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반태승도 그가 또 한 여자와 놀아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하룻밤 동안 무릎을 꿇려 벌하는 거로 마무리했다.처음 반승제가 바람피운 걸 알았을 때는 집안의 법대로 엄중히 벌했기에, 무릎을 꿇리는 건 그와 비길 바 없이 가벼운 벌이었다.그 말인 반태승의 경계가 아주 느슨해졌다는 것을 설명한다. 단지 결정적 계기 하나가 부족할 뿐. 반승제는 그 계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윤씨 집안.윤단미는 밤새도록 미친 듯이 굴었다.사람은 극한으로 분노했을 때 거의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목이 쉬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엄서향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줄곧 초조하게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서 있었다.“단미야, 무슨 일 있는 거면 다 같이 상의하면 돼.”윤단미의 입술은 어느새 창백하게 질려있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너무나도 굴욕적이었다. 이전에 당한 굴욕들을 모두 더해봐도, 성혜인이 페니라는걸 알았을 때 느낀 굴욕보다는 덜했다.자신이 늘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내내 성혜인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던 것이었다.밤새운 탓에 윤단미의 눈은 퉁퉁 부었다. 그녀는 그 진실만 떠오르면 몸이 부르르 떨려 참을 수가 없었다.엄서향은 집사에서 예비 열쇠를 갖고 오게 해 문을 열었다.“너 요 며칠 한 번도 할머님 찾아뵈러 가서 얘기 안 나눴어. 할머님은 너를 가장 지지하는 분이야.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돼.”윤씨 집안 모든 사람은 그녀가 반씨 집안에 시집가기를 바라고 있다.윤단미는 눈이 시뻘게져서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더는 기회가 없어요.”‘영원히 기회는 없을 거야. 승제도 곧 알게 될 테니까.’엄서향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단미야, 침착해. 승제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든 너에게는 항상 기회가 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지 목표를 이뤄내고 말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야. 그 반재인도 너를 계속 쫓아다닌다고 하지 않았니?”‘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래
이런 분위기는 매우 매혹적이다.분명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 심장박동이 빨라진 것이었지만, 이건 반승제에 대한 설렘으로 오해되기 쉬웠다.성혜인은 눈을 꼭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자신이 조립한 총을 잡고 바로 마지막 차를 적중시켰다.고속도로에서 비틀거리던 차는 이내 불길에 휩싸였다.반승제는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물었다.“사격술이 정확한데? 몇 년이나 배웠어?”성혜인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일 년이요.”‘일 년 배운 게 이 정도라고?’반승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번 살펴보았다. 성혜인의 손은 부드럽고 하얀 게 아무런 굳은살도 박여있지 않았다.정말 그녀가 말한 것처럼 일 년밖에 배우지 않은 모양이었다.오랜 기간 총을 사용한 사람들은 손에 한 층의 얇은 굳은살이 박이기 마련이었으니까 말이다.반승제는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뭐라 말하려는데, 앞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렸다.이윽고 차가 심하게 꺾여 불바다를 가로질렀다.“심 비서, 무슨 일이예요?”손이 식은땀으로 젖은 심인우는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대표님, 뒤에서만 저희를 쫓는 게 아니었어요. 앞에도 사람이 있습니다.”반승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탄 차 옆에는 어느새 다른 몇 대의 차가 가까이 와 있었다.그는 성혜인을 품에 꼭 안고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통화를 마치자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걱정하지마, 괜찮아.”성혜인은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누구를 노리고 왔을지 생각하고 있었다.반승제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분명히 많은 살해 협박을 당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녀 역시 방에 도둑이 든 이후로,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여자의 육감은 매우 정확하다.차가 또 한 번 심하게 덜컹거리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반승제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반승제는 눈초리를 파르르 떨며 손을 들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심인우는 반승제의 유일한 비서로서 각종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차량들의 추격에 그는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가시덤불에 긁혀 얼굴덜룩해진 그의 팔이 눈에 들어왔다.미끄러져 내려오며 그녀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고 전부 반승제가 감당해냈다.성혜인은 재빨리 품에서 기어 나오며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대표님?”반승제는 잠깐 기절해 있었다. 두 사람이 부딪치며 생긴 충격을 고스란히 혼자 받아냈는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성혜인은 손이 다 떨려났지만, 또 뒤에 사람이 쫓아오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급히 그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반승제가 너무 무거운 탓에 그녀는 꿈쩍도 할 수 없었다.급한 마음에 눈물도 또르르 흘러내렸다.그때, 갑자기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울어?”성혜인이 급히 고개를 들자 그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울긴 왜 울어?”반승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성혜인은 그의 등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고, 누워있던 그 돌 위에도 피가 흥건한 걸 알아챌 수 있었다.마지막에 일어난 충돌이 다름 아닌 그 돌과 부딪친 것이었다.매서운 눈빛을 한 반승제는 마치 산 속의 늑대와도 같았다.“앞으로 가.”이번에 그들을 쫓아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패의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상대방이 만반의 준비를 한듯싶었다.성혜인은 서둘러 그를 부축하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안 아파요?”그도 당연히 아팠다. 아파 죽을 만큼이나 말이다.그러나 남자에게는 체면이 있다. 특히나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 앞에서는 아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꽉 깨물고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성혜인은 반승제를 부축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동시에 심인우가 걱정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그녀는 평평하고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에 그를 데려가 앉히고 등을 살펴보려고 했다.그러자 반승제가 성혜인의 손을 탁 하고 잡았다.“괜찮아, 살필 필요 없어.”“피 나요.”적어도 반승제가 정신을 차린 덕에 그녀는 마음이 많이 안정된 것 같았
성혜인은 흠칫 놀라 굳어버렸고 그는 손을 거뒀다. 다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밖에는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는데 이런 날씨에 산은 보통 심한 안개가 낀다.때문에 사람들이 그들을 찾는 데에는 아마도 조금 시간이 걸릴 게 뻔했다.성혜인은 불에 마른 장작을 더 넣었다. ‘이 근처에 마을이 있다고 해도 먼데 있는 곳이겠지? 아니면 주민들이 이곳에 와 일을 하며 마른 장작을 갖춰둘 필요는 없을 테니까.’그녀는 반승제의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아직도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성혜인은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이미 마른 외투를 말아 그의 머리 아래에 대고 벽에 기대게 했다.그러고는 이미 마른 그의 셔츠를 벗겨냈다. 셔츠의 뒤는 이미 피범벅이 되어있었고 퉁퉁 부은 등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성혜인은 감히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약재도 없고 물 안에는 세균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의 셔츠를 벗겨내 찢어 상처를 감았다.그녀는 또 그의 입술을 축이기 위해 절벽에 가서 샘물을 떠 왔다.반승제의 곁에 돌아오자 그는 인기척을 느끼기라도 한 듯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성혜인은 타닥거리는 불꽃을 보며 다리를 오므려 그가 좀 더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했다.마치 지난번 서천에 단둘이 남았을 때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때 밖에는 모래바람이, 지금은 큰비가.다른 점이라면, 현재 그는 정신을 잃고 강인한 반승제의 모습이 아니라 나약한 반승제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성혜인은 불에 장작을 더 넣었고, 그렇게 어느새 몇 시간 동안이나 이곳에 머무르게 됐다.바깥의 안개는 더욱 짙게 내려앉았고 이런 날씨라면 헬리콥터도 뜰 수 없었다.성혜인은 불씨가 꺼지지 않게 주의하며 그의 머리 아래에 작은 베개를 받쳐 똑바로 눕혔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 걱정됐는지,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성혜인은 옆에서 사람을 무는 동물이라도 나타날까 봐 무서워 감히 잠이 들지도 못했다.몸을 일으켜 불을 피우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가, 반승제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을 때, 제원 전체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반씨 집안에서는 모든 사람을 총동원해 그를 찾아 나섰고, 서씨 집안의 서주혁도 자진으로 나섰다.그러나 밤새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수색에는 이렇다 할만한 진전이 없었다.김경자와 백연서는 윤단미에게서 반승제가 이번에 성혜인 때문에, 옆 도시의 경매회에 참가하러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두 사람은 결코 참을 수 없어 곧바로 포레스트로 와 난리를 쳤다.“빌어먹을 년! 얼른 나오지 못해?!”성혜인의 침실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밖에서 백연서는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승제를 살려내지 못하게 된다면, 너도 똑같이 땅에 묻혀야 할 거야! 너희 성씨 집안 모두가 땅에 묻혀야 해!”이미 아들 한 명을 잃은 백연서는 다시는 반승제를 잃는 고통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라 울며 문을 부술 기세로 두드렸다.안 그래도 머리가 아팠던 성혜인은 그의 모욕적인 말에 관자놀이가 다 터질 것 같았다.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틀어막고 이불을 푹 덮어썼다.백연서는 한참 동안 욕을 해대더니 붉으락푸르락하며 거실로 돌아와 곁에 있는 보디가드에게 물었다.“성씨 집안 사람들에 대한 모든 자료 샅샅이 조사해왔어요?”보디가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혜인의 아버지, 어머니, 심지어 외삼촌과 외숙모의 자료까지 전부 건네줬다.임지연의 얼굴을 본 백연서는 눈동자가 움츠러들며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이건 누구야?! 이건 누구야?!”놀란 보디가드는 서둘러 대답했다.“이분은 성휘 씨의 전처, 성혜인 씨의 생모, 임지연 씨입니다.”백연서는 찰나의 순간, 머리에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라 움츠러들었다.‘임지연, 임지연!’그녀는 온몸을 떨며 망설임 없이 반기훈에게 전화를 걸었다.반기훈은 백연서의 남편이자 반승제의 아버지였다.“여보! 지금 당장 이리로 와서 나한테 똑똑히 설명해요! 그때 성혜인이랑 승제 결혼 막지 않은 게 설마 걔가 그 빌어먹을 년 딸이라는 거 알고 그런 거예요? 와
이 여자는 그렇게 백연서의 기억 속에서 자그마치 30년 동안 살았다. 때문에 성혜인이 임지연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한편, 핸드폰 너머 반기훈은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보다시피 그는 진작 알고 있었다.백연서는 울면서 욕을 하다가, 결국 강인하게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너무해요, 너무해! 당신 딱 기다리고 있어요!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굴 거면, 당신도 편하게 지낼 생각 하지 말아요!”말을 끝마치고 백연서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러고는 곧장 친정집으로 향했다.김경자는 멀쩡하던 집안이 성혜인의 존재로 엉망이 되어버린 걸 보고 갑자기 탄식하기 시작했다.“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 저게 바로 골칫거리야, 저 빌어먹을 년을 빨리 우리 집안에서 내쫓아야 해.”두 사람은 포레스트에서 몇 시간을 난리 치고 나서야 천천히 자리를 떴다.그 시각 병원, 반태승은 반승제에게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반승제는 아직 수술실 안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었다. 등이 계속 환하게 켜져 있었지만 누구도 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못했다.반태승은 한번 기침을 하자 순간적으로 몇 살은 더 늙어진 것 같았다.서주혁은 자칫 반태승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며 그를 위로했다.“할아버지, 승제 괜찮을 겁니다. 먼저 돌아가서 쉬세요.”반태승은 이전 반승우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역시 이렇게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이 나가 있었다.그는 그런 쓰라린 고통을 다시 한번 겪고 싶지 않았다.세 시간이 흐르자, 수술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반승제가 실려 나왔다.반태승은 부축을 받으며 걸어갔다.“어떠니?”그러자 진세운이 마스크를 벗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등에 부상이 꽤 심해서 아마 며칠 내내 열이 날 것 같아요. 뇌진탕 후유증도 조금 더 관찰해봐야 합니다. 일단 지금은 중환자실에 가서 언제 열이 내리지는 지켜봐야 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당분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반태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내가 맞춘 모양이구나. 너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그럼 이번 일을 내가 혜인이에게 알리지 않은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시선을 아래로 내린 반승제는 눈빛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기다려온 결정적 계기라는 걸 알아챘다.“할아버지, 저는 성혜인과 이혼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이 말이 나오자 병실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반승제는 반태승이 반대하며 자신을 질책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속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다 하니 너도 혜인이에게 어울리지는 않아. 그런데 BH그룹이 SY그룹 융자를 두 차례나 도운 일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그 아이가 바로 이혼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나에게 3개월의 기한을 제시하더구나. 그러니 3개월 후에 너희 모두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렴. 그때가 되면 서로 상관없이 사람이 되는 거야.”이 일이 해결되기까지 적어도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던 반승제는, 반태승이 이리도 빨리 답장을 줄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반태승이 아마도 자신의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고 더는 꾸짖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그 시각 반태승은 어느새 병실 문 입구에 다다랐는데, 문을 열며 또 한마디 덧붙였다.“후회하지 않길 바란다.”‘그런 여자를, 제가 어떻게 후회하겠어요.’“안심하세요, 할아버지.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반태승은 그의 굳건한 태도를 보고 성혜인에 대한 일말의 감정도 없을 것이라 여겼다. ‘못난 놈, 혜인이 몸까지 가졌으면서 큰소리치기는. 그래, 나도 더는 상관 안 하련다.’반태승이 떠나자, 반승제는 곧 심인우에게 물었다.“페니는요?”“그날 서주혁 씨께서 대표님을 병원에 데려다준 뒤로, 회장님께서 오셨고, 반씨 집안사람들이 몇몇 방문했지만, 페니 씨는 오지 않았습니다.”‘안 왔다고?
반승제가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 안 지나 장하리가 들어왔다.“사장님, 임원들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SY그룹이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것에 대해 다들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그러나 거의 모든 지분이 성혜인의 손에 있어서, 그녀가 말하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회사에는 손에 지분을 가진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는데 그건 인사 총괄책임자, 안휘준이었다. 올해 막 서른 살이 된 그는 여태껏 회사에서 존재감이 없이 지내왔는데, 총책임자가 되어서도 전혀 누군가에게 밉보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킬 뿐이었다.유일하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점이 있다면, 이 사람은 나쁜 마음을 품을 수도 없는 구닥다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성혜인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새 얼굴들의 임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임원들도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성혜인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방안은 다들 보셨어요?”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눈치를 보기 바빴다.그때, 누군가가 용기 내 말을 꺼냈다.“사장님, 저희 모두 방안을 봤습니다. 하지만 SY그룹이 갑자기 영화 사업에 뛰어든다니요, 너무 모험인 거 아닙니까? 저희는 페인트 사업만 해와서 영화 사업 쪽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게 없는데요.”“여러분, 제가 만약 이번에 BK사, HS그룹과의 협력 건을 따내지 않았다면, 내화가 얼마나 더 버텼을 것 같습니까?”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시 내화는 이미 윤단미에게 인수되었고, 그 여자는 심지어 건물에 와서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그 후 내화는 일련의 혼란을 겪었고, 최근 이틀이 되어서야 임원진의 명단이 완전히 구체화 되었다.성혜인은 그들을 대신해 대답했다.“한 달도 못 버텼을 겁니다. 현재 지분은 전부 제 손안에 있으니 저는 이 회사에 대해 100%의 발언권을 갖고 있어요. 아래, 저는 장하리 씨를 통해 일련의 임무를 하달할 예정입니다. 매 사람은 심사를 거
온시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공지민은 갑자기 연승혁의 총을 움켜쥐었고 경찰에게는 지금이 좋은 기회였다.저격수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고 공지민은 어깨에 총알이 박힌 것을 느꼈지만 연승혁의 총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총성이 다시 울리자 연승혁은 그녀를 안은 채 몇 바퀴를 굴렀다.온시환은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을 붙잡으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인질이 아직 잡혀 있는데 총을 쏘면 어떡해요? 당장 멈춰요!”현장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이때 그들이 공격을 멈춘다면 연승혁이 어떻게 반격할지 예측이 안 갔다. 방금 그가 살짝 손을 움직였을 뿐인데 한 사람을 죽였다.총성은 잠시 멈췄고 공지민의 어깨에서 피가 흘렀으며 연승혁은 방금 그녀를 보호하다가 다리와 허리에 총을 맞았다.두 사람 모두 온전한 데 없었지만 공지민은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분이 있어 보였다.“지민아, 우리가 어쩌다 이런 거지꼴이 됐냐?”공지민은 그가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녀가 방금 미친 듯이 그의 손에 들린 총을 붙잡지 않았다면 경찰도 총을 쏘지 않았고 그도 두 번이나 총에 맞지 않았다.게다가 총알이 날아왔을 때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보호했는데 그가 왜 그랬는지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그녀는 바닥에 숨었고 연승혁은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경찰 측은 반승제와 온시환, 그리고 서주혁이 막고 있어서 더 이상 총을 쏘지 못했다.연승혁이 맞은 두 발의 총알로 그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는 손을 들어 공지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공지민의 속눈썹이 떨렸지만 여전히 입을 꾹 다물었다.그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방금 네가 한 짓은 내가 널 백번 죽여도 모자라.”모든 사람이 연승혁이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는 것을 보았고 그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다.온시환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끌려갔고 연승혁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지민의 눈만 바라보았다.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연승혁은 갑자기 그녀의 얼
연승혁은 절벽 끝까지 밀려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주변에는 저격수들이 잠복했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을 붙잡아 자신의 앞을 막았다.“나 곧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지?”공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한테 붙잡힌 채 서 있었다. 절벽은 매우 높았고 아래는 안개가 자욱했다.주위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이 너무 교활해서 공지민을 인질로 삼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저격수는 지금까지 총을 쏘지 못했다. 절벽 끝에는 연승혁과 공지민이 서 있었고 반대편에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있었다.숲의 다른 곳도 수많은 경찰들이 지켰고 연승혁은 오늘 절대 빠져나가지 못했다.누군가가 연승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연승혁, 지금 당장 자수하고 무고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연승혁은 미소를 지으며 공지민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었다.“무고한 사람? 이 사람은 무고하지 않아.”공지민은 전혀 두렵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이 앞을 향하자 급히 나타난 온시환을 보았다.온시환의 다리는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고 있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연승혁은 온시환을 보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왔네. 지민아, 남편한테 인사 안 해?”공지민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의 뺨에 키스하고 온시환 쪽을 바라보았다.“네 아내 덕분에 도망치는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챘다.온시환은 순간 안색이 변했지만 다시 평온해졌다.연승혁은 마치 미친개처럼 아무나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가 온시환한테 적대감을 품은 건 온시환과 공지민의 부부 관계를 질투하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기침하며 공지민에게 물었다.“괜찮아?”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할까봐 그저 못 들은 척했다.하지만 연승혁은 그녀를 가만히 놔줄 생각이 없었다.“네 남편이 묻잖아. 나랑 같이 있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마는 고통으로 인해 땀으로 뒤덮여 있었다.연승혁은 막대기를 던지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내가 널 죽일거라고 생각했지?”“그러려고 한 게 아니야?”지금 그녀를 죽이는 건 그가 그동안 쌓여왔던 원한을 풀고 해외로 도망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연승혁은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난 말이야. 경찰들이 정의로운 척 가식 떠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너를 인질로 잡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그제야 공지민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그녀를 인질로 삼기 위해서란 걸 알았다.하지만 그는 1급 수배범이고 심지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조직까지 건드려서 인질을 잡고 있다고 해도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공지민은 그의 손에 이끌려 일어난 후 길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꼼수 부리지 마.”그녀의 머릿속에는 그가 자신을 전에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본 질문이 떠올랐다.사실 방금 연승혁이 그녀를 찔렀던 사악한 행동이 그녀가 꿈에서 본 어린 소년의 행동과 똑같았다는 것 외에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사방에서 연승혁한테 자수하라는 경찰 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은 하늘로 중지를 치켜들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더욱 꼭 껴안았다.주위의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매번 피했다.아마도 경찰 측에서는 공지민을 염려하여 함부로 총을 쏘지 못했고 연승혁이 스스로 멈추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온시환은 경찰의 뒤를 따르면서 공지민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다리의 상처도 개의치 않고 더 빨리 걸어가려고 했다.반승제는 그가 심하게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났다.“미친 거야? 다리에 통증도 안 느껴져? 여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연승혁이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공지민이 살아있는 것도 직접 확인했잖아.”온시환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고 반승제를 밀치며 그가 말했다.“빨리 가야 해. 지금 살아 있다고 해서 안전한
공지민은 자신이 왜 이런 꿈을 꾸는지 몰랐고 이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도 몰랐지만 꿈속의 나쁜 소년은 연승혁과 매우 흡사했다.그녀가 깨어났을 때 주변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지쳐서 한적한 곳에서 쉬고 있었다.연승혁은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고 비꼬기 시작했다.“돼지야?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와?”공지민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도망쳐야 할 사람들은 당신들이잖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연승혁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긴박해서 더 이상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공지민이 눈을 감고 잠시 쉬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신속하게 총을 꺼내 경계하기 시작했고 연승혁은 그녀를 끌고 계속 길을 떠났다.“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서둘러 길을 떠나야 해. 국경을 넘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안전할 거야.”연승혁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서 녹초가 되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공지민은 지금 이 구역이 이미 포위된 상태이고 이들 중에 배신자가 존재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그녀의 시선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몇 분을 걷다가 연승혁은 갑자기 단검을 집어 들고 그 남자를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미리 대비하고 있어서 가슴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그는 수 미터 높이의 제방에서 뛰어내려 도망쳤다.연승혁은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오므렸다.부하들이 서둘러 물었다.“형님, 무슨 일이에요?”“저 남자 몸에 추적기가 달려 있어.”그 남자가 처음부터 배신을 작심하고 접근한 게 아니라 중간에 배신하기로 한 후임시로 설치한 추적기로 보였다. 그래서 경찰이 그렇게 빨리 찾아 올 수 있었던 거고 또한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거 봐서 아마 주변은 이미 빈틈없이 포위된 듯했다.부하들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니면 저희가 여기서 막고 있을 테니까
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욕설하면서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지만 연승혁이 막아섰다.연승혁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걸려 있는 호루라기를 흘깃 쳐다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공지민은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사람들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바랐다.그녀는 자신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기대어 있다가 잠결에 살해당해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들었다. 공지민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그녀는 어렸을 때 외딴 산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녀가 장작을 모으러 산에 올라갔을 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소년이 나타났고 그 소년의 옆에는 키 큰 남자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등에 돼지풀이 가득한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자신이 주운 막대기를 쥔 채 언덕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마침 그 소년 앞에 절하는 자세로 엎드려 넘어졌다.그녀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흥미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도련님, 간첩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공지민은 그 당시에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소년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막대기를 가져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번갈아 찌르기 시작했다.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소년은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이게 간첩이라고? 갓 태어난 새끼 돼지처럼 뽀얗네.”“도련님, 혹시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소년은 웃으며 손에 든 막대기로 공지민을 계속 찔렀다.공지민은 감히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울기만 했다.“이 아이의 눈이 너무 예뻐서 파내서 소장하고 싶어.”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지민은 우는 것도 잊은 채 TV에서도 본 적이 없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분석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비밀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먼 곳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지만 연승혁 쪽인지 H국 정부 쪽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고 안색이 변한 걸 보니 H국 정부 쪽인 것 같았다.공지민은 빠르게 깊은 숲으로 끌려들어 갔는데 이곳의 숲은 비교적 원시적이었고 H국 국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앞으로 1km 더 나아가 국경에서 벗어나게 되면 H국 정부도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한국어로 욕하는 소리가 공지민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제기랄! 젠장!”그 남자는 몇 마디 욕설을 퍼부은 뒤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여기서는 헬리콥터가 그들이 보이지 않지만 방금 전에 그들이 터널에서 빠져나왔을때 이미 발견됐을 것이고 헬리콥터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기만 하면 추적자들이 곧 올 거였다.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가끔 멈춰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생각했다.공지민은 연승혁에 이끌려 모두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다가 중간에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알 수 없는 말을 한 뒤 자리에 멈춰 섰다.그는 몸을 돌려 연승혁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연승혁의 표정은 처음에는 괜찮다가 갑자기 싹 바뀌면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공지민을 바라보았다.공지민은 버마어를 하는 남자가 또다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연승혁은 당분간 그의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야 했기에 이때 저 여자를 달라고 하면 연승혁은 분명히 동의할 거였다.하지만 연승혁은 단검을 꺼내 들어 빠른 속도로 남자의 팔을 향해 찔렀다.그 남자는 고통으로 얼굴이 창백해졌고 거의 쓰러질 뻔했다.연승혁은 그에게 버마어로 무언가를 말했고 상대방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보이며 공지민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전전긍긍하며 계속해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공지민은 연승혁이 정말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그한테 제일 필요한 사람을저렇게
공지민은 연승혁이 역겨움을 느끼고 멈출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가 힘을 더 세게 주기 시작했다.“계속해 봐. 네가 그 남자랑 있었던 일을 말할수록 난 더 흥분될 거야.”“이거 놔!”‘미친놈!'연승혁은 그냥 이대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공지민은 자신을 뒤에서 안고 있는 연승혁의 눈에 비친 상처를 보지 못한 채 그를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설사 그녀가 그의 눈을 봤다고 해도 그저 비웃기만 할지도 모른다.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공지민은 누군가 부은 찬물에 의해 잠이 깼다.그녀는 눈을 뜨고 연승혁이 담배를 손에 쥔 채 얼굴에 반쯤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았다.“깼어?”공지민은 갑자기 어젯밤에 그가 미친 듯이 그녀를 탐해서 온몸이 떨릴 정도의 고통스러움에 자신이 기절해 버렸던 게 떠올랐으며 지금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호루라기를 손에 쥐고 놀면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깼으면 얼른 일어나. 서둘러 떠나야 해.”공지민은 심리적 혐오감뿐만 아니라 육체적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나 지금 걸을 수가 없어.”한 발짝만 내딛어도 그녀는 무릎을 꿇을 것 같았고 더군다나 며칠간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연승혁이 다가와서 공지민의 턱을 잡고 호루라기로 그녀의 얼굴을 두드리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애교 부리는 거야? 안타깝지만 난 구은우가 아니라서 안 넘어가.”공지민은 지금 이 상황에 왜 구은우를 언급하는지 이해가 안 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유독 구은우를 언급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아무리 괴롭히고 재촉해도 다시 걸음을 떼지 않기로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목에 호루라기를 걸어주었다.그녀가 의혹스러워하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이거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거잖아. 이제 걸을 힘이 생겼지?”심리적 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몰래 그런 짓까지 한 거야?’“온시환도 이 사실을 알아?”“알 필요 없어.”공지민의 단호한 대답에 연승혁은 낮게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여전히 그녀의 위에 몸을 얹고 있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를 물며 속삭이듯 말했다.“좋아. 나도 애를 좋아하진 않아. 이제 걱정 없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널 가지고 놀 수 있겠군.”하지만 그가 내뱉은 그 말에는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그 떨림이 불안처럼 스며들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며 허리띠를 채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공지민은 온몸이 풀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 몸을 닦았다. 배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연승혁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3시간 뒤, 배는 강을 빠져나와 육지에 도착했다.그들은 국경을 넘어야 했다. 그리고 H국 국경은 삼엄한 방어로 악명이 높았기에 탈출이 쉽지 않았다.그날 밤, 그들은 산 아래에 있는 한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공지민은 나무로 된 욕조 안에 거칠게 던져졌다. 연승혁은 그녀를 대충 씻긴 뒤 욕조 가장자리로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힘으로 그녀를 억누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그녀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연승혁은 그런 그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의 손길과 이빨 자국은 그녀의 피부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멍과 상처로 얼룩지게 했다.그러나 공지민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냉정하고 무감한 눈빛은 그를 자극했고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의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이나 고통 대신 오직 차가운 거부감만이 가득했다.모든 것이 끝난 뒤, 연승혁은 그녀를 바닥으로 밀쳐냈다.강한 충격에 그녀는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연승혁은 욕조 옆에 앉아 무언가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공지민의 시선이 그 물건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바로 구은우가 어린 시절 그
그 뜨거운 온기가 다가오자, 공지민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속이 뒤틀리듯 메스꺼워졌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연승혁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깊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를 둘러싼 기운이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공지민의 가슴을 더듬고 있던 외국인 남자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녀는 연승혁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기를...연승혁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박자를 맞추며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게임을 즐기는 사냥꾼처럼 여유로웠다.처음 그가 공지민을 TV에서 봤을 때부터 그는 그녀를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너무나 순수했기에,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연승혁은 눈을 내리깔더니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손끝에 느껴졌다.외국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입술을 훔치며 사과하는 듯 외국어로 중얼거렸다.하지만 공지민은 여전히 혐오감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연승혁의 품에서조차 조금 전 외국인 남자에게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쾌감이 가시지 않았다.그녀의 눈빛이 이를 드러내자, 연승혁은 비웃으며 갑자기 허리띠를 풀며 그녀의 바지를 거칠게 잡아 내리며 낮게 말했다.“왜? 나랑 잤던 것도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었어? 그땐 그렇게 좋아하더니 지금은 왜 이러는 건데?”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게 낮아졌고 분노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연승혁은 그녀를 거칠게 다루며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공지민은 저항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배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연승혁의 분노와 집착 앞에서 누구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통증이 그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고통과 모멸감이 그녀의 온몸을 뒤덮었고, 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