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0분이 지났지만, 핸드폰은 여전히 고요했다.반승제가 초조해하고 있는 그때, 마침 온시환이 이 시간에 술을 마시러 가자고 불렀다. 그렇게 그는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술집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신이한과 마주쳤다.신이한은 오늘 밤 마치 공작새와 같이, 화려하게 꾸며 입었다.그는 반승제를 보자마자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다.“이게 누구신가, 전남편분 아니세요?”반승제는 안색이 어두워져서 애써 그의 도발을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신이한이 가만 둘리 없었다.“참, 지난번에 페니 씨가 설우현 씨네 별장에 며칠 머무른 건, 전남편분께서 뭐라 물어보긴 하셨나?”신이한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우선 그는 성혜인이 몇 명의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졌는지에 대해 개의치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으니 말이다.하지만 반승제는 아니다.그는 여태 그 어떤 여자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윤단미와 잠깐 연인 사이이기는 했으나, 두 사람은 키스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승제는 이 방면에 대해 아주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아니나 다를까, 신이한이 이 말을 꺼내자 반승제의 얼굴은 완전히 어두워졌다.그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을 하고 있는데, 신이한이 다가왔다.“저는 페니 씨가 얼마나 많은 남자를 사귀었는지 개의치 않아요. 하지만 전남편분은 꽤 신경 쓰시는 것 같습니다만? 두 사람이 만약 나중에 사귀게 된다면, 반 대표는 다른 남자 일을 꺼낼 건가요?”반승제의 온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마치 광풍을 동반한 폭우와 같았다.그때, 누군가가 신이한을 끌어냈다. 온시환이었다.그 역시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 신이한에게 말했다.“신이한 씨, 어느 날 갑자기 HS그룹에 문제가 생기고 싶지 않으면, 그냥 이쯤 하시죠. 그때 가서 모든 걸 후회하지 마시고요.”그러나 신이한이 피식 냉소했다.“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HS그룹이 없어진다 해도, 저는 반드시 혜인 씨를 손에 넣고 말 거니까요.”그 말에 반승제는 폭발하고 말았다.“당신이 어울릴 거라 생각해?”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때,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네가 예전에 얼마나 많은 남자랑 사귀었는지 개의치 않아. 하지만 앞으로는 전부 끊어내야 할 거야.”그러자 성혜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반승제를 바라보았다.“저랑 대표님이 무슨 사이인데요?”그 물음에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성혜인은 이를 너무 꽉 깨문 나머지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대표님이 저를 이곳에 데리고 온 건, 그저 저 때문에 감염이라도 될지 걱정돼서 그런 거겠죠. 대표님은 마음속으로 저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저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한다고요? 너무 우습지 않아요?”“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그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그 어떤 믿음도 찾아볼 수 없어요!”‘그래봤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성혜인은 붉어진 눈시울로 뚫어져라 반승제를 쳐다보았다.“앞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 주세요, 제발 저 방해 하지 마시고요.”반승제는 제자리에 멍해 있었다.‘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그냥 검사 좀 해본 게 이렇게 큰 상처로 남을 일인가? 만약 병이 있다면 가서 치료받으면 되지, 애초에 나는 자기를 미워한 적도 없는데... 다행히 병이 없어서 좋은 거지만...’병원 밖으로 나오자, 성혜인은 화가 난 나머지 가슴이 지끈지끈 아파 났다.반승제는 항상 이렇다. 항상 이리도 가볍게 그녀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이내 그녀는 손을 휘둘러 택시를 잡았다. 어쩐지 입안에는 온통 피비린맛이 감도는 것 같았다.아래로 내려온 반승제 역시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을 보자 약간 화가 났다.차로 돌아온 뒤, 셔츠 단추를 몇 개 풀고 나서야 반승제는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운전하세요.”라고 말했다.‘내가 너무 쫓아다녀서 나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건가? 여자라는 생물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 일단 며칠 동안 지켜보는 수밖에.’...성혜인은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남호 오빠.”성혜인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그러나 아무런 징조도 없이 임남호는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당황한 성혜인은 다시 간호사를 불러왔는데, 과도한 쇼크로 일어난 반응이라는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그렇게 성혜인은 3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임남호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병원에서 주구장창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간병인 두 명을 불렀다.병실을 나서려고 하던 찰나에 갑자기 임남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반씨 가문… 반씨 가문 사람이야. 혜인아… 그 사람이 내 다리 잘라 버렸어.”임남호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다리가 잘리고 나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의지 하나로 그 골목에서 힘겹게 빠져나왔다.그때 두 경호원은 불빛 아래서 전과 많이 달라진 반승혜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다.임남호는 아파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이 말 한마디는 똑똑히 들었다.“반씨 가문 사람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백연서도 반승혜도 다들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다.그리하여 임남호는 자기 다리를 잘라버린 사람이 반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그는 반씨 가문에 대해서 일절 모르고 그 가문의 배경에 대해서는 더더욱 까막눈이다.다만 반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서운 존재라는 것만 뼈저리게 알고 있다.그의 소리를 듣고 성혜인의 발걸음은 순간 굳어지더니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로 뒤돌았다.“오빠, 깨어난 거야?”임남호는 깨어났고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혜인아, 반씨 가문 사람들 무서워. 날 죽이려고 했어. 내 다리까지 도끼로 잘라 버렸어. 나 진짜 너무 무서워.”덩치도 산만한 남자가 지금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다.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혜인은 가슴이 미어졌다.전에 임씨 집안에 얹혀살 때, 성혜인은 그나마 이 사촌 오빠와 말을 나눌 수 있었다.비록 나쁜 일을 많이 했던 임남호이지만, 지금 이 지경까지 될 정도는 아니었다.“혜인아, 나… 무서워. 내 다리가…”임남호는 이미 절단 수술을
임남호의 병실을 다시 찾아왔을 때, 성혜인은 마침 수표를 들고 찾아온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한 변호사를 선두로 병실을 가득 채웠는데, 성혜인은 이 사람과 초면이 아니다.이혼에 관한 서류를 전해줬던 남자도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변호사였다.아마 반승제 측의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이 되었는데, 그들이 왜 임남호의 병실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변호사는 임남호의 곁으로 다가가 이번 일에 대한 이해관계를 구구절절 말했는데, 결국은 금전적인 보상을 줄 수 있으니 신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임남호 씨, 저희 측에서 6000만원 수표를 준비해 왔습니다. 수표 받으시고 이번 일에 대해서 더는 언급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지금 정신 상태가 멀쩡하지 않은 임남호는 낯선 사람을 보기만 하면 거의 조건반사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다.그는 수표에 대해 그 어떠한 개념도 없고 오로지 몸을 숨기고 싶을 뿐이다.행여나 다른 한 쪽 다리도 잘려 나갈까 봐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옆에서 듣고 있던 성혜인은 그들의 뜻을 알아차렸다.이런 잔혹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반씨 가문의 사람이 확실하며 그들은 지금 돈으로 일을 무마시키려고 한다.씩 하고 웃더니 성혜인은 입을 열었다.“수표를 보낸 사람은 누굽니까?”변호사는 그제야 성혜인이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솔직하게 말했다.“반 대표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답을 듣고 나서도 놀라거나 의외라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반승제와 같은 인간이라면 이런 일을 하고도 남은 사람이다.성혜인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수표를 가져와서 한 번 보더니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변호사의 얼굴에 확 뿌렸다.“그럼, 우리 오빠를 저렇게 만든 사람은 누굽니까?”순간 변호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감시 카메라에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에 미리 일을 해결하고자 찾아온 것이다.만약 다리를 잘라 버리는 장면이 담기지 않았다면, 선뜻 찾아올 이유도 없고 임남호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말
“오빠, 먼저 좀 쉬고 있어. 아직 이렇게 흥분하면 안 돼.”임남호는 새우처럼 몸을 감싼 채 입술까지 파르르 떨고 있다.“정말 너무 무서웠어. 총도 들고 칼도 엄청나게 많았어. 문 앞까지 기어간 엄마를 억지로 잡아당겨 오면서 물건을 찾으려고 했어.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물건인 거 같았는데, 그래!도장이라고 했어. 도장만 얻으면 조직의 두목이 될 수 있다고 그걸 내놓으라고 했어.”한참이나 혼잣말하더니 텅텅 비어 있는 다리를 만지며 목소리까지 떨렸다.“다리가 없어. 어떡해? 내 다리 없어졌어. 혜인이 찾아가야 해. 가서 밥 먹을 돈도 없다고 배고프다고 할 거야.”처참하기 그지없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혜인은 울컥했다.“오빠, 이제 나 찾았으니 괜찮아.”그녀의 말에 위안받았는지, 임남호는 점점 안정되었다.성혜인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감정을 조절하느라 애를 썼다.“먼저 쉬고 있어. 내가 알아서 간병인 보낼 테니까 오빠는 일단 건강에만 신경 쓰고 있어. 그동안 너무 말랐어.”뼈가 앙상할 정도로 마른 그는 본래의 모습을 거의 다 잃은 것만 같았다.“반씨 가문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어떻게든 반승혜 감옥에 보낼 거야.”“그래. 혜인이 너만 믿을게.”그러자 성혜인은 그를 향해 한 번 웃었다.“나 회사에 가봐야 해. 퇴근하고 오빠 보러 올게.”“그래. 혜인이 너만 믿을게.”고개를 끄덕이고 의사에게 제일 비싼 영양식으로 부탁했다.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임남호의 몸부터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의사의 답을 듣고 나서야 성혜인은 병실에서 몸을 돌릴 수 있었다.그러나 아래층에 막 도착했는데, 위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가 병원 잔디밭 옆에 있는 가로등에 그대로 꽂히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졌다.임남호이다.임남호는 성혜인의 앞에서 뛰어내렸다.머리가 멍해지면서 땅에 주저앉을 뻔했고 앞으로 다가가 상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물끄러미 피로 물들인 가로등을 보고만 있었다.주위에 있던
성혜인은 임남호가 사고를 당했던 지역을 조사해 보라고 시켰고 부하들은 빠르게 그 지역을 찾아냈다.주변에는 감시 카메라가 확실히 많았고 이런 곳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을 보면 반승혜는 이 일로 초래될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보였다.다만 임남호를 괴롭히게 하고 싶었던 마음뿐이었다.성혜인은 그중 한 감시 카메라의 책임자를 찾았는데, 책임자는 우물쭈물하며 그날의 자료를 넘기려 하지 않았다.“혹시 명령이라도 받았습니까?”책임자는 순간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죄송합니다. 그 지역의 영상은 이미 삭제되었고 그날 밤과 관련된 자료도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한발 늦으셨습니다.”성혜인은 포기 하지 않고 다른 곳의 책임자도 찾아가 보았지만, 영상은 정말로 깨끗하게 삭제되었다.기분이 가라앉았지만, 반승제 쪽에서 처리한 일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행여나 그들에게 잊혀진 감시 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자세히 훑어보았지만, 단 하나도 없었다.반승제라는 사람은 본래 일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차로 돌아온 성혜인은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핸들을 꽉 잡아당겼다.가슴도 벌렁벌렁 뛰고 있는데, 반승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혜인 씨, 감시 카메라 찾아보러 갔다면서요?”성혜인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반승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오빠가 벌써 사람 시켜서 다 지웠어요. 평생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에요. 저 지금 반씨 저택에 있는데, 여기로 와서 얘기 좀 할래요?”“우리 사이에 얘기할게 남았나요? 저를 그렇게 싫어하시면서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어요?”“오든지 말든지 혜인 씨 마음대로 하세요. 다만 백화점에 있을 때, 납치범이 나눴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거든요. 혜인 씨 엄마에 관한 얘기인 것 같았어요.”이것은 미끼이다.성혜인은 임남호에게서 임지연이 살아 있을 확률은 아주 낮다고 들었지만, 반승혜가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우연히 들어맞은 것이다.그리하여 승혜인은 반씨 저택으로 향했고 마침 반승혜
반씨 가문 사람들은 반씨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게 되었다.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반씨 가문에는 여러 가지 일로 엉망진창인 상태였다.반태승에게 쫓겨 제원을 떠나야만 했던 반기태, 그리고 그런 일을 당했던 반승혜, 지금은 백연서까지 사고를 당했다.한창 회의 중에 있던 반승제는 반씨 저택의 하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백연서가 지금 병원에 실려갔고 생명이 위독하다고 말했다.그리고 반승혜는 과도한 충격으로 또다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누가 그런 겁니까?”“성혜인 씨입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합니다.”성혜인의 이름을 듣고 반승제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되물었다.“누구라고요?”“성혜인 씨가 했다고요. 오늘 아가씨와 사모님 찾으러 왔는데, 싸움으로 번져지면서 홧김에 사모님을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꽃병을 던져 아가씨까지 다치게 했습니다. 저희 왔을 때, 성혜인 씨의 손에 꽃병이 쥐여 있었습니다.”성혜인은 절대 그런 잔혹한 일을 할 리가 없는데, 하인은 성혜인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저희가 알아서 신고했고 경찰에서 성혜인 씨를 데리고 갔습니다. 반 대표님, 사모님 뵈러 병원으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백연서는 반승제의 친 어머니이다.어두운 얼굴로 전화를 끊고 나서 회의까지 중단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 외투를 가지고 주저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차에 오를 때, 그는 그만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알렸다.“할아버지에게는 먼저 알리지 마세요.”반태승은 요즘 여러 충격을 받았는데, 만약 백연서와 반승혜에게 일을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 쓰러질지도 모른다.반승제는 우선 병원으로 향했다.백연서는 응급실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고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그리고 반승혜는 진정제를 맞고 이마에 상처를 봉합하고 있다.상처가 제대로 아문다고 해도 기나긴 흉터가 생길 것이 뻔하다.워낙 얼굴을 소중히 가꾸는 반승혜인데, 앞으로 흉터로 인해 영향을 많이 받을
빈승제는 여전히 덤덤한 모습을 보이며 손으로 얼굴을 만지더니 침착하게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포기한 걸 형도 알게 되면 아마 기뻐할 거예요.”반희월은 순간 말 문이 막혀 입만 벙긋거렸다.반씨 가문에는 이렇게 치정인 남자가 없고 반기범과 반기태도 밖에 집을 따로 두고 있다.때문에 그가 성혜인을 위해 이 정도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반승제는 고개를 들어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았다.“주식양도 서류는 심 비서에게 맡길 거예요. 응급처치 끝나고 나면 알려 주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반희월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지금 위독한 사람이 네 어머니다. 승제야, 네 어머니가 누워있는데, 이렇게 급하게 떠나야만 하니?”“고모, 여기 서 있는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 건 없잖아요.”순간 반희월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눈앞에 있는 반승제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반씨 가문의 모든 것을 잘 처리한 반승제이다.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감정이 너무 적다.가족애도 사랑도 그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감정들이다.하지만 또 성혜인을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데, 과연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희생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모를까?성혜인을 좋아하고 있을뿐더러 사랑하고 있다.…반승제는 이미 병원에게 걸어 나왔고 그러한 감정이 사랑인지 뭔지 자기도 모른다.다만 성혜인이 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차에 올라 그는 경찰서로 향하지 않았다.교훈으로 삼아 며칠 동안 고생을 하게끔 가만히 두다가 다시 나오게 하면 그에게 더욱 감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는 사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단인데, 부하의 진급 과정을 길게 늘이면 더욱 많은 충심을 얻게 된다.차를 몰고 BH 그룹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냉정한 자기 모습에 자신도 놀라웠다.하지만 고개를 숙여 핸들을 보았는데,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은 어느새 핏줄이 가득 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