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가 윤단미의 편을 들어주리라는 것을 진작에 예상했던 성혜인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싫어요.”“회사와 가족, 또는 네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반승제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협박마저도 이토록 차분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밖에 없을 것이다.반승제는 또 머리를 들며 이어서 말했다.“물론 네 남편이 힘들게 얻은 승진 기회도 포함해서.”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성혜인은 반승제의 말투가 미세하게 바뀐 것 같았다. 세상만사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일관하던 사람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한 것도 이상했다.반승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던 성혜인의 표정이 남편 얘기가 나오자마자 어두워진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다시 봐도 참 금실 좋은 부부야.”반승제는 자세를 바로 하더니 더욱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퇴원하기 전에 무조건 단미한테 사과해.”만약 성혜인이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윤단미가 홧김에 신고할지도 몰랐다. 윤단미는 증거가 충분하므로 성혜인을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서천에 이상한 친척들을 둔 것으로 봤을 때, 성혜인은 재력도 권력도 달리는 집안 출신인 것 같으니 남달리 도움받을 곳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윤단미는 윤씨 집안의 변호사에게 맡겨 소송을 걸 수도 있었다. 만약 일이 그 정도로 커진다면 성혜인은 직업적으로 영향받는 건 물론이고 감옥까지 가게 된다.반승제는 다시 윤단미의 병실로 돌아갔다. 그가 곧바로 돌아온 것을 보고 윤단미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신고하고 싶었지만 반승제의 입장이 궁금했기 때문에 꾹 참고 있었다.“승제야...”윤단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반승제가 침대 곁의 의자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페니한테 말해뒀어. 퇴원하기 전에 사과하러 올 거야.”윤단미의 눈동자에는 빛이 돌기 시작했다. 반승제의 입장 정리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반승제가 이렇게 나왔으니, 그녀는 너그러운 척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이는 신고는 하지 않
반승제는 한 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 건너편의 사람은 심인우였다.“대표님, 제가 들은 소식에 의하면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가 SY그룹의 운영에 개입한 이후로 성 사장님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비서가 사장직을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 가까이 지내는 회사가 BH그룹의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기꾼으로 만약 계약이 성공한다면 2조 원 정도의 벌금을 내게 될 것입니다. SY그룹의 상황으로 봤을 때는 아마 벌금을 내지 못하고 파산하게 될 것 같습니다.”심인우는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SY그룹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찌 됐든 성혜인은 반승제의 아내였기 때문에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먼저 반승제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다.SY그룹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반승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덤덤하게 답했다.“SY그룹의 파산이 저와 무슨 상관이죠?”이 말을 들은 성혜인은 우뚝 멈춰서서 머리를 돌려 반승제를 바라봤다. 그녀를 발견한 반승제는 시선을 돌리며 계속해서 말했다.“지금 단미를 만나러 병원에 왔으니까 먼저 끊을게요.”전화를 끊은 반승제는 성혜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성혜인은 반승제가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혹시 SY그룹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반승제는 엘리베이터 벽면의 반사를 통해 성혜인을 바라봤다. 그날 밤의 일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듯했다. 책임을 지려고 했던 자신만 우스워지는 꼴이었다.성혜인에게는 남편이 있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그날 밤의 적극적인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서주혁에게 흔적을 지워달라고 한 것은 남자로서 이런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 않아서였다.반승제는 머리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평소보다 더욱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대표님.”엘리베이터에서 나가며 성혜인이 반승제를 불러세웠다. 반승제는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지?”“방금 통화하면서 하신 말씀 무슨 뜻이에요?”“오지랖도
이때 병실 문이 열리고 윤단미가 나왔다.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승제의 품에 있던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승제야!”윤단미는 머리를 숙이고 꽃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곧바로 윤선미에게 꽃병을 구해오라고 일렀다. 윤선미는 반승제가 꽃을 선물한 것을 보고 심술 나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크게 티를 내지 않고 순순히 꽃병을 구해왔다.사실 꽃다발은 반승제가 큰 생각 없이 산 것이었다. 빈손으로 병문안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참에 마침 꽃집이 보여서 들어간 것뿐이니 말이다.“몸은 좀 어때?”아무리 어째도 뼈를 다친 것이니 윤단미는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반승제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은 달콤하기만 했다.“많이 괜찮아졌어. 셰프가 준비한 음식도 너무 맛있고. 근데 너 바쁘지 않아? 진짜 올 거라고는 기대 안 했는데.”윤단미는 미소를 지으며 반승제와 팔짱을 꼈다.“우리 집안사람들은 아직도 내가 입원한 걸 몰라. 걱정할까 봐 말 안 했거든.”반승제는 팔을 빼내면서 말했다.“난 회의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해. 누워서 쉬어.”“어휴... 알겠어. 회의 끝나고 시간 있으면 또 만나자.”윤단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가 병실 문에 노크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성혜인이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입에서 나온 ‘파산’이라는 말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퇴원하고 SY그룹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허진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아직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퇴원하기 위해서는 윤단미와의 일을 빨리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성혜인은 윤단미의 병실로 찾아가게 된 것이다.성혜인이 들어온 것을 발견한 윤단미는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오만한 태도로 물었다.“페니 씨가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아, 혹시 사과하러 왔어요?”사실 성혜인이 지금 사과하러 온 것도 다 계산된 것이었다. 반승제와 함께 있어야 윤단미가 심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
그녀의 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반승제가 그녀에게 물었다.“목은 어쩌다 다쳤어?”“조심하지 않아서요.”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녀의 말투는 차갑게 변해있었다.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추자, 그녀는 스스로 퇴원 수속을 밟으러 갔다.반승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늘 혼자인 것 같았다.그가 차에 올라타려는데 혜인이 밖으로 나와 길가에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승제는 차에 앉아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는, 손끝으로 가볍게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모른 척하는건지 아니면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날 밤의 일을 어떻게 전혀 언급하지 않을수 있지?’그는 손을 들어 눈썹을 긁적거렸다.승제는 차를 몰아 그녀의 앞에 천천히 세웠다. 창문이 열리고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어디 가?”혜인은 그가 아직 가지 않은 것을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때마침, 이곳은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혜인은 그에게 물었다. “로즈가든이요. 저 태워주실 수 있으세요, 대표님?”“타.”혜인은 차 문을 열어 조수석에 올라탔다.100메터쯤 운전해 차는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도로에는 차가 붐벼 교통 체증이 심했다.“왜 단미에게 손을 댄 거지?”그녀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였지만 결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갈비뼈 하나가 부러진 건 사소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감시카메라에 담긴 그녀의 행동은 확실히 인정사정없어 보였다.물론, 먼저 손을 든 건 윤단미였다. 하지만 그녀는 실질적으로 혜인의 뺨을 때리지 못했다.혜인의 과잉방위였다.당시 혜인은 두 남자의 사건과 더불어 자신이 다친 것 때문에 단미에게 손을 댄 것이었지만, 이 사실을 차마 승제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단미 씨가 제가 못마땅하신지 늘 저를 괴롭히시는데... 선미 씨가 저희 둘 사이를 이간질 하는 말을 몇마디 전했더라고요. 단미 씨는 그걸 믿었고요. 그래서 저를 손 봐주려고
혜인은 자신이 그 말을 뱉은 후, 차 안에 더욱 어색한 공기가 흘러 답답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녀에게는 그저 가벼운 농담이었을 뿐인데 말이다.분위기를 풀고자 해명하려는 순간, 승제가 물었다.“만약 찾는다면, 어떤 사람을 찾을 건데?”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떨림이 없이 맑고 부드러웠다.혜인은 잠시 멍해졌다. 왠지 뒤이어 승제가 할 말이 예상이 되는듯했다. ‘혹시... 나는 어때?’그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반승제 같은 사람이 내연남이 될 거로 생각하다니.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혜인은 머리를 숙이고 피식 웃고 말았다.“대표님, 아까는 그냥 농담한 거예요.”승제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이윽고 차가 로즈가든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혜인은 허리 숙여 승제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전하려 했으나, 그는 인사 한번 없이 다시 차를 몰아 매몰차게 떠났다.혜인은 몸을 일으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성질 한번 고약하네, 도대체 알수가 없어 알수가.’로즈가든에 도착해 혜인은 쉴 틈도 없이 재깍 옷을 갈아입고는 곧장 회사로 향했다.그녀가 로비에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이 곧바로 허진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성휘의 자리에 앉아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허진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최근 성한은 어떻게 하면 혜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만 늘 생각하느라 회사 일은 제쳐둔 지 오래 전이었다.이때다 싶었던 허진은 소윤의 지분과 더불어 여태껏 자신이 쌓아온 신뢰도를 기반으로 회사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PW사와의 계약은 이미 오전 9시에 끝마쳤다. 혜인이 소식을 듣고 되돌려 보려 애써도 이미 늦은 것이었다.허진은 흥얼거리며 옷걸이에 걸려 있는 외투를 걸쳐 입으며 마치 자신이 대표인양 굴었다.혜인이 이곳에 들어왔을때, 허진은 사라지고 없었다.불안해진 그녀는 얼른 마케팅부로 달려갔다.“최근 우리 회사와 비교적 큰 프로젝트 계약을 맺은 회사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마케
허진이 품에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이었다. 몇 번이나 그곳에 가 마주친 적이 있었기에 혜인은 똑똑히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사진 속에는 허진이 차 안에서 여직원을 덮쳐 그녀의 한쪽 발목이 보였는데 거기에는 하이힐이 걸려 있었다.보다시피, 둘이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눈 모양이다.안내 데스크 직원은 외모가 보통보다 더욱 뛰어난 사람을 뽑는다. 게다가 이 여직원은 올해 갓 대학을 졸업해 나이도 상당히 어렸다.이곳 SY그룹에서 일 한지 꽤 오래 된 허진은 이제 4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결혼은 하지 않은 것 같았다.혜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했다.‘그래 맞아, 허 비서님이 왜 여태 결혼을 안 했겠어. 만약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라면, 당당하게 밝히면 되지. 굳이 몰래 만날 이유가 없잖아?’“혜인아, 이 사람 여자관계가 엄청 복잡한 것 같더라. 씀씀이도 엄청나게 크고 말이야. 매달 이 여직원이라는 사람 통장에 400만 원씩 넣어주던데? 웃긴 건 이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많다는 거야. 한 서너 명 정도?”혜인이 눈빛이 갑자기 또렷해졌다.이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허진은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매년 연말 보너스로 톡톡히 챙겨가며, 어림잡아도 연봉이 2억은 될 것으로 보였다.그러니 많은 애인들에게 돈을 챙겨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내가 또 허진이라는 사람 통장 거래 내역을 살펴봤거든? 한 계좌가 이 사람한테 몇십억을 송금했더라고. 근데 은행 쪽에서 VIP 고객 계좌들은 개인 정보 보호를 설정해둬서 알아내진 못했어. 풀려고 하면 그쪽에서 알아챌 거고 그럼 은행에서 곧바로 신고할거라...”대체 누가 그런 큰 금액을 입금해 줄 수 있었을까.“최근에 보낸 거였어?”혜인은 혹시 계약을 맺은 상대 회사가 아닐지 생각했다.“아니, 몇 년 전부터 쭉 보내왔던 거였어. 똑같은 계좌로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은행 쪽에서 설정해 두는 바람에... 나도 더는 정보가 없어. 미안해.”민지
혜인은 그녀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날이 승제에게 역시 첫 경험이었다고 분명 스스로 혜인에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민지의 야한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들은 탓이었는지, 그날 밤 혜인은 오래도록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돌이켜보니 반승제의 첫 경험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이 꽤 대단하다고 생각 되었다.한 편, 민지는 곁에서 여전히 감탄하고 있었다.“너네 부부 근데 진짜 웃긴다. 서로 바람을 피우네.”혜인은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 싶었지만, 민지가 놓아주질 않았다.“너 아직 안 알려줬어. 그래서 도대체 누굴 만나건데?”“넌 모르는 사람이야.”“잘하는 사람이었어? 있잖아, 내가 예전에 야동을 볼때...”“그만! 그래, 잘하더라, 됐지? 인제 그만 얘기해.”민지는 피식하고 웃었다.“첫 경험도 다 했는데 아직도 이런 얘기 하는 게 어색해? 전에는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랑 같았으니 이런 얘기 꺼내기 조차 어려웠는데... 이제 다 알잖아! 앞으로도 두 번, 세 번, 더 많은 남자들을 만날 텐데, 아! 만나는 남자마다 건강증명서 떼오라고 해. 괜히 병 옮기지 않게 조심하란 소리야.”“다음은 더 이상 없어.”그날의 일은 소연의 계략에 말려들어 완전히 정신을 잃어 발생한 일이었다.깨어나 반승제를 보았을 때 혜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민지는 팔꿈치로 혜인을 툭 밀치며 말했다.“이렇게 확고한걸 보니, 그 남자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구나?”당황한 혜인이 얼른 말을 바꿨다.“허 비서님 일 말이야, 내 생각에는 분명히 또 다른 숨겨둔 자금이 있을 것 같아. 근데 내가 회사 지분이 없다 보니까 조사하기가 어려워, 게다가 안내 데스크 여직원하고도 그렇고 그런 사이니, 내가 회사에 들어서면 곧바로 허 비서님이 아시게 되겠지.”그 말을 들은 민지가 굉장히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혜인아, 가끔 내가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미안하긴 한데... 여지껏 아버님께서 너에게 회사 지분을 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회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굴
한편.성휘가 눈을 떴다는 소식을 접한 소연은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 이렇게 빨리 깨어났지? 의사가 아직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그녀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해 다시 정신을 잃고 잠에 든 성휘의 모습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 입구에서 보디가드가 감시하고 있는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소연은 허진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오늘 성휘 씨가 잠깐 깨어났었대! 진아, 우리 이제 어떡해? 한이한테도 일이 생기고, 나 진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허진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몸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이리도 빨리 눈을 뜰 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진은 상관없었다. 이미 그물을 던져졌고 이틀 뒤에 돈이 들어오기만 하면, 해외로 나가서 멋지게 살면 되니까.“윤아, 너무 조급해하지 마. 잠시 눈을 뜬 것뿐이잖아. 말하기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걸릴 거야.”그럼에도 소연은 여전히 불안했다.“일단 성휘 씨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그땐 우리 다 끝장나는 거야. 아니면 저 사람 아직 혼수상태인 틈을 타서 내가 회사 주식 지분 다 팔고, 그 돈으로 우리 해외로 나가는 건 어때?”국내에 남아 모든 걸 잃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허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소연이 회사 이사회에 잘 얘기해준 덕에 PW사와의 프로젝트는 원만히 성사될 수 있었다. 그는 그쪽 임원과 이미 협의를 맺었는데, 계약을 마치면 즉시 200억 현금을 직접 허진의 계좌에 보내준다는 것이었다.‘자그마치 200억이야, 놀고먹고 마시고 실컷 누릴 수 있는 데다 더욱 젊은 여자들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돈인데, 하필 같은 늙어빠진 아줌마에게 한평생 매달려 붙어 살아야 하나?’소연이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나이가 들 만큼 들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지난 몇 년간 소연이 그에게 준 돈은 모두 합쳐 몇십억이 되었지만, 그는 그 돈으로 그녀 말고도 더 많은 여자들과 아주 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