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었다. 너무나도 기막힌 우연이었다. 성혜인의 심장이 멎을 정도로. 앞으로 임경헌과 만나야 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게다가 임경헌은 반승제의 사촌 동생이니. 임경헌은 살짝 놀라더니 걸어들어왔다. “페니 씨, 여기 살아요?”성혜인은 억지로 웃음을 쥐어짜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 사장님과... 여자친구분?”임경헌은 바로 여자의 허리를 감아 안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했다. “네. 두 분이 이웃이 되겠네요.”성혜인은 청소하며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다. 성혜인은 임경헌의 여자친구와 이웃이 되기 싫었다. 게다가 임경헌의 어머니는 성혜인이 여자친구인 줄 알고 계시니. 지금 그의 여자친구 앞에서 성혜인은 어느 날 반희월을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반희월이 여기 올 리는 없었다. 임경헌이 여자에게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반희월이 잡으려고 해도 힘들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성혜인은 안심이 되었다. 임경헌은 성혜인이 홀로 청소하는 모습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남편은요? 제가 맞은 쪽에 살 때는 이 집이 안 팔렸었는데. 최근에 산 거죠? 남편이랑 이사하려고요?”성혜인은 골치가 아파 그대로 굳어버렸다.확실히, 오늘 성혜인은 이사해 왔고 임경헌은 진작에 맞은편의 집을 사들였었다. 원래 한참 전에 샀다고 거짓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남편의 일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임경헌 옆의 여자는 임경헌을 안고 성혜인을 향해 날을 세웠다. 원래는 임경헌과 친한 여자인 줄 알고 그런 것이었다. 임경헌과 친한 여자는 대부분 그의 전 여자친구였다. 그녀는 경계하다가 임경헌의 말을 듣고 다시 경계심을 내려놓았다. 그냥 친구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효원이라고 해요. 효원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저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사실 성혜인도 그 얼굴을 봤을 때 어딘가 익숙했다. 그러다가 최효원의 눈이 빛났다
반 회장의 전화를 받았을 때, 반승제의 눈은 멸시로 가득했다. “알겠습니다. 접대가 끝나면 가도록 하죠.”이미 SY그룹을 도와 2차 융자 위기를 넘겼고 그 여자도 계약에 사인을 했으니 성씨 가문에서는 조용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를 불러 체면을 세우려고 한다니, 성씨 가문의 콧대가 참으로 높았다. 반승제는 자기가 SY그룹과 성씨 가문에게 충분히 잘 대해 줬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저 제원을 떠났을 뿐, 이혼계약서을 남기고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는 그 여자도 핍박받아 결혼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대방을 만나고 나서 그녀의 눈에 담긴 애정과 야망, 그리고 그것을 전혀 숨기지 않으려는 그녀를 보고 반감이 일었다. 그는 그때의 결혼이 그녀가 반회장을 졸라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잘 들었고 또 그녀를 아꼈으니까. 게다가 그녀가 그의 목숨도 살려준 적이 있으니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만 밝혀도 할아버지가 결혼을 추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 강박적일 뿐이다. 바로 그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다니. 반승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귀국 후에도 BH그룹을 쉽게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그런 여자와 기형의 혼인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니. 성씨 가문이 반 회장을 믿고 너무 으스대고 있었다. 반 회장과 약속하고 나서 그는 전화를 끊었다. 맞은 쪽에 앉은 사업 파트너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한층 차가워진 태도를 보며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반 대표님, 제가 말한 것에 문제가 있나요?”반승제는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얘기했다. “계획안은 다 확인했습니다. 완벽하더군요.”사업 파트너는 한숨을 내쉬며 다음 화제를 이어갔다. 다른 한편, 성혜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아빠의 몸 건강이 걱정되긴 했지만 SY그룹이 계속 반승제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전에 반승제는 이미 SY그룹의 비즈니스에 끼어든 적이 있었다. 잘못 건드렸다가
성혜인은 임남호 옆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에 짙고 검은 아이라인. 진한 화장 때문에 원래의 얼굴을 보아내기 힘든 정도였다. 여자는 성혜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순간 침을 뱉었다. “임남호, 이 사람은 누구야?”“아, 여긴, 내, 내 사촌 동생이야.”“너 거짓말이었지. 제원에 친척이 없다며? 네 여자친구는 아니고?”“아니야, 절대 아니야.”임남호가 설명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이미 손을 들어 그의 뺨을 때리고 또 바닥에 침을 뱉었다.“꺼져,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마.”임남호가 쫓아가려는데 이번에는 성혜인이 그의 옷깃을 잡았다.“임남호! 네가 유부남이라는 걸 잊지 마.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노는 건 뭐라고 안 할게. 일단 돌아가서 이혼부터 해!”여자는 멀리 가지 않아 임남호와 성혜인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임남호는 자기가 2주 동안이나 공들인 여자가 떠나는 것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그 여자는 다시 돌아오더니 성혜인을 차버렸다. “더러운 년! 내 남자를 뺏을 생각이야? 내가 누군지는 알아?”성혜인은 이 여자가 다시 돌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게다가 그녀에게 손을 댈 줄은 몰랐다. 멀지 않은 곳에서 차가 오더니 성혜인을 치려고 했다. 임남호는 길옆에서 이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는 성혜인과 10센치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멈춰 섰다. 성혜인은 임남호가 여자를 확 밀치는 것을 보았다. “가! 꺼져! 다신 보지 말자!”“어, 그래, 임남호. 감히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임남호의 얼굴이 삽시에 붉어졌다. 성혜인을 보기도 무서웠다. 성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익숙한 차 번호를 보고는 머리가 아파졌다. 차 문이 열리더니 반승제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마도 금방 접대를 마치고 온 것 같았다. 와이셔츠의 단추가 두 개 정도 풀어져 있었고 한 손은 차 창문에 걸친 채 그 푸른 커프스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는 성혜인을 보고 밤바람처럼 차갑게 물었다. “신 사기인가
“나 좀 내버려 둬! 그건 내 부모지 네 부모도 아니잖아. 게다가 너희 집안도 개판이잖아.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난 간다.”“그래, 가. 난 이미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네가 가면 그 여자는 감옥에 갈 거야.”임남호는 그대로 굳어버린 채 얼굴 근육이 떨렸다. 성혜인의 태도는 강인했다. “사람을 불러서 널 돌려보낼 거야. 그리고 외삼촌과 외숙모한테도 알려서 널 데려가라고 할거고.”“너!”임남호는 또 기가 죽었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마. 난 밖에서 굶어 죽더라도 그 집에 돌아가기 싫어.”반승제의 차 창문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저번에 이 남자와 싸울 때도 반승제가 현장에 있었다. 그래도 반승제는 성혜인의 집안일에 별로 큰 관심이 없었기에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하지만 반승제는 운전기사더러 다시 가라고 하지도 않았다. 운전기사도 아까의 일 때문에 놀라 혼이 나간 상태였다. 성혜인은 반승제가 여전히 있는 것을 알고 그의 앞에서 더 이상 창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차량이 도착하고 두 경호원이 임남호를 쳐들고 그의 손발을 묶었다. 임남호는 성혜인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도망치려 했지만 두 경호원의 근육을 보고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다. 성혜인은 이어서 전화를 또 걸었다. 이번에는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거는 전화였다. 임남호를 찾았으니 잘 데리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임동원과 이소애 다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성혜인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아 이소애는 또 저번에 말한 공무원 얘기를 꺼냈다. “혜인아, 이미 물어봤는데 그 공무원 생긴 것도 꽤 잘생겼대. 바르게 사는 사람인데 한번 만나봐.”성혜인은 미간을 손으로 누르며 모르는 사이에 반승제와 눈이 마주쳤다. 반승제의 옆태는 예리하면서 부드러웠다. 차량의 빛이 그의 얼굴에 비추어져 그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귓가에는 외숙모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또 생각난 것이지만
최효원을 집안으로 들인 성혜인은 예의상 물 한 컵 따르러 갔다.성혜인의 집을 이미 한 번 구경해 본 적 있었던 최효원은 이곳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잠깐 사이 곳곳에 더해진 성혜인의 디테일한 인테리어 덕분에 집안은 훨씬 더 보기 좋아졌다.겨울이는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얌전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강아지를 좋아했던 최효원은 그의 애절한 눈빛에 결국 참지 못하고 개껌 하나를 집어서 건네줬다.“페니 씨도 경헌 씨가 부자라는 걸 알고 있죠? 사람들이 다 그래요, 한낱 데스크 직원일 뿐인 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차일 거라고요. 저희는 경헌 씨가 BH그룹에서 출근하고 있을 때 만났거든요.”임경헌은 강제적으로 BH그룹에서 이틀 정도 출근한 적이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도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니 성혜인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섹시한 전 여자친구와 완전히 반대되는 최효원의 청순한 모습에 그는 정해진 취향도 없이 만나고 다니나 싶었다.임경헌은 유흥업소를 밥 먹듯이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항상 미인이 차고 넘쳤다. 이렇게 보면 최효원이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또 제가 언제 듣기로는 경헌 씨 어머니가 경헌 씨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엄청 싫어한대요. 저도 어머님을 한 번 뵌 적 있는데 진짜 무서운 분인 것 같았어요.”최효원의 육감은 아주 정확했다. 임경헌의 어머니는 확실히 무서운 사람이었고 아들에 대한 요구도 각박했다. 수많은 여자가 그녀에게 시달리다가 임경헌과 헤어졌다. 따지고 보면 좀 시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질이 떨어지기도 했다.성혜인은 남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최효원이 이미 그녀를 친구로 여긴 모양이라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는 없었다.“사실 어머님도 그리 무섭기만 한 분은 아니에요. 사장님 여자 취향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알기 전에 무서울 뿐이지, 효원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된다면 분명 응원해 주실 거예요.”성혜인은 항상 임경헌을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임경헌은 자신의 집을 실내 디자이
「경헌 씨 말이 맞아요. 페니 씨는 엄청 유능한 사람인 것 같아요. 본업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잖아요!」임경헌은 최근 방탕한 마음을 다잡고 최효원에게만 잘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주 이렇게 얘기를 주고받았다.사진을 본 임경헌은 눈썹을 튕기며 반승제에게도 보내줬다.「형, 이건...?」반승제는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성씨 저택 밖에 도착했다. 성씨 집안사람이 반태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안 올래야 안 올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 오는지는 반승제에게 달렸다.성씨 일가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향긋한 냄새가 방안에 맴돌고 있었지만 그들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반승제와 성혜인은 오지 않았다. 더구나 성혜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성휘는 안 그래도 화가 나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는데, 눈치 없는 소윤이 계속 곁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제가 진작에 말했죠? 혜인이는 우리 집안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애예요. 당신이 퇴원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기승을 부리는 걸 봐요.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성휘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가 퇴원하려고 했을 때, 의사는 아직 퇴원할 상황이 아니라며 돌려 말했지만 그는 결국 듣지 않았다. 2차 융자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한창 일이 많아질 시기라서 도무지 병원에 누워 경영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성휘는 또 성혜인에게 지분을 양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딸이 고생하지 않도록 말이다.요즘은 성혜인과 반승제의 사이가 어떤지 잘 몰라서 걱정이었다. 반승제의 비서와 백연서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더욱 걱정되었다. 반승제의 권력이 필요해 추진한 정략결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휘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성씨 일가는 저녁 6시부터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위의 음식이 셀 수도 없이 반복해서 데워졌는데도 아무도
자동차 경적이 두 번 울리자, 심인우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뒤늦게 무언가 떠오른 듯 창문을 내리며 말했다.“참, 앞으로 회장님한테는 통화를 삼가시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사고가 생기면 서로 껄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이번 말은 단호함을 넘은 경고였다. 반씨 집안에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성휘는 순간 머리가 뻥 해지더니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성혜원은 기대하는 표정으로 뒷좌석의 창문 앞으로 왔다.“승제 씨.”성혜원은 반승제의 차가운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매불망 창문만 바라봤다. 자신이 반승제 앞에서 얼굴을 많이 비추면 무조건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화내지 마세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성혜원은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안 그래도 병약한 몸을 더 강조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가녀린 느낌을 만들어 냈다.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같은 집안사람이 맞는지 의심 갈 정도로 무식한 행동이었다.넋이 나간 채로 한쪽에 서 있던 성휘도 성혜원이 반승제에게 과하게 열정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잘못된 열정 말이다. 그의 안색은 아주 어두웠다. 하지만 열받은 나머지 말문이 막혀 버렸다.성혜원은 원래 몇 마디 더 하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옷깃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머리를 돌렸다. 그녀를 말린 사람은 소윤이였다. 더 이상 말했다가는 분위기가 더 험악해질 것 같아서 소윤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성혜원은 이제야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반승제가 있는 뒷좌석으로 향해 있었다.반승제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심인우에게 말했다.“출발하죠.”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액셀을 밟았다.차는 빠르게 멀어져갔지만, 성씨 일가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가장 먼저 정적을 깬 사람은 소윤이였다.“성혜인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았어요. 백연서 그 여자가 했던 말 잊었어요? 반씨 집안에서 혜인이를 좋게 보는 사람은 회장님밖에 없다고요.”소윤
반승제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버렸다, 마치 임경헌의 문자를 본 적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성혜인은 자신의 그림이 반승제 본인에게 전달됐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최효원이 만든 야식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를 했다. 겨울이도 얌전히 누워서 귀를 쫑긋거렸다. 성혜인은 최근 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금세 단잠에 빠졌다.이튿날 아침, 성혜인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바로 공사 현장으로 출발했다. 신이한 덕분인지 새로 뽑은 직원은 아주 빠릿빠릿했다. 성혜인이 디자인적인 지시를 내리면 금방 알아듣고 빠르게 공사를 해나갔다.공사가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성혜인은 재료 리스트를 꺼냈다. 서천에서만 만드는 옥단 장판 빼고는 전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인맥으로 비교적 싼 값에 거래할 수 있기도 했다.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옥단 장판이었다. 이를 위해 조만간 직접 서천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성혜인은 공사 현장에서 떠나기 전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지 않았더니 수많은 전화가 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라도 자기 뜻을 밝혀야 했다. 안 그러면 집안에서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다.2차 융자가 끝난 다음에는 반승제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 원래 하던 대로만 해도 회사가 잘 운영될 것이기 때문이다.성혜인은 부재중 통화를 못 본 척하고 출발하려고 했다. 이때 한지은이 갑자기 다가와서 창문에 노크했다.한지은은 저번에 조희준과 바람을 피우다가 부인한테 잡힌 적이 있었다. 그의 부인도 만만한 사람이 아닌게, 한지은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려 그녀의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요즘 양한겸에게도 찝쩍대지 못하고 있었다.‘또 시비 걸러 온 건가?’성혜인은 창문을 내리더니 덤덤한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한지은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회의하는 날이잖아요. 근데 제 차가 고장나서... 어차피 가는 길인 것 같은데 회사까지 데려다줄 수 있죠?”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차가 고장 났으면 택시를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
아래층 마트 이모는 몇 년 동안 줄곧 그들 남매를 돌봐 주었고 염정아가 사람을 시켜 동생을 데리고 제원에 오라고 한다니 살짝 의심은 생겨 걱정 되었지만 원아정의 깔끔한 옷차림을 보더니 돈이 모자랄 같지는 않았고 게다가 지적장애인 사람을 데려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테고 하물며 염정아의 친구이기도 하여 안심되었다.“이모, 이건 우리 집 열쇠에요. 제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 들러 애들 밥해줄 수 있어요?”마트 이모는 염정아가 좀 전에 집에 돌와왔을 때 물건도 많이 사들였고 돈 씀씀이가 큰 것으로 보아 제원에서 많은 돈을 벌어 동생을 데려다 이틀 정도 놀아 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하여 이 상황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았다.“그래, 알았어. 근데 갔다 일찍 돌아와야 해.”“네, 고마워요 이모.”동생은 조금 모자라지만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그는 인사를 마치고 옷 두 벌을 챙겨 원아정을 따라 떠났다.그들은 자가용으로 움직였고 동생은 처음 길을 떠나 보는 거라 물음이 끊기질 않았다.원아정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그런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누나가 왜 갑자기 그렇게 큰돈을 벌어 올 수 있는지 생각 안 해요? 당신을 집에 두고 밖에서 다른 남자랑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바보라서 침대에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으니 나가서 다른 정상적인 남자를 찾은 거 아니에요? 그 남자랑 있으면서 당신을 바보라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잖아요.”동생은 원아정의 말뜻은 전혀 몰랐지만, 염정아는 절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을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원아정의 말을 듣고 동생은 더 이상 물음을 던지지 않고 창가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이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원아정은 누나가 바람 피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그렇게 자극했는데도 웃고 있는 동생을 보니 바보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이튿날 밤이 되자 그들이 앉은 차는 드디어 제원에 도착했다.원아정은 다시 거지로 위장해야 하기에 동생더러 같이 거지 옷차림을 하게 하고 여
온시환이 완벽하게 변장한 탓에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공지민은 계속 별장에 머물러 있었고 매일 연승혁의 안부를 물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통화 너머로 공지민은 연승혁이 지금 많이 초조해진 것을 느꼈으나 그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공지민은 항상 자신의 계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그렇게 빨리 찾아왔고 무정하게 무너뜨리게 할 줄은 몰랐다.연승혁의 부하들은 줄곧 원아정을 찾고 있었고 그와 원진이 원아정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한 후 원진의 부하들도 그녀를 찾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은 원아정이 죽든 살든 별다른 관계가 없었기에 큰 신경을 써서 찾은 것은 아니였다.원아정은 항상 거지들 속에 숨어 지냈고 그동안 훔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원아정은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번호에 연락하여 일일이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정보도 얻어 냈다.그것은 당시 공지민에 의해 숨겨져 있던 사람이 발견되었고 그 별장으로 배달하던 배달원이 또 다른 곳에서 염정아를 보았다는 것이다.소식을 들은 원아정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염정아의 집으로 향했다.그 배달원은 제원에서 배달하다가 며칠 전에 돌아왔는데 마침 식당에서 또다시 염정아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원아정의 거지 차림에 배달원은 약간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손 크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그 별장에 몇 번이나 배달해서 얼굴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그녀가 일부러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것 같아 보여 부잣집 도련님의 내연녀일 거로 생각했어요.”배달원의 말을 듣고 원아정은 바로 돈 주고 사람 찾아 염정아의 정보를 알아봤다.알아본 데 의하면 염정아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다.그런데 왜 공지민은 제원에서 염정아를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자, 원아정은 자신이 찾아낸 정보 자료들을 정리해 보다가 다
온시환은 바로 인사를 건네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사의 일을 거들었지만, 눈길은 항상 거실에 있는 공지민 한테로 향했고 채소를 다 씻었을 때 공지민은 혼자 위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온시환은 주방 사람들에게 핑곗거리를 대고 공지민 뒤를 따라 올라갔다.온시환은 변장에 가발까지 쓰고 렌즈 색마저 바꿔버린 자신을 공지민이 알아보지 못하자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지민아.”공지민은 멈춰 선 대로 낯선 얼굴을 보며 몇 초 동안 뜸 들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온시환?”“응, 나야.”온시환은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너 연승혁의 별장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혹시 다른 계획이라도 있는데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니?”공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온시환을 잊은 것도 아니였다.그녀가 여기 별장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상우에게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공지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던 연승혁을 죽이고 구은우의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애초에 온시환의 얼굴의 점이 구은우를 닮은 것도,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도 구은우의 심장이 었기에 온시환과 밤을 보낼수 있었고 그에게 잘해 준것도 구은우를 느끼고 싶은 작은 위로의 감정이었을 뿐이었다.이제 공지민은 연승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온시환과의 관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온시환이 먼저 갖은 방법을 다해 찾아 올 줄은 몰랐다.“지민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면 공유하자고 하지 않았어? 연승혁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자나. 니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랑 함께 돌아가야 해.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온시환이 같이 나가려고 공지민의 손을 끌어당겼지만, 공지민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 공지민의 행동에 온시환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냉정한 눈빛을 보니 더욱 당황스러웠다.“온시환 씨, 이제 돌
공지민은 며칠 동안 별장에서 먹는 것 빼고는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별장 주변 화원을 구경하며 조용하게 있었다.고용인 아줌마는 거의 그림자처럼 공지민을 따라다녔고 매일 있었던 일들을 연승혁에게 보고했다.연승혁은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을거로 생각했었는데 이번 일은 좀 까다로워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연승혁은 운 좋게 살아남았던 시한폭탄 같은 그 사람을 빨리 찾아 죽여야만 했지만, 부하들의 추적에 의하면 이 사람은 동쪽에서 신호가 잡혔다가 얼마 안돼서 다시 서쪽에서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부하들이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었더라면 연승혁은 자신이 지금 그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먼거 리를 움직일 수 있었을가.이것은 분명 그를 제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시간 끌려는 작전인 듯했다.연승혁은 원수가 너무 많아 누가 저지른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초조해 지기 시작했지만, 공지민의 일거일동을 보고 받을 때마다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공지민은 직접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의 말투로 말했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정말 심심해 미칠 것 같은데 사람 시켜 나 좀 데리고 놀라고 하면 안 돼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줄곧 별장에서 연승혁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연승혁은 하루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며칠을 지체하게 되어 공지민 홀로 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공지민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예전에 난 직업도 없이 오빠가 날 먹여 살린 거예요?공지민은 며칠 동안 아무런 의욕이 없이 먹기만 했었고 누구도 먼저 연락해 찾은 일도 없어서 자신이 직업도 없었을 거로 생각했다.만약 출근하던 사람이 었으면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사장님이 직원들더러 연락해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연승혁은 사람을 시켜 공지민을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도 씌우게 하고 싶었지만 온시환이랑 부딪치는 일이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온시환은 거의 매일 열 몇
“맛있어, 먹고 싶으면 이따 저녁에 나가서 먹자.”동생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그런 염정아가 걱정되어 소매를 잡으며 위로하려 했지만, 옷을 더럽힐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누나, 일하는 거 힘들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 우리한테 햄버거도 사주고 저녁에도 좋은 거 먹으러 가자고 하겠어.”염정아는 손을 들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장도 엄청 좋은 사람이고 월급도 많이 줘.”동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햄버거를 계속해서 허겁지겁 먹어댔다.염정아는 공지민의 계획에 피해라도 줄까 봐 내일 돌아가야 해서 오늘 저녁밖에 시간이 없었다.아이들은 모두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야 밥상에서 일어섰고 동생은 배가 부름에도 토할 정도로 그냥 먹고 있었다.염정아는 동생의 손에 남은 햄버거를 뺏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배부르면 먹지 말라고, 왜 아직도 그 습관 못 버려?”“오늘 안 먹으면 다음엔 없을가봐...”“이젠 그런 걱정 하지 마. 내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쭉 있을 거야.”“그래, 누나 말 잘 들을게.”염정아는 웃으면서 남은 햄버거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집에 있던 냉장고는 전에 중고로 샀던 거라 너무 작았고 티비도 화면이 매우 작아 아이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어서 염정아는 집에 온 틈을 타 냉장고랑 티비를 모두 새것으로 바꾸었다.새 티비는 백 인치라서 화면이 큰 소파에 앉아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아이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젤 작은 막내 둘까지 신이 나서 소파 위로 기어 올라갔다.염정아는 집 안에 있는 모든것 들을 교환하고 정리 한 다음 몇 시간이 지나 아이들을 데리고 랍스타 먹으러 나섰다.식당에 도착하자 동생은 낯선 환경이라 염정아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도 처음 보는 주변의 분위기에 큰 소리로 말도 못 하고 있자 염정아는 바로 조용한 방으로 예약해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하나씩 전부 주문했
동생의 연락을 받은 염정아는 아이들 생각에 먼저 공지민한테 연락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의 약속 때문에 연락도 못하고 결국 온시환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였다.염정아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뜸들이며 못하고 있자 온시환은 그녀가 집을 그리워하는 눈치를 채고 말했다.“이틀 정도 지연되여도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사람 시켜 집에 데려다줄게요.”염정아는 그 순간 얼굴색이 밝아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고마워요 시환씨.”온시환은 말한 대로 그날 바로 사람 시켜 헬기로 염정아를 집에 데려다주었다.집에 도착한 염정아는 방문을 열고 동생이 아이들을 달래고 있는 것을 보았다.동생의 행동은 아주 서툴렀고 정상적인 사람들하고는 비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그의 보살핌에 잘 커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염정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은 바로 뒤돌아보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누나!”염정아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능숙하게 아이들한테 분유를 타 주고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동생은 염정아의 주변만 맴돌면서 금방 통화한 지 얼아도 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며 꿈만 같게 생각했다.주방을 보던 염정아는 초라하게 놓인 반찬 몇 가지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너희 요즘 이렇게만 먹은 거야?”동생은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니 1분 만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시켜줬다고 자백했다.“미안해 누나,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시켰어.”두 남매는 부모님들이 살아 계실 때만 햄버거를 먹어봤었고 지금의 그들에겐 이런 음식들은 사치품이였다.그때 염정아는 집을 나서면서 아래층 마트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뒀는데 동생의 요구에 아줌마가 배달을 시켜준 듯 하였다.염정아는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먹고 싶으면 우리 오늘도 시켜 먹자.”4억, 그들은 지금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공지민이 후에 또 몇천만을 주었다.동생은 또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바닥까지 밀고 닦기 시작했다.염정아는 빨
연승혁은 의자를 찾아 앉아 묵묵히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의 부하들은 그들을 공격해 온 해커의 추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시간이 오래 걸리자 연승혁은 귀찮은 어조로 물었다.“얼마나 더 걸려야 되는 거니?”“형님, 이틀은 걸려야 될 듯 해요. 그쪽에서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몰라 아직은 추적하기 어려워요. 일단 움직임이 있을 때 추적해 봐야 할것 같네요. 현재 상황에서 보아 신호는 1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잡히고 있으니 아마 해역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연승혁은 귀찮다는 듯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그래.”연승혁은 제원의 별장에서 나오면서 고용인 아줌마한테 공지민을 잘 돌보라고 지시했다.공지민은 휴대전화를 연승혁에게 빼앗겨 당분간 외부와 연락할 수 없었고 별장에 있는 아줌마는 매일 그녀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며 잘 돌봐주었다.이것 또한 연승혁이 지시한 일이었고 그는 이렇게 감시하며 공지민의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지켜보고 있었다.별장에서 하루 종일 자고 일어난 공지민은 아줌마가 연승혁에게 회보하며 온시환이 정문 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회장님, 저 사람 들여보낼까요?”연승혁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모르지만 아줌마는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시간은 벌써 저녁 무렵이 되었고 공지민은 온 하루 별장 안에만 있었다.온시환은 며칠 동안 공지민의 소식이 끊기자 걱정되어 그녀의 집에 찾아갔지만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공지민은 요 며칠 사람도 보이지 않고 통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다.많이 불안해진 온시환은 공지민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지만 역시 받는 사람이 없었다.당연히 온시환은 공지민의 휴대전화가 연승혁의 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연승혁은 공지민의 휴대전화에 뜬 온시환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왠지 모를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생기게 되었다.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연씨 가문은 외래인 출입 금지라서 들어가지도 못한 온시환은 차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염정
날은 이미 저물었고 조용한 공간엔 선남선녀 둘뿐이라 음침한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승혁은 이건 자신이 시작한 게임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공지민이 단순하게 행동 할수록 그녀를 덮치고 싶은 사악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졌고 누나라 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있는 한 아무나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연승혁의 시선은 공지민으로 향했고 쇄골로 부터 아래로 내리 훑어보며 얇은 슬리퍼 한 켤레만 신어 은은한 분홍빛을 드러낸 발등을 바라보더니 당황한 듯 시선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일이 생긴 거 맞아. 나가서 해결해 봐야 할것 같아.”연승혁은 마음속으로 며칠 후에 돌아와서도 공지민이 이대로 사람을 유혹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나중에 할머니께 천천히 설명하기로 생각했다.“오빠,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연승혁은 공지민이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을 줄은 몰라 입꼬리를 실룩거리면서 말했다.“어딜 따라오겠다는 거야?”“오빠랑 떨어져서 있고 싶지 않아요. 잊고 지낸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오빠가 곁에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요. 오빠한테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아니, 같이 가도 돼.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필경 해결해야 할 일은 피를 보는 일이라서 걱정되는 듯하였다.“괜찮아요. 저 안 무서워요.”연승혁은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라 공지민이 이 정도로 말하니 바로 데리고 집에서 나섰다.헬기에 탑승한 후 공지민은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연승혁은 계속 통화만 하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회답이 없자 연승혁은 바로 헬기를 먼저 착륙하게 하고 단번에 공지민을 안아 헬기에서 내렸다.“어떤 상황인지 내가 먼저 가서 상황을 좀 볼 테니 일단 집에 가만히 있어.”“오빠,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공지민의 말에 연승혁은 심장이 무언가에 꽉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자신이