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여전히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서주혁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아기를 지켜보았다. 그때 복도 밖에서 서씨 집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명희정이었다.그동안 명희정은 계속 서주혁에게 선 자리를 제안했지만 그는 결혼했다고 하며 거절해 왔다. 명희정은 서주혁의 아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혼인신고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최근 서주혁이 산불이 난 곳에서 사람을 미친 듯이 찾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며 사람들 입에서 장하리가 그 화재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서주혁에게 아이까지 낳아주었다는 소문도 함께였다.“주혁아, 밖에서 떠도는 소문이 다 사실이니? 네게 진짜 아이가 생겼다고? 내가 듣기로는 그 아이가 조산아라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 심장에도 문제가 있다고 들었어. 엄마 말 좀 들어. 너 아직 젊잖아. 앞으로 만날 여자도 많을 텐데 장하리 같은 여자는 네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야. 너는 그저 속은 거야. 그 여자는 우리한테 필요 없어. 그리고 이 아이도 말이야. 엄마가 너에게 더 좋은 여자를 찾아줄 테니, 건강한 아이를 가져야지.”명희정은 서주혁의 지금 상태가 너무 두려웠다.서주혁은 그동안 항상 차분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의 결정에는 늘 확신이 있었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평소처럼 말이 없었으나 그를 감싸는 공기가 무언가에 집착하는 듯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듣고 싶지 않다는 듯했다.서주혁은 명희정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명희정은 그의 단호한 눈빛에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엄마, 장하리는 내 혼인신고서에 이름이 오른 여자예요. 그리고 저 아이는 내 핏줄이에요. 나는 저들을 외면할 수 없어요. 앞으로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내 아내는 오직 장하리 한 명뿐이에요. 만약 장하리가 죽었다면, 나는 평생 재혼하지 않을 거예요.”명희정은 그 말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서주혁이 이렇게
두 달 후 의사는 아이가 이제 괜찮아졌다고 했지만 타고나길 몸이 약하니 앞으로 모든 면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서주혁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건장한 몸으로 작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이의 존재가 너무나도 연약하고 작게만 느껴졌다.그는 아예 움직이기를 두려워하며 아이와 눈을 맞췄다.아이는 남자아이로,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길어 서주혁의 어린 시절과 똑 닮아 있었다.의사는 서주혁을 보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서 대표님, 등 쪽에 생긴 흉터에 대해 당장은 특별한 치료제가 없지만 필요하시다면 연구해 보겠습니다.”“괜찮습니다.”서주혁은 담담하게 말하며 아이를 소중히 안았다. 그의 눈빛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의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병원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병원 문을 나섰을 때 서주혁은 성혜인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두 달 동안 반승제가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고 성혜인은 결국 장하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서주혁이 아이를 안고 나오자 성혜인은 이미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서주혁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서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반격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아이는 서주혁이 맞는 것을 보더니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그저 서주혁이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았던 것 같았다.성혜인은 화가 나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이 부어오른 채 장하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기 어려워하고 있었다.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이내 무력감이 밀려왔다.이제 와서 서주혁에게 책임을 물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장하리의 아이는 살아남았고 이제 서주혁이 돌봐야 할 상황이었다.곁에 있던 반승제가 성혜인을 말리며 부드럽게 말했다.“혜인아, 그만해. 아이를 안고 있잖아. 아이가 놀라.”성혜인은 입을 꾹 다물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서주혁이 아이를 안고 차에 오르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자동차는 병
서주혁의 침실은 이미 한번 개조되었는지라 방안에는 유아용품이 가득 쌓여있었다.도우미도 전부 바뀌었고 그중에는 아이를 전담하는 산후 도우미도 몇 명 있었다.게다가 서주혁 역시 산후 도우미에게 직접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전부 배워두기도 했다.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작고 말랑말랑했는데 잘 울지도 않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서주혁은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몇 번이고 병원을 찾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의사들은 전부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이라고 답해주었고 아마도 원래 말을 하길 좋아하지 않는 아이일 거라고 말해주었다.또 한 달이 지나 산후 도우미가 아이를 안고 서주혁에게 말을 건넸다.“대표님, 도련님께서 너무 말이 없으세요. 배가 고파도 울지도 않고요. 아이 어머니와 닮은 건 아닐까요?”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 모른다. 게다가 산후 도우미는 어쨌든 이 바닥 사람이 아니니 다만 아이의 성격이 너무 신기해 참지 못하고 몇 마디 더 했을 뿐이다.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순간 눈매가 움찔거리더니 서주혁은 장하리의 성격을 곰곰이 떠올렸다.장하리는 확실히 일반 여자들보다도 더 조용했고 때때로는 모든 감정을 마음속에 감추고 있곤 했다. 관계를 맺을 때조차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그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장하리는 현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아예 입을 꾹 닫아버린 것이었다.산후 도우미는 아이를 안고 달래주며 싱긋 웃어 보였다.“작은 도련님은 정말 대표님을 똑 닮았어요. 그리고 아이 얼굴을 보니 어머니도 정말 미인이셨나 봐요.”그래서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겠죠.계속하여 말을 하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산후 도우미가 고개를 들어 서주혁을 바라보았다.한편, 서주혁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깊은 두 눈에는 약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아무도 그가 무슨 생각을
같은 시각, 오혜수는 손에 든 총을 닦으며 조금 망설였다.“확실해요? 전에 이미 한 알 먹고 일부 기억을 잃었잖아요. 그런데 만약 지금 두 번째 약을 먹는다면 정말 모든 기억을 잃을지도 몰라요. 물론 당신의 말대로 다른 도시에서 당신에게 떳떳한 신분을 찾아주고 새로운 삶을 찾아줄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제원에서의 모든 기억을 버릴 수 있겠어요?”장하리의 몸은 현재 매우 허약한 상태였다. 사실 오혜수는 진즉 그녀를 이곳으로 몰래 데려왔는데 도주자가 장하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들어온 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당시 장하리는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급하게 아이를 낳게 되었다. 게다가 곧이어 방안에서 불이 나기 시작하며 그녀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먼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보내버린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삶의 욕구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감옥에서 몇 달 동안, 그리고 여기서 반년 동안 아이를 키우고 장하리는 갑자기 앞으로 어떻게 계속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나가서 서주혁에게 복수할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모든 건 전부 그녀의 선택이었다.그렇다면 나가서 성혜인을 찾아가야 할까? 그런데 장하리가 무슨 자격으로 성혜인을 찾아가겠는가?회사에는 아직 훌륭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남아있는데 장하리 한 명이 나온다고 회사에는 큰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만 지나면 장하리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면 아무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그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장하리는 오혜수에 의해 구조되고 말았다.장하리와 오혜수는 감옥에 간 후 서로 알게 되었는데 오혜수는 경찰서에서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 백겸의 일에 연루되지만 않았다면 계속하여 승승장구하며 진즉 승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녀는 여러 가지 부동한 곳에 파견되며 각종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백겸은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전부 싹 쓸고 다녔지만 그해 오혜수의 학업에 대해 금전적인 도움을 준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죽은 후
4년 후, 강성 유치원.막 퇴근하려고 할 때, 장하리는 다른 한쪽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동료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최근 강성에 큰 투자자가 와서 오래 머물 거라는 소식 들었어요? 재력이 엄청난 투자자라 정부 측에서도 직접 나선다는데 강성의 모든 관광 개발 프로젝트를 도급받는대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것인지...”“강성은 지리적 위치로도 훌륭해서 진작 개발했어야 했어요. 지난번 정부 측에서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진즉에 인기 관광도시로 거듭났을 거예요.”“듣기로는 제원시에서 오신 분이라는데 심지어 엄청난 명문 가문 출신이래요. 이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큰 인재를 만날 수 있었던 건지... 듣자 하니 아이도 있다는데 애 엄마는 세상을 떴대요.”“대체 이런 소식은 어디에서 들은 거예요?”“사실, 이 정도는 제원시에서 비밀도 아니에요. 친척이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뉴스로 알게 되었어요. 게다가 아이가 아픈 것 같더라고요. 글쎄 자폐증도 있다지 뭐예요.”“정말이에요?”“그럼요. 이 병 때문에 아이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낸다는데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않는대요.”장하리는 옆에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묵묵히 교안을 챙겼다.강성 유치원은 강성시에서 가장 큰 유치원으로 그녀는 2년 동안 시험을 치르고서야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이제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급여는 그런대로 꽤 괜찮은 편이었다. 한 달 400만 원 정도는 이 작은 도시에서 상당히 높은 월급이었다.막 가방을 메고 떠나려는데 동료 전아영의 말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아, 전하리 씨, 그 재벌 아들이 우리 유치원에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 들었어요?”그러자 장하리는 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죄송해요. 들어본 적 없어요.”그 말에 전아영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내일이면 회의를 열 텐데 아직도 몇 반인지 몰라요?”장하리는 태생으로 부드럽고 우아한 기질을 타고났다. 게다가 요 몇 년 동안 요양하며
같은 시각, 이를 알 리 없는 장하리는 차에 오른 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운전했다.작은 도시의 단독주택은 억 소리 날 정도로 비싸지는 않지만 이 도시에서는 그래도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장하리는 곧바로 환히 웃으며 집에 들어섰다.“어머니, 저 왔어요. 아버지는요? 또 낚시하러 가셨어요?”별장 정원 바깥에는 한 여자가 꽃에 물을 주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전부 4년 전에 장하리가 직접 심은 꽃들로서 그 후 여자는 더욱 조심스럽게 그 꽃들을 가꿔주곤 했다.“원래 잠깐 들렀었는데 최근 강성에 큰 투자자가 왔잖니. 제원에서 오신 분이라 네 똑같이 제원에서 일했던 네 아버지가 불려갔지. 그래도 네 아버지가 다른 분들보다 그곳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마 오늘 저녁은 바깥에서 식사하실 것 같아. 아,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하리야, 넌 잠시 앉아있어. 꽃에 물 다 주면 바로 식사 준비해줄게.”“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끓일게요.”“네가 뭘 끓여. 내가 말했잖니. 넌 4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집안일을 할 수 없다고. 사실 난 네가 선생님이 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맨날 무슨 교육을 받는다고 바쁘게 지내잖아. 하리야, 너 정도면 엄마 아빠가 충분히 책임지고 챙겨줄 수 있어. 혼수도 이미 다 준비해두었다니까.”자신을 향한 여자의 사랑을 듬뿍 느끼며 장하리는 깊은 감동에 눈시울을 붉혔다. 4년 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장하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엄청난 당혹감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과거 하나 없이 단지 눈앞에 있는 낯선 얼굴들을 본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괴로웠다.장민철과 추미현은 바로 그때 나타났는데 두 사람은 부부로서 매우 선량해 보였다.장민철은 장하리에게 전에 업무상의 이유로 국가 정부 측에서 그녀를 시골로 보내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장민철이 이번에 정식으로 퇴직하며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리러 가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기억을 잃었다고 했다.추미
그 말에 장하리는 또다시 깊은 감동에 휩싸였다. 게다가 그때 요리를 하려고 주방에 들어가면 항상 추미현에게 제지당하곤 했다.그렇게 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정원에 나와 꽃에 물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어머니, 혹시 오늘 아버지가 만나게 될 투자자가 요즘 다들 의논하던 그분이신가요?”“맞아. 제원시에서도 지위가 상당히 높은 분이라고 그러더군. 안 그랬으면 아버지를 부를 일도 없었을 테지. 하지만 난 네 아버지가 조금 걱정되는구나. 하도 직설적이고 센스가 없어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는데 워낙 서툴잖니. 예전에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아예 몰라 제원시에 있을 때도 항상 동료에게 오해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 그런데 오늘같이 중요한 자리에 가서 말이라도 잘못하면 아주 국민의 욕받이가 되겠다.”“어머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정말 명문가 출신이라면 아량도 넓은 분이겠죠.”그 말에 추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장하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됐다. 그건 그렇고 아빠가 저번에 잉어 한 마리를 잡아 오셨잖니. 어디서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정말 강에서 잉어를 낚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니? 하리야, 네가 가서 물고기 밥 좀 먹여주렴. 잉어는 절대 죽으면 안 돼. 나중에 또 뭐라고 해야 돼...”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짚는 추미현에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강에 잉어가 없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 장민철은 그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알겠어요.”이윽고 추미현은 손에 든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난 요리해 올 테니 넌 물고기 밥 주고 TV 보러 가.”집안으로 막 발을 들인 그때, 추미현의 휴대폰이 반짝거렸다. 이는 오혜수가 4년 만에 그녀와 연락하는 것이었다.[장하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그러자 추미현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이내 답장 한 통을 보냈다.[좋아요. 매일 웃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세
장민철은 전에 줄곧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다니며 이런 자리에는 거의 참석해본 적이 없었다.국회의원은 장민철도 제원 출신인 것을 보고 제원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특별히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장민철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으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어쨌든 서주혁의 이번 투자 건은 강성의 전체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거래였기에 혹여나 서주혁이 누군가를 못마땅하게 여겨 투자를 철회한다면 누구라도 그 손실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같은 시각, 서주혁은 맨 가운데에 앉아서 그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4년이 지났지만 서주혁은 전보다도 더 차갑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현장의 분위기는 원래 화기애애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싸늘하게 앉아있는 서주혁에 분위기는 다시 꽁꽁 얼어붙어 버렸고 모두가 쥐죽은 듯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국회의원 한 명이 재빨리 핑계를 대며 화제를 돌리려 안간힘을 썼다.“서 대표님,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몇 년 동안 강성에 머무를 계획입니까?”혹여나 서주혁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웠던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그러나 서주혁의 시선은 여전히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았고 대충 응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옆에 있던 비서가 급히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덧붙였다.“죄송합니다만 대표님께서는 오늘 밤 다른 일이 있으셔서 이만 일어나시겠습니다.”그 말에 더욱 황송해진 국회의원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곧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를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방을 나섰다.그러던 중 장민철은 장하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깜빡하고 무음으로 설정해놓지 않은 탓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장민철에게 집중되었다.덩달아 깜짝 놀란 장민철은 급히 다른 한쪽으로 달려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하리야, 무슨 일 있어?”하리라는 두 글자를 들은 서주혁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장민철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