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철은 전에 줄곧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다니며 이런 자리에는 거의 참석해본 적이 없었다.국회의원은 장민철도 제원 출신인 것을 보고 제원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특별히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장민철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으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어쨌든 서주혁의 이번 투자 건은 강성의 전체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거래였기에 혹여나 서주혁이 누군가를 못마땅하게 여겨 투자를 철회한다면 누구라도 그 손실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같은 시각, 서주혁은 맨 가운데에 앉아서 그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4년이 지났지만 서주혁은 전보다도 더 차갑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현장의 분위기는 원래 화기애애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싸늘하게 앉아있는 서주혁에 분위기는 다시 꽁꽁 얼어붙어 버렸고 모두가 쥐죽은 듯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국회의원 한 명이 재빨리 핑계를 대며 화제를 돌리려 안간힘을 썼다.“서 대표님,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몇 년 동안 강성에 머무를 계획입니까?”혹여나 서주혁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웠던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그러나 서주혁의 시선은 여전히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았고 대충 응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옆에 있던 비서가 급히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덧붙였다.“죄송합니다만 대표님께서는 오늘 밤 다른 일이 있으셔서 이만 일어나시겠습니다.”그 말에 더욱 황송해진 국회의원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곧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를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방을 나섰다.그러던 중 장민철은 장하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깜빡하고 무음으로 설정해놓지 않은 탓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장민철에게 집중되었다.덩달아 깜짝 놀란 장민철은 급히 다른 한쪽으로 달려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하리야, 무슨 일 있어?”하리라는 두 글자를 들은 서주혁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장민철을 바라보았다.
서주혁은 차에 앉아 옆에 있는 서류를 가져다가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티를 냈지만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입니까?”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명희정의 마음은 말로 이룰 수 없이 아려왔다. 4년 동안 서주혁은 정말 단 한 번도 본가에 돌아가지 않았고 회사와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심지어 아이조차 한 번도 데려온 적이 없었다.심씨 가족들은 아직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서주혁은 정말 아이를 잘 보호해 주었다.게다가 서주혁은 진즉 경비원과 도우미들에게 분부하여 심씨 일가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아두었다.지난 4년 동안 그는 거의 폐쇄된 상태로 지내며 그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끔 반승제와 온시환이 거듭하여 초대해야지만 어쩔 수 없이 외출하곤 했다.그의 변화는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현재의 서주혁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고인 물같이 아무런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주혁아, 4년이면 충분하지 않니? 과거 일이라면 내가 잘못했다. 응급처치하고 있을 때 너에게 아이를 포기하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이 아이가 나중에 자폐증이라는 소식은 나도 들었다. 대체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쓴 거니? 평생을 아이에게 올인하려고? 엄마가 없어서 자폐증에 걸렸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냥 돌아와. 내가 주선해줄게. 집에 여자가 있으면 아이 상태도 훨씬 나아질 거다. 아이에게 가장 부족한 건 다름이 아니라 모성애라고.”서주혁의 눈동자에는 순간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스쳐 갔다. 사실 그는 아직도 서보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아버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지만 서보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루에 많아야 8글자 정도 말하는 게 전부였다. 절대로 먼저 요구하거나 투정을 부리는 일이 없었고 항상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정말 이렇게까지 말이 없을 줄이야.처음 이 이
서재로 가까이 다가가니 맞춤 제작한 작은 책상 앞에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서보겸이 눈에 띄었다. 평소 서주혁이 책상 앞에서 회의할 때도 아이는 혼자 조용히 옆에 앉아있었다.서보겸은 정말 서주혁이 몇 마디 물어도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 없었다.“보겸아, 배고프지 않아?”아이를 마주하자 온몸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주혁은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보겸에게 다가갔다.“없어요.”“오늘 뭘 봤길래 종일 내려가지 않았던 거야?”그러나 서보겸의 시선은 여전히 그림책에 꽂혀 있었고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빛을 감싸고 있는 듯 보송보송해 보였다.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서주혁도 천천히 몸을 기울여 그와 함께 책을 보기 시작했다.그때 아이가 보고 있던 장면은 마침 어머니를 찾고 있는 상황이 담긴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책은 서보겸이 가장 즐겨 있는 책이었다.서주혁은 그 책 안에 이런 줄거리도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때, 명희정이 했던 말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집에 여자를 들이면 정말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서보겸에게 부족했던 건 바로 모성애였다.그는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보겸아, 아빠가 엄마 찾아줄까?”그러자 고요하기만 하던 서보겸의 눈빛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서주혁을 바라보았다.그의 모습에 서주혁은 드디어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여기며 내심 기뻐했다. 서보겸만 필요하다면 그는 충분히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서보겸은 다시 고개를 떨구더니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니요, 싫어요.”단숨에 여섯 글자를 말한 것을 보면 서보겸이 집에 여자를 들이는 것에 대해 극도로 저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순간 마음이 아파진 서주혁이 천천히 아이를 안아 올렸다.“그래, 찾지 말자. 그럼 지금은 먼저 밥 먹으러 내려갈까? 나중에 서율 누나와 통화하게 해줄게. 응?”설서율은 반승제와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