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과 온수빈은 영화관을 떠난 다음에도 영화 얘기를 계속했다.“페니 씨, 이번 영화의 매출액이 6000억 원을 넘길 것 같다고 하네요. 덕분에 저도 인기가 많아질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도 S.M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온수빈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러자 성혜인은 그의 차를 툭툭 치면서 대답했다.“돌아가서 편히 쉬어요. 제가 빠른 시일 내로 다른 일을 찾아줄게요.”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S.M은 당분간 온수빈의 인기로 먹고살게 생겼다.그래도 성혜인은 박예진이 보내준 몇 개의 대본에 의지해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대본도 있고 감독도 있으니, 흥행만 하면 S.M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성혜인은 남자주인공은 온수빈으로, 여자주인공은 신인 여배우로 쓸 생각이었다. 그것도 S.M과 계약한 신인 여배우 말이다. 그렇다면 온수빈의 인기로 신인도 키워볼 수 있었다.온수빈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S.M의 오너로서 성혜인은 사업가들이 자주 쓰는 수단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온수빈에게도 합당한 보수를 줄 것이다.성혜인은 온수빈이 떠나간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몸을 돌려 차에 올라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차 문을 연 순간 뒤에서 남자 두 명이 나타나 그녀의 목을 잡았다.이곳은 유동 인구가 많은 백화점 앞이었다. 그래서 성혜인은 어떻게든 소리를 질러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뒤통수를 가격당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40분 후.누군가가 성혜인에게 찬물을 뿌렸다. 그러자 그녀는 서서히 눈을 떠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도송애는 의자에 앉아 오만한 태도로 성혜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오랜만이에요, 페니 씨.”성혜인은 도송애가 도라희 때문에 자신을 납치했다고 생각했다.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진 도라희는 해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도송애는 커다란 채찍을 들고 있었다. 괜히 수많은 남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의 앞에서 두 손 두 발 다 묶인 성혜인은 곧 도살당할 소가 된 것만 같은 무기력감이 들었다.
성혜인은 눈썹을 튕기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못 믿겠으면 회장님께 연락해요. 번호는 제가 알고 있어요. 안 그래도 얼마 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거든요. 참, 반승제 씨가 저를 왜 싫어하는지 알아요? 그건 제가 하루가 멀다 하게 회장님께 고자질해서예요.”성혜인의 태연한 모습에 도송애는 이미 반쯤 넘어갔다. 더구나 그녀는 권세에 굴복할 줄 아는 똘똘한 사람이었기에 표정도 전보다 훨씬 누그러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위협을 잊지 않았다.“만약 거짓말이 들통나면 지금보다 더 심한 대접을 받을 줄 알아요.”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목적은 이미 달성했기 때문이다. 도송애의 성격으로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그녀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도송애가 조사를 끝낼 때까지 숨을 돌릴 수 있었다.역시나 도송애는 경호원에게 성혜인을 가둬두라고 지시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반기태의 사람과 연락이 닿았다.금방 퇴원한 반기태는 성혜인이 도송애에게 잡혀 있다는 소식을 알고 곧바로 사람을 보내 풀어주라고 했다. 도송애는 반기태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회장에서 마주친 적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혜인이 한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여기고 부리나케 그녀를 풀어줬다.반승제의 위협에 단단히 겁먹은 반기태는 더는 성혜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레스토랑에서 성혜인과 만나자마자 그녀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주라고 했다.성혜인의 안색은 아주 창백했다. 잔머리를 굴려 도송애에게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반기태의 손에 잡히고 말았으니 말이다.“페니 양, 지난번의 오해에 관해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네.”반기태의 태도에 성혜인은 금방 그가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고 확신했다. 그는 또 40억이 적혀 있는 수표와 약병을 꺼내 성혜인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이건 사람을 소리소문없이 죽일 수 있는 약이야. 승제는 평소 일이 많으니 언제 갑자기 심정지로 죽어도 이상할 건
성혜인은 반승제를 배신했다. 그러니 반승제도 성혜인을 없애버리는 것이 현명했다.저녁, 침대에 누운 반승제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물안개로 가득 찬 욕실이 떠올랐다. 떨림은 입술부터 가슴까지 점점 아래로 전해졌다.반승제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한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물안개 속의 사람을 보려고 집중하기는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든 반승제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한 여자와 부둥켜안은 채 좁은 차 안에 있었다.“남편 몰래 나랑 만나는 거, 재미있지 않아?”이 목소리는 분명히 반승제의 것이었다.새벽 3시, 반승제는 눈을 번쩍 떴다. 온몸을 휘감은 흥분감 때문에 다시 잠들기는 그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심호흡하고 나서 한겨울에 찬물 샤워하러 욕실로 향했다.그리고 샤워가 끝난 다음에야 약간 살 것 같았다....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회사로 가서 안유결에게 대본을 보여줬다. 그의 마음에 드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비록 안유결을 천재 감독의 길로 이끈 것은 사극 드라마였지만, 그가 촬영한 스릴러 드라마도 마찬가지로 유명했다.대본을 보고 난 안유결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상기된 안색으로 말했다.“사장님, 이 대본들은 어디에서 구한 거예요?”“성주대의 학생한테서요. 실력이 대단하죠?”안유결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대본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S.M에 큰 기대가 없었던 그의 가슴이 이토록 다채로운 대본에 세차게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그러네요. 이런 대본이라면 얼마든지 촬영할 수 있어요. 부디 저한테 맡겨주세요!”안유결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한시름 놓았다.“온수빈 씨를 남자주인공으로 쓰는 건 어때요? 얼마 전 금방 상영한 영화 덕분에 홍보 효과가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여자주인공은 오디션으로 신인을 뽑았으면 해요.”“온수빈 씨의 연기력이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죠. 하지만 추리물 드라마는 투자금이 엄청 필요할 거예요.”“400억이면 될까요?”안유결은 손을 흠칫 떨었
성혜인은 두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박예진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만났던 사람인데 갑자기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화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그녀는 박예진이 남긴 편지를 떠올렸다. 아마 박예진은 그 편지를 쓸 때부터 이미 각오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그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었다.그녀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도 박예진이 지우려고 했던 녹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박예진의 시신을 앞두고는 도무지 재생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다시 거두던 순간 배윤수가 슬픈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작가님...”배윤수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쉬었다.“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페니 씨는 오늘 예진 학생을 만나러 왔나요?”“네.”“예진 학생의 대본들은 페니 씨한테 있죠?”“네.”“예진 학생은 우리 전공의 수석이었어요. 그 대본들은 유물로 부모님께 드리고 싶네요. 이렇게라도 위로가 되고 싶어서요.”성혜인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사람이 죽자마자 대본을 빼앗으려는 속셈이 더러웠기 때문이다. 원래도 그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생각은 이 순간 더욱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그 대본들은 예진 씨가 저한테 준 거예요. 그 증명으로 손 편지도 있어요. 저한테 준 대본을 아무도 가져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요.”배윤수는 박예진이 편지를 남겼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박예진이 자살한 탓에 배윤수는 앞으로 꽤 귀찮은 일에 휘말려야 했다. 그래도 그녀가 남긴 대본으로 돈 벌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예진이 부모님한테 말해서 받아오라고 해야겠군...’배윤수는 몰래 이를 악물며 성혜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성혜인은 성주대학교를 떠난 다음에도 손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힘들게 기분을 진정시키고 녹음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녹음 속에는 짧은 몇 마디만 있었다. 그래도 박예진이 배윤수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
배윤수는 이런 학생들을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그것도 다 모자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그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박주완과 김애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성혜인에게서 대본을 빼앗아 온다면 박예진은 제값을 끝내는 셈이었다. 그래서 배윤수는 후에 또다시 박주완에게 연락해 대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박예진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박주완은 역시나 성혜인에게 연락했다. 그때 성혜인은 마침 배윤수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박예진이 죽었다고 해도 녹음을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그녀에게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페니 씨, 나는 예진이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예진이 대본이 그 쪽한테 있다고 들어서 연락했어요. 그건 예진이 유물이니 저희한테 돌려주시죠.”“죄송하지만 그건 예진 씨가 정당한 거래를 통해 저한테 준 물건이에요.”“얼마 받고 샀는데요?”“그건 저와 예진 씨의 일이고요.”“그게 무슨 뜻이죠? 난 예진이 아버지라니까요? 예진이 일이 곧 내 일이에요. 예진이 장례식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애 대본을 이용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당신 양심이 있기나 해요? 예진이는 내 유일한 딸이에요! 만약 대본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당장 법원에 고소장 올릴 줄 알아요!”박주완의 고함에 성혜인은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만약 그가 지금과 같은 기세로 배윤수를 대했다면 박예진이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아버님, 예진 씨는 저한테 편지를 남겨줬어요. 예진 씨도 성인이니 그 편지가 법정에서 증거가 되어주겠네요. 그러니 고소를 원하시면 얼마든지 하세요. 다른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며칠 더 기다려 주시고요.”성혜인은 일단 배윤수의 실체부터 까발리려고 했다. 그러면 진실을 알고 난 박예진의 부모도 자연스레 포기하고 나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주완은 그새를 못 참고 인터넷 여론을 이용해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성주대학교는 아주 유명한 명문대였다. 그래서 성주대학교의 학생이 자살한 사건도 엄청난 화제
반승제가 거절한 다음 성혜인의 기사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박주완이 한 시간마다 새 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한 덕에 점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모든 사람이 일제히 성혜인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배윤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머릿속에는 박예진의 대본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생각까지 끝냈다.배윤수에게는 정기적으로 거래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도송애였다. 어차피 대본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그는 한발 먼저 도송애에게 연락했다.도송애는 이미 배윤수와 두어 번 협력한 적 있었다. 지난번 투자한 두 개의 대본은 무려 투자금의 30배나 벌어들였다. 그래서 그녀는 연락받자마자 자세히 묻지도 않고 통 크게 허락했다.“이렇게 먼저 연락해 주셔서 고마워요. 작가님의 대본이라면 더 물을 것도 없죠. 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60억 원은 대본에, 200억 원은 촬영에 투자할게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배윤수는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로 가득 찼다.성혜인이 지금껏 기사를 내리지 못한 것을 보고 배윤수는 그녀가 무조건 권력 없는 하찮은 사람일 것으로 단정 지었다. 제원에 돈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권력까지 있는 사람은 적었기 때문이다.배윤수는 피식 웃으면서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박주완이 대본을 가져오고 떼돈 벌 때만 기다리면서 말이다.저녁 식사 시간, 설우현이 건 전화가 배윤수의 핸드폰을 울렸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위선의 가면을 쓰고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안녕하세요, 우현 씨.”같은 시각, 설우현은 클럽에 있었다. 그는 우연히 친구가 인터넷 기사를 얘기하는 것을 듣고 배윤수에게 전화를 걸었다.“제가 얼마 전 페니 씨한테 대본을 추천해달라고 했잖아요. 혹시 페니 씨와 만나던 사람이 투신자살했다는 그 학생인가요?”“네,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 학생이 페니 씨한테 대본을 준 모양인데, 지금 학생의 부모님이 대본을 내놓으라고 아주 난
배윤수의 속은 이미 희열로 가득 찼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심지어 실망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박주완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교수님, 혹시 대본이 별로인가요?”배윤수는 박예진의 영정사진을 힐끗 봤다. 속으로는 박예진 일가의 멍청함을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른다.“장례식에서 대본 얘기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예진이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오늘은 일단 장례식에 집중해요. 이 대본은 제가 알아서 투자자를 찾아볼게요. 하지만 그다음 일은 보장할 수 없어요. 그래도 예진이가 남긴 소중한 물건이니 최선은 다할게요.”박주완은 한숨을 쉬었다. 김애은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정말 고마워요, 교수님. 우리 예진이가 그렇게 속을 썩였는데도 계속 도와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배윤수는 박주완의 어깨를 툭툭 쳤다.장례식에 온 조문객은 별로 없었다. 내성적인 박예진에게는 애초에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례식도 단출한 편이었다.잠깐 쉬러 밖으로 나온 박주완과 김애은은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성혜인과 마주쳤다. 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았던 박주완은 그녀를 보자마자 완전히 폭발해 버리고 말했다. 그래서 한쪽에 놓여 있던 빗자루를 쳐들고 그녀를 향해 휘둘렀다.“도둑년! 살인자! 네가 우리 예진이를 죽였어! 근데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꺼져! 꺼지라고!”김애은은 뒤에서 박주완을 잡고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도 증오가 가득하기는 마찬가지였다.성혜인은 빗자루를 확 잡아 던지고 고집스러운 부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배윤수가 박예진을 죽인 범인이라면, 두 사람은 공범인데도 말이다.성혜인은 결국 녹음을 꺼내 들었다. 원래는 박예진의 명성을 위해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이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도 꺼내야 할 것 같았다.“이건 예진 씨가 저한테 준 녹음이에요. 저는 원래 이 녹음으로 예진 씨를
성혜인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슬픔도 후회도 전부 두 사람 몫이었기 때문이다. 뒤에서는 김애은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지만 박예진이 죽은 다음 우는 것은 하나도 소용없었다.김애은은 박주완을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짧은 시간 동안 10년이나 늙은 것 같았다.박주완은 김애은의 도움을 받으며 찬물로 씻은 다음에야 그나마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틀 후, 두 사람은 드디어 약간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성혜인의 말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페니라는 여자가 우리한테 거짓말했을 수도 있지.”“맞아요, 예진이 우리를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하하.”두 사람의 대화는 아주 무미건조했다. 어떻게든 박예진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얼마 후 배윤수가 전화를 걸어 3개의 대본 전부 선택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알렸다.“속상하신 건 알겠지만 죄송하게 됐습니다.”박주완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배윤수의 목소리를 듣자 녹음 속의 목소리가 떠올라 열불이 솟구쳤기 때문이다.하지만 상대는 배윤수였다. 박주완이 죽어도 이기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들은 녹음도 절대 공개할 수 없었다. 그러면 박예진의 이름은 끝없이 불명예스럽게 거론되고 말 것이다.박주완은 이미 녹음을 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약 녹음이 공개된다면 박예진이 먼저 배윤수를 꼬셨다고 말할 사람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렇듯 여자에게 불공평했다.두 사람은 박예진이 죽은 다음에도 거론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혼자 피임약을 사 먹었던 모습을 떠올리면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배윤수가 그토록 짐승보다 못할 선생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그렇다면 예진의 대본을 저희에게 돌려주세요, 교수님.”마지막 대본을 얻은 배윤수는 더 이상 연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일을 귀찮게 만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했다.“대본은 투자자한테 있어요.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