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도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위로하듯 등을 토닥였다.“괜찮아, 괜찮아.”그는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을 만지는 것처럼 성혜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성혜인의 이마는 온통 새파랗게 멍이 들어있었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있었다.반승제는 가볍게 자신의 옷자락으로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 입을 맞췄다.“괜찮아.”성혜인의 코가 갑자기 시큰거렸다. 그녀는 반승제가, 그것도 이렇게 빨리 오리라 생각지 못했다.‘분명 파이프 타고 올라온 거겠지?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잖아.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까? 목숨까지 걸면서...’하지만 곧 그녀는 반승혜가 떠올랐다. 반승혜도 이곳에 있었고 두 사람의 관계도 아주 좋았으니 말이다.그렇게 순식간에 떠올랐던 감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리고 그녀는 다시 냉정해졌다.반승제는 미처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성혜인을 끌고 이 방의 문 뒤에 섰다.“지금 올라오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이곳 인질범들을 조용히 정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성혜인은 그의 가슴에 등을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반승제는 왼손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코끝에서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으며 약간 마음이 들떠 있었다.그러나 성혜인은 시선은 여전히 밖에 고정되어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에게 말했다.“CCTV 실로 가요. CCTV 실은 10층에 있어요.”CCTV 실을 장악해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그러자 반승제는 그녀를 덥석 잡더니 대답했다.“내가 갈게, 너는 여기에 있어.”현재 15층의 적들이 이미 깨끗이 소탕되었으므로 이곳이 가장 안전하다.그러나 성혜인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품에 묻혀 울고 있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어느새 밖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반승제는 그 자리에서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비로소 성큼성큼 쫓아가 그녀를 끌어당겼다.“너 화났어?”‘내가 어제 늦게 온 것 때문에 자기가 이곳에 잡혀 와서?’“아니요.”“페니야, 나는...”말이 끝나기도
인질범들은 반응할 겨를도 없이 모두 쓰러져 버렸다.반승제 옆에 서 있던 성혜인은 그 장면을 보고 속이 메스꺼울 뿐이었다.그녀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범죄 영화들은 모두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성혜인은 그제야 이 세상이 왜 이렇게 고요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모두 이 치안을 지키는 사람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는 덕분이었던 것이다.반승제는 그 경찰들을 향해 말했다.“1층 로비에 아직 십여 명이 남아있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성혜인은 손등에 문신이 있는 남자를 확인하려고 했다.그러나 한 걸음 다가서자마자 반승제가 그녀를 끌어당겼다.“조심해!”엘리베이터 안 있던 남자가 마지막 숨을 고르며 총을 쏜 것이다.성혜인은 반승제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고, 그 총알은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가면서 옅은 핏자국을 남겼다.만약 조금만 더 빗나간다면, 총알이 스친 곳은 그의 뺨이 아닌 머리였을 것이다.성혜인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가 새하얘졌다.경찰은 십여 발을 더 쏴서 남자를 확인 사살한 후, 모두 반승제의 주변으로 몰려갔다.“대표님, 괜찮으세요?”“대표님...”그러나 오히려 반승제는 성혜인을 보며 물었다.“괜찮아?”성혜인의 머릿속은 여전히 멍했다. 만약 반승제가 그녀를 끌어당기지 않았다면, 그 총알은 그녀의 가슴에 명중했을 거다.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성혜인과 반대로 반승제는 하마터면 머리를 맞을 뻔했다.그녀는 입을 떡 벌린 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그러자 반승제도 놀랐는지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성혜인은 손끝을 떨며 그에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의 목숨이 그녀의 목숨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니 말이다.그러나 성혜인은 자신이 정말 그렇게 물으면, 뒤이어 그가 다시 그런 침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대표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그녀는 반승제에게 안긴 채, 그가 경찰들에게 뭐라 말하는 것을 보았다.그러자 몇 명의
”엉엉…엉엉…흑흑…”반승혜는 그치지 않고 계속 울다가, 피바다 속에 드러누워 있는 남자를 보더니 더더욱 기절할 뻔하였다.성혜인은 그런 그녀를 보며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을 보는 눈빛에서 짙은 원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라고 말하고 싶어 입을 열었으나, 결국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그녀는 얼른 겉옷을 벗어 반승제한테 건네주며 그한테 몇 마디 해명이라도 하려 했지만, 그는 겉옷을 건네받자마자 그것으로 반승혜를 꼭꼭 감싸고 아무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반승혜는 그 자리에 선 채, 문득 이번 일이 반씨 집안사람들 심장에 못을 박는 사건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그녀는 자신과 반승제 사이에 갑자기 은하수 하나가 생겨난 것처럼 그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방안의 냄새는 정말 끔찍했다. 반승혜는 분명 그 남자한테 한바탕 괴롭힘을 당한 게 틀림없다. 그것도 40분 이상은 괴롭혔을 것이다. 층 내의 다른 납치범들은 전부 처리되었지만, 그 남자는 줄곧 이 방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이 발견되지 못했다.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반승제의 뒤를 따라 1층 로비에 이르렀다. 건물 대문은 열려있었고, 경찰들이 한창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상황 조치를 하고 있었다.반승제는 반승혜를 구급차에 태우고 의사한테 전신 검사를 하라고 당부했다.성폭행을 당했는데 혹시 그 남자한테 어떤 더러운 질병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몇 마디 당부하는 중에 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는 할아버지 전화였다. 아마 일이 너무 커져 윗분들이 다 알게 되고 할아버지마저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승제야, 너 아비가 사람을 적잖게 보냈는데, 괜찮으냐?”반승제는 상황을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반승혜는 어릴 적부터 온 집안의 총애를 받으며 거리낌 없이 자랐고 반승제를 매우 믿고 따랐다. 비록 반승제가 반승혜의 아버지와 오빠와는 모순이 있지만,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사촌오빠인 반승제였다. 할아버지도 이 손녀를 매우 아끼는데, 이제 이런 일이
그의 비난에 성혜인은 반박할 수 없었다.벽에 기댄 그녀는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간 듯 기진맥진했지만, 그래도 임지연이 물건을 숨긴 그곳에 가서 해파리 모양의 도장을 찾아내야 했다.그 사람들이 목숨 걸고 그것을 찾아 헤매는 걸 보니 아마 매우 중요한 물건인 건 확실하다. 이젠 그들이 찾아까지 왔으니, 앞으로 평온한 날이 없을 것이다.“피곤해요. 돌아가서 쉴게요.”그녀는 입을 열더니 결국 이 한마디밖에 하지 못하고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반승제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가, 택시를 잡으려는 그녀를 보고 와락 당겨 자신의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는 바람에 성혜인은 그의 품속에 떨어져 안겼고, 그는 그녀를 차에 태운 후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그녀를 의자에 눌러 앉혔다.“페니야, 넌 또 뭐 때문에 화났는데?”반승제와 같은 상남자 사고방식으로는 그녀의 마음속 섬세한 부분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성혜인이 현재 뭐가 서러운지 그는 알 리가 없다.그녀는 아무 말 않고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반승제는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살짝 했다. 그 순간 그녀의 속눈썹은 날개를 접은 채 떨고 있는 한 마리의 나비와도 같았다. 그 미세한 떨림이 눈가에 들어오자, 반승제는 마음이 누그러들어 말했다.“좀 이따가 같이 제원에 가자.”서천은 별로 안전하지가 않다. 납치범이 어디서 또 나타날지 모른다.성혜인은 역시나 말이 없이, 조용히 운전석에 가서 앉았다.반승제도 별달리 막아서지 않고, 그녀가 어떤 골목길로 차를 몰고 갈 때까지 지켜 보고만 있었다.임동원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차에서 내려 얼른 그 집으로 들어가 부뚜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 들어 부뚜막을 때려 부숴 산산조각을 냈다. 반승제가 그걸 보고 제지하려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반 대표님은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세요.”더 이상 묻지 않고 밖에 나가려다 얼핏 뒤돌아보니 그녀는 부뚜막 밑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얼마 되지 않아 성혜인은 거기
성혜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 그녀는 지금 배가 엄청 고픈 데다 위까지 아파, 식사하는 게 너무나도 시급했다. 반승제는 그녀가 약간 걱정되어, 도우미한테 시켜 저녁 식사를 내오게 하고 서야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병원에 도착하니, 집안 가족 중 여러 명이 이미 도착하여 병실 밖을 에워싸고 있었다.모두가 오늘 반승혜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기에, 말없이 잠자코 있었다. 이번 일이 밖에 알려지면 반승혜의 명성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이다.반희월은 한숨을 내쉬었다.“승혜는 갑자기 왜 그런 델 갔다니?”반승제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납치범들은 이미 다 죽었으니, 앞으로 아무도 이 일에 대해 모를 거예요. 승혜한테는 제가 정신과 의사 한 분을 모셔 치료받게 할 거고요.”당장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반승혜의 부모, 즉 반승제의 둘째 큰아버지 내외가 병원에 왔다. 그 둘의 표정은 큰 기복이 없이 담담하였다.반승제는 자신의 이 둘째 큰아버지가 첫째 큰아버지 반기태보다 훨씬 상대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안다. 그는 여태껏 그룹 일에 대해 매사 최선을 다하였고 전혀 잘못을 골라낼 수 없이 완벽했다. 심지어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그 아들도 해외로 일찌감치 가서 여태 돌아오지 않고 있다.그와 반대로 반기태는 오히려 자기 아들 반재인을 제원에 두었을 뿐 아니라, 반재인의 연거푸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에 반태승의 심기를 건드려 적잖은 미움을 사게 되었다.이때 반기범이 반승제 앞에 서서 한숨을 내리 쉬었다.“승혜의 정신상태는 좀 괜찮아진 거야?”“별로 안 좋아요.”“승제야, 승혜한테 이런 일이 생겼으니, 아마 오빠가 많이 보고 싶을 거다. 승현이를 불러들이는 게 어떻겠니?”승현은 반기범의 아들, 반승현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승현은 줄곧 해외에만 있었기 때문에 반승혜만 국내에서 온 집안사람들의 총애를 받아왔다.반기범이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아무도 짐작 못 했다. 반승현이 이제 돌아온다면 반
반승제는 차를 몰고 한참 달리다가 신호등을 기다리는 잠깐의 틈을 타, 낮에 현장에서 발견한 그 쪽지가 또 생각나 꺼내보았다.쪽지에는 성혜인이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어디에서 똑같은 글씨체를 본것같아 애써 되새겨보았지만, 자신의 전 와이프한테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라,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때까지도 아무런 단서가 떠오르지 않았다.그는 조심스럽게 종이쪽지를 접은 다음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왔다.하루내내 먹지 못한 반승제는 1층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나서 도우미한테 물었다.“페니는?”“올라가서 주무십니다. 페니 아가씨가 많이 피곤해 보이던데요.”반승제가 냉큼 위층으로 올라가 침실문을 열고보니, 과연 침대위에 이불을 쓰고 웅크린 채 자고있는 작은 체구가 보였다.그는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자연스럽게 그녀의 몸 위에 올라가 누워 그녀를 내리 감싸 안았다. 그 바람에 성혜인은 잠결에서 깨어나, 눈도 뜨지 못한채로 그의 어깨를 성질부리 듯 두어번 두드렸다. 어젯밤에도 그 차를 쫓아다니느라 힘들었고, 오늘도 밤낮으로 별로 쉬지도 못했는데, 이 남자한테 아직도 체력이 남아돌다니. 성혜인이 뭐라말할려고 입을 여는 순간,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을 바로 막아버렸다. 힘이 빠진 그녀는 순순히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몸이 불같은 체구에 안겨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그 다음날 점심이 되어서야 성혜인은 잠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났다.반승제는 방에 없고, 그녀를 위한 새옷 한 벌이 협탁위에 놓여져 있었다. 성혜인은 얼른 그걸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식탁에는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페니 아가씨, 식사 하세요.”도우미는 그녀한테 매우 친절했다. 성혜인은 식사를 마치고 얼른 회사로 갔다. 요새 다른 일로 많이 바빴지만 다행히 회사 내의 프로젝트는 한창 잘 진행되고 있었다.TJ엔터가 일으킨 여론은 너무 폭발적이었고, 그 과정에 S.M은 대승을 거두었다.TJ엔터는 아직도 지속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와중에 S.M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
다른 한편, 반승제는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와서, 성혜인이 안 보이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성혜인은 그 시각 금방 별실 입구까지 도착했다. 별실 룸은 댄스 플로어에서 멀리 떨어져 주변이 그나마 조용했다.“반 대표님.”“어디 갔어?”그녀는 클럽에 있다고 얘기하려다 그렇게 되면 반승제가 쫓아올까 봐 다른 핑계를 댔다.“야근하는 중이에요.”“쉬엄쉬엄해.”이틀 동안 둘 다 많이 피곤했다. 그녀가 야근한다니 몸이 버틸 수 있을지 그는 걱정이 되었다.“신경 써 줘서 감사해요.”그녀의 공손한 말투는 마치 어젯밤 뜨거웠던 두 사람이 그들 둘이 아니었던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지게 해, 반승제는 마음이 좀 불편했다.그는 눈빛이 어두워지며 아쉬운 채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자마자 거실의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성혜인이 돌아온 줄 알고 곧바로 가서 문을 열었다.문밖에는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네이처 빌리지가 완공되고 나서 반태승이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할아버지.” 반태승은 주위를 둘러보고 만족스럽다는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집 인테리어가 괜찮구나.”반승제는 도우미한테 차를 내오라 하고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반태승은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네 고모가 그러는데 승혜가 온밤 내내 잠꼬대했다는구나. 뭘 말했는지 물었더니 얘기는 안 하고, 그저 승혜가 깨면 다 알게 될 거라고만 하는데, 혹시 승제 너희가 그 건물에서 또 누구를 보았느냐?”반승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승혜가 페니에 관해 얘기한 것인가?할아버지가 만약 승혜의 일이 페니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아니요.”“위에서 이미 납치범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들은 전부 밀입국자들이야. 최근 국경 쪽에도 압력이 커. 게다가 국내에 그들과 안팎으로 내통하는 자들도 있고. 그게 아니면 그렇게 많은 총을 구하지 못했을 거야.”반승제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만, 사색은 이미 딴 데로 가 있었다.고개를 숙일 때 마침 온시환한테서 온
성혜인은 순간 가방 속의 그 해파리 도장이 손에 댈 수도 없이 뜨겁게 느껴졌다.임지연은 어찌하여 그런 조직과 엮이게 됐을까?그리고 왜 도움이 필요할 때 이 물건을 유용하게 쓰라고 자신한테 당부했을까?설마 그 극악무도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살인이라도 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건 임지연의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다.성혜인이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는 그때, 설우현이 또 이어서 얘기했다.“이 조직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어요. 그리고 아주 베일에 싸였죠. 정식 명칭은 Bloodkillers, 돈을 받고 대신 일을 해결해 주죠. 돈만 충분하다면 그들은 그 누구의 목숨이라도 빼앗을 수 있어요. 20여 년 전에도 아마 누군가 그들한테 큰돈을 줘 부잣집 일가를 죽이라고 사주했을 거예요.”성혜인은 그의 말을 듣고 몸이 오싹하여 침을 몰래 삼켰다.“그럼, 설우현씨는 무섭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그들한테 돈을 주고 우현 씨의 목숨을 노린다면?”설우현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BKS가 원하는 건 결국 돈이에요. 내가 상대방보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오히려 돌아서 고용주를 죽일 수도 있죠. BKS를 사주해서 날 죽이려면, 내가 그보다 더 많은 돈으로 내 목숨을 살지 안 살지 생각해야 할 거예요. 내가 그 돈을 기꺼이 낸다면 사주한 그 사람은 죽게 될 테니까.”“그런데 설우현씨 말대로라면, 20여 년 전에 그들이 죽인 건 세계 최고 부자가 아닌가요? 갑부보다 더 돈 많은 사람이 있을 리가요.”“그 갑부 남자는 당시 마흔 명이 넘는 여자가 있었어요. 집안 재산은 진작에 쪼개져 그 남자 손에는 얼마 남지 않았죠. 기타 가족들도 돈을 함께 모으길 원하지 않았으니, 죽임을 당한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설우현은 이 말을 마치고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얼굴색이 더 덤덤해졌다.“재벌가의 혈육 간의 정은 워낙에 희박해요. 예상하건대 그 일을 사주한 사람은 그 남자의 한 아들이었을 거예요.”성혜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점점 이 해파리 도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