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옆에 있는 샤워기를 가져와 그녀의 머리를 적신 다음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하고 머리를 감겨주었다.성혜인은 피곤해 눈꺼풀조차 뜰 수 없었다. 정신을 잃을 때 그녀는 반승제를 토막 내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깊은 잠이 드는 바람에 그의 이런 부드러운 모습을 보지 못했다.반승제는 누군가의 시중을 든 적이 없어서 매우 서툴렀다. 그는 샴푸를 여러 번 짜고 천천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그러자 바로 거품이 일기 시작했고 그는 혹여라도 그녀를 아프게 할까 봐 자신의 힘을 컨트롤 하며 계속 이어갔다.그렇게 마사지를 한 지 반 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깨끗이 씻었다고 확신하고 샤워기를 갖고 와 거품을 씻어냈다.성혜인은 계속 그의 가슴에 기댄 자세를 한 채 깊은 잠을 잤다.다 씻기고 나서 반승제는 그녀를 안아 들어 곁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너무 깊게 잠든 탓에 의자에 앉히자 그녀는 스르륵 아래로 미끄러지고 말았다.하는 수 없이 반승제는 직접 의자에 앉아 그녀를 자신의 품에서 자게 한 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었다.아무리 좋은 드라이기라도 작지 않은 소리가 났다.한참 단잠에 빠져있던 성혜인은 자꾸 귓가에서 “웡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시끄러워.”그녀는 목이 다 쉬어버렸음에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마디 쥐어짰다.해외에 있을 때, 머리를 감지 않고 자서 이틀 동안 머리가 아픈 적이 있었던 반승제는 성혜인이 머리를 말리기 싫어하는 것을 보자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움직이지 마.”그러자 성혜인은 움직이지 않았고 다시 그의 품에서 고이 잠들었다.그녀는 단발로 머리를 잘랐지만, 여전히 숱이 많았고 머릿결이 부드러웠다. 반승제는 20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다 말릴 수 있었다.그는 성혜인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고 그녀의 아래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는 상처가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불을 끌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모든 것을 끝내자 시간은 어느새 아침 8시가 다 되어갔다. 출근할 시간은 이미 지난 지 오랐다.그때, 때마침
반승제는 그녀를 끌어 당겨와 자신의 품에 꽉 묶어두었다.“신이한이 뭐가 그렇게 좋은데? 그 자식 원래 여자들한테 헤프지 않나? 별장 한 채라도 달라고 하지, 왜 안 그랬어? 오히려 살이 더 빠져서 오고 말이야.”그의 손은 제멋대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당겼다.성혜인은 화가 난 나머지 손가락 끝을 가볍게 떨었다. 그녀는 반승제를 무시한 채 숨을 고르고 곁에 있는 외투를 들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하지만 반승제는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등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았다.“돈이 좋은 거면 나도 얼마든지 줄 수 있어.”그 말은 마치 화약창고에 불이 달린 성냥개비를 던진 것과 같았다.표정이 순식간이 어두워진 성혜인은 그를 힘껏 밀어냈다.반승제도 뒤로 한 발짝 물러나게 되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어젯밤 그렇게 좋았고, 아침에는 특별히 달래주기까지 했는데,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그의 표정도 덩달아 차가워졌다.“좋고 나쁜 것도 구분하지 못하는 거야?”성혜인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당장 한 마디도 뱉을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식하고 웃었다.“네, 좋은 거 나쁜 거 구분하지 못해요. 대표님, 저 많이 힘들거든요? 지금 먼저 가봐도 될까요?”그건 분노가 섞인 웃음이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이 기분은 마치 뼛속 틈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승제의 얼굴을 보는 것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짜증이 났다.반승제는 윤단미와 연애할 때 줄곧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왔었다. 그에게 있어 상대방을 좋게 대해주는 수단은 단지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선물을 사주게 하는 것이었다.그의 눈에 돈은 그저 가벼운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해외에서 어쩌다 마음에 든 거였는데, 페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런 태도라고?’반승제의 마음 한쪽에서 좌절감이 솟구쳐올랐다.그는 성혜인을 지나 먼저 침실에서 걸어나왔다.심지어 반승제는 그녀와 어깨를 스쳐 지나갈 때 한마디 덧붙이기도 했다.“이건 원래 단미한테 주려던 거였어
반희월은 성혜인은 힐끗 한번 보고는 다시 시선을 거뒀다.어차피 성혜인 본인이 직접 선택한 인생이니 자신과 무관했기 때문이다.반희월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마중을 나온 몇몇 임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그때, 한 직원이 성혜인의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성혜인은 고개를 저었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몸이든 무릎이든 어느 한 곳 안 아픈데 없이 모두 아팠다.차를 잡아 포레스트로 돌아간 그녀는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들었다.유경아는 그녀가 어젯밤 돌아오지 않은 일에 대해 감히 더 물어보지 못했다.전에도 성혜인은 포레스트에 오길 싫어했으니까 말이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가서 국을 끓였고 성혜인에게 몸보신을 해줄 수 있길 바랐다.한편,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반희월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 그 여자가 나온 이곳 호텔에 반승제가 묵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흔적들이 반승제가 남긴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반승제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반씨 집안에서 정말 반승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반승제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는 성혜인이 떠난 뒤로 줄곧 테이블 위에 놓은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그러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들이 몰려와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승제야, 너 어디 있어?”“호텔이에요.”그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던 반희월은 곧바로 그의 방에 도착했다.말끔한 차림의 반승제는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서류들이 앞에 놓인 걸 보니 여자를 그렇게 만들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성혜인의 목에 난 흔적들은 매우 선명했다. 밖에 그냥 보이는 것도 그렇게 많으니 아마 안 보이는 데는 더욱 많을 것 같았다.반희월은 반승제를 바라보았다. 그는 집사람들과 있을 때에도 말이 별로 없고 카리스마가 강했다.반승제는 눈가에 옅은 붉은 빛을 감추고 있
성혜인은 포레스트에서 밤 8시까지 잤다. 깨어날 때 그녀는 삭신이 쑤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잠에서 깬 그녀는 유경아가 끓여준 국을 조금 마셨다.“사모님, 요즘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제가 회장님께 한번 들르시라고 말씀드려 볼까요?”성혜인은 숟가락을 꽉 움켜잡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괜찮아요.”유경아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그럼 편히 쉬세요, 살 많이 빠지셨어요.”성혜인은 자신의 볼을 만져보았다. 그러고는 뭐라 말을 하려는데 때마침 로즈가든 경비실에서 메시지가 날아왔다.「안녕하세요. 어젯밤 야간 순찰을 돌 때 집에 누군가 침입한 것 같아서요. CCTV도 때마침 고장이 났습니다. 방금 옆집 사는 분들께서 부정당한 거래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와서 조사에 협조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또 최효원이네.’성혜인은 짜증이 났다. 차를 몰고 로즈가든에 도착한 그녀는 1층에서 최효원과 경찰을 발견했다.최근 임경헌과의 관계가 괜찮은 모양인지 최효원의 안색은 매우 좋아 보였다.그녀는 성혜인을 보자마자 바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저 사람이에요. 그 두 사람 저 사람 집에서 나와서 갔어요. 그리고 저 사람 사생활이 원래 깨끗하지 않거든요.”성혜인은 그녀를 무시한 채 경찰에게 말했다.“최근에 제가 집에 있지를 않아서요. 집에 아무래도 도둑이 든 모양입니다. 아무쪼록 잘 조사해주셨으면 좋겠네요.”그러자 최효원이 곁에서 몇 마디 덧붙였다.“웃기지 말아요. 무슨 더러운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남한테 알려질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잖아요.”성혜인은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효원 씨, 마침 효원 씨한테 뭐 좀 말할 게 있었는데, 얘기 좀 나눌까요?”그녀는 먼 곳에 있는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는데 그쪽에는 모퉁이가 있었다.최효원은 성혜인이 겁을 먹은 줄 알고 피식 코웃음을 쳤다.“저한테 사과하고 싶으시면 여기서,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해요.”“사과 하려는 게 아니에요, 더 중요한 일이에요. 임경헌 씨에 관한.
경찰은 최효원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진작 눈물범벅이 된 그녀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마, 맞아요...”식은땀으로 등이 흠뻑 젖은 최효원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힘들게 임경헌을 꼬셔서 얻은 지금의 생활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여자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다지 중요한 것을 알아내지 못한 경찰은 두 사람에게 가 봐도 좋다고 했다. 최효원은 로즈가든에 있을 용기가 없었고 성혜인은 포레스트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함께 나가게 되었다.최효원은 진작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성혜인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몸까지 주체가 되지 않고 벌벌 떨렸다.성혜인은 길가에 나온 다음에야 최효원에게 말했다.“효원 씨,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요.”성혜인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예리하기만 했다.최효원은 몸을 흠칫 떨면서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성혜인은 차에 올라타서 유유히 멀어져갔다.제자리에 혼자 남은 최효원은 자칫 힘이 풀려 무릎을 꿇을 뻔했다. 등은 겉으로도 보아낼 수 있을 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눈물은 여전히 줄줄 흘렀고 뺨도 지끈지끈 아팠다.최효원은 성혜인에게 단단히 겁먹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임경헌에게 알릴 용기는 없었다.성혜인은 직접 운전해서 포레스트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저 여자가 확실해?”한 남자가 먼저 묻자, 그의 곁에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네, 보스. 저희가 오랫동안 조사하고 확인했습니다. 비록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반승우 씨가 서천군에 있을 때 성혜인 씨와 잠깐의 교류가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보스라고 불린 남자는 한참 침묵하고 나서야 다시 물었다.“윤단미는?”“윤단미 씨도 조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확신이 설 때까지 계속 알아봐.”사실상 그들은
윤단미는 반승제가 반승우의 사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반승우에게서 받은 물건은 없는지 물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사실 윤단미는 반승우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반승우는 다정한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 그녀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녀가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진작 어색한 사이로 끝났을 관계였다.오래전 우연한 기회로 김경자와 인연을 맺은 후로부터 윤씨 집안에서는 꼭 그녀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자에게는 천재 손자가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윤단미의 미래 남편이 될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반승우가 김경자의 최애 손자라는 이유 하나로 윤단미는 그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고는 했다. 반승우는 반승제와 달랐다. 그녀를 보고도 말 한마디 없이 무시하는 반승제와 달리, 반승우는 대답도 해주고 태도도 좋았다.하지만 둘 중에서 더 잘생긴 쪽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반승제였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눈으로 빚은 인형처럼 차갑고도 아름다웠다.10대 때부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훔친 반승제에게 윤단미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승우와 만남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그를 관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가 반승우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되었다.반승우는 줄곧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반승제도 똑같이 훌륭하기는 했지만 반승우의 그림자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후에는 반태승을 따라 일찍 군 입대를 하기도 했다.제원의 대부분 사람이 반씨 집안의 두 형제가 원수지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단미는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둘도 없는 친한 형제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반승제는 반승우의 죽음을 모르는 척 지나갈 사람이 아니었다.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반승제는 잠깐 침묵하다가 곧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줬다.“나 지금 호텔에 있어.”그 말인즉슨 윤단미에게 찾아오라는 뜻이었다.윤단미는 감정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성혜인을 상대할 때처럼 성급하게 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급한
병원에서 반승제와 마주친 강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곁에 함께 서 있는 윤단미를 발견하고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윤단미는 강민지를 한눈에 알아봤다. 보석 사업을 주로 하는 강씨 집안은 진정한 재벌가였기 때문이다.“안녕하세요, 민지 씨.”윤단미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강민지는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반승제를 바라봤다. 반대로 반승제는 그녀가 안중에도 없는 듯 슥 지나가 버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윤단미는 그녀를 향해 짧게 묵례하더니 쪼르르 따라갔다.강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하지만 플래시를 끄지 않은 관계로 병원 로비 전체가 순간 번쩍였다.반승제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머리를 돌려 강민지를 바라봤다. 눈빛은 만년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가웠다.“지워요.”당황한 강민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머리를 쳐들면서 말했다.“싫어요. 당신 와이프한테 보내줘야겠으니까요.”이 말을 들은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민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성혜인과 아는 사이에요?”“네, 제 친구예요.”반승제는 피식 웃었다.“강 대표님께서 자식 교육에 실패하신 모양이네요.”“뭐라고요?”강민지가 정색하면서 묻자, 곁에 있던 윤단미가 입을 보탰다.“승제 말은 덜떨어진 여자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뜻이에요.”강민지는 순간 열이 솟구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 개자식들이...!’반승제는 단호하게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윤단미는 일부러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승제는 오늘 저를 위해 병원에 함께 와준 거예요. 하지만 성혜인 씨한테는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저희도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 못 해서요.”윤단미는 말을 애매모호하게 했다. 하지만 배를 만지는 동작과 한저녁에 반승제와 함께 병원에 온 것을 보고 강민지는 바로 미끼를 물어버렸다.‘이 미친년이 임신했다고?’강민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단미의 배를 바라봤다. 그
“안 좋은 상황이라니?”“연예계가 어떤 곳인지는 너도 알지? 온수빈은 요즘 예쁘장한 젊은 남자를 좋아하는 50대 부자 아줌마한테 단단히 걸렸어. 아직은 우리 회사 엠버서더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계약이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온수빈이 괜히 너랑 만나달라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겠냐? 나라고 해도 50대 아줌마를 버리고 젊고 예쁜 우리 혜인이랑 만나겠어. 그리고 그 변태 아줌마한테 별 이상한 장난감이 다 있는데, 그 아줌마 손에 고자가 된 남자 모델이 한둘이 아니야.”성혜인과 강민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만 상류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하층민을 상대로 하는 불공평한 일은 어디에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깨끗한 학술계에도 비겁한 짓을 하는 사람이 빠지지 않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상혜인이 자칫 졸업장을 받지 못했을 뻔했던 것만 해도 그랬다.강민지와 잠깐 통화하면서 주의력을 돌린 덕분에 성혜인은 메스꺼움이 훨씬 덜해진 것 같았다.“아무튼 너만 원한다면 내가 바로 예쁘게 포장해서 네 침대 위로 배달해 줄게.”성혜인은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온수빈의 처지가 마음에 걸려 잠깐 멈칫하다가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다음에 다시 얘기하자.”성혜인이 반쯤 넘어왔다고 생각한 강민지는 급 기분이 좋아져서는 말했다.“진작 이럴 것이지. 반승제한테 얽매일 필요는 하등 없다니까. 그리고 윤단미가 언제까지 임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강민지의 말은 마치 비수처럼 성혜인의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그녀는 한참 침묵하고 나서야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이제 자고 싶어.”“아, 미안 미안. 얼른 자. 앞으로 이런 더러운 일은 너한테 말하지 않을게. 우리 혜인이는 좋은 것만 보고 들어요~”전화를 끊고 난 성혜인은 찬물 세수를 했다. 그리고 피부가 저릿저릿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머리를 들어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머릿속에는 임지연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혜인아, 다른 사람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