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성혜인은 반승제와 함께 네이처 빌리지로 돌아간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신난 얼굴로 온시환에게 전화하는 반승제를 보게 되었다.“야, 너 원진 알아? 그 사람...”통화를 마친 후, 그는 또 서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주혁아, 너 원진이...”가만히 듣고 있던 서주혁은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다시 한번 화면을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반승제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맞다.말하는 내용만 듣고 진심으로 온시환인 줄 알았다.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막 몇 마디 답장을 해주기 위해 입을 뻥긋거렸다. 예를 들어 원진이 너한테 복수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그런데 서주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저쪽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혜인아, 너 왜 내 귀를 잡아당겨? 말로 해, 말로.”“제발 그만 하세요, 반승제 씨. 꼭 그렇게 원진 씨와 걸고넘어져야겠어요?”서주혁은 더 이상 들어줄 수 없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커플들의 사랑싸움을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어떤 종류인지를 불문하고 커플 싸움은 극혐이었다.넓은 별장 안에는 서주혁 혼자뿐이었고 옆 탁자 위에는 그가 법원에서 가져온 두 장의 서류가 놓여있었다.그날 무심코 놔두고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다.그 두 서류를 본 서주혁은 눈이 데기라도 한 듯 갑자기 두 권의 책을 고이 안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아리는 입구를 지키며 왕왕 짖다가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붕붕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별장 안에는 비록 두 마리의 개가 더 많아졌지만 서주혁은 분명히 이 회색빛이 도는 작은 토종 개를 더 좋아하고 있다.그는 아리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그의 턱을 긁어주었다.아리는 기분이 좋은지 편안한 소리를 냈고 꼬리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옆에 있던 도우미는 낯선 주인의 모습에 겁이 나 발을 동동 굴렀다. 별장에 갑자기 개 두 마리가 늘어난 것도 모자라 그중 한 마리는 주혁 씨와 이렇게 가까운 사이라니.예전에 서주혁은 이런 작은 동물들을 가장 싫어하고 더럽다고 여
“됐어요.”이 집의 남 주인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은 또 처음이라 도우미는 전전긍긍하며 털을 말리기 시작했다.아리는 아직 어린 강아지라 털을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털을 다 정리하자 서주혁은 바로 아리를 데리고 나가 아리에게 강아지 이름표를 달아주었다.하지만 아리는 아직 너무 작은지라 이름표 하나를 달았을 뿐인데 걷는 것조차 영향을 받았다.하여 서주혁은 침실 모퉁이에 이름표를 다시 내려놓고 아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그리고 한밤중에 서주혁은 아리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재빨리 침대 머리맡의 불을 켜보니 아리는 자신의 따뜻한 보금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 침대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순간 마음이 급해진 서주혁이 아리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그러나 아리는 눈을 뜨지 않았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서주혁은 너무 놀라서 즉시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방문하도록 요구했다.하지만 이윽고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또 서둘러 트렌치코트를 입기 시작했다.“아닙니다. 그냥 제가 지금 갈 테니까 병원에서 기다려주세요. 약 같은 것도 갖춰두시고요.”그는 급한 대로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한쪽에 놓여있던 목도리로 아리의 작은 몸을 돌돌 말고 바로 집에서 나가 차를 탔다.운전기사를 부를 겨를도 없이 서주혁이 직접 운전에 나섰다.진료소에 도착한 건 10분 후였다. 그는 아리를 안고 빠른 걸음으로 진료소에 들어갔는데 안색은 세상을 잃은 것처럼 어두웠다.수의사는 강아지에게 진찰을 해주고 또 여러 가지 실랑이를 한 끝에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주혁 씨, 강아지는 그저 악몽을 꾼 것 같습니다.”아마 전에 익사할 뻔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잠을 자는 게 불안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몇몇 의사들이 서주혁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안에 검은색 잠옷을, 그리고 겉에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사람들에게 알려진 서주혁의 이미지는 항상 냉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잔뜩 흐트러진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다른
백겸의 신분은 조금 특이한 편이다. 하여 그들 같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은 모두 철저한 비밀 유지가 필요하다.반승제가 그곳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자 백겸은 편해 보이는 일상복을 입고 그를 위해 문을 열어주었다.이윽고 반승제의 얼굴을 보자 백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이번에 네가 기지 자료를 찾아오며 큰 공을 세워 그 영감들이 너에게 상을 주기로 상의했잖니. 그래서 너에게 특권을 주려고 하는데 갖고 싶은 게 있냐?”특권?반승제가 자리에 앉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있어야 할 건 진작에 모두 손에 넣었기에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그런데 순간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며 반승제가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렇다면 정말 제가 원하는 건 다 주실 거예요?”“물론이지. 워낙 중요한 자료라 그 꼰대들이 아무리 인색해도 인센티브는 줘야지.”“그럼 의사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예약해주세요. 저와 혜인이의 결혼식은 그곳에서 진행할게요.”차를 따르던 백겸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의사당은 상층 고위 인사들이 회의를 개최하는 곳으로 절대 외부에 개방하지 않으며 결혼식도 허용될 리가 없었다.만약 그가 이 제안을 정말 동의한다면 반승제는 아마 일인자가 될 것이다.“난 자네가 후대를 위한 권력을 원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틀렸나 보군.”“아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뭐. 저와 혜인이의 결혼식은 뒤로 미룰 수 있어요. 그러니 결혼식을 의사당에서 하면 신선하고 혜인이도 좋아할 것 같아요.”그 의사당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인데 예전에는 왕이 조정을 올랐던 곳으로 곳곳이 고풍스러운 광경으로 가득했다.그러니 결혼식을 이러한 곳에서 진행한다면 사진빨도 엄청나게 잘 받을 것이다.한편 백겸은 손을 들어 자신의 미간을 문지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안 될 건 없지. 그때 너한테 1달 정도 빌려주마.”“네, 그럼 이대로 정하죠. 그런데 오늘 저를 부른 이유가 정말 이것 때문입니까?”“아니. 배현우 일 때문이다. 내
“심 비서, 일단 먼저 돌아갑시다.”반승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홱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심인우도 어쩔 수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집에 돌아온 후, 반승제는 성혜인에게 의사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말을 꺼냈지만 이게 웬걸, 성혜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네이처 빌리지는 제가 디자인한 곳이니 저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결혼식은 그저 친한 친구들도 초대하면 되니까 크게 진행할 필요 없어요.”그러자 반승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들어 그녀의 배를 어루만져주었다.검사 결과 성혜인과 아이의 상태는 모두 정상이었다.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반승제는 더 이상 그들 사이에 그 어떠한 변고도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반승제가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자, 그럼 결혼식은 네이처 빌리지에서 하고 웨딩사진을 의사당에서 찍을까? 지금까지 의사당에서 웨딩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성혜인은 그러한 반승제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내세우는 걸 좋아한다니까.이윽고 반승제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보고 티테이블의 휴지를 뽑아 천천히 닦아주었다.하지만 1초 후, 반승제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승제 씨?”처음에는 너무 피곤해 그런 것이라 여겨 몇 번 흔들어 보았지만 반승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하여 성혜인은 서둘러 심인우에게 연락하여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동시에 사라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곧바로 성혜인을 찾아온 사라는 순간 책임감을 느끼며 무슨 말을 하려다 천천히 입술을 오므리고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괜찮아요. 무언가에 영향을 받으며 몸 안에 있는 약성이 자극받았나 봐요. 평소에도 계속 참아오다가 한계에 도달해 쓰러진 것 같아요.”그러자 성혜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애원했다.“정말 방법이 없나요? 상아 씨를 불러온다면요?”사라는 손을 들어 손안의 데이터를 자세히 관찰해보았다.“상아 씨의 피는 확
성혜인은 서주혁 측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반승제를 네이처 빌리지로 데려갔다. 그리고 빌리지 내부의 모든 인원을 샅샅이 검사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빌리지 내부에서 발견되지 않자 그녀는 또 심인우에게 물었다.“혹시 오늘 누구를 만나러 갔습니까?”심인우가 솔직하게 하나하나 전부 다 설명해주었다.성혜인은 소파에 앉아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백겸이라면 확실히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걸까?그녀는 또 설우현을 불러냈다.“오빠, 그때 칸다에서 수색할 때 혹시 승제 씨와 닮은 남자 본 적 있어요? 제가 처음 칸다에 도착한 그 날 밤, 한 남자가 승제 씨를 사칭해서 저를 데리러 왔는데 승제 씨와 똑 닮아 있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수상한 사람이 나타난 적 없는데 승제 씨가 쓰러졌어요. 승제 씨 주변에 나타났던 다른 사람은 저도 전부 알고 있지만 그 남자는 아직도 정체를 모르고 있어요.”게다가 연구기지의 일이 생기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남자가 속한 세력은 아직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그렇다면 이미 움직인 건가, 아니면 애초에 움직이지 않은 걸까?적들의 행보를 알 수 없으니 그들은 계속하여 피동적인 상황에 부닥쳐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하루빨리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아니. 그런 남자 본 적 없어. 하지만 너도 하마터면 속을 뻔했다는 건 정말 반승제와 닮았다는 건데 그럼 널 노리고 찾아갔단 말이야?”“네. 저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승제 씨가 즉시 저에게 전화해준 덕분에 그 사람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어요.”성혜인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미 진짜를 대체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만약 상대방이 반승제로 속여서 뭔가를 한다면?“혜인아, 넌 어쩔 생각이야?”성혜인은 설우현을 데리고 위층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침실 침대에는 반승제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그녀는 문을 닫고 침대 곁으로 가 반승제의 손을 꼭 잡으며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저를 노리고 찾아왔다는 건 제 몸에 그들
반승제가 쓰러진 지 사흘째 되던 날, 설기웅이 제원으로 돌아왔다. 게다가 곁에는 배현우도 함께하고 있었다.결국, 배현우는 설기웅의 손에 잡혀 수갑을 찬 모습으로 네이처 빌리지에 나타났다.성혜인에게 있어 설기웅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직 꽤 어려웠다. 하여 그와 마주한 뒤,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다.곧이어 성혜인의 시선은 배현우에게로 향했다.오랜만에 만난 배현우는 이미 많이 변해있었다.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쓴 모습이 퍽 낯설었다.성혜인의 시선을 느낀 배현우는 오히려 미간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머리를 홱 돌려버렸다.그러자 옆에 있던 설우현이 손을 들어 배현우의 뒤통수를 거세게 내리쳤다.“뭘 피식거려. 그렇게 오래 숨어 있어도 뭐해. 결국, 우리 손에 넘어왔잖아.”배현우는 설기웅과 격투기장 사람들의 연합하에 잡힌 것인데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 그를 몰아세우니 배현우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하여 화가 난 배현우는 오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오직 성혜인을 만났을 때만 순간 눈동자에 이상한 낌새가 스쳤지만 그것 또한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성혜인은 원래 그에게 몇 마디 묻고 싶었다. 예를 들어 반승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의 계획은 무엇인지 말이다.그런데 이때 네이처 빌리지의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문이 열리자 밖에는 사라와 백겸이 서 있었다.그리고 백겸의 뒤에는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줄지어 따라 들어왔고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등장에 성혜인의 눈동자에 미세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한편, 사라의 시선이 배현우에게 몇 초간 머물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선을 거둬들였다.오히려 백겸이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섰는데 그의 얼굴에는 상사의 여유로움이 가득했다.“난 배현우를 데리러 왔네. 당시 승제도 나에게 배현우를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으니 문제없을 거다.”백겸이 나서니 성혜인도 더 이상 뭐라 하기 난처했다.하지만 백겸의 그다음 말에 성혜인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리고 승제에
성혜인은 전화를 끊고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반승제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설우현은 그녀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고는 그녀를 강제로 의자에 앉혔다.한편, 설기웅은 아래층에 있는 흰둥이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린 늑대의 모습을 한 흰둥이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침실은 조용했고 한참이 지나서야 설우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혜인아, 오빠들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다 응원해줄 거야.”한순간 침묵이 흐르고 성혜인이 손을 들어 반승제의 손을 꼭 쥐어 잡았다.“작은 오빠, 내가 말했었지? 누가 승제 씨를 데려가려고 하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라고. 아직 그 짝퉁의 신분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승제 씨를 떼어내야 그 가짜가 순리대로 나올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 승제 씨를 데려가려는 사람은 백겸 어르신이에요. 만약 백겸 씨에게 정말 문제가 있다면 승제 씨가 백겸 씨를 만나고 와서 혼수상태에 빠진 것도 말이 되지 않나요?”성혜인의 생각은 항상 대담하고 용감했다.그러나 설우현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을 나와 계단 입구에서 설기웅까지 불러왔다.“형 생각은 어때요?”설기웅은 침대에 누워있는 반승제와 성혜인을 번갈아 보았다.지금 성혜인은 이미 백겸과 다음날 반승제와 배현우를 함께 데려가라고 약속했으니 내일이 오기 전에 반드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설기웅이 막 몇 마디 하려는데 창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열여덟 살쯤 된 여자아이가 창문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왔다.이전에 연구기지에서 봤던 검은 긴 생머리는 어디 갔는지 지금은 곱슬모로 변해있었고 한쪽에는 분홍색 머리핀까지 꽂혀 있었다.기억났다. 칸다에서 한 번 본 여자아이인 것 같은데 그때는 줄곧 설기웅의 옆에 붙어 한시도 떠나려 하지 않았었다.그녀의 정체를 기억해낸 성혜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네이처 빌리지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의 경비는 상당히 삼엄한 데다 반승제를 되찾은 이후로 경비 강도도 훨씬 강해졌다. 그런데 이 여자애는 대체 어떻게 뛰어 들어온 걸까? 심지어
그러자 성혜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곧 나나에게 연락을 넣었다.예전에 칸다에 있을 때는 나나랑 사이가 좋았었는데 이번에는 와서 도와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나나는 이미 제원에 와 있었다. 그녀는 원래 H 국민이었고 마침 동생을 해친 범인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하여 연구기지에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나는 흔쾌하게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나나는 오후에 바로 찾아왔는데 그녀의 옆에 있는 8번은 검은 옷에 마스크까지 착용해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성혜인은 나나의 손을 꼭 잡아주며 한없이 감격스러워했다.“나나야, 정말 고마워.”손이 닿으며 나나의 무뚝뚝한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나타났다.“제가 반승제 씨에게 감사해야죠. 승제 씨가 연구기지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제 동생도 돌아오지 못했을 거예요.”나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8번은 긴장한 듯 손을 들어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누나.”소년의 목소리는 매우 허스키했다. 이치대로라면 변성기는 이미 지났을 텐데 지금 보니 아마 너무 긴장한 탓인듯싶다.그러나 성혜인은 그의 건강 상태가 제일 걱정되어 먼저 물었다.“사람을 불러서 검사해볼까요?”“아니에요. 지난번에 모셔온 의사 선생님도 아주 훌륭하세요. 사실 건강은 다 나았는데 사람들과 잘 접촉하지 않아서 낯가림이 좀 심해요.”결국, 연구기지에서 자란 셈이니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박사뿐이다. 다른 연구진들은 그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그의 집착은 줄곧 누나를 찾는 것이었는데 드디어 누나를 찾게 되었으니 너무 흥분한 탓에 감정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곧이어 나나는 성혜인의 손을 꼭 잡아주며 입을 열었다.“당신의 계획을 말해봐요. 우리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봅시다.”그렇게 몇 사람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자신의 추리를 말한 뒤 설기웅을 바라보았다.“오빠, 혹시 설씨 가문은 H국 쪽에 인맥 있어요? 반드시 유용해야 하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오빠도 백겸 본인의 세력을 잘 알고 있잖아요.”백겸은 H국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