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장하리는 또다시 깊은 감동에 휩싸였다. 게다가 그때 요리를 하려고 주방에 들어가면 항상 추미현에게 제지당하곤 했다.그렇게 장하리는 어쩔 수 없이 정원에 나와 꽃에 물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어머니, 혹시 오늘 아버지가 만나게 될 투자자가 요즘 다들 의논하던 그분이신가요?”“맞아. 제원시에서도 지위가 상당히 높은 분이라고 그러더군. 안 그랬으면 아버지를 부를 일도 없었을 테지. 하지만 난 네 아버지가 조금 걱정되는구나. 하도 직설적이고 센스가 없어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는데 워낙 서툴잖니. 예전에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세상 물정을 아예 몰라 제원시에 있을 때도 항상 동료에게 오해를 받고 괴롭힘을 당했지. 그런데 오늘같이 중요한 자리에 가서 말이라도 잘못하면 아주 국민의 욕받이가 되겠다.”“어머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정말 명문가 출신이라면 아량도 넓은 분이겠죠.”그 말에 추미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장하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됐다. 그건 그렇고 아빠가 저번에 잉어 한 마리를 잡아 오셨잖니. 어디서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정말 강에서 잉어를 낚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니? 하리야, 네가 가서 물고기 밥 좀 먹여주렴. 잉어는 절대 죽으면 안 돼. 나중에 또 뭐라고 해야 돼...”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짚는 추미현에 장하리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강에 잉어가 없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 장민철은 그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알겠어요.”이윽고 추미현은 손에 든 주전자를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난 요리해 올 테니 넌 물고기 밥 주고 TV 보러 가.”집안으로 막 발을 들인 그때, 추미현의 휴대폰이 반짝거렸다. 이는 오혜수가 4년 만에 그녀와 연락하는 것이었다.[장하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그러자 추미현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이내 답장 한 통을 보냈다.[좋아요. 매일 웃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세
장민철은 전에 줄곧 비밀 임무를 수행하러 다니며 이런 자리에는 거의 참석해본 적이 없었다.국회의원은 장민철도 제원 출신인 것을 보고 제원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특별히 부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장민철이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으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어쨌든 서주혁의 이번 투자 건은 강성의 전체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거래였기에 혹여나 서주혁이 누군가를 못마땅하게 여겨 투자를 철회한다면 누구라도 그 손실을 감당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같은 시각, 서주혁은 맨 가운데에 앉아서 그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4년이 지났지만 서주혁은 전보다도 더 차갑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현장의 분위기는 원래 화기애애했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싸늘하게 앉아있는 서주혁에 분위기는 다시 꽁꽁 얼어붙어 버렸고 모두가 쥐죽은 듯 조용히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국회의원 한 명이 재빨리 핑계를 대며 화제를 돌리려 안간힘을 썼다.“서 대표님,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몇 년 동안 강성에 머무를 계획입니까?”혹여나 서주혁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웠던 그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그러나 서주혁의 시선은 여전히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았고 대충 응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옆에 있던 비서가 급히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덧붙였다.“죄송합니다만 대표님께서는 오늘 밤 다른 일이 있으셔서 이만 일어나시겠습니다.”그 말에 더욱 황송해진 국회의원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곧이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를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방을 나섰다.그러던 중 장민철은 장하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깜빡하고 무음으로 설정해놓지 않은 탓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장민철에게 집중되었다.덩달아 깜짝 놀란 장민철은 급히 다른 한쪽으로 달려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하리야, 무슨 일 있어?”하리라는 두 글자를 들은 서주혁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장민철을 바라보았다.
서주혁은 차에 앉아 옆에 있는 서류를 가져다가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티를 냈지만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입니까?”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명희정의 마음은 말로 이룰 수 없이 아려왔다. 4년 동안 서주혁은 정말 단 한 번도 본가에 돌아가지 않았고 회사와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심지어 아이조차 한 번도 데려온 적이 없었다.심씨 가족들은 아직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서주혁은 정말 아이를 잘 보호해 주었다.게다가 서주혁은 진즉 경비원과 도우미들에게 분부하여 심씨 일가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아두었다.지난 4년 동안 그는 거의 폐쇄된 상태로 지내며 그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가끔 반승제와 온시환이 거듭하여 초대해야지만 어쩔 수 없이 외출하곤 했다.그의 변화는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현재의 서주혁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고인 물같이 아무런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주혁아, 4년이면 충분하지 않니? 과거 일이라면 내가 잘못했다. 응급처치하고 있을 때 너에게 아이를 포기하란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이 아이가 나중에 자폐증이라는 소식은 나도 들었다. 대체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쓴 거니? 평생을 아이에게 올인하려고? 엄마가 없어서 자폐증에 걸렸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냥 돌아와. 내가 주선해줄게. 집에 여자가 있으면 아이 상태도 훨씬 나아질 거다. 아이에게 가장 부족한 건 다름이 아니라 모성애라고.”서주혁의 눈동자에는 순간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스쳐 갔다. 사실 그는 아직도 서보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아버지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지만 서보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루에 많아야 8글자 정도 말하는 게 전부였다. 절대로 먼저 요구하거나 투정을 부리는 일이 없었고 항상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정말 이렇게까지 말이 없을 줄이야.처음 이 이
서재로 가까이 다가가니 맞춤 제작한 작은 책상 앞에 혼자 조용히 앉아있는 서보겸이 눈에 띄었다. 평소 서주혁이 책상 앞에서 회의할 때도 아이는 혼자 조용히 옆에 앉아있었다.서보겸은 정말 서주혁이 몇 마디 물어도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 없었다.“보겸아, 배고프지 않아?”아이를 마주하자 온몸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서주혁은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보겸에게 다가갔다.“없어요.”“오늘 뭘 봤길래 종일 내려가지 않았던 거야?”그러나 서보겸의 시선은 여전히 그림책에 꽂혀 있었고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빛을 감싸고 있는 듯 보송보송해 보였다.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서주혁도 천천히 몸을 기울여 그와 함께 책을 보기 시작했다.그때 아이가 보고 있던 장면은 마침 어머니를 찾고 있는 상황이 담긴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책은 서보겸이 가장 즐겨 있는 책이었다.서주혁은 그 책 안에 이런 줄거리도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때, 명희정이 했던 말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집에 여자를 들이면 정말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서보겸에게 부족했던 건 바로 모성애였다.그는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보겸아, 아빠가 엄마 찾아줄까?”그러자 고요하기만 하던 서보겸의 눈빛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는 고개를 번쩍 들고 서주혁을 바라보았다.그의 모습에 서주혁은 드디어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여기며 내심 기뻐했다. 서보겸만 필요하다면 그는 충분히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서보겸은 다시 고개를 떨구더니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니요, 싫어요.”단숨에 여섯 글자를 말한 것을 보면 서보겸이 집에 여자를 들이는 것에 대해 극도로 저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순간 마음이 아파진 서주혁이 천천히 아이를 안아 올렸다.“그래, 찾지 말자. 그럼 지금은 먼저 밥 먹으러 내려갈까? 나중에 서율 누나와 통화하게 해줄게. 응?”설서율은 반승제와
서보겸은 아리를 좋아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아리가 곁에 있으면 엄마가 옆에 있는듯한 안전감이 느껴졌다.물론 서주혁이 옆에 있어 준다면 그 안전감은 배가 될 것이다.서보겸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아리가 가장 좋았다.아리는 오후 내내 밖에서 뒹구는 바람에 꼬리에는 풀잎 몇 개가 달려있기도 했다.서주혁은 옆에서 수건을 가지고 와 아리의 발과 꼬리를 깨끗이 닦아주었고 아리도 얌전히 그의 손길을 즐겼다. 이것은 서주혁이 매일 아리에게 해주는 필수코스였다. 다 닦아주고 나면 아리는 매우 얌전히 침대에 올라가 침대 끝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곤 한다.집에는 원래 다른 강아지도 있었는데 당시 장하리에게 보상해주기 위해 사온 강아지였다. 그러나 장하리는 그의 보상을 원하지 않았고 4년 전, 온시환이 데리고 가 지금도 잘 키우고 있다.침실에 들어가 샤워를 마친 서주혁은 욕실에서 나올 때 아이가 조심스럽게 아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보게 되었다.아리도 귀염성 있게 머리를 내어주고는 서보겸의 손길을 즐겼다.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서주혁은 잠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보겸아, 너 먼저 자. 아빠는 서재에서 업무 좀 보다가 잘게.”“네.”서주혁은 침실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불가피하게 장하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아리와 서보겸은 모두 장하리가 서주혁에게 남긴 두 가지 보물이었고 4년 동안 외로운 그의 곁에 있어 주었다.그러나 서주혁 또한 장하리가 죽게 된 것도 결국 그의 무정함 때문이었고 그의 잔인함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4년 동안 서주혁은 수없이 많은 밤낮을 장하리의 생각들로 지새웠고 언젠가 잠에서 깨어나면 그녀의 모습마저 잊어버릴까 두려웠다.4년이라는 시간은 서주혁에게 정말 너무나도 길고 아득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서보겸을 데리고 키웠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돌이키고 싶지 않을 만큼 길었다..하지만 앞으로 수없이 많은 4년이 서
그 말을 들은 장민철은 안색이 환해지며 뛸 듯이 기뻐했다.“그래그래, 네 엄마랑 혼수는 다 준비해뒀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녀석이 우리 집 근처에서 사는 거다. 나중에 결혼한다고 해도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10분이면 올 수 있잖으냐. 얼마나 편해. 그리고 최대한 외지 사람은 찾지 말아. 나중에 혹여나 괴롭힘당해도 나와 네 엄마가 바로 해결해줄 수가 없잖니.”“네, 알겠어요. 저도 그 남자에게 호감 있었어요.”그날 밤, 장민철은 즉시 추미현과 상의하여 장하리에게 단독으로 집을 사주기로 했는데 좋기는 같은 동네에 장하리의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앞으로는 장하리와 그녀의 남편이 묵을 신혼집이지만 본가와도 가까워 그들 노부부도 언제든지 장하리를 보러 갈 수 있다.노부부는 곧 수중의 돈을 세기 시작했고 즉시 아파트 단지 내에 매물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현재 마침 매물 한 채가 판매 중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내일 바로 집 상태를 보러 가겠다며 예약을 해두었다.그리고 그날 밤, 장하리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에는 웬 희미한 낯선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그 정체를 확인하려 아무리 노력해봐도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희미하기만 했다.깨어났을 때 식은땀이 흐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장하리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너무 현실적인 꿈이었다. 정말 당황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그때, 다행히 휴대폰이 울리고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다름 아닌 소준호였다.그리고 소준호가 바로 현재 장하리가 호감을 가지고 만나고 있는 남자이다.두 사람은 전에 한 행사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소준호는 피아노 선생님으로서 매우 온화하고 우아한 비주얼을 자랑했다.그의 전화를 받은 뒤, 장하리는 곧바로 찝찝한 느낌을 털어내고 욕실로 들어가 씻고 외출 준비를 하였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소준호의 차는 이미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다급히 조수석에 앉아 조금 빨개진 볼을 애써 감추며 설명했다.“죄송해요. 어젯밤에 악몽을 꾸는 바람에 조금 늦게 일어
두 손으로 서주혁의 목을 꼭 껴안은 서보겸의 눈빛은 새까맣고 하염없이 맑았다.서주혁은 그가 배가 고픈 줄로만 알고 계속하여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관광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면서 무심코 아래층을 훑어본 그의 시선은 곧 한 여자의 뒷모습에 머무르게 되었다.지난 4년 동안, 뼛속에 새겨질 정도로 그리워하던 장하리의 얼굴, 뒷모습, 그리고 목소리까지.이렇게 먼 거리를 두고도 그는 여전히 심장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고 서보겸을 안고 있던 손에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몇 초 후, 그는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기 시작했다.이때 버튼을 누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주혁을 안내해주던 호텔 지배인은 옆에서 그를 지켜보며 엘리베이터는 목표 층에 도달해야만 다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감히 입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하지만 서주혁이라고 과연 이걸 모를까?단지 너무 당황하여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급한 마음에 연달아 누른 것이다.엘리베이터가 마침내 1층에 도달하고 그는 서보겸은 품에 안은 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방금 장하리가 서 있던 곳까지 달려나갔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데 그때, 온시환의 전화가 걸려왔다.“어, 왜 그래?”“어제부터 네 어머니께서 나와 승제에게 너와 결혼할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계속 전화하셔. 너 정말 결혼할 생각이야?”지난번 서주혁의 태도가 워낙 애매해 승낙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하지만 서보겸과 이 일에 대해 말해본 결과, 그의 대답은 명확한 거절이었다.“안 할 거야. 애초에 보겸이도 새엄마를 원하지 않는다고.”말이 끝나자마자 서보겸이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엄마.”이는 오랜 시간이 흘러 서보겸이 처음으로 이 단어를 입에 올린 것이었다.그러나 서주혁의 마음은 그 단어 하나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그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온시환에게 입을 열었다.“아니야. 보겸이와 다시
피아노 가게 사장은 옆에서 필사적으로 제품을 소개했고 또 옆에 있던 소준호를 그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대표님, 저희 가게 최고의 피아노 선생님인데 피아노 음색 테스트를 맡기셔도 됩니다.”이윽고 서주혁의 시선은 자연스레 몇 초간 소준호에게 머물렀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보겸을 옆에 있는 소파에 내려놓았다.소준호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짓더니 곧바로 피아노 옆에 앉아 손끝을 가볍게 움직이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그는 예전에 국내에서 연수를 간 적이 있었기에 연주 실력은 정말 훌륭했다.한 곡을 연주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장하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마침 서주혁은 피아노를 보고 있으니 소준호는 얼른 기회를 틈타 다른 한쪽에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응, 하리야, 무슨 일이야?”“아, 준호 씨, 죄송하지만 제 가방을 당신 차에 두고 와서 제가 당신 가게 밖으로 가서 가져올게요.”“그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가게 사장은 아직도 서주혁에게 말을 걸며 제품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그 뒤로, 서주혁은 더 이상 소준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와 달리 서보겸의 시선은 줄곧 그에게만 쏠려있었다.소준호 역시 이를 알아차리고 불편한 듯 안절부절못했다.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리는 것을 보니 장하리가 도착한 모양이다. 서주혁을 힐끔 바라보니 그는 이미 결제하고 있었고 이제 괜찮겠다 싶어 소준호는 옆에 있는 유리문을 열고 바깥 도로로 나갔다.장하리는 직접 택시를 타고 왔는데 차에서 내린 후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준호 씨 차는 어디 있어요? 아까는 차에서 내릴 때 저도 정신이 없었나 봐요.”소준호는 자신의 차로 달려가 장하리의 가방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장하리는 가방을 받으며 자연스레 피아노 가게를 바라보았다.거대한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가게 안의 서보겸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그 순간, 소파에 앉아있던 서보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그러나 장하리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