대로 아문다고 해도 기나긴 흉터가 생길 것이 뻔하다.워낙 얼굴을 소중히 가꾸는 반승혜인데, 앞으로 흉터로 인해 영향을 많이 받을
빈승제는 여전히 덤덤한 모습을 보이며 손으로 얼굴을 만지더니 침착하게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포기한 걸 형도 알게 되면 아마 기뻐할 거예요.”반희월은 순간 말 문이 막혀 입만 벙긋거렸다.반씨 가문에는 이렇게 치정인 남자가 없고 반기범과 반기태도 밖에 집을 따로 두고 있다.때문에 그가 성혜인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반승제는 고개를 들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았다.“주식양도 서류는 심 비서에게 맡길 거예요. 응급처치 끝나고 나면 알려 주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반희월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지금 위독한 사람이 네 어머니다. 승제야, 네 어머니가 누워있는데, 이렇게 급하게 떠나야만 하니?”“고모, 여기 서 있는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건 없잖아요.”순간 반희월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눈앞에 있는 반승제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반씨 가문의 모든 것을 잘 처리한 반승제이다.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감정이 너무 적다.가족애도 사랑도 그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감정들이다.하지만 또 성혜인을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희생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모를까?성혜인을 좋아하고 있을뿐더러 사랑하고 있다.…반승제는 이미 병원에게 걸어 나왔고 그러한 감정이 사랑인지 뭔지 자기도 모른다.다만 성혜인이 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차에 올라 그는 경찰서로 향하지 않았다.교훈으로 삼아 며칠 동안 고생을 하게끔 가만히 두다가 다시 나오게 하면 그에게 더욱 감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는 사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단인데, 부하의 진급 과정을 길게 늘이면 더욱 많은 충심을 얻게 된다.차를 몰고 BH 그룹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냉정한 자기 모습에 자신도 놀라웠다.하지만 고개를 숙여 핸들을 보았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은 어느새 핏줄이 가득 설 정도로
장하리와 한서진이 떠나고 나서 성혜인은 다시 방으로 갇혀버렸다.장하리는 스카이웨어로 곧장 달려갔다.네이버에서 설우현의 이름을 검색하자마자 이미지가 떠올라 사진을 들고 그를 찾아 나섰다.얼마 지나지 않아 설우현이 여자를 품에 안고 걸어오는 모습이 시선으로 들어왔다.그리고 여자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이 어슴푸레 들렸다.“영화 보지말고 날 봐. 내가 더 재미있게 해줄게.”장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설우현 씨.”의심을 잠시 거두고 장하리는 한걸음에 다가가 설우현을 막았다.그러자 설우현은 여전히 눈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누구세요?”“사장님이 경찰서에 잡혀갔는데, 저보고 설우현 씨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사장님이 누구십니까?”“성혜인 사장님이십니다.”순간 설우현의 얼굴에 만발했던 웃음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여자의 허리도 풀어주며 말투도 제법 진지해졌다.“일단 제 차에 타세요. 가면서 얘기해요.”장하리는 그와 함께 차에 올라 옆 좌석에 앉았다.설우현은 차 문을 닫고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쥐었다.“어떻게 된 일입니까?”“반씨 가문과 관련되어 있는데, 반승제 씨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어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설우현은 주저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반승제에게 전화를 걸었다.반승제는 한창 회의 중이고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면서 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결국에는 받았다.“무슨 일입니까?”“혜인 씨가 지금 경찰서에 갇혀 있다고 하는데 들으셨습니까?”기분이 본래 좋지 않았던 반승제인데, 설우현까지 끼어들자, 기분이 더더욱 나빠졌다.“네, 그래서요?”“반씨 가문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상관하지 않을 겁니까?”“네.”그러자 설우현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혜인 씨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 참 구차하네요. 상관하지 않을 거면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마찬가지로 그의 말을 듣게 되는 반승제는 얼굴빛이 어둡기 그지없었다.“아니요. 상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습니다.”말을
이를 보게 된 반승제도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눈에 살의가 번쩍거리는 듯했다.“왜?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성혜인은 침대에 앉아 입을 꾹 다물었다.이때, 옆에 있던 경찰이 침묵을 깨뜨렸다.“이제 반승제 씨와 함께 떠나셔도 됩니다.”성혜인은 마치 못 들은 것처럼 눈까지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반승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듯했다.반씨 가문에서 성혜인을 괴롭힐까 봐 주저 없이 10%나 되는 지분을 내놓으며 지켜주고 있는데, 겨우 이런 태도로 자기를 대하니 말이다.“네가 바라던 사람이 설우현이야?”이름을 듣게 되는 순간 성혜인의 눈초리는 살짝 떨렸다.그녀가 바라는 사람이 설우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제대로 폭발하여 성혜인을 단번에 끌어 당겼다.“실망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근데 맨날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는 설우현이 뭐가 아쉽다고 널 생각 하겠어.”성혜인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침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반승제를 보는 것만으로 화가 났다.점점 화가 극으로 달리고 있는 반승제는 눈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한겨울의 칼바람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하지만 결국엔 먼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밀어 성혜인의 손을 잡았다.인제 그만 실랑이를 벌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그러나 성혜인은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지금 이게 무슨 뜻이야?”“반 대표님, 그냥 가세요. 저 대표님 필요 없어요.”말을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워 등을 돌리기까지 하며 완강하게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반승제는 문 앞에 서서 성혜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지금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그러자 성혜인은 몸을 새우처럼 말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반승제도 문을 닫아버리고 양복도 벗어 던지며 범인을 정탐하는 작은 창문까지 막아버렸다.모든 걸 마치고 나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는데, 우아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어둡기 짝이 없고 잔혹하고 차가운 느
뺨을 때리고 나니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더는 기운을 낼 수 없었다.반승제의 얼굴에는 손가락 모양으로 선명하게 자국이 났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샤워 볼에 바디워시를 가득 묻히고 성혜인의 몸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다.마지막으로 손에 핸드워시를 묻혀 성혜인의 두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문질렀다.성혜인의 몸에는 흔적이 많이 남았는데, 짙고 옅은 것이 한곳으로 모이니 백지장에 그려진 유화처럼 유난히 예뻐 보였다.반승제의 시선은 그렇게 성혜인의 몸에서 몇 분간 배회하고 나서야 욕조에서 건져 옆에 있는 수건으로 닦았다.그에게 안겨서 침대로 오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든 성혜인은 욕을 퍼부었다.“짐승!”하지만 반승제는 그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다.어차피 이미 좋은 시간도 보냈고 욕을 먹는다고 해서 목숨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이불을 덮어주고 나니 심인우에게서 지분 양도 서류 준비를 맞혔다는 전화가 걸려 왔다.반승제는 옆에 누워있는 성혜인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답했다.“그래.”“대표님, 정말 양도하실 겁니까? 만약 반기범 씨께서 반씨 가문 다른 사람 손에 있는 지분까지 얻고 어르신 몫까지 합치게 된다면, BH 그룹의 대표님이…”“둘째아버지의 속셈이라는 거 알고 있어. 아니면 반승현을 그룹으로 들이지 않았을 거야.”“반기범 씨가 BH 그룹의 대표가 된다면…”“할아버지께서 주식을 주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고 반승제는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물렀는데, 다시 덧붙였다.“준다고 해도 상관없어. 이미 질리도록 앉았어.”이 자리에 앉게 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이 그에게 훈계를 두었었다.이 모든 건 본래 반승우의 몫이어야 하는데, 그가 죽었기에 반승제의 몫이 된 것이라고 말이다.반승제는 형을 진심으로 존중하나 마음을 나누며 지낼 수 없었다.어렸을 때부터 형의 그늘에 살아왔었고 그로 인해 부대로 몸을 숨기기도 했기 때문이다.만약 상속자의 자리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반승제는 지금 상업계를 뒤흔드는것이 아니라 부대에서 목숨을 걸고 있을
“그냥 좋아하는 거야.”반승제의 대답은 사랑이 아니었고 온시환도 이에 한숨을 돌렸다.“알았어. 그래도 한 번만 더 말할게. 후회하는 일 만들지 마. 모든 일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특히 혜인 씨 같은 여자는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처럼 대하면 안 돼.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자유를 줘야 너에 대한 마음이 더 커져.”“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좋아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옆에 꽁꽁 묶어 놔야 한다는 것이 반승제의 마인드다.반승제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숙여 성혜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오랜만에 너무 힘들게 괴롭힌 바람에 성혜인은 줄곧 깨나지 않았다.그도 천천히 침대에 누워 성혜인을 품에 꽉 끌어안았는데, 그제야 편안함이 들었다.반승제의 성질대로라면 고마움을 느끼게끔 구치소에서 좀 더 고생하게 놔두고 구세주처럼 등장해야 하는데, 회의실에서 도통 한 글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혼자서 슬프게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다.도저히 마음을 잡을 수 없었고 머릿속에 온통 성혜인으로 가득 찼다.설우현에게 걸려 온 전화는 그에게 아주 좋은 핑계가 되었고 주저 없이 차를 몰고 달려갈 수 있었다.그리고 지금 성혜인을 품에 안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원하던 것이다.“성혜인?”반승제는 성혜인을 한 번 불렀는데, 깊이 자는 바람에 아무런 답도 없었다.10분이 지나고 나서 그는 나지막이 다시 입을 열었다.“혜인아?”이렇게 부르고 싶은지 오래되었지만,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부를 수 있었다.비록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지만, 반승제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그렇게 또 10분이 흘러서야 마음 놓고 크게 불렀다.“혜인아?”“혜인아?”그러자 성혜인은 귀찮아하며 소리를 질렀다.“시끄러워요!”반승제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어젯밤에 들려온 “혜인아”라는 소리는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