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색깔의 팔찌는 여자들이 보면 발걸음을 옮길 수 없다.“심 비서.”그가 심인우를 불렀다.그러자 심인우는 급히 수표를 건네주었다.반승제가 물었다.“얼마인가요?”“400억입니다.”반승제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은 채 수표를 적어나갔다.판매원은 기쁜 마음으로 후다닥 매우 정교한 상자에 팔찌를 포장했다.이건 반승제가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물건을 사는 순간이었다. 전에는 전부 심인우에게 맡겨 그가 준비해줬기 때문이다.그래서 심인우는 참지 못하고 반승제에게 물었다.“대표님, 페니 씨에게 주려고 준비하시는 겁니까?”비록 아주 쉽게 돈을 내긴 했지만, 이건 사실 제원의 별장 한 채 값과 맞먹는 것이었다.예상치 못한 물음에 반승제는 얼어붙더니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고개를 휙 돌렸다.“아니요.”심인우는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선물을 손에 들고 여전히 그곳에 남아 수표의 뒷일을 처리했고 반승제는 임원들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임원들도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조금 전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선물을 산 뒤 반승제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던 이전과 다르게 선명히 좋아졌다.일주일 뒤, 그는 제원으로 돌아왔다.선물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려 그는 핸드폰을 켰다.일주일 사이, 몇 명의 친구와 협력업체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반승제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없었다.중간에 백연서도 전화를 걸어오긴 했으나 이상한 말을 하는 바람에 그저 끊어버리고 말았었다.반승제는 몇 번이나 메시지를 올려보았다. 그는 혹시 자신의 부주의로 사람을 차단하진 않았는지 의심하기까지 했다.하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그렇게 BH그룹 사무실로 돌아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그는 계속 미간을 약간 찌푸린 상태로 있었다.그는 성혜인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저번에 네이처 빌리지에 화실 만들 필요 없냐고 물어봤었지?」이건 성혜인이 아주 오래전에 물어봤던 일이다.메시지를 확인할 당시 성혜인은 SY그룹 임원들 일을 처리하는 중이었다.이미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메시지를 확인한 성혜인은 자신의 책상 위에 쌓인 처리해야 할 서류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답장을 보냈다.「조금 늦어야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응.」성혜인은 반승제의 답장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한편에 놓아두고 다시 열심히 손에 든 서류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일을 전부 끝내고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시간이 많이 늦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서둘러 핸드폰을 갖고 와 확인했다.반승제와 마지막 문자를 나눈 후 이미 4시간이나 지나있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아직도 나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대표님, 어디 계세요?」「회사.」반승제는 아직 사무실에 있었는데 내부의 공기는 사뭇 무거웠다. 저녁에 그에게 상황을 보고하러 온 한 임원은 반승제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날카롭게 알아차렸다.사무실 문을 나설 때 그는 놀라 다리가 다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러고는 서둘러 곧 들어갈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대표님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 조심해.”그러자 오늘 밤 보고하러 가려던 사람들은 전부 겁을 먹고 누구도 감히 반승제의 사무실에 가지 못했다.그렇게 장장 네 시간을, 반승제는 그 여자가 늦어진다는 사실에 쉽사리 기분을 풀지 못했다.원래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법이 없었던 그는 시간개념도 잊은 모양이었다.그러나 그녀가 보내온 메시지를 바라보자 금세 화가 조금 사라졌다. 그는 애써 감정을 컨트롤 하며 자신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혜인이 또 한 통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오늘은 많이 늦었으니, 내일 대표님 뵈러 가는 건 어떨까요?」반승제는 문자를 보자마자 마음 깊숙이 있던 분노가 치밀어올랐다.「지금, 당장 와.」이렇게 다섯 글자를 썼지만, 그는 또 천천히 지웠다.「마음대로 해.」답장을 마친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선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사무실을 떠났다.호텔에 돌아와서까지도 반승제는 내면의 화가 사라지는 것 같지 않았다.그러나 원래의 그라
스카이웨어에 들어서 머리 위에 티타늄 불빛이 비치자, 반승제는 그제야 자신이 조금 전 신이한 같은 사람과 레이스를 펼쳤다는 걸 깨달았다.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서 있는데 신이한이 때마침 성혜인과 통화를 하며 걸어들어왔다.“페니 씨, 주소 보냈으니까 얼른 와요.”신이한은 SY그룹의 일에 관련해 성혜인을 크게 도운 대가로 그림 두 점을 그려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신이한 본인이 정하는 거로 말이다.성혜인도 마음 깊이 그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이한이 아니었다면 회사는 윤단미의 손에 넘어갔을 테니까.그래서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성혜인은 곧바로 자신의 미술 도구들을 챙겨 길을 떠났다.한편, 통화를 마친 신이한은 반승제가 제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눈썹을 추켜올리며 말했다.“반 대표님 혹시 오늘 밤 저랑 같은 모임에 참석하는 건 아니시죠?”이런 무리 내의 모임은 서로 마주치기 십상이었다.그러나 반승제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이라 누구도 감히 그에게 술을 권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매번 온시환의 옆자리에 앉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할 말이 있으면 늘 자신들의 동료와 얘기를 나눴다.반승제는 몇 년 동안이나 제원을 떠나있었다. 그 때문에 온시환과 서주혁 그리고 또 한 명 잘 어울리는 사람을 빼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그저 평범하게 알고 지냈다.신이한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안으로 모신다.’라는 동작을 취해 보였다.어딘지 모르게 반승제는 신이한의 그 눈웃음이 항상 눈에 거슬려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게다가 그가 성혜인과 침대에서 뒹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반승제는 내면의 화를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러나 그 화를 폭발시키지 않았다. 불빛 아래에서의 그는 매우 냉정해 보였다. 다만 눈썹 사이에 약간의 날카로움이 묻어있어 신이한이 흠칫 놀랐을 뿐이다.신이한은 조금 전 레이스에서 진 일로 일부로 성혜인을 불러 반승제를 골탕 먹이려고 했다.두 사람은 앞뒤로 서서 차례대로 룸 안으로 들어갔다.룸 안에는 이
그는 마침내 신이한을 만났을 때부터 자신의 마음속에 차오르던 분노가 무엇인지 알았다.그건 질투였다.사람들이 모여 앉아 흥미진진하게 자신들이 침대에서 여자의 혼을 어떻게 빼놓았는지 말하는 걸 듣던 반승제는 이곳의 공기가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졌다.온시환은 그의 기분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는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우리 먼저 갈까?”온시환은 이미 그들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두가 이 무리에 속해있는 그들은 평소에는 주식이나 비즈니스에 관해 얘기를 나눴지만, 일단 엘리트 가면을 벗고 나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말들을 꺼냈다.이건 누구를 헐뜯는 얘기가 아니다. 집안, 학력과 무관하게 이건 인간의 본성이다.그러나 온시환의 물음에 반승제는 되려 요지부동으로 앉아있었다.온시환은 조금 궁금해 그에게 무슨 일이냐 물어보려 했는데 그때, 룸 문이 열리며 성혜인이 캠퍼스를 들고 들어왔다.신이한은 그녀를 보더니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페니 씨.”그는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오셨군요. 혹시 여기는 너무 시끄러운가요?”성혜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곁눈질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반승제를 발견하고 그녀는 단번에 신이한의 속셈을 알아차렸다.“아뇨. 제가 말했잖아요. 장소는 신 대표님이 정하시기로 하자고.”신이한은 내뱉은 말은 그대로 실행하는 성혜인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의자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었다.“복잡하게 할 필요 없어요. 스케치면 돼요.”성혜인 같은 실력에 스케치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신경을 써서 한다 해도 1시간 안에는 끝낼 수 있었다.신이한은 그녀가 이런 분위기를 불편해할까 봐 한 발자국 물러선 것이었다.성혜인은 한숨을 내뱉더니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고마워요, 신 대표님.”그녀는 반승제에게 가 인사를 나누지 않고 곧바로 의자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나머지 사람들은 먼저 몇 분간 침묵하더니 신이한을 놀렸다.“신 대표, 이게
반승제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바람에 온시환은 순간 의심이 들었다.‘내가 너무 많이 생각한 건가? 승제는 진짜 그 여자를 아예 상관도 안 하는 건데.’“좋아, 그냥 노는 거라고 하니 됐어. 그럼 술 좀 답답하게 마시지 말지 그래?”“안 그랬어.”반승제는 온시환에게 반박하며 또 성혜인을 힐끗 쳐다보았다.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마치 주변의 소란스러움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또다시 꽉 막힌 듯 답답해 났다.“사실 페니도 그저 그래.”온시환은 그의 말이 웃겨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감정을 잘 정리한 다음에야 그는 다시 원래대로 머리를 돌려 대답했다.“맞아, 제원에 페니 씨보다 예쁘고 재능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응.”반승제는 속이 더욱 답답해졌다.그래서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등을 뒤로 기대 더는 성혜인을 바라보지 않았다.그렇게 성혜인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고 완성한 뒤에 그림판을 거뒀다.신이한은 머리를 휙 들이밀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 머리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깝게 됐다.“다 그렸어요?”“네.”신이한은 그림을 한번 보더니 조금 놀랐다는 듯이 눈썹을 추켜올렸다.비록 그녀의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잘 그릴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다.생동감 넘치는 그림에는 신이한만의 특유의 분위기마저 가미되어있었다.“정말 잘 그리셨네요.”“신 대표님께서 만족스러워하시면 됐어요.”“페니 씨, 제가 그렇게 큰일을 도와드렸는데, 고작 그림 두 점이 다라면 제가 손해 보는 게 아닐까요?”사실 성혜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에서 그에게 약속했다.“신 대표님께서 제 그림을 원하기만 하시면 저는 절대 미루지 않겠습니다.”신이한은 억지를 부리지 않는 성혜인의 모습이 좋았고 이내 그녀를 자신의 품에 끌어왔다.“그럼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 대표
하지만 반승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입을 크게 벌려 그녀의 목을 물기도 했는데 그건 암컷을 완전히 정복하려는 수단이었다.이 순간 폭발한 호르몬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성혜인의 눈에서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고 온몸은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반승제는 그녀를 받들고 무아지경으로 했다.그때, 밖에서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던 직원인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룸 문이 갑자기 그들에 의해 열려 조그마한 틈새가 생겼다.성혜인은 놀라 순간적으로 머리를 그의 목에 파묻었고 반승제는 기분이 짜릿해 머리가 저릿저릿해 났다.“꺼져.”그가 들어오려던 사람들에게 말했다.본래 조금 이따 사용할 이 룸에 점검차 들어오려 했던 직원들은 그의 강한 목소리를 듣고는 놀라 서둘러 뒤로 물러갔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직원이 떠나고, 룸 안에는 울음을 훌쩍이는 성혜인의 작은 목소리만 있었다.반승제는 그녀의 등을 작게 토닥여주고는 더 높이 받들어 올렸다.그는 이 자세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이래야만 그녀가 힘을 못 쓰고 전적으로 그에게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반승제는 그녀가 살이 빠졌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조금 전 룸에 있을 때는 불빛이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를 품에 안고 나니 예전보다 아주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었다.특히 허리는 한번 꼬집으면 부러질 것 같았다.“일주일 동안 밥 안 먹었어?”손으로 가늠해보며 그는 더욱 미간을 찌푸렸다.성혜인은 여전히 그의 목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코끝에 반승제의 차가운 분위기가 맴돌았는데 그 기운이 너무나 강렬해 마치 모공에 타고 온몸에 퍼질 것 같았다.그녀는 반승제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미세하게 몸을 떨 뿐이었다.반승제는 그녀가 아파하는 것인지 아니면 짜릿해서 그러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고개를 살짝 꺾어 살며시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그러자 성혜인은 또 한 번 몸을 흠칫 떨었다.반승제는 참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그는 옆에 있는 샤워기를 가져와 그녀의 머리를 적신 다음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하고 머리를 감겨주었다.성혜인은 피곤해 눈꺼풀조차 뜰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을 때 그녀는 반승제를 토막 내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깊은 잠이 드는 바람에 그의 이런 부드러운 모습을 보지 못했다.반승제는 누군가의 시중을 든 적이 없어서 매우 서툴렀다. 그는 샴푸를 여러 번 짜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그러자 바로 거품이 일기 시작했고 그는 혹여라도 그녀를 아프게 할까 봐 자신의 힘을 컨트롤 하며 계속 이어갔다.그렇게 마사지를 한 지 반 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깨끗이 씻었다고 확신하고 샤워기를 갖고 와 거품을 씻어냈다.성혜인은 계속 그의 가슴에 기댄 자세를 한 채 깊은 잠을 잤다.다 씻기고 나서 반승제는 그녀를 안아 들어 곁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너무 깊게 잠든 탓에 의자에 앉히자 그녀는 스르륵 아래로 미끄러지고 말았다.하는 수 없이 반승제는 직접 의자에 앉아 그녀를 자신의 품에서 자게 한 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었다.아무리 좋은 드라이기라도 작지 않은 소리가 났다.한참 단잠에 빠져있던 성혜인은 자꾸 귓가에서 “웡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시끄러워.”그녀는 목이 다 쉬어버렸음에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마디 쥐어짰다.해외에 있을 때, 머리를 감지 않고 자서 이틀 동안 머리가 아픈 적이 있었던 반승제는 성혜인이 머리를 말리기 싫어하는 것을 보자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움직이지 마.”그러자 성혜인은 움직이지 않았고 다시 그의 품에서 고이 잠들었다.그녀는 단발로 머리를 잘랐지만, 여전히 숱이 많았고 머릿결이 부드러웠다. 반승제는 2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다 말릴 수 있었다.그는 성혜인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고 그녀의 아래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는 상처가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불을 끌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모든 것을 끝내자 시간은 어느새 아침 8시가 다 되어갔다. 출근할 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랐다.그때, 때마침
반승제는 그녀를 끌어 당겨와 자신의 품에 꽉 묶어두었다.“신이한이 뭐가 그렇게 좋은데? 그 자식 원래 여자들한테 헤프지 않나? 별장 한 채라도 달라고 하지, 왜 안 그랬어? 오히려 살이 더 빠져서 오고 말이야.”그의 손은 제멋대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겼다.성혜인은 화가 난 나머지 손가락 끝을 가볍게 떨었다. 그녀는 반승제를 무시한 채 숨을 고르고 곁에 있는 외투를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반승제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등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았다.“돈이 좋은 거면 나도 얼마든지 줄 수 있어.”그 말은 마치 화약창고에 불이 달린 성냥개비를 던진 것과 같았다.표정이 순식간이 어두워진 성혜인은 그를 힘껏 밀어냈다.반승제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나게 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어젯밤 그렇게 좋았고, 아침에는 특별히 달래주기까지 했는데,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그의 표정도 덩달아 차가워졌다.“좋고 나쁜 것도 구분하지 못하는 거야?”성혜인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당장 한 마디도 뱉을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식하고 웃었다.“네, 좋은 거 나쁜 거 구분하지 못해요. 대표님, 저 많이 힘들거든요? 지금 먼저 가봐도 될까요?”그건 분노가 섞인 웃음이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이 기분은 마치 뼛속 틈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승제의 얼굴을 보는 것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짜증이 났다.반승제는 윤단미와 연애할 때 줄곧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왔었다. 그에게 있어 상대방을 좋게 대해주는 수단은 단지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선물을 사주게 하는 것이었다.그의 눈에 돈은 그저 가벼운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해외에서 어쩌다 마음에 든 거였는데, 페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런 태도라고?’반승제의 마음 한쪽에서 좌절감이 솟구쳐올랐다.그는 성혜인을 지나 먼저 침실에서 걸어나왔다.심지어 반승제는 그녀와 어깨를 스쳐 지나갈 때 한마디 덧붙이기도 했다.“이건 원래 단미한테 주려던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