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장민철은 안색이 환해지며 뛸 듯이 기뻐했다.“그래그래, 네 엄마랑 혼수는 다 준비해뒀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녀석이 우리 집 근처에서 사는 거다. 나중에 결혼한다고 해도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10분이면 올 수 있잖으냐. 얼마나 편해. 그리고 최대한 외지 사람은 찾지 말아. 나중에 혹여나 괴롭힘당해도 나와 네 엄마가 바로 해결해줄 수가 없잖니.”“네, 알겠어요. 저도 그 남자에게 호감 있었어요.”그날 밤, 장민철은 즉시 추미현과 상의하여 장하리에게 단독으로 집을 사주기로 했는데 좋기는 같은 동네에 장하리의 신혼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앞으로는 장하리와 그녀의 남편이 묵을 신혼집이지만 본가와도 가까워 그들 노부부도 언제든지 장하리를 보러 갈 수 있다.노부부는 곧 수중의 돈을 세기 시작했고 즉시 아파트 단지 내에 매물이 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현재 마침 매물 한 채가 판매 중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내일 바로 집 상태를 보러 가겠다며 예약을 해두었다.그리고 그날 밤, 장하리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꿈속에는 웬 희미한 낯선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는데 그 정체를 확인하려 아무리 노력해봐도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희미하기만 했다.깨어났을 때 식은땀이 흐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장하리는 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너무 현실적인 꿈이었다. 정말 당황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그때, 다행히 휴대폰이 울리고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다름 아닌 소준호였다.그리고 소준호가 바로 현재 장하리가 호감을 가지고 만나고 있는 남자이다.두 사람은 전에 한 행사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소준호는 피아노 선생님으로서 매우 온화하고 우아한 비주얼을 자랑했다.그의 전화를 받은 뒤, 장하리는 곧바로 찝찝한 느낌을 털어내고 욕실로 들어가 씻고 외출 준비를 하였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소준호의 차는 이미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다급히 조수석에 앉아 조금 빨개진 볼을 애써 감추며 설명했다.“죄송해요. 어젯밤에 악몽을 꾸는 바람에 조금 늦게 일어
두 손으로 서주혁의 목을 꼭 껴안은 서보겸의 눈빛은 새까맣고 하염없이 맑았다.서주혁은 그가 배가 고픈 줄로만 알고 계속하여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관광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면서 무심코 아래층을 훑어본 그의 시선은 곧 한 여자의 뒷모습에 머무르게 되었다.지난 4년 동안, 뼛속에 새겨질 정도로 그리워하던 장하리의 얼굴, 뒷모습, 그리고 목소리까지.이렇게 먼 거리를 두고도 그는 여전히 심장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고 서보겸을 안고 있던 손에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몇 초 후, 그는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기 시작했다.이때 버튼을 누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주혁을 안내해주던 호텔 지배인은 옆에서 그를 지켜보며 엘리베이터는 목표 층에 도달해야만 다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감히 입을 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하지만 서주혁이라고 과연 이걸 모를까?단지 너무 당황하여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급한 마음에 연달아 누른 것이다.엘리베이터가 마침내 1층에 도달하고 그는 서보겸은 품에 안은 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방금 장하리가 서 있던 곳까지 달려나갔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데 그때, 온시환의 전화가 걸려왔다.“어, 왜 그래?”“어제부터 네 어머니께서 나와 승제에게 너와 결혼할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계속 전화하셔. 너 정말 결혼할 생각이야?”지난번 서주혁의 태도가 워낙 애매해 승낙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하지만 서보겸과 이 일에 대해 말해본 결과, 그의 대답은 명확한 거절이었다.“안 할 거야. 애초에 보겸이도 새엄마를 원하지 않는다고.”말이 끝나자마자 서보겸이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엄마.”이는 오랜 시간이 흘러 서보겸이 처음으로 이 단어를 입에 올린 것이었다.그러나 서주혁의 마음은 그 단어 하나에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그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온시환에게 입을 열었다.“아니야. 보겸이와 다시
피아노 가게 사장은 옆에서 필사적으로 제품을 소개했고 또 옆에 있던 소준호를 그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대표님, 저희 가게 최고의 피아노 선생님인데 피아노 음색 테스트를 맡기셔도 됩니다.”이윽고 서주혁의 시선은 자연스레 몇 초간 소준호에게 머물렀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보겸을 옆에 있는 소파에 내려놓았다.소준호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짓더니 곧바로 피아노 옆에 앉아 손끝을 가볍게 움직이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그는 예전에 국내에서 연수를 간 적이 있었기에 연주 실력은 정말 훌륭했다.한 곡을 연주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장하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마침 서주혁은 피아노를 보고 있으니 소준호는 얼른 기회를 틈타 다른 한쪽에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응, 하리야, 무슨 일이야?”“아, 준호 씨, 죄송하지만 제 가방을 당신 차에 두고 와서 제가 당신 가게 밖으로 가서 가져올게요.”“그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가게 사장은 아직도 서주혁에게 말을 걸며 제품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그 뒤로, 서주혁은 더 이상 소준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와 달리 서보겸의 시선은 줄곧 그에게만 쏠려있었다.소준호 역시 이를 알아차리고 불편한 듯 안절부절못했다.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리는 것을 보니 장하리가 도착한 모양이다. 서주혁을 힐끔 바라보니 그는 이미 결제하고 있었고 이제 괜찮겠다 싶어 소준호는 옆에 있는 유리문을 열고 바깥 도로로 나갔다.장하리는 직접 택시를 타고 왔는데 차에서 내린 후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준호 씨 차는 어디 있어요? 아까는 차에서 내릴 때 저도 정신이 없었나 봐요.”소준호는 자신의 차로 달려가 장하리의 가방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장하리는 가방을 받으며 자연스레 피아노 가게를 바라보았다.거대한 쇼윈도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가게 안의 서보겸과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그 순간, 소파에 앉아있던 서보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그러나 장하리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
남자는 이미 잠들었는지 예리한 눈빛을 숨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성혜인은 무기력한 자태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긴 생머리는 마침 예쁜 허리선을 보일 듯말듯 가렸다. 그녀가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주우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얼마면 돼?”그의 말투에는 감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의한 열정은 이미 싸늘하게식어버렸다.성혜인이 약간 멈칫하다가 다시 옷을 주워 들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이라니, 퍽 우습기는 했다.3년 전, 성혜인은 BH그룹 회장인 반태승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때는 마침 그녀 집안의 SY그룹에 자금난이 닥쳤을 때인데,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반태승은 자신의 손자 반승제와 성혜인을 결혼시키고 SY 그룹에 600억이라는 거금을 투자했다.당사자인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코빼기를 비춘 적 없었고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가 된 후에야 성혜인은 자신의 남편이 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3년 동안 허울뿐인 BH그룹 며느리는 많은 사람의 우스갯거리가 되었다.그런 두 사람이 첫 만남을 침대 위에서 가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돈은 필요 없어요.”성혜인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숙취 때문인지 머리는 터질 것처럼 아팠다.“돈이 필요 없다면 이번 일을 핑계로 들러붙을 작정인가?”반승제는 피식 웃었고, 그 깊은 두 눈으로 성혜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뽀얗고 작은 얼굴에 적당히 좋은 몸매, 맑고 커다란 눈빛 덕에 얼굴도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꼼수를 부리는 여자는 많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은 여자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반승제는 시선을 거뒀다.“네 몫의 돈은 섭섭지 않게 줄게. 하지만 네 몫이 아닌 것은 탐내지 마.”반승제는 어젯밤 확실히 술에 취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는 여자의 몸에 이성을 잃을 위인이 아니었다. 문제는 분명 여자가 건넨 술에 있었다.옷을 다 입고 난 성혜인은 자세를 바로 했다.어젯밤, 반씨 저택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업계의
심인우는 방금 목격한 장면을 생각하고 있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바로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반승제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그는 성혜인이 저급한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조사한다면 그녀의 덫에 걸리는 것일지도 몰랐다.“됐어요.”‘어차피 알아서 다시 나타날 사람인데 조사는 무슨...’성혜인은 후다닥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서 구석구석 몇 번이나 씻은 다음에야 침대에 누웠다.눈을 감으면 아직도 어젯밤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생소한 느낌과 심장이 터질 것만같은 느낌은 아직도 생생했다.솔직히 첫 경험 상대가 반승제라는 것은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단미, 윤단미...’어쩌면 이게 바로 반승제가 이혼하려는 이유일 지도 몰랐다.정신이 극도로 피곤한 와중에도 신체적인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렸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서 아예 몸을 일으켜 서랍 속의 혼인증명서를 꺼냈다.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반승제는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반태승의 힘으로 성혜인 혼자서도 혼인증명서를 받아올 수 있었다.성혜인은 처음으로 혼인증명서 속에 함께 적혀 있는 자신과 반승제를 이름을 찬찬히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다시 서랍을 닫고 성혜원을 만나러 병원으로 출발했다.성혜인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점심 시간이었고 병실을 지키고 있던 간병인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혼자서 조용히 쉬고 있던 성혜원은 성혜인을 발견하자마자 기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언니가 어떻게 왔어?”성혜원의 안색은 약간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아주 똘망똘망했다.“아빠가 또 헛걱정하고 있지? 내가 괜찮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다니까.”성혜인은 침대 옆에 앉아 따듯한 물을 건네며 말했다.“그게 어떻게 헛걱정이야.”성혜원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 자주 입원했었다. 그래서 성휘도 그녀를 유난히 아꼈다.“그래도 난 병원에 있기 싫어. 엄마가 감시하고 있지, 끼니도 죽으로 밖에 못 때
정장을 차려입은 성한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그가 불편했던 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혜원의 약을 건넸다.“저는 이미 혜원을 만나고 왔어요. 이 약은 저 대신 이모한테 전해줘요.”성한은 눈썹을 찡긋하며 말했다.“같이 가자. 우리도 오래간만에 만났잖아.”“아니에요.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성혜인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병원에서 나왔다.성한은 제자리에 멈춰선 채 성혜인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성혜인이 들고 있던 약을 코에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연고를 들고 산부인과에서 나왔다라... 이 장면을 보고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성한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는 차가운 인상의 성혜인이 이토록 문란한 사생활을 즐길줄은 몰랐다. 남편이 3년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독수공방에 지친 그녀가 당연히 그럴 만도 했다.‘급할 것 없어. 혜인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테니까.’성혜인은 차에 올라타고 나서고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소윤이 자식 둘을 데리고 성씨 저택에 와서부터는 매일 성한과 마주쳐야 했는데 성혜인은 그가 상당히 불편했다.성휘는 성한을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난감한 표정에 도무지 그렇게 하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소윤과 성혜원에게 미안했던 성휘는 성한에게도 아주 잘해줬고, 그 속에 껴서 불편하게 지내기 싫었던 성혜인은 단호히 집을 나왔다.이제 와서 보니 그녀야말로 성씨 집안의 제삼자 같았다.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성혜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온 사람의이름을 확인하고 나자 안 그래도 언짢았던 기분이 더 나빠졌다.상대가 먼저 전화를 끊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성혜인은 한숨을 쉬며 수락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어머니.”전화를 건 사람은 반승제의 어머니인 백연서였다.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부터 재벌 집 출신인 ‘시어머니’는 성혜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성혜인도 반태승 앞에서만 손자며느리 역할을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반승제가 아닌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반승제의 비서인 심인우였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건 사모님께 전해달라고 하신 선물입니다.”백연서는 반승제에게 돌아와서 저녁밥이나 먹으라고 했지 성혜인이 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그의 성격으로 원래 오려고 했던 것도 안 올수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심인우가 건네는 꽃다발을 받아들며 실망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그래, 승제가 바쁜 건 나도 알고 있으니... 대신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렴.”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집 안으로 들어온 백연서는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며 손을 휘적였다.“너도 이만 돌아가. 승제가 시간 있을 때 다시 부를 테니까.”“네.”성혜인은 애초부터 남아서 밥 먹을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심인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흐릿한 뒷모습 만으로도 반승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게다가 오늘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혼 서류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말이다.다시 차에 올라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성혜인은 빨간불을 기다리며 회사 단톡방을열어 봤다.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톡방은 아주 시끄러웠다.‘반승제가 이번에 결혼하러 돌아왔다면서요? 네이처 빌리지에 비싼 값을 주고 펜션을 샀다고 하던데 곧 인테리어도 하겠죠?’‘사장님이 반승제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혹시 실내 디자인 일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을까요?”“만약 가능하다면 저희가 엄청 덕을 보겠는데요? 반승제 정도의 재벌이라면 일은 둘째 치고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어요...”반승제가 결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뉴스에도 전혀 나온 적이 없는 일이었다.이 화제에 관심 없었던 성혜인은 휴대전화를 끄려고 했는데 마침 사장 양한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지금 잠깐 문라이트로 올 수 있어? 네가 디자인했던 펜션에 관심 있는 고객이 있는데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
반승제 근처의 아우라는 마치 여름이란 겪어본 적 없는 것처럼 차가웠다.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지.”성혜인은 반승제를 따라 문라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저마다 단정한 태도로 허리 굽혀 인사했다.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반제승가 갑자기 멈춰서서 몸을 돌렸다. 성혜인도 따라 멈춰서서는 덤덤하게 자본주의 미소를 지었다.“너 임경헌한테서 얼마나 받았어?”성혜인은 임경헌과 반승제가 어떤 사이인지 몰랐다. 반씨 일가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니 이것도 당연하였다.반승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냥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사장님 말로는 2억 정도 한다고 했어요.”“이 짓거리를 하는데 사장도 있어?”반승제는 진심으로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문라이트에서 비밀스러운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을 임경헌에게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가 될 줄은 또 몰랐다.어찌 됐든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고민하기에는 늦었다.반승제는 다시 몸을 돌려 룸으로 걸어갔고 성혜인도 묵묵히 따라갔다.“임경헌 말로 너희가 부르는 값은 높지만, 서비스는 확실하다고 했지?”성혜인은 그동안 많은 고객을 만나왔다. 대부분 사람이 다 부자라서 가격만큼은 충분하게 줬지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성혜인은 반승제의 말을 듣자마자 기계처럼 대답했다.“반승제 씨, 가격에 관해서는 충분히 서비스와 정비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서비스와 정비례 한다라...’반승제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만약 내가 네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했다면?”어색한 반응에 가만히 있을 줄밖에 모르던 성혜인에게는 서비스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게다가 반승제는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수억 원을 주고 살 정도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돈 벌기 참 쉬운 직종이군.’성혜인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