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최효원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진작 눈물범벅이 된 그녀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마, 맞아요...”식은땀으로 등이 흠뻑 젖은 최효원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힘들게 임경헌을 꼬셔서 얻은 지금의 생활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여자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그다지 중요한 것을 알아내지 못한 경찰은 두 사람에게 가 봐도 좋다고 했다. 최효원은 로즈가든에 있을 용기가 없었고 성혜인은 포레스트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함께 나가게 되었다.최효원은 진작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성혜인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몸까지 주체가 되지 않고 벌벌 떨렸다.성혜인은 길가에 나온 다음에야 최효원에게 말했다.“효원 씨,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요.”성혜인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예리하기만 했다.최효원은 몸을 흠칫 떨면서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성혜인은 차에 올라타서 유유히 멀어져갔다.제자리에 혼자 남은 최효원은 자칫 힘이 풀려 무릎을 꿇을 뻔했다. 등은 겉으로도 보아낼 수 있을 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눈물은 여전히 줄줄 흘렀고 뺨도 지끈지끈 아팠다.최효원은 성혜인에게 단단히 겁먹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임경헌에게 알릴 용기는 없었다.성혜인은 직접 운전해서 포레스트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는 차 안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저 여자가 확실해?”한 남자가 먼저 묻자, 그의 곁에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네, 보스. 저희가 오랫동안 조사하고 확인했습니다. 비록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반승우 씨가 서천군에 있을 때 성혜인 씨와 잠깐의 교류가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보스라고 불린 남자는 한참 침묵하고 나서야 다시 물었다.“윤단미는?”“윤단미 씨도 조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확신이 설 때까지 계속 알아봐.”사실상 그들은
윤단미는 반승제가 반승우의 사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반승우에게서 받은 물건은 없는지 물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사실 윤단미는 반승우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반승우는 다정한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 그녀와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녀가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진작 어색한 사이로 끝났을 관계였다.오래전 우연한 기회로 김경자와 인연을 맺은 후로부터 윤씨 집안에서는 꼭 그녀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자에게는 천재 손자가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윤단미의 미래 남편이 될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반승우가 김경자의 최애 손자라는 이유 하나로 윤단미는 그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묻고는 했다. 반승우는 반승제와 달랐다. 그녀를 보고도 말 한마디 없이 무시하는 반승제와 달리, 반승우는 대답도 해주고 태도도 좋았다.하지만 둘 중에서 더 잘생긴 쪽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반승제였다. 그는 태어난 순간부터 눈으로 빚은 인형처럼 차갑고도 아름다웠다.10대 때부터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훔친 반승제에게 윤단미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승우와 만남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그를 관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가 반승우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게 되었다.반승우는 줄곧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반승제도 똑같이 훌륭하기는 했지만 반승우의 그림자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후에는 반태승을 따라 일찍 군 입대를 하기도 했다.제원의 대부분 사람이 반씨 집안의 두 형제가 원수지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단미는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둘도 없는 친한 형제 사이라는 것을 말이다.반승제는 반승우의 죽음을 모르는 척 지나갈 사람이 아니었다.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반승제는 잠깐 침묵하다가 곧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줬다.“나 지금 호텔에 있어.”그 말인즉슨 윤단미에게 찾아오라는 뜻이었다.윤단미는 감정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성혜인을 상대할 때처럼 성급하게 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급한
병원에서 반승제와 마주친 강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곁에 함께 서 있는 윤단미를 발견하고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윤단미는 강민지를 한눈에 알아봤다. 보석 사업을 주로 하는 강씨 집안은 진정한 재벌가였기 때문이다.“안녕하세요, 민지 씨.”윤단미는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강민지는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반승제를 바라봤다. 반대로 반승제는 그녀가 안중에도 없는 듯 슥 지나가 버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윤단미는 그녀를 향해 짧게 묵례하더니 쪼르르 따라갔다.강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하지만 플래시를 끄지 않은 관계로 병원 로비 전체가 순간 번쩍였다.반승제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머리를 돌려 강민지를 바라봤다. 눈빛은 만년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차가웠다.“지워요.”당황한 강민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머리를 쳐들면서 말했다.“싫어요. 당신 와이프한테 보내줘야겠으니까요.”이 말을 들은 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민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성혜인과 아는 사이에요?”“네, 제 친구예요.”반승제는 피식 웃었다.“강 대표님께서 자식 교육에 실패하신 모양이네요.”“뭐라고요?”강민지가 정색하면서 묻자, 곁에 있던 윤단미가 입을 보탰다.“승제 말은 덜떨어진 여자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뜻이에요.”강민지는 순간 열이 솟구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 개자식들이...!’반승제는 단호하게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윤단미는 일부러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승제는 오늘 저를 위해 병원에 함께 와준 거예요. 하지만 성혜인 씨한테는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저희도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 못 해서요.”윤단미는 말을 애매모호하게 했다. 하지만 배를 만지는 동작과 한저녁에 반승제와 함께 병원에 온 것을 보고 강민지는 바로 미끼를 물어버렸다.‘이 미친년이 임신했다고?’강민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단미의 배를 바라봤다. 그
“안 좋은 상황이라니?”“연예계가 어떤 곳인지는 너도 알지? 온수빈은 요즘 예쁘장한 젊은 남자를 좋아하는 50대 부자 아줌마한테 단단히 걸렸어. 아직은 우리 회사 엠버서더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계약이 끝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온수빈이 괜히 너랑 만나달라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겠냐? 나라고 해도 50대 아줌마를 버리고 젊고 예쁜 우리 혜인이랑 만나겠어. 그리고 그 변태 아줌마한테 별 이상한 장난감이 다 있는데, 그 아줌마 손에 고자가 된 남자 모델이 한둘이 아니야.”성혜인과 강민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지만 상류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하층민을 상대로 하는 불공평한 일은 어디에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가장 깨끗한 학술계에도 비겁한 짓을 하는 사람이 빠지지 않고 나타났으니 말이다. 상혜인이 자칫 졸업장을 받지 못했을 뻔했던 것만 해도 그랬다.강민지와 잠깐 통화하면서 주의력을 돌린 덕분에 성혜인은 메스꺼움이 훨씬 덜해진 것 같았다.“아무튼 너만 원한다면 내가 바로 예쁘게 포장해서 네 침대 위로 배달해 줄게.”성혜인은 당연히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온수빈의 처지가 마음에 걸려 잠깐 멈칫하다가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다음에 다시 얘기하자.”성혜인이 반쯤 넘어왔다고 생각한 강민지는 급 기분이 좋아져서는 말했다.“진작 이럴 것이지. 반승제한테 얽매일 필요는 하등 없다니까. 그리고 윤단미가 언제까지 임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강민지의 말은 마치 비수처럼 성혜인의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그녀는 한참 침묵하고 나서야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이제 자고 싶어.”“아, 미안 미안. 얼른 자. 앞으로 이런 더러운 일은 너한테 말하지 않을게. 우리 혜인이는 좋은 것만 보고 들어요~”전화를 끊고 난 성혜인은 찬물 세수를 했다. 그리고 피부가 저릿저릿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머리를 들어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머릿속에는 임지연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혜인아, 다른 사람이 이
이튿날.성혜인이 마침 SY그룹의 일을 끝냈을 때 온수빈의 전화를 받았다. 온수빈은 카페, 그것도 고급 카페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그녀는 약속장소로 가서 온수빈과 만나기 전 일단 법원 측에 연락해서 재촉했다. 그림 사건으로 김경자가 법정 싸움에 임하든 합의금을 내든, 둘 중 하나는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아무튼 순순히 김경자를 내버려 둘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카페에 도착하자 한눈에 봐도 열심히 꾸민 티가 나는 온수빈이 보였다. 그는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페니 씨.”성혜인은 말없이 온수빈을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또다시 말했다.“저는 좋아요. 페니 씨만 원한다면요.”온수빈은 강한 인상의 다른 남자들과 달리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성혜인은 갑자기 기억의 사막 속에 묻힌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온수빈이 그와 같은 말을 했는지라 감정의 파동이 더욱 심했다.“저는 처음부터 페니 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성혜인은 머리를 푹 숙인 채로 커피잔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드디어 머리를 들고 말하려고 했을 때 커피가 온수빈의 얼굴에 쏟아졌다.이 카페는 예약이 필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일반인과 파파라치는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이나 톱스타들이 애용하고는 한다.온수빈도 이곳에 와서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얼음이 섞여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의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성혜인은 커피를 뿌린 사람을 바라봤다. 상대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였는데, 곁에는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서 있었다너무나도 인상적인 모습에 성혜인은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가 바로 강민지가 언급했었던 TJ 엔터의 대표 도송애라는 것을 말이다. TJ 엔터는 연예계에 발을 들인 지 10여 년이 된 유명한 회사였다. 그리고 수많은 톱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도송애는 온수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관리를 잘했다고 해도 50대는 50대였다
도송애는 황급히 성혜인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아이고, 죄송해요. 제가 귀하신 분도 못 알아봤네요. 오늘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니 계산이라도 제가 할게요.”도송애는 또 활짝 웃으며 반승제를 바라보더니 이어서 말했다.“대표님, 저희는 저쪽에서 얘기를 나눌까요?”반승제는 오늘 협력을 목적으로 도송애와 약속을 잡았다. BH그룹이 영화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대본 하나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심드렁한 태도로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만 바라봤다.‘어제는 신이한이고 오늘은 온수빈이야? 도대체 이 여자는 얼마나 많은 남자를 만나야 만족하는 거지?’속으로 묵묵히 생각하고 있던 반승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같이 나가자.”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저 할 일이 있어요.”반승제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도송애가 보고 있기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고 그냥 성혜인의 옷깃을 정리해 줬다. 그렇다고 한들 그녀가 느낀 것은 배려가 아닌 위협일 뿐이었다.“말 들어.”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승제가 도송애를 따라 룸으로 들어간 후에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휴지를 뽑아 온수빈에게 건네줬다.“괜찮아요?”온수빈은 인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된 것처럼 커피 냄새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성혜인의 질문을 들은 다음에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부자들 앞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톱스타라고 해도 일개 노리개일 뿐이라는 것을 성혜인은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이때 온수빈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온시환의 전화였다. 이번 기회를 도송애에게서 벗어나는 중요한 기회로 여겼던 그는 다급한 말투로 물었다.“작가님, 배우를 왜 갑자기 바꾸게 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사실은 투자자의 의견이었어요. 영화의 투자자인 반승제 대표님이 남자주인공을 바꾸라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네요.”온시환은 솔직하게 대답
“아무래도 제가 꼴 보기 싫은 듯하시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너... 너...”김경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성혜인에게 삿대질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이미 멀어진 후였다. 그 모습에 화병이 제대로 온 그녀는 결국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가고 말았다.반씨 저택을 나선 성혜인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따끔거리는 목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그 길로 중고 시장에 도착한 성혜인은 팔찌를 들고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직원은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도 그녀를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물었다.“이걸... 진짜 파신다고요? 중고로?”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직원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말했다.“이건 진짜 귀한 물건이라 제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마침 저희 사장님이 사무실에 계시니, 제가 물어보고 올게요. 여기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성혜인은 두 명의 직원을 따라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반면 원래의 직원은 조심스럽게 팔찌를 들고 2층의 사장실로 향했다.“사장님, 어떤 여성분이 오셔서 이 팔찌를 중고로 팔겠다고 하시는데 지난번의 보석 박람회의 전시품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서 어떻게 해야 할지...”의자에 앉아 있던 사장이라는 남자는 다름 아닌 서주혁이었다. 그는 총기를 만기고 있다가 직원이 들고 있는 물건을 힐끗 봤다.중고 거래 시장은 돈 벌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사치품부터 시작해서 불법적인 무기까지 없는 물건이 없었다. 물론 법의 변두리에 가까워질수록 아는 사람만 아는 거래가 진행되고는 했다.“진품이 맞기나 해?”“네, 100% 확신합니다.”“가격은 얼마 정도 하지?”“원래 가격은 400억 원쯤 하겠지만 저희는 300억 원까지 가능합니다.”이 팔지는 전 세계에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만약 경매장에 넘어간다면 천문학적인 가격이 매겨질 수도 있었다.“사들여.”직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팔찌를 서주혁의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숨길 수 없는 희열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는데 능한 반승제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차가 백화점을 지나고 있을 때 반승제는 문득 머리를 들며 말했다.“차 세워요.”심인우는 급정거하면서 머리를 돌렸다.“대표님, 무슨 일이세요?”“잠깐 선물을 고르려고요.”성혜인이 팔찌를 받았다면 다른 선물도 좋아할 것이라고 반승제는 생각했다. 역시 온시환의 말대로 선물 공세를 거절할 여자는 없었다.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신이한과 만나봤자 얻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사실 반승제도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성혜인을 더러운 여자라고 내쳐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성혜인은 날마다 남자를 바꾸는 바람기 많은 여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유치하게 재력을 뽐내서라도 성혜인을 신이한에게서 빼앗고 싶었다.반승제는 예쁘게 전시된 목걸이 앞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지난번의 팔찌처럼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지난번의 팔찌는 전시 중인 작품인 반대로 백화점의 물건은 부자들이 고르고 남은 유행 지난 물건이기 때문이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서더니 백화점을 나섰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서 심인우에게 말했다.“보석 전시회 주최 측에 연락해서 선물할 만한 물건을 보내달라고 해요.”심인우는 백미러를 통해 반승제를 힐끗 봤다. 그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반승제와 함께 일한 시간만 해도 몇 년이나 되는 심인우는 그가 얼마나 냉정하고 거리감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토록 조용해 보이는 그도 화가 나는 순간 완전히 돌변해 버리고는 한다.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안 기를 바랄 뿐이었다.“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반승제는 기분 좋은 듯 곁에 있던 서류를 들어 올렸다. 같은 시각, 성혜인은 두둑한 지갑과 함께 다음 할 일을 계획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성혜인은 온수빈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와 관련된 일을 물었다. 대본 작가가 온시환이라는 것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