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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들러리일 뿐인 존재

성혜인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슬픔도 후회도 전부 두 사람 몫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는 김애은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지만 박예진이 죽은 다음 우는 것은 하나도 소용없었다.

김애은은 박주완을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짧은 시간 동안 10년이나 늙은 것 같았다.

박주완은 김애은의 도움을 받으며 찬물로 씻은 다음에야 그나마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틀 후, 두 사람은 드디어 약간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성혜인의 말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페니라는 여자가 우리한테 거짓말했을 수도 있지.”

“맞아요, 예진이 우리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하하.”

두 사람의 대화는 아주 무미건조했다. 어떻게든 박예진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 후 배윤수가 전화를 걸어 3개의 대본 전부 선택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속상하신 건 알겠지만 죄송하게 됐습니다.”

박주완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배윤수의 목소리를 듣자 녹음 속의 목소리가 떠올라 열불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배윤수였다. 박주완이 죽어도 이기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들은 녹음도 절대 공개할 수 없었다. 그러면 박예진의 이름은 끝없이 불명예스럽게 거론되고 말 것이다.

박주완은 이미 녹음을 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녹음이 공개된다면 박예진이 먼저 배윤수를 꼬셨다고 말할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렇듯 여자에게 불공평했다.

두 사람은 박예진이 죽은 다음에도 거론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혼자 피임약을 사 먹었던 모습을 떠올리면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배윤수가 그토록 짐승보다 못할 선생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다면 예진의 대본을 저희에게 돌려주세요, 교수님.”

마지막 대본을 얻은 배윤수는 더 이상 연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일을 귀찮게 만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했다.

“대본은 투자자한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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