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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유일한 존재

작가: 민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10-31 18:00:00
이튿날.

성혜인이 마침 SY그룹의 일을 끝냈을 때 온수빈의 전화를 받았다. 온수빈은 카페, 그것도 고급 카페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약속장소로 가서 온수빈과 만나기 전 일단 법원 측에 연락해서 재촉했다. 그림 사건으로 김경자가 법정 싸움에 임하든 합의금을 내든, 둘 중 하나는 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아무튼 순순히 김경자를 내버려 둘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카페에 도착하자 한눈에 봐도 열심히 꾸민 티가 나는 온수빈이 보였다. 그는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페니 씨.”

성혜인은 말없이 온수빈을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또다시 말했다.

“저는 좋아요. 페니 씨만 원한다면요.”

온수빈은 강한 인상의 다른 남자들과 달리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성혜인은 갑자기 기억의 사막 속에 묻힌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온수빈이 그와 같은 말을 했는지라 감정의 파동이 더욱 심했다.

“저는 처음부터 페니 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성혜인은 머리를 푹 숙인 채로 커피잔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드디어 머리를 들고 말하려고 했을 때 커피가 온수빈의 얼굴에 쏟아졌다.

이 카페는 예약이 필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일반인과 파파라치는 들어올 수 없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이나 톱스타들이 애용하고는 한다.

온수빈도 이곳에 와서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얼음이 섞여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의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성혜인은 커피를 뿌린 사람을 바라봤다. 상대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였는데, 곁에는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함께 서 있었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모습에 성혜인은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가 바로 강민지가 언급했었던 TJ 엔터의 대표 도송애라는 것을 말이다. TJ 엔터는 연예계에 발을 들인 지 10여 년이 된 유명한 회사였다. 그리고 수많은 톱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도송애는 온수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관리를 잘했다고 해도 50대는 5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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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송애는 황급히 성혜인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아이고, 죄송해요. 제가 귀하신 분도 못 알아봤네요. 오늘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니 계산이라도 제가 할게요.”도송애는 또 활짝 웃으며 반승제를 바라보더니 이어서 말했다.“대표님, 저희는 저쪽에서 얘기를 나눌까요?”반승제는 오늘 협력을 목적으로 도송애와 약속을 잡았다. BH그룹이 영화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대본 하나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심드렁한 태도로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만 바라봤다.‘어제는 신이한이고 오늘은 온수빈이야? 도대체 이 여자는 얼마나 많은 남자를 만나야 만족하는 거지?’속으로 묵묵히 생각하고 있던 반승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기다려. 같이 나가자.”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저 할 일이 있어요.”반승제의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도송애가 보고 있기 때문에 화를 내지는 않고 그냥 성혜인의 옷깃을 정리해 줬다. 그렇다고 한들 그녀가 느낀 것은 배려가 아닌 위협일 뿐이었다.“말 들어.”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승제가 도송애를 따라 룸으로 들어간 후에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휴지를 뽑아 온수빈에게 건네줬다.“괜찮아요?”온수빈은 인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된 것처럼 커피 냄새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성혜인의 질문을 들은 다음에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부자들 앞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톱스타라고 해도 일개 노리개일 뿐이라는 것을 성혜인은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이때 온수빈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온시환의 전화였다. 이번 기회를 도송애에게서 벗어나는 중요한 기회로 여겼던 그는 다급한 말투로 물었다.“작가님, 배우를 왜 갑자기 바꾸게 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사실은 투자자의 의견이었어요. 영화의 투자자인 반승제 대표님이 남자주인공을 바꾸라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네요.”온시환은 솔직하게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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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제가 꼴 보기 싫은 듯하시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너... 너...”김경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성혜인에게 삿대질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이미 멀어진 후였다. 그 모습에 화병이 제대로 온 그녀는 결국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가고 말았다.반씨 저택을 나선 성혜인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따끔거리는 목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말했다.그 길로 중고 시장에 도착한 성혜인은 팔찌를 들고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직원은 팔찌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도 그녀를 힐끗힐끗 쳐다보다가 물었다.“이걸... 진짜 파신다고요? 중고로?”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직원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말했다.“이건 진짜 귀한 물건이라 제가 결정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마침 저희 사장님이 사무실에 계시니, 제가 물어보고 올게요. 여기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성혜인은 두 명의 직원을 따라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반면 원래의 직원은 조심스럽게 팔찌를 들고 2층의 사장실로 향했다.“사장님, 어떤 여성분이 오셔서 이 팔찌를 중고로 팔겠다고 하시는데 지난번의 보석 박람회의 전시품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너무 비싸서 어떻게 해야 할지...”의자에 앉아 있던 사장이라는 남자는 다름 아닌 서주혁이었다. 그는 총기를 만기고 있다가 직원이 들고 있는 물건을 힐끗 봤다.중고 거래 시장은 돈 벌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사치품부터 시작해서 불법적인 무기까지 없는 물건이 없었다. 물론 법의 변두리에 가까워질수록 아는 사람만 아는 거래가 진행되고는 했다.“진품이 맞기나 해?”“네, 100% 확신합니다.”“가격은 얼마 정도 하지?”“원래 가격은 400억 원쯤 하겠지만 저희는 300억 원까지 가능합니다.”이 팔지는 전 세계에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만약 경매장에 넘어간다면 천문학적인 가격이 매겨질 수도 있었다.“사들여.”직원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팔찌를 서주혁의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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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속에는 숨길 수 없는 희열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는데 능한 반승제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차에 올라탔다.차가 백화점을 지나고 있을 때 반승제는 문득 머리를 들며 말했다.“차 세워요.”심인우는 급정거하면서 머리를 돌렸다.“대표님, 무슨 일이세요?”“잠깐 선물을 고르려고요.”성혜인이 팔찌를 받았다면 다른 선물도 좋아할 것이라고 반승제는 생각했다. 역시 온시환의 말대로 선물 공세를 거절할 여자는 없었다.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신이한과 만나봤자 얻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사실 반승제도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 몰랐다. 원래대로라면 성혜인을 더러운 여자라고 내쳐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성혜인은 날마다 남자를 바꾸는 바람기 많은 여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유치하게 재력을 뽐내서라도 성혜인을 신이한에게서 빼앗고 싶었다.반승제는 예쁘게 전시된 목걸이 앞에서 멈춰 섰다. 하지만 지난번의 팔찌처럼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지난번의 팔찌는 전시 중인 작품인 반대로 백화점의 물건은 부자들이 고르고 남은 유행 지난 물건이기 때문이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서더니 백화점을 나섰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서 심인우에게 말했다.“보석 전시회 주최 측에 연락해서 선물할 만한 물건을 보내달라고 해요.”심인우는 백미러를 통해 반승제를 힐끗 봤다. 그는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반승제와 함께 일한 시간만 해도 몇 년이나 되는 심인우는 그가 얼마나 냉정하고 거리감 있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토록 조용해 보이는 그도 화가 나는 순간 완전히 돌변해 버리고는 한다. 그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안 기를 바랄 뿐이었다.“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반승제는 기분 좋은 듯 곁에 있던 서류를 들어 올렸다. 같은 시각, 성혜인은 두둑한 지갑과 함께 다음 할 일을 계획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성혜인은 온수빈에게 전화를 걸어 영화와 관련된 일을 물었다. 대본 작가가 온시환이라는 것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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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이미 정해진 이상 온수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계속 있어봤자 모욕만 더 당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약서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대표는 자리에 앉은 채로 도송애에게 전화해 계약을 축하했다. 온수빈이 아직 듣고 있는데도 말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사무실에서 나선 온수빈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회사에는 신인도 많고 톱스타도 많았다. 그래도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것은 온수빈이었기 때문에 다들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그는 인간도 아니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도송애의 손에 죽을 목숨이 되고 말았다.도송애의 얼굴을 떠올리자, 온수빈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계약은 이미 체결되었으니 말이다.온수빈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냥 이대로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죽는다고 해도 도송애의 악행은 밝히고 죽을 것이다. 그는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름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이때 매니저가 곁에서 말했다.“수빈 씨,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말아요. 어떻게든 해결 방법이 있을 거예요.”매니저는 온수빈이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도송애는 연예계에서 악명이 자자했다. 얼마 전 잠깐 뜬 적 있는 남자 연예인이 집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 도송애 때문에 몸이 망가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업계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온수빈은 그게 바로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도송애는 그를 노리기 시작한 지 한참 되었기에 얻은 다음 무슨 방법으로 괴롭힐지 몰랐다.“수빈 씨, 그냥 강민지 씨한테 다시 연락하는 건 어때요?”매니저는 도송애에게 갈 바에는 강민지에게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강민지가 아닌 성혜인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다.온수빈은 성혜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사실 그는 첫 만남 때부터 성혜인이 좋았다. 하지만 성혜인이 싫다고 하니 그도 별수 없었다.초저녁, 성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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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505화 상처받은 마음

    온시환은 잠깐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요. 300억 원의 투자금이라면 뭔들 못하겠어요. 근데 페니 씨한테 그 정도의 돈이 있었나요?”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허락만 하시면 내일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온수빈 씨를 좋아해요?”“팬으로서의 좋아함이라면... 네.”온시환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복잡한 남녀 사이만큼 그의 구미를 당기는 것도 없었다.“좋아요. 그러면 내일 오전 9시까지 입금해 줘요. 그러면 바로 온수빈 씨한테 연락할게요.”성혜인은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제가 저녁이라도 살까요?”“아니에요. 다른 일 없으면 이만 가보세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온시환은 소파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할 일’을 미처 끝내지 못한 그는 아직도 진정되지 못했다.성혜인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부리나케 룸을 빠져나갔다.같은 시각, 반승제의 연락을 받은 보석 박람회의 주최 측은 벌써 선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직접 반승제가 묵고 있는 호텔까지 배달했다.“대표님, 이건 오늘 새로 받은 신상입니다.”상자는 반승제의 손에 놓였다. 상자를 열고 익숙한 팔찌를 본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도 모른 채 주최 측 직원은 설명을 계속했다.“이건 해외의 박람회에서 금방 전시를 끝낸 전 세계에 하나 뿐인 팔찌입니다.”팔찌를 본 순간 반승제는 주최 측이 실수로 같은 팔찌를 보낸 줄 알았다. 하지만 전 세계에 하나 뿐이라는 말을 듣고는 표정이 빠르게 식어갔다.“이 팔찌는 어디에서 구한 거죠?”반승제의 기세에 겁먹은 직원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말했다.“실은 중고 거래 시장에서 받은 지 얼마 안 된 제품입니다. 많은 손님이 원하지만 일단 반 대표님에게 가장 먼저 가져왔습니다.”반승제는 크게 심호흡했다. 아직도 화를 내지 않고 덤덤한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그는 심인우에게 카드를 넘겨주고 결제를 부탁하더니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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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506화 심장이 찢기는 것처럼

    반승제의 문자를 확인하고 난 성혜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의 본능이 반승제를 만나러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번의 약속을 빨리 끝내고 관계를 깔끔하게 끊어내고 싶기도 했다.앞으로 성혜인은 SY그룹을 운영하는 데 집중하며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투자할 생각이다. 그래야만 이혼한 후에도 잘 살 수가 있었다.정작 호텔로 가자니 반승제가 오늘 밤은 또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굴지 걱정이 앞섰다. 지난 여섯 번 중 그 어느 한 번도 쉽게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큰마음 먹고 호텔에 도착한 성혜인은 1층 로비에 있던 심인우와 마주쳤다. 심인우는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가까이 다가가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해줬다.“페니 씨, 대표님께서 오늘 기분이 안 좋으셔서 조심해야 할 겁니다.”반승제가 기분이 안 좋다는 말에 성혜인은 약간 올라가기 싫어졌다. 빡친 반승제라면 분명 평소의 냉철함을 잃고 눈이 돌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성혜인이 무서운 듯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고 심인우가 작은 목소리로 일깨웠다.“지금 안 올라가시면 대표님께서 직접 댁으로 찾아가실 겁니다.”반승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든지 얻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성혜인은 결국 묵묵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반승제의 호텔 방 앞으로 간 후에도 성혜인은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두꺼운 문을 사이 두고도 그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성혜인은 손을 올려 조심스레 노크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서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반승제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거칠게 벗어 던진 정장 외투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셔츠 단추 몇 개를 풀어 헤친 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 감정 없는 눈빛으로 머리를 살짝 들었다.성혜인은 호텔 측에서 준비한 하얀 슬리퍼를 갈아 신으며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반승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다 말고 테이블 위에 놓인 팔찌를 발견했다.반승제는 몸을 일으키더니 팔찌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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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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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승혁은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했지만, 공지민이 소파로 이끌어 앉고 나서야 그나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공지민의 휴대전화는 이미 연승혁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는 전부 온시환에게서 걸려 온 것이였다.연승혁은 휴대전화를 다시 공지민 앞에 놓으면서 말했다.“이 번호에 전화 걸어 최근 한 달 동안은 연씨 가문에서 할머님을 보살펴야 한다고 해.”공지민은 부재중으로 적힌 온시환이라는 이름을 보고 물었다.“이건 누구예요?”“네 친구야. 네가 어떻게 된 건지 걱정되어 연락이 온 같으니 내 말대로 문자 한 통 보내줘.”“알겠어요.”공지민은 머리를 끄덕이며 연승혁이 말한 대로 메세지를 작성하여 발송했다.하지만 회답은 바로 오지 않았고 몇분이 지나서야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걱정되니까 전화 좀 받아.”연승혁은 바로 휴대전화를 뺏어가 대충 한 줄로 답장을 보냈다.“걱정하지 말아요.”답장을 받은 온시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공지민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온시환이 바다에 보낸 사람은 지금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고 오늘 밤 연승혁은 그쪽에서 명령을 받을 것이다.연승혁의 꼬리는 이미 잡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도 증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증인은 연승혁에 의해 불 속에 버려진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행방불명이고 이 사람만 찾으면 연승혁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다.지금 공지민은 혼자 움직이고 있는 듯 하였으나 그녀의 계획을 들은 적 없는 온시환은 매우 불안했다.온시환은 자신이 막지 않으면 공지민은 죽을 길밖에 없고 그녀 역시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럼 난? 단 일 분이라도 날 생각한 적 있었나?’온시환은 공지민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 항상 잘해주고 있는 자신을 거절할 방법이 없어서 함께 지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소파에 드러누운 온시환은 문자로 공지민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지만, 연승혁한테 들킬까 봐 섣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60화 손끝 하나만 스쳐도 금세 산산조각 날 것처럼

    연승혁은 온시환에게 술을 건네며 말했다.“결혼도 했으니 이제 좀 안심하지 그래? 누나는 연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태도도 한결 누그러졌잖아. 할머니를 돌보러 간다는데 뭐가 그렇게 걱정돼? 설마 누가 누나를 괴롭히기라도 할까 봐?”온시환은 술잔을 비우고 몸을 뒤로 기대며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었다.“그래서 원아정은 어떻게 처리할 거야?”“원래 해외로 보낼 계획이었는데,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도망쳤어. 지금까지도 행방을 못 찾고 있어.”온시환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사람들 진짜 무능하네?”이 일은 연승혁 자신도 잘못 처리한 게 분명했기에 그는 드물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온시환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이곳에 공지민이 없으니 흥미를 잃은 듯 지루해졌다.연승혁 역시 마음이 이곳을 떠나 있었다. 그는 이상우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집에 공지민이 있는데...’그 생각이 들자마자 그는 어딘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술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단지 그녀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또다시 선을 넘는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이 게임은 분명 자신이 시작한 것이었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기분은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생소했다.그는 다시 한 잔의 술을 들이켜고는 옆에 앉은 온시환을 흘깃 바라보았다.솔직히 말해, 온시환의 외모는 인정할 만했다. 여자 친구도 여럿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공지민도 그에게 그런 눈빛을 보냈던 적이 있지 않을까?그녀가 두 다리로 이 남자의 허리를 감싸안은 적은 없었을까?그런 생각만으로도 속이 답답해지고 묘한 불쾌감이 밀려왔다.연승혁은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투를 집으며 말없이 나갈 준비를 했다.이상우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연승혁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이상우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조금 떨어져서 걸어가며 말했다.“나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59화 그게 그렇게 걱정돼?

    공지민의 눈빛은 너무 맑았다. 연승혁은 이런 순수함이 싫었다. 그는 예전부터 너무 깨끗한 것을 보면 망가뜨리고 싶어졌다.마치 과거 드라마 속 공지민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과도 같았다.지금은 상황이 그의 손아귀에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공지민은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그 모습은 그날 폐공장에서 보여주었던 농염한 태도와는 전혀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했다.“오빠, 저녁은 뭐 먹어요?”“네가 먹고 싶은 걸로. 내가 요리사에게 시킬게.”연승혁은 시선을 피하며 어둑한 눈빛을 감추고 소파로 가 앉았다. 공지민은 그의 꽁무니를 따라가 곁에 앉았다.“아무거나요.”그녀는 어느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예전에 오빠를 좋아했던 건 오빠 얼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공지민은 장난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턱선을 따라 손끝으로 훑더니, 손가락 끝이 그의 목젖을 스치듯 지나갔다.그 순간, 연승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무엇인가 가볍고도 날카로운 것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혔다. 피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끝 온기가 은근히 탐이 났다.요리사가 저녁을 가져올 때까지도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공지민은 연승혁에게 같이 앉아 식사를 하자고 했지만 연승혁은 갑자기 나갈 일이 있다며 혼자서 먹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차에 앉은 연승혁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그때 친구로부터 술자리에 오라는 연락이 와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마침 그 자리에는 이상우도 나와 있었다.이상우는 여전히 금테 안경을 쓴 채 그를 보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연승혁은 평온한 얼굴로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원아정이 사라졌다는데, 그거 진짜야?”연승혁은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응, 진짜야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58화 우리 집이야

    공지민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이내 진심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런 거였군요.”그녀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얼굴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혼란과 미묘한 행복감이 섞여 있었다.연승혁은 일부러 그녀를 골려주려던 참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바지를 벗긴 걸 생각하면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그날 폐공장에서 그녀가 ‘오빠’라고 불렀던 그 농염한 목소리는 마치 주문처럼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두 다리를 꼬아 올리며 보였던 그 요염한 눈빛은 숲속의 교활한 여우처럼 그를 현혹시켰다. 하지만 지금의 공지민은 순수하고 멍한 토끼처럼 덫에 걸린 듯한 모습이었다.처음에는 그저 장난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심장이 조금씩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이상우는 커튼을 닫고 손목시계를 흘깃 보더니 말했다.“난 이만 가볼게. 다음에 같이 밥이나 한번 먹자. 연락해.”이상우와는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친구였기에 그 정도의 약속은 자연스러웠다.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지민의 볼을 꼬집었다.그녀의 피부는 매끄럽고 부드러웠으며 도톰한 볼은 꼬집을 때마다 화난 햄스터를 연상케 했다.방 안에 둘만 남았을 때 공지민은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연승혁은 살짝 힘을 주며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귀여워서. 다시 한번 오빠라고 불러볼래?”그날 폐공장에서 불렀던 것처럼 농염하고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이다.공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평소에 제가 그렇게 불렀어요?”연승혁은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그래.”“정말 오글거리네요.”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그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오빠.”공지민의 목소리는 지난번처럼 농염하고 유혹적이지 않았지만 왠지 이번에는 지켜주고 싶어지는 느낌이 들었다.연승혁은 그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트는 걸 느꼈다. 손을 내리고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도 가슴이 이상하게 뛰었다.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꽤 재미있다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57화 그 외엔 목적이 꽤 단순해

    [원진과는 이미 연락했어요. 원진도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는 데 동의했어요. 다만 문제는 원아정이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당장은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거예요.][흥, 그 정도는 해줘야지.]연승혁은 이 메시지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공지민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얼굴에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그녀의 시선은 곧장 연승혁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는 금테 안경을 쓴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첫눈에도 지적이고 세련된 인상을 풍겼다.‘분명 낯익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지?’연승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소개했다.“이쪽은 내 친한 친구, 이상우예요.”순간 공지민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이상우, 이 사람은 과거 그녀가 찾아갔던 유명한 최면술사의 수제자였다.최근 그 대가가 은퇴하고 이제 그의 제자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었었다.공지민은 아무 일도 없는 척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공지민입니다.”하지만 이상우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과거 그녀와 짧은 시간 교류한 적이 있었고 그때 그는 그녀를 최면하려 했지만 실패했었다. 그의 스승은 공지민의 마음속 집착이 너무 깊어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었다.더군다나 스승과 함께 수련하던 한 달 동안, 이상우는 공지민에게 진지하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녀가 마음속 그 사람을 잊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었다.지금 이 순간, 공지민은 미소를 지으며 이상우의 손을 잡았다.“안녕하세요.”이상우는 한순간 흔들리는 눈빛을 감췄다. 그리고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승혁이한테서 얘기 들었어요.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서요. 오늘 저랑 편하게 얘기 나눠보실래요?”얘기를 나누자는 말은 곧 그녀를 최면에 빠뜨리겠다는 의미였다.공지민은 그제야 연승혁을 흘깃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걸 알 리가 없는 연승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앉아요, 누나.”공지민은 자리에 앉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56화 너 같은 동생은 없어

    원아정은 팔꿈치로 미친 듯이 차창을 내리치며 동시에 운전대를 잡아당겼다. 게다가 뒤따라오는 경찰도 따돌리지 못하자 운전자는 결국 공항으로 가는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차는 이리저리 우회하며 간신히 경찰들을 따돌렸지만 결국 사람들로 붐비는 번잡한 지역에 들어서고 말았다.원아정은 문을 발로 차며 열고는 곧장 밖으로 내달렸다. 그녀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은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달려들어 경호운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경호원들은 이마에 땀이 맺히며 초조하게 멀어져가는 원아정을 바라보았다. 여자 하나를 공항까지 데려가라는 지시였을 뿐인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을까.진작에 마취라도 시킬 걸 싶었지만 마취한 상태로는 공항 보안검색을 통과할 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결국 운전자는 급히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들은 연승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너희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겨우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해?”경호원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승혁은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됐어. 다음 기회에 다시 처리하면 되니까. 우선 원진에게 이 일을 설명해야겠군.”원진만 동의하면 원아정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떠나야 할 운명이었다....원아정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는 공지민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다 그년 때문이야. 그년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나는 연승혁과 결혼해서 상류층 생활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런 꼴을 당할 필요도 없었어.’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이전의 공지민은 그저 그녀 발밑에 있는 하찮은 존재였는데, 이제 상황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원아정은 허름하고 지저분한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지나가던 노숙자와 옷을 바꿔 입은 뒤, 다시 나왔을 때 그녀는 초라하고 누더기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거리를 전전하며 숨어 지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55화 평생 돌아올 생각은 접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 일을 아주 은밀하게 처리했다고 확신했다. 게다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으니 고작 연예계에서 떠도는 무명 배우에 불과한 공지민이 진실을 알아낼 리 없었다.설령 나중에 공지민이 온시환과 얽혔다 해도, 온시환이 처음부터 그녀를 장난감처럼 여겼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위해 이런 일을 조사할 리는 더더욱 없었다.연승혁은 지금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공지민이 아직 진실을 모르고 진짜 연씨 가문의 딸이며 구은우와의 관계는 그저 악연일 뿐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공지민이 모든 일을 계획해 구은우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연승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만약 후자라면 이거야말로 정말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최근 그의 삶은 지루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런데 이렇게 흥미진진한 일이 불쑥 나타나다니.그는 안정숙을 찾아가 당시 진행했던 두 번의 유전자 검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했다.하나는 머리카락을 사용했고 다른 하나는 공지민이 쓰레기통에 버린 이쑤시개를 쓴 결과라는 말을 들은 연승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만약 이 정도까지 속일 수 있다면, 공지민도 참 대단한 사람이겠네.’“승혁아, 난 이제 나이가 많아서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너 솔직히 말해봐. 원아정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긴 한 거니?”“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진행한 두 번의 친자 검사는 꽤 신뢰할 만한 결과잖아요. 그런 걸 조작하는 건 쉽지 않죠.”“휴,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일인지 원... 난 그저 내 손녀를 찾고 싶었을 뿐인데.”“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걱정하지 말라니! 내가 어떻게 걱정 안 할 수 있겠니!”안정숙은 화가 난 듯 지팡이를 힘껏 바닥에 내리찍었다.“네가 조사한 구은우에 대한 자료, 나도 봤어. 그 아이 정말 뛰어난 사람이더라. 만약 지민이가 정말 그 아이를 좋아했고,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에 잃었다면? 너 같으면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을 잊을 수 있겠니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54화 복수를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 걸까?

    연승혁을 마주했을 때 원아정의 눈가에 잠시 상처받은 기색이 스쳤다.“오빠...”하지만 연승혁은 등을 기대며 차갑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쓸데없는 감성팔이를 하려는 거라면, 당장 사람 불러서 쫓아낼 테니까.”원아정은 그가 얼마나 냉정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애써 꾸며낸 애잔함도 순식간에 거둬들였다.연승혁이 옆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조용히 자리에 앉은 원아정은 이내 평소의 얼굴빛을 되찾았다.그때 안정숙이 입을 열었다.“마침 승혁이도 있으니, 구은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보거라.”애초에 원아정은 이 일을 말하려고 온 터였다. 그녀는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좋아요. 오늘 저도 그 얘기를 하려고 왔으니까요.”그녀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 남자의 눈매는 연승혁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안정숙과 연승혁 모두 한눈에 알아챘다. 이 남자는 분명 연씨 가문의 핏줄이었다.이미 벼랑 끝에 선 원아정은 더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만약 공지민을 끌어내리지 못한다면 자신이 해외로 쫓겨날 것은 불 보듯 뻔했으니 더 이상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었다.“승혁 오빠, 이 얼굴 잘 보세요. 연씨 가문이 큰 혼란에 휩싸였던 그때, 제가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하시죠? 아버님께서 밖에 아들을 하나 두셨다고요. 물론 그건 아버님 잘못이 아니었어요. 그 모든 게 누군가가 꾸민 계략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님이 그 일을 평생 떨쳐내지 못하신 이유가 뭔지 아세요? 언니가 실종된 것도 큰 상처였지만 아버님이 다른 여자를 품었다는 사실은 어머님께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었어요. 그 상처가 결국 평생 지워지지 않는 한으로 남은 거죠. 그리고 어머님께서는 그 여자가 임신한 걸 알고도 가만두지 않으셨어요. 그 여자는 목숨을 건져 간신히 도망쳤고, 결국 아이를 낳았어요. 그 아이가 바로 구은우예요. 그러니까 구은우는 승혁 오빠의 이복동생이라는 말이에요.”연승혁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는 담배를 꺼내려다 안정숙의 시선을 의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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