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목적지에 도달한 자동차는 적당한 위치를 찾아 멈춰 섰다. 그 자리는 최적의 관측 장소였고 아래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 서 있었다.그 자리는 분명 예약하고 구매해야 하는 위치였다. 하지만 그들이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한 건 분명 임시로 결정한 일이었다. 보아하니 이 구역의 모든 위치를 전부 사들인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도 없었고 그들의 차만 조용히 멈춰서 있을 뿐이다.차 문을 열자 바깥에서는 마침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장하리는 여전히 그의 품에 엎드려 있어 고개만 돌리면 창밖을 볼 수 있었다.바깥의 찬 바람이 불어와 차 안의 애매한 분위기를 중화시켰다.서주혁의 손바닥은 여전히 장하리의 등에 살포시 놓여 있었고 마치 아이를 달래듯 툭툭 두드려주기도 했다.방금 가라앉았던 부끄러움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장하리가 막 몸을 일으키자 서주혁은 또다시 그녀를 꾹 누르며 눕혔다.“제 다리 위에 앉아요.”장하리는 다시금 양 볼이 붉어지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괜찮아요.”“그럼 또 해보고 싶어요? 조금 전에 당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주혁의 입술은 장하리에 의해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어둑어둑한 등불을 빌려 서주혁은 온통 노여움으로 가득 찬 장하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 입 다물어요. 제발.”순간 재밌는 생각이 스친 서주혁의 눈가에서 희미한 웃음기가 흘러나왔고 그는 일부러 혀끝을 내밀어 그녀의 손바닥을 쓱 핥았다.눈동자가 매섭게 움츠러들고 장하리는 순간 자신의 손을 그냥 버리고 싶었다.“서주혁, 당신 정말...”정말 어처구니없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로군.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손을 등 뒤에 숨기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그때의 이상한 느낌이 또다시 치밀어 올랐다. 서주혁은 정말 그녀를 유혹하고 있다.예전에는 가벼운 유혹에 그쳤는데 지금은 정말 진지하게 폭탄을 날리고 있다.서주혁은 제원에서도 인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었다. 만약 온 힘을 다해 여자를 유혹하려 한다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
차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비서도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는 바람에 그 공간에는 오직 둘만 남게 되었다.장하리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서주혁은 대체 뭘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같은 시각, 서주혁은 혹여나 장하리가 도망갈까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장하리를 삼켜버릴 듯 날카로웠다.서주혁이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 누가 당해낼 수 있겠는가?결국, 장하리는 고개를 숙이며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것 봐. 또 시작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미남 계를 사용하는 것을 보아 서주혁은 자신의 외모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윽고 서주혁은 장하리의 손을 끌어당겨 그녀의 손끝을 살짝 깨물고는 다시 자신의 벨트 위에 가져다 놓았다.서주혁의 뜻은 분명했다. 할건지 물어보는 것이다.장하리는 자신의 손을 거둬들이고 싶었지만 막상 그의 눈빛을 마주하니 없던 힘도 전부 빠져버리는 기분이 들었다.그러자 서주혁은 그녀의 손을 가져다 손쉽게 벨트의 단추를 풀었다.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서는 마치 금기를 깨뜨리는 스위치가 된 것만 같았다.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서주혁은 제대로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관계를 맺는 동안 장하리는 줄곧 손을 유리에 받친 채, 혹시라도 몸이 튕겨 나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4년을 굶주린 사람이 배를 채우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그렇게 자동차는 한밤중까지 그곳에 주차되어 있었고 마지막에 이르러 장하리는 맥없이 시트에 주저앉았다.그러나 호텔에 도착한 후에도 그는 장하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너무 피곤했는지라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서주혁에 화가 난 장하리가 있는 힘껏 그를 걷어찼다.그러자 서주혁은 또 그녀를 살살 달래주며 이제 명분을 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물었다.장하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서주혁도 그녀가 잠이 들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써가며 괴롭혔다.결국, 그녀
장하리는 이제야 비로소 의식이 몽롱한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어색한 분위기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그녀는 지금이라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서주혁은 휴대폰을 잘 챙겨두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번복하고 싶어요?”그 말에 장하리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고 이젠 목까지 화끈거렸다.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있다가 그녀는 비로소 속눈썹을 늘어뜨린 채 입을 열었다.“아니, 전 그냥...”두 사람 사이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하물며 그녀는 방금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서주혁은 정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단 말인가?너무 다급한 나머지 서주혁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착각도 들었다.하지만 어느 쪽이든 서주혁의 실력은 장하리를 훨씬 능가하는데 그녀에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어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장하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그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다만 그의 얼굴과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장하리의 마음도 점점 그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사실 자세히 계산해 보면 두 사람이 강성에서 알게 된 이후로 서주혁은 정말 그녀에게 단 한 번도 해를 끼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다만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마음속의 저울은 이미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계속하여 품에 안겨있는데 서주혁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뭐 먹고 싶어요?”밤새 뒤척이며 오랫동안 잤으니 지금 시각이면 분명 배고플 것이다.하지만 장하리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자 그는 사람을 시켜 준비를 시작하도록 당부했다.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 장하리는 문득 자신의 몸이 깨끗하게 씻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아마 그녀가 잠든 사이 씻겨준 모양이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장하리의 양 볼은 또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거실에 나갔을 때 서주혁의 눈앞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기분이 좋은 것인지 서주혁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가를 도무지 주체할 수
장하리는 순간 멈칫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서보겸이 이미 그녀의 다리에 매달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엄마, 뭐 먹을 거예요?”서보겸은 장하리에게 저녁으로 뭘 먹을지 묻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이때 서주혁이 옆에서 끼어들었다.“어제 밤엔 아주 잘 먹었지.”장하리는 몸이 터질 듯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낮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주혁 씨!”서주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만지작거릴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이 말의 다른 의미를 알 리 없는 서보겸은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순수하게 물었다.“어제 뭐 먹었어요?”장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녀는 손으로 서보겸의 귀를 막으며 서주혁을 노려보았다.“아이한테 신경 좀 써요!”서주혁은 다가와서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오늘 밤도 먹을래요?”장하리는 그에게 따귀를 한 대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갑자기 이렇게 뻔뻔해진 거지? 아니 원래 진지한 남자들도 상황이 변하면 이렇게 변해버리는 걸까?장하리는 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귀 끝까지 빨갛게 변한 모습을 본 서주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그만 놀릴게요.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서보겸은 귀가 막혀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장하리에게서 서주혁으로, 서주혁에게서 다시 장하리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장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더 이상 장난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다행이었다.“가벼운 음식으로 해요. 속이 별로 좋지 않아서.”서주혁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알았어요. 내가 준비할게요.”그 입맞춤은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졌다. 장하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아이에게는 천천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서주혁은 가장 강렬한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장하리는 서보겸의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서주혁이 자리를 떠난 뒤 장하리는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느꼈다. 서보겸의 눈은
장하리는 마음이 따뜻해짐과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며 금세 잠에 들었다.두 사람의 관계가 너무 빨리 진전된 것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서주혁과 서보겸과 함께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다. 게다가 이 남자는 자신에게 꽤 잘해주었다. 그녀는 워낙 편안함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금방 받아들였고 오히려 서주혁을 조금씩 좋아하는 마음이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서주혁은 여전히 회사를 나가지 않은 채 저택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밤이 되면 그에게서 도망칠 길이 없었다. 그는 그녀를 붙잡고 한참 동안이나 괴롭혔다.매일 밤이 그러했다. 서주혁은 정말 지치지도 않는 걸까? 그녀는 점점 수척해지는데 반해 그의 기력은 더 좋아지는 듯했다. 장하리는 이 남자가 흡사 자신의 기운을 빨아먹는 요괴처럼 느껴졌다.그렇게 나흘이 지나 마침내 장하리의 간곡한 요청에 서주혁은 하룻밤 쉬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대신 열 번이나 ‘여보’라고 부르는 걸 강요하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날 밤에는 서주혁에게 휘둘리지 않고 마음껏 잠을 청할 수 있었다.한밤중이 되어 갑자기 잠에서 깬 장하리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을 더듬어 보았다.서주혁이 침대에 없었다. 일어나서 살펴보니 베란다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장하리는 조용히 그곳으로 걸어갔다.베란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서주혁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상대방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서주혁은 입꼬리를 살짝 비틀며 손에 든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왜? 소준호가 자기한테 붙여준 여자가 마음에 안 든대? 그 여자는 그래도 재벌가 딸인데.”비록 사생아이긴 하지만 제 몫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소준호에게는 과분한 상대였다.장하리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서주혁은 이곳에 누가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요즘 너무 행복해서 경계를 풀어버린 상태였다.“그 여자가 싫다면 다른 여자를 붙여 줘. 그 자식이 돌아오지
장하리는 마음이 너무나 혼란스러워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서주혁은 장하리를 꼭 끌어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손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하리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이내 서주혁에게 안겨 그의 몸 위에 앉아버렸다.장하리는 이제 막 깨어난 척하며 중얼거렸다.“하기 싫어요.”그녀는 서주혁의 가슴에 완전히 엎드린 채 그를 내리눌렀지만 그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이렇게 안고 잘게요.”그 말을 들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대체 서주혁의 어떤 모습이 진짜인 건지 장하리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렇게 엎드려 있는 게 편했다.어둠 속에서 서주혁이 나지막이 말했다.“여보.”장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서주혁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쉬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안 되겠어요. 당신이 너무 향기롭잖아.”그 말에 장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화가 난 그녀는 서주혁을 힘껏 꼬집었다. 그러나 그의 신음이 들려오자 다시금 힘이 빠져버렸다.“왜 그래요?”“너무 아파서... 부러졌어요.”서주혁은 정말 괴로운 것처럼 보였다.장하리는 그의 몸에서 내려와 옆에 누웠다. 마음이 너무나 복잡했다. 서주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그녀가 다가오지 않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요?”그러나 장하리는 돌아누워 등을 보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서주혁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거짓말이에요. 안 부러졌어요.”장하리는 여전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맴돌았지만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묻고 싶지 않았다.서주혁이 그녀를 얻기 위해 어리석은 짓을 벌였다는 걸 알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어차피 부모님은 유럽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고 여러 사진을 보내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소준호에게 다른 여자와 자도록 조치했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마치
장하리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서주혁의 계획이 아니라면 그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근데 어젯밤 당신이 전화할 때 분명히 다 당신이 계획한 거라고 했잖아요...”“그들이 술자리에서 모일 때 내 사람이 부추겼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여자가 먼저 소준호에게 접근해 약을 먹인 건 내 예상 밖이었어요. 나를 못 믿어요?”장하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가슴이 쿡쿡 아파지기 시작했다.“아니요, 믿어요.”서주혁은 그녀를 꼭 안았다. 장하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의 눈빛은 이미 깊은 어둠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방심한 걸 깨달은 그는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당신 부모님을 유럽으로 보내드리고 사람을 붙인 건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 봐 보호 차원에서 그런 거예요. 보세요, 부모님 정말 즐겁게 지내시잖아요. 근데 당신은 강성에서 만난 날부터 가족에게 너무 의존했어요. 부모님이 계셨다면 절대 제원에 따라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미안해요, 여보. 내가 일부러 그런 건 맞아요. 차라리 때리고 욕해도 좋으니 제발 나를 무시하지는 말아 주세요.”서주혁의 자세는 한없이 낮아져 있었다. 만약 외부인이 이 모습을 봤다면 분명 충격받았을 것이다. 그동안 서주혁이 얼마나 냉혹한 사람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냉혹함이 다 사라진 것처럼 장하리 앞에서 유연하게 변해 있었다.이쯤 말이 나왔으니, 장하리도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사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저 소준호 사건에서 손을 놓고 있었을 뿐이고 단지 그녀를 제원으로 데려오기 위해 몇 가지 계략을 쓴 것뿐이었다.결국 그가 그녀를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그거 말고도 나한테 숨긴 게 더 있나요?”장하리는 몸을 돌려 서주혁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했다.“있다면 지금 전부 말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알게 됐을 때 정말 화낼 거예요.”서주혁의 눈에 잠시 무언가가 스쳐 갔지만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없어요.”“정말요?”“네.”장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은
다음 날 아침. 장하리는 눈을 떴을 때 온몸이 쑤시고 뻐근했다. 서주혁은 너무 오래 집에만 있었기에 오늘은 회사를 나가야 했다.떠나기 전 서주혁은 장하리의 얼굴을 감싸고 연신 입맞춤을 했다. 장하리는 그의 지나친 애정 표현이 익숙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됐어요. 빨리 가요.”서주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그가 떠나자 장하리는 최선을 다해 서보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다만 그날 밤 보았던 건물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한 번쯤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었으나 서보겸을 두고 가기가 마음에 걸려 그에게 물어보았다.“보겸아, 우리 나가서 잠깐 바람 쐬고 올까?”서보겸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안아달라고 두 팔을 내밀었다. 장하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품에 안았다.“그럼 우리 잠깐 나갔다 와서 다시 생존 게임 하자, 어때?”“엄마, 뭐하든지 보겸이, 응원해요.”요즘 서보겸이 말하는 단어가 부쩍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장하리와 서주혁이 함께 있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얼굴에 기쁜 표정이 더 자주 보였다. 장하리는 처음엔 이 아이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다. 워낙에 서보겸은 그의 엄마가 남기고 간 강아지 아리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게다가 엄마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가 이 아이에게 무언가 불편함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하지만 며칠 함께 지내며 장하리는 그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보겸이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반짝이는 눈망울은 말보다도 훨씬 솔직했다. 장하리는 이 아이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그녀는 서보겸을 차에 태우고 이번에는 직접 운전했다. 운전기사는 따로 부르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서주혁의 사람이란 걸 대충 짐작했고 게다가 그날 밤 서주혁의 상태가 몹시 이상했기 때문에 일부러 운전기사에게 거짓말을 했다.“저랑 보겸이 잠깐 별장 주변만 한 바퀴 돌고 올게요. 주혁 씨에겐 말하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